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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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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피가 흐른다 – 18
수백 년간 외동딸로 이어져 오던 가문에 딸만이지만 세 자매가 태어났고, 그 중 장녀는 딸 둘에 이어서 아들도 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이 딸들은 유혜선 여사의 둘째와 셋째도 그랬고, 유초혜 여사의 첫째와 둘째도 어머니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에 비해 아들인 유건영은 좀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누나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평범하지 않은 일화가 많았다.
무엇보다 결혼하자마자 아내가 임신해서 딸을 낳았는데, 그 이후로 둘 다 멀쩡한 몸임에도 둘째가 안 생겼다.
각각 아들 둘과 아들딸 셋을 둔 누나들과는 전혀 달랐다.
거기에 그런 유건영의 딸인 장손녀도 어렸을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유혜선 여사는 가문의 피가 딸들이 아닌 손자 유건영을 통해 증손녀에게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손자가 딸 하나 낳은 이후에 더 이상 자식을 보지 못하는 것이 가문의 옛 신이 다시 돌아온 징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혜선 여사는 가문이 옛 신과 맺은 계약이 있고, 그로 인해 얻은 것들이 있으니 이제 그걸 다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유초혜 여사는 그런 어머니의 생각에 반대했다. 그녀는 이대로 가면 아들은 액을 맞고, 친손녀는 다시 신에게 얽매이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에게 자신들 대신 제물로 바쳐 신과의 문제를 대신 책임져줄 산제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조사 끝에 자신들 가문 못지않은 오래된 무당과 박수의 혈통을 이어받았지만, 자신들처럼 그 일을 때려치운 집안을 찾아냈다.
마침 상대의 처지도 유초혜 여사의 입맛에 딱 알맞았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하고도 더럽고 치사한 인맥에 밀리고 주변의 견제를 받아 바닥을 기고 있는 여배우였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성공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독기까지 품고 있는 그녀를 구슬리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쉬웠다.
대놓고 돈과 성공을 위해 아들의 첩이 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재능이 아깝다며 후원하고, 그렇게 성공한 그녀를 가끔 아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초대했다.
노골적이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아들인 유건영과 그녀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도록 꾸미고, 둘이 서로 마음이 조금 싹트자 술과 약을 이용해서 둘이 사고 칠 상황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고였지만,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은 남들 몰래 숨어서 자신들을 조정하는 숨겨진 손을 모른채 애달픈 사랑을 시작했다.
유초혜 여사는 시동생이지만 어려서부터 자신이 기른 것이나 다름없는 심복 유준선을 통해 회사의 비밀스러운 인원들을 통제해서 두 사람을 남편인 유명선 회장이나 며느리의 시선에서 차단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유초혜 여사가 고른 그 여배우는 유건영의 아이를 뱄다.
유초혜 여사가 나섰다.
불륜 상대와의 애달픈 사랑과는 별개로 사업적 동반자인 아내와의 결혼을 깰 생각이 없었던 아들은 엄마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으니 잊으라고 설득해서 떼어냈다.
그리고 여배우에게는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했다.
유초혜 자신은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녀가 아들을 낳으면 아들과 며느리를 이혼시키고 그녀를 대신 며느리로 삼겠다고 속였다.
여배우는 속았다.
그녀는 존경하던 사모님을 믿고, 사랑하고 있음에도 남들에게는 비밀로 해야만 하는 연인과 떳떳하게 결혼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결혼도 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여배우도 유초혜 여사도 그렇게 태어난 남자아이를 보고 함께 행복해했다.
여배우는 이 아이가 자신을 대기업 사모님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생각에, 유초혜 여사는 이 아기를 제물로 바치면 자기 아들과 손녀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물론 유초혜 여사는 자기 손을 더럽힐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며느리에게 이 일이 넌지시 알려지도록 꾸몄다.
남편인 유명선 회장이 손자를 못 낳는 며느리를 이혼시키고, 이미 손자를 본 아들의 불륜녀를 새 며느리로 들이기 위해 고민 중이며, 아들의 불륜녀를 며느리로 들일 수 없으면 손자라도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한다는 소문이었다.
