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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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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2
특수 배송으로 도착한 간이 수영장은 크기에 비해 포장 자체는 비교적 작았다.
유진은 물건이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장소에 조립을 시작했다.
많이 크고 제법 무겁기는 해도 평범한 사람도 충분히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유진처럼 평범하지 않은 힘과 세밀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크기에 비해 그렇게 조립이 어려운 물건이 아니었다.
유진이 수영장을 조립하는 동안 소진이는 일찌감치 수영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영장 본체를 조립하고 펌프를 조립하고 펌프를 수영장과 연결하고 청소를 하고 물을 채우고 물을 소독 하는 과정까지 다 진행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함에도 소진이는 막무가내였다.
소진이가 워낙 신나고 행복해해서 수영장에 반대하던 차민영조차 기분이 들뜰 정도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조립 및 청소가 끝나고 물을 받는 순서가 진행되었는데, 소진이는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수영복을 벗지 않았다.
유진이 숟가락 위에 올려주는 반찬 야무지게 꼭꼭 씹어 삼키면서도 눈은 계속 식당 창밖으로 보이는 수영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진아, 오늘은 늦었으니까 수영은 내일부터 할까?”
차민영이 설득을 시도해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소진이는 입 꾹 다물고 고개만 붕붕 저을 뿐이었다. 아주 완강한 태도였기 때문에, 차민영은 차마 안 된다고 하지 못했다.
혹시 유진이 도와줄까 싶어서 눈치를 좀 줘봤는데, 유진은 원래 눈치가 전혀 없다.
“날도 따뜻하고 온수도 적당히 섞었으니까 저녁때라도 수영에는 문제없지 않을까? 아 그래도 어두워질 때 대비해서 조명은 좀 갖춰두는 것이 좋겠다. 일단은 캠핑 램프 쓰고, 알맞은 걸로 미리 주문해 두는 것이 좋겠어.”
“어? 그럼 밤에도 놀 수 있는 거야?”
“소진이 졸릴 때까지 실컷 놀아 줄게.”
밥 먹고 한 두 시간 정도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
차민영은 실컷 기대하던 소진이가 짧게 놀고 서운하게 끝내기보다, 내일 낮에 온종일 실컷 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 말이었는데, 유진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을 더 키웠다.
“오빠 최고!”
말도 없이 먹는 것에만 열중하던 소진이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차민영은 피식 웃었다.
유진과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 소진이가 고집을 피우거나 떼를 쓰는 일이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고집이 좀 있기는 해도 안 된다고 하는 일은 쉽게 포기했었다. 남들은 착한 아이라고 했지만, 차민영은 소진이가 주변 눈치를 보면서 포기하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이 차민영 혼자 고영은과 이웃집의 도움만 받으며 소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다른 집처럼 해주지 못하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소진이가 너무 일찍부터 그런 집안 사정을 눈치채고 주눅이 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차민영이 안 된다고 하는 일도 유진이 해 주거나 편들어 주는 일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제 나이 때의 다른 아이들처럼 고집도 피우고 땡깡도 부리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골치 아프긴 하지만.
“엄마! 엄마도 같이 놀 거지?”
“엄마는 수영복 없어.”
“수영복은 나도 없어. 우리끼리 노는데 아무거나 입으면 되지.”
원래 수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차민영은 저녁 먹고까지 물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소진이가 저렇게 좋아하고 또 유진도 권하자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수영복 없어도 아무거나 입으면 된다는 유진의 말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래, 그게 있었지.’
예전에 사둔 특별한 수영복이 생각났다.
차민영의 시선이 슬쩍 유진을 훑었다.
최근 유진과의 관계가 조금 애매했다. 감정적으로는 점점 더 가족처럼 가까워지고 있는데, 그에 비해 남녀의 육체적 관계는 약간 소홀했다.
소진이 태어나고 섹스에 관한 관심이 완전히 꺼졌던 몸이 유진 탓에 다시 달궈지기 시작했는데, 그런 주제에 유진은 명백하게 초기에 비해 벌써 덜 적극적이었다.
차민영은 성욕이 약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끝내주게 그걸 잘하는 좋아하는 남자가 바로 옆에 있는데 자신에게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꽤 기분 나쁜 일이었다.
그 남자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에 미친 것처럼 굴었던 남자라면 더욱 그렇다.
‘기회로 써 볼까?’
차민영은 이걸 조금 적극적으로 유진을 자극해볼 기회로 삼을 생각을 했다.
“오빠, 수영장! 얼른!”
식사가 끝나자마자 소진이는 유진의 손을 붙잡고 칭얼거렸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혼자 가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차민영을 힐끔 바라보았다.
차민영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먼저 나가. 난 설거지하고 옷 갈아입고 금방 따라갈게.”
소진이는 수영복 차림이었고, 유진도 반바지에 티만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영장으로 향했다.
간이 수영장은 약간은 볼품 없는 외벽을 사다리로 올라가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지만, 유진은 그간이 수영장 높이에 맞춰 테라스를 만들고, 테라스의 내부 면을 수영장 크기에 딱 맞춰서 어설픈 간이 수영장의 벽이 보이지 않는 진짜 수영장처럼 만들었다.
그 때문에 계단을 올라 테라스를 올라가야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걸 이용해서 안전요소도 가능했다. 수영장 테라스 사방으로 높지는 않지만, 소진이 같은 아이는 넘을 수 없을 높이로 펜스를 설치하고, 계단에도 잠금기능이 있는 문을 달았다. 소진이가 혼자서 몰래 들어갈 수 없는 구조로 만든것이었다.
