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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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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1
유진과 민영 그리고 소진의 집에는 한동안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소진이는 다시 정상적으로 유치원 나가기 시작하고, 유진도 식당일 뿐만 아니라 요리 학원과 운전 학원을 틈틈이 다니고 있었으며, 차민영은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야근으로 부족해 주말 근무까지 정상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약간의 특별함이라면 처음보다 뜸해져 버린 유진의 성적 요구에 차민영이 약간 싸한 느낌을 받고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비슷하게 이어지던 세 사람의 일상에 폭탄이 터진 것은 소진이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우리도 피서가요! 혜미는 다음 주에 아빠 휴가 내고 4박 5일로 부산에 간대요! 소진이도 피서 가고 싶어요!”
여름 시작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유진의 존재와 그 후 이어진 여러 사건 사고 탓에 눈치를 보던 소진이가,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피서를 요구했다.
소진이는 더 늦으면 올해도 여름휴가 못 간다는 생각에 울상이었다. 예전에는 엄마랑 단둘이 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눈치를 봤지만, 이제 유진이 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어느새 여름휴가 시즌도 끝물로 치닫고 있었다. 날은 아직도 전혀 꺾이지 않고, 기상청은 올가을까지 기록적인 불볕더위가 계속될 거라는 기상이변을 예고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학생들의 여름 방학이 슬슬 끝나려는 조짐을 보이는 시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차민영도 유진도 피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차민영은 딸에게 미안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가 있어서 4박 5일은 휴가는 고사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처지였다. 휴가는 무리였다.
차민영 없이 소진이와 유진만 어디 가는 것은 애초에 셋 중 누구도 고려도 하지 않았다.
소진이는 굉장히 서운해했지만, 엄한 엄마인 차민영의 교육 덕분에 안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수영장이라도 가요!”
이번에는 유진이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별로 표는 안 내고 있지만 유진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장소를 싫어했다. 또한 차민영에 대한 납치 시도로 시작되었던 성화 그룹과의 분쟁이 끝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약간은 남아 있었다. 소진이 유치원도 보내는 것도 조마조마해 하는 중이었다.
안전하지 않고, 무기를 숨기고 있을 수도 없는 데다가, 사람들과 북적거리기까지 해야 하는 공용 수영장은 유진에게 질색이었다.
결국 소진이는 삐졌다.
“엄마도 유진도 미워!”
소진이는 서운한 티를 팍팍 내었다.
밥 먹을 때 유진이 숟가락에 올려놓은 반찬을 밥공기에 다시 내려놓는다거나, TV 보면서 유진과 한자리 띄어서 앉는다거나, 차민영이나 유진이 외출하거나 집에 들어올 때 인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유진은 많이 당황했다.
소진이는 유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엄마보다 유진과 더 오래 붙어 있으려고 했다. 차민영과 유진이 같이 맘에 안 드는 일을 해도, 엄마에게 화를 냈지 한 번도 유진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유치원을 못 가는 동안에도, 유진이 살벌한 분위기를 풍겨서 차민영조차 유진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하던 중에도, 소진이는 조금 덜 활발하기는 했지만 계속 유진 옆에 붙어 있었다.
그런 소진이가 갑자기 자신에게 거리를 벌리는 모습을 보이자, 이런 경험이 처음인 유진은 당황했다.
물론 차민영이 딸을 보는 시선은 유진과 좀 달랐다.
밥 먹을 때, 유진이 숟가락에 올려주는 반찬은 안 먹어도, 유진이 소진이를 위해 만들어주는 소진이 취향의 반찬을 열심히 맛있게 먹었다. TV 볼 때도 전처럼 유진과 딱 달라붙어 있지는 않지만, 적정거리 이상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외출하거나 집에 들어올 때도 ‘안녕히 다녀오세요’, ‘어서오세요.’ 말만 하지 않는 것이지 꼭 나와서 배웅하고, 반겨줬다.
삐지고 서운해서 티를 내도 기본은 지키는 소진이의 태도에 차민영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딸이지만 누굴 닮아서 이렇게 기특할까 감탄할 정도였다.
유진과 달리 차민영은 소진이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수영장 못 가서 서운하니까, 수영장 아니더라도 대신 자기 즐거운 것 해달라는 귀여운 시위이자 밀당이었다.
차민영은 유진이 마당에 텐트만 치고 적당히 캠핑 분위기만 내면서 놀아줘도 소진이가 서운함과 삐짐을 풀 거라고 알았지만, 모른척했다.
유진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당분간 유진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차민영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유진이 좀 특별하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전형적인 젊은 남자라는 것이었다. 여자 마음 모르고, 외골수에,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만 사고하는 사고뭉치 말이다.
유진은 보통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수영장이라는 명제에 너무 집중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남자와 비슷한 논리적이지만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으로 생각을 전개하여,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다.
“집에 수영장을 만들자. 알아보니까 조립식 수영장이 요즘 유행이래. 우리집 마당 매우 넓으니까 제일 큰 것도 쓸 수 있을 거야.”
유진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아주 커다란 조립식 풀장을 차민영과 소진이에게 보였다.
차민영은 당황했다. 그리고 반대했다.
수영장 사용이 가능한 기한이라고 해봐야 길어야 일년에 2-3개월이다. 지금 설치하면 끽해야 한달에서 한달반이 고작이었다. 소진이가 그 기간에 수영장을 얼마나 사용할지도 애매하고, 수영장이 물만 채운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상식적인 엄마의 마음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소진이가 어른스럽기는 해도 어린아이라는 점과 유진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무조건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차민영은 논리와 상식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유진은 그녀의 반대 사유에 하나하나 반론을 제기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했다.