며느리의 친정은 성화 그룹 수준은 아니어도 나름 꽤 규모 있는 기업으로, 성화 그룹과의 협력을 통해 급 성장중이었다.
잘하면 오래지 않아 대기업도 될 수 있을 수준이었던 그들에게 불륜녀가 낳은 사위의 아들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그들은 아이와 여자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완벽한 차도살인 계획이었지만, 실패했다.
유명선 회장은 자기 몰래 아내와 동생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고, 며느리와 그 친정의 움직임도 손바닥 보듯 보고 있었다.
위험한 사람들이 움직인 그 순간, 유명선 회장은 직접 나서서 아이와 그 엄마를 각각 따로 떼어 외국으로 보내 버렸다.
아이를 엄마와 분리한 것은 그 엄마도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다시 손을 대려 한다면 아내건 아들이건 며느리건 사돈이건 용서하지 않겠다는 엄중한 경고가 내려졌다.
유초혜 여사는 이게 다 아들과 손녀를 위한 일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유명선 회장은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에게 화를 냈다.
그런 짓을 저지르면 그 업보가 더 크고 무섭게 돌아오리라는 것조차 모르냐는 남편의 말에 유초혜 여사는 반박하지 못했다. 유혜선 여사조차 딸이 아닌 사위의 편을 들었다.
유초혜 여사는 이러다가 아들 손녀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남편에게 버림받겠다는 생각에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포기했다.
그녀가 아들과 손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과 남편과의 사랑의 결실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아니라면 아들도 딸도 그녀에게 큰 가치는 아니었다.
유건영은 여배우가 자기 몰래 아이를 낳고 본처 자리까지 노렸다는 이야기에 여배우에게서 정을 뗐다.
그는 여배우를 사랑했지만, 그보다 후계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그 자리를 지키는 일에 도움이 되는 아내와 그녀의 친정의 가치를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
여자나 사생아 따위 그에 비하면 필요하면 언제든지 손에 넣고 버릴 수 있는 한때의 즐거움에 불과했다.
며느리는 그 아이가 호적에 올라올 일 없으며, 아들의 바람기나 사생아 따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아버지의 약속에 만족했다.
그녀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단지 딸에게 부화뇌동했던 사돈 집안은 체면을 많이 잃고 유명선 회장의 눈 밖에도 났지만, 유명선 회장은 며느리 체면을 보아 넘어갔다.
하지만 다들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큰딸 유민영과 작은딸 유인영은 친손녀라고 해도 여자아이인 조카가 아니라 남자아이인 자기 아들 중 하나가 나중에 그룹을 물려받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고, 그런 그녀들에게 사생아라고 해도 아버지에게 친손자가 생긴 것을 위협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녀 들은 아버지 주변 사람들을 매수해서 아버지가 사생아인 손자를 영국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위탁해서 키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킬러를 보냈다.
유명선 회장도 차마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생아를 돌보던 부부 직원 중 남편이 죽고, 아기는 실종되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내가 정보를 누설한 사람이라는 것은 나중에 밝혀졌다.
유건영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생아 아들이 죽건 말건 관심이 없었다.
유초혜 여사나 유건영의 아내는 아이의 죽음에 표는 내지 않았지만 반겼다.
유혜선 여사는 이 일이 분명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면서, 그때 이후로 손녀들을 아예 혈육으로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너무 나이가 많았고, 제대로 활동도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유명선 회장은 사생아이긴 해도 손자의 죽음에 가슴 아파했지만, 딸들에게 책임을 묻지는 못했다.
딸들을 그렇게 키운 것은 아내였고,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딸들이 아니라 아내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명선 회장의 생각을 눈치챈 유초혜 여사가 회사까지 쫓아가서 임원들 앞에서 울고불고 빌면서 딸들 잘못 키운 것은 자신이지만 이번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애원하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회장님이 회사 때려치우시려 한다는 생각에 기겁한 임원진들이 자기들 다 때려죽여도 못 보내드린다고 매달려서 간신히 그 일이 그 정도에서 덮였다.