파리에서 만난 첫날 욕조에서 잠들었다가 죽을뻔한 차민영의 경우도 있고, 이번에 집안에 수영장을 만들기로 계획하면서 찾아본 자료에서 본 집안 수영장에서 사고로 죽은 아이들에 대한 통계도 그렇고, 안전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만 1년에 집안의 수영장에서 사고로 죽는 어린아이의 수가 300명 이상이며, 그 대부분이 어른이 보지 않는 사이에 아이 혼자 수영장에서 놀다가 죽은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정도 조치도 과한 것은 아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소진이가 우다다 뛰어 올라가서 수영장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유진이 그런 소진이가 수영장으로 점프하기 전에 잡아챘다.
“왜?”
“준비운동 해야지.”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드디어 바로 코앞에 도착한 수영장 앞에서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된 소진이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항의했지만, 유진은 받아주지 않았다.
“엄마한테 들키면 앞으로 수영장에서 못 놀게 될지도 모른다.”
소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수긍했다.
물놀이하기 전에는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유치원 다니면서 누누이 배운 것이었고, 오늘도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귀찮기는 했지만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했다.
“자! 하나 둘 셋 넷.”
유진이 소진이 앞에서 팔다리를 휘저으며 구령을 붙였고, 소진이도 열심히 따라 했다. 유진은 소진이 체온이 충분히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자신이 먼저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신나게 점프해서 뛰어들 생각이었던 소진이는 이것도 불만이었지만, 유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계속 팔을 내밀고 있었기 때문에 얌전히 그 팔에 잡혀주었다.
소진이는 고집을 피워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에 대한 구별이 꽤 철저했다.
유진은 소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천천히 물을 적셨다.
사실 물이 그렇게 찬 것도 아니라서 유진이 행동이 좀 과도하기는 했다. 하지만 소진이는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어서 삐진 것과 별개로, 유진이 그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것도 좋았다.
언제나 자신이 우선인 엄마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최고인 오빠 겸 아빠의 존재는 엄마만 있는 소진이가 알게 모르게 겪고 쌓아온 서운함을 날려주는 최고의 보상이었다.
어쨌든 소진이는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엄마와 유진을 조르고 몇일 만에 드디어 수영장에 입수했다.
그사이에 있었던 엄마나 유진과의 일은 이제 관심에서 사라졌다.
“어푸! 어푸!”
소진이는 열심히 손발을 놀리며 물 위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유치원 차원에서 단체로 수영장에 등록해서 수영을 배웠는데, 소진이는 제법 소질이 있어서 다른 애들보다 빨리 보조 보드를 떼고 자력으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영장 가고 싶다고 졸랐던 것도 그 이유가 컸다.
물론 제법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해도 다섯 살짜리가 보조 보드나 구명조끼 없이 수영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 조립식 수영장은 높이가 1.3 m에 불과하고 물은 90cm 정도만 채워 놓은 상태였다.
또래보다 큰 편이라서 키가 1.2m나 되는 소진이는 아슬아슬하지만, 바닥에 발을 대고 서서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거기에 유진도 방심하지 않고 소진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소진이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소진이가 그렇게 소진이 키에 비해 제법 깊고 넓은 수영장을 열심히 헤엄치면서 돌아다니는 동안, 유진은 물 위에 누워 있었다.
사실 수영장은 소진이에나 깊고 넓지, 유진이 자유롭게 헤엄을 칠 수 있을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육체 때문에 손발 한 번만 놀려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움직일 수 있는 유진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서늘한 물에 몸을 맡기고 누워 넓고 푸른 하늘 위에 떠다니는 작은 구름 조각들을 구경하며 서서히 저물고 있지만 여전히 따뜻한 햇볕을 쬐는 일은 유진에게는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합류한 차민영의 모습은 유진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우와, 엄마 예뻐!”
물에 뛰어 들기전에 간단하게 몸을 물을 끼얹는 차민영을 보며 소진이가 감탄했다.
유진도 말은 안 했지만, 약간 감탄했다.
차민영이 입은 것은 레이스 시스루 스타일의 모노키니였다.
언뜻 보면 원피스 스타일의 무난한 수영복으로 같다. 하지만 배 부분이 화려한 레이스로 된 시스루라서 은근히 비쳐 보이고, 등 쪽은 아예 천이 없어서 엉덩이 끝의 골이 살짝 보일 정도로 파격적으로 노출도가 높은 수영복이었다. 재질도 일반적인 수영복 재질이 아니라 스웨터 같은 것 만들 때 쓰이는 털실 같은 느낌으로도 되어 있어 어딘지 모르게 더 야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유진의 빼어난 시력은 차민영이 입은 수영복의 가슴과 팬티 부분의 살짝 투명한 천 사이로 그 안쪽의 피부, 가슴과 성기 부분이 노출되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그랬다.
사실 차민영이 입은 것은 수영복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영복이 아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연인이나 부부간에 특별한 섹스를 위한 이벤트 코스프레복이었다.
차민영은 유진의 은근한 시선이 민감한 부분으로 느껴지자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유진이 노골적으로 표를 내지 않자 그녀도 모르는 척했다.
어쨌든 겉모습은 이쁜 수영복이었고, 지금은 바로 옆에 소진도 있었으니까.
밝은 풀입 색에 화려한 레이스 무늬가 돋보이는 이 옷은 야한 노출이 있다는 것만 빼면 소진이 같은 어린아이 취향에도 잘 맞는 옷이기도 했다.
“엄마 예쁘다! 너무 예쁘다.”
차민영은 유진의 새삼스러운 시선만큼이나 딸의 칭찬에도 기쁨을 느꼈다.
“우리 소진이 엄마인데, 당연하지.”
그녀는 일단 좋아라 달라붙는 딸과 즐거운 물놀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