“물 소독은 내가 알아서 할게. 생각해 둔 것이 있어. 절대적으로 안전할 거야. 음 사다리만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구조가 위험하다는 것에는 나도 동감이야. 높이를 맞춘 목재 테라스 만들어두자. 동네에 있는 철공소에 주문하면 강철빔으로 튼튼하게 구조 만들 수 있을 거야. 나무 까는 것은 내가 할게. 거기에 벽 설치하고 문 달아두면 소진이가 혼자 들어가지 못 할 거야. 물 값은 솔직히 우리가 그런 거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눈치를 보고 있던 소진이는 엄마와 유진의 논쟁이 유진의 승리로 끝나는 기미가 보이자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수영장! 수영장! 우리 집에 수영장! 애들에게 자랑해야지! 우리 집에는 수영장 있다고! 매일 매일 수영한다고!”
차민영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그렇게 수영장 설치가 결정되었다.
차민영과 소진이 그리고 이제는 유진이 함께 살아가는 이 집은 참 많이 특이한 집이었다.
일단 이 집은 사람이 살아가기 좋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은밀한 모임과 파티용으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집이었다.
그래서 보통 가족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집들과는 많이 다른 구조들이 있다.
정원도 그런 특이한 구조를 가진 장소의 대표적인 예 중의 한 곳이었다.
보통의 집 정원들이 보기 좋게 잔디가 깔리고 곳곳에 조경을 위한 돌과 나무 같은 것으로 꾸며져 있고, 취향에 따라 연못 같은 만들거나, 간단한 운동 시설들을 설치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이 집의 정원은 높은 담장 안에 잔디와 시멘트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가정집 정원치고는 터무니없이 큰 크기의 정원인데, 현관 반대쪽 1/3은 두꺼운 시멘트로 된 바닥이고, 나머지는 그냥 널찍한 잔디밭이었다.
설계를 의뢰했던 당사자가 집이 완공되기 전에 사망한 탓에 어떤 식으로 사용하려고 이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번 같이 수영장을 설치하려는 경우에는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시멘트 바닥 부분에 수도시설과 배수시설이 설치되어 있었고, 크기도 아주 넉넉한 덕분이었다.
유진은 우선 한국에서 주문 배송이 가능한 최대 사이즈의 그리고 가장 비싼 간이 수영장을 주문했다. 수백만 원이 넘는 가격과 평수로 따지면 10평 가까운 크기에 차민영이 기겁했지만, 기왕 결정한 것에 유진은 거침이 없었다.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유진은 옆집 사장님에게 소개받은 공업사에서 미리 설계한 도면을 보내서 여러 사이즈의 철제 빔을 제작했다. 원래라면 몇일 걸릴 일이지만, 이쪽 업계에서 제법 힘 있는 사람인 옆집 사장님의 소개에 더불어 급행비로 충분한 추가 보수까지 지불함으로서 주문 3일 만에 배송까지 받을 수 있었다.
유진은 추가 주문한 목재 제작과 배송을 기다리며 직접 철제빔들을 조립했다. 처음 계획은 용접이었는데 볼트와 넛트를 이용한 조립으로 변경되었다.
차민영 때문이었다.
“여름 지나면 안 쓸 물건을 꼭 그렇게 거창하게 만들어야 해?”
유진은 가을만 되어도 안 쓸 물건이니 만들지 말자는 그녀의 주장에, 안 쓸 때는 분리해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고 주장하고는, 자기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여전히 불만이 남은, 그래서 수영장 자체는 어쩔 수 없어도 그에 따르는 다른 것들이라도 좀 줄여보려고 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일이 더 커지고 늘었다.
이쯤 되자 차민영도 자포자기해 버렸다.
본인도 수영장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 여름 동안 일단 신나게 즐기고 보자고 생각했다.
나중에 문제 되면 유진을 달달 볶아서 해결해 버릴 심상이었다. 이게 문제가 되면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유진과 소진이를 설득할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유진이 수영장이 설치될 공간에 미리 테라스를 만드는 동안 소진이는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했다.
쇳덩어리와 전동공구, 날카롭지는 않아도 크고 위험한 볼트와 넛트, 두꺼운 목재들과 유사시 목재를 절단할 살벌할 정도로 위험한 전기톱까지 굴러다녔기 때문이었다.
소진이는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어 했지만, 안전을 위해 소진이는 작업장 근처도 오지 못하게 하는 일에 차민영과 유진이 모두 동의했다.
소진이는 그 신나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 것에 조금 삐졌지만, 곧 수영장이 완성되면 사라질 그 삐짐에 차민영도 유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루 만에 철골 구조가 완성되었고, 다음날에는 그 철골 구조 위에 두꺼운 목재로 바닥이 깔렸다. 유진이 고른 품질과 두께의 편백 나무는 사실 이런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유진은 개의치 않고 제일 비싸고 좋은 것으로 골랐다.
사실 유진은 경제 관념이 아주 부족했고, 가성비라는 개념에 어두웠다. 한마디쯤 조언해줄 법했던 차민영은 이미 포기한 상태라서 맘대로 해보라고 방치한 상황이었다.
고작 3일 만에 10평이나 되는 수영장만큼이나 넓은, 수영장 주변을 둘러쌀 목재 테라스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간이 수영장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