하지만 유명선 회장은 그 이후 자식들은 물론이고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와 동생에게조차 선을 그어 버렸다.
남편이 변화를 눈치챈 유초혜 여사는 공동경영자였던 부모님을 흉내 내 오너로서 은근히 회사에 끼치던 영향력을 전부 포기하고 유명선 회장의 아내라는 입장만을 고수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물론이고 자식이나 손자들까지도, 그녀에게는 남편의 사랑에 비하면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유준선 부회장은 납작 엎드렸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형인 유명선 회장과 형수인 유초혜 여사 그리고 사돈어른들 손에서 자란 유준선 부회장은 자기 형이나 형수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고, 절대로 두 사람 그중에서 특히 형에게 거슬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재벌 회장 임에도 공처가에 애처가 소리를 듣는 유명선 회장의 겉으로 보이는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만을 아는 탓에, 겁도 없이 사고를 쳐댄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들만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하나씩 유명선 회장의 마음에서 지워져 갔다.
아들인 유건영 사장이 건설 현장 시찰 중에 사고로 죽고, 그 사고 배후에 딸들이 의심됨에도 유명선 회장은 관심도 두지 않았다.
이미 유건영 사장이 그 이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공적 사적으로 실망하게 한 것도 모자라서 겁도 없이 회사 내에 파벌을 만들어 아버지 유명선 회장을 밀어내려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명선은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가 아닌 물리쳐야 할 목표로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아들을 아들로 여기지 않았다.
며느리도 집안에서 내보냈다. 시어머니에게 놀아난 것이기는 해도 돈과 권력을 위해 아기를 죽이겠다고 친정을 동원한 여자였다. 아들 조차 정이 떨어진 상황에서 며느리에게 정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아내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의절이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제대로 재산도 챙기지 못하고 쫓겨난 것이 억울하기는 해도 그녀는 숨을 죽이며 살았다. 그녀가 받은 것은 별로 없지만, 대신 친정이 챙긴 것은 적지 않았다. 친정은 혹시나 그녀가 사고라도 치면 유명선 회장의 노여움을 살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가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재산을 보장해 주었다.
그 후 그녀는 옛 시아버지 눈에 절대 띄지 않게 생활했고,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온 딸을 만나는 것조차 조심했다. 연인이 생긴 이후에도 재혼조차 못 하고 조용히 사실혼 관계로만 지낼 정도였다.
며느리는 그나마 사돈 체면을 보아서 조용히 처리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오히려 혈육의 경우는 손자나 손녀가 사고 치면 그 순간 더는 자기 핏줄 아니라고 대내외에 공표해 버리고 관심을 끊었다.
사고 친 손자 정동후가 할아버지 잘못했어요라고 울고불고하며 애원할 때, 뉘신 줄 모르겠지만 남의 회사에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존댓말까지 하면서 손자를 쫓아낸 것은 재계에 공포로 남았다.
유명선 회장은 사생아인 손자가 딸들 손에 죽은 이후 손자 손녀들 모두 그때 죽은 그 사생아 손자처럼 죽거나 말거나 다 아들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유일한 예외는 자신과 아내가 직접 키운 친손녀 하나뿐이었다.
딸들조차 문제가 되는 순간 재산은 회수하지 않아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잘라낼 정도였다.
사위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남이라서 그렇다는 모습에 겁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전 세계에서 순위에 들어가는 글로벌 대기업의 실질적 창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명선 회장은 자기 아내 외에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핏줄조차도 마음에 안 들면 다 버리고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고주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존경하는 회장님의 숨겨진 진짜 모습에 담긴 그 차가움과 잔혹함이 그렇지 않아도 유초혜 여사 탓에 겁먹은 그녀를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하아. 고 과장이 겁먹을 필요는 없어. 형님은 자기 가족이나 자기 측근에게나 저렇게 냉정하시지, 고 과장 같은 까마득한 아랫사람은 분수만 알면 신경 쓰지 않으셔.”
고주희는 자신을 달래는 유준선 부회장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분수를 아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건 걱정하지 마. 고과장 잘하고 있으니까. 고과장이 분수를 몰랐으면 아직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
“네?”
“형수님 밑에서 고 과장처럼 오래 버틴 사람은 거의 처음이고, 고 과장 정도로 신임받은 사람은 확실히 처음이야. 고 과장이 분수를 잘 알고 처신을 조심한 것에 능력도 확실한 덕이지. 아니었으면 솔직히 전임자들 따라갔겠지. 고 과장 전임자들이 다 살아서 다른 자리로 옮기지는 못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고주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것도 역시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놓고 이야기를 들으면 무섭고 서러웠다.
유준선은 그런 고과장의 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달래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유준선 부회장은 유명선 회장의 친동생이었고, 형만 못해도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 뺨치는 로맨스 그레이의 미남이었다.
사내놈이라면 몰라도 여직원 달래주다가 정이라도 들면 아내는 둘째치고 형이랑 형수 손에 죽어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여직원 대할 때는 두 배 세 배 조심했다.
“그보다 고과장 남자 친구나 애인있나?”
“없습니다만?”
“그럼 혹시 클럽 같은 곳에서 원나잇 상대 만나거나, 호스트 바 같은 곳에 다니나?”
“아닙니다.”
몹시 수치스러운 성희롱에 가까운 질문이지만 고주희는 기분 상하지 않고, 성실하게 대답했다.
손만 뻗어도 기꺼이 홀딱 벗고 다리를 벌릴 여자가 수백 명은 되지만, 자기 형처럼 아내 외의 여자에게는 눈도 안 돌린다고 유명한 유준선 부회장이 설마 성희롱의 목적으로 이런 걸 물어본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
“다행이네. 미안한데 앞으로도 애인이나 남자 친구, 결혼 상대 같은 거 만들 생각하지 말고, 하룻밤 상대라도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도 최대한 참아. 상대랑 같이 죽는 수가 있어.”
“예?”
“오늘 내가 고 과장에게 해준 이야기는 세상에서 형님과 형수님 나만 아는 이야기야. 이제 고과장까지 4명으로 늘었네. 근데 자네가 듣기에도 어디서 누구 입에서든 나와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지? 이걸 자네 말고 누군가 알게 되면 자네는 물론이고 들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거야. 원래 내가 주로 하는 일이지.”
마지막 말을 하는 순간 고주희가 마주 보고 있던 유준선 부회장의 눈이 마치 유리알처럼 아무 감정 없이 반짝였다.
고주희는 새삼 깨달았다.
눈앞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자신을 달래주며 무서운 이야기를 부드럽게 해준 이 사람이 누군지를.
유준선 부회장은 그 무서운 유초혜 여사가 어린 시절부터 실질적으로 키운 거나 다름없는 시동생이자, 오늘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그 참모습을 새삼 알게 된 회장님의 친동생으로, 회장님을 도와 오늘날의 성화 그룹을 만들어낸 2 인자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유명선 회장님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데, 유명선 회장님 도와서 더러운 일 처리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평을 듣는 유준선 부회장은 또 얼마나 무서운 사람일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한 고주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유준선 부회장은 그런 고주희 모습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여기서 울다가 형수님이 보면 경치는 수가 있으니까 가면서 울게. 차는 가지고 왔지? 곧바로 내 조카 손자일지 모른다는 그 아이에게로 출발하고, 만나기 직전에 나에게 전화하게. 뭐라고 말할지는 그때까지 내가 정리해서 알려주지.”
고주희는 입을 열면 울음소리까지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고주희의 모습에 안타까웠는지 유준선이 처음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힘을 내게. 어렵겠지만 살아남으면 좋은 시절도 오지 않겠나? 아마도.”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면서 고주희는 서둘러 발을 옮겼다.
일단 여기를 탈출하고 싶었다.
그냥 어렵고 무서운 장소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하던 회장님 사택이 마왕성처럼 느껴졌다.
안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니 더욱더.
고주희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