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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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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5
“꺄아! 그만. 그만.”
“함께 공격해! 합치면 우리가 이겨!”
“강준이 약해! 남자인데 소진이한테 지다니!”
“소진이가 나보다 더 크잖아!”
“비겁해! 에잇!”
“전부 덤벼!”
수영장은 난장판이었다.
아이들은 수영 그 자체보다는 서로에게 신나게 물총을 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대체로 여자임에도 체구가 제일 큰 소진이가 여기가 자기 집임을 내세워 선택한 제일 좋은 물총으로 나머지 4명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그 와중에 모두 힘을 합쳐 소진이와 싸우지도 못하고 서로간에도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모두 웃고 떠들며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엄마들은 마음 편하게 먹고 혹시나 문제 생기지 않을지만 주의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원래 처음에는 대충 물장구나 치던 아이들은 여기가 수영 교실이나 공공 수영장처럼 꼭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서로 물을 끼얹고, 물속으로 잡아당기고, 등 뒤에서 덮치는 등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아이들 생각해서 물 높이를 좀 더 낮춰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제법 깊이가 있는 수영장에서 위험한 행동들이었다.
처음에는 물 밖에서 우아하게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던 주영이 엄마 성지은과 강준 엄마 이혜인이 그런 아이들을 말리기 위해 풀장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들에게도 매달렸다. 유진이 아이들 먹으라고 준비한 핫도그 간식이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 난장판은 결코 끝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지금은 간식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에게 유진이 미리 준비한 물총들과 물안경을 쥐여줘서 비교적 안전하게 싸울 수 있게 만들어준 상황이었다.
두 엄마도 덕분에 물 밖에서 흠뻑 젖은 몸을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테라스 바닥에 깔아둔 커다란 타월 위에서 쉴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혜인 씨 말대로 수영복 입고 와서. 그냥 대충 입고 왔으면 유진 씨에게 못 볼 꼴 보일뻔했네요.”
“조금 미안하네요. 얌전한 주영이랑 달리 저희 아이는 워낙 활달해서 이럴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였거든요.”
“혜인 씨가 사과할 일은 아니죠. 우리 주영이도 저렇게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주영이 피부에 물 괜찮겠어요? 저번에 수영 교실 다녀오고서도 아팠다면서요?”
“그렇지 않아도 유진 씨에게 살짝 물어봤는데, 특별하게 처리한 물이라고 절대로 걱정 안해도 된다고 자신 하더라구요.”
“어떻게요?”
“좀 복잡한 이야기라고 해서 자세히 듣지는 않았는데, 아이들 일에 유진 씨가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어요.”
“그건 믿을 수 있죠.”
두 사람은 아이들 바라보며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속마음까지 그렇게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돌보면서 굳이 수영복까지 입어야 할까 싶기는 했지만, 젊은 남자인 유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일상복으로 물에 젖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이혜인이 주장해서 성지은도 수영복 차림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치고 두 사람 모두 수영복이 제법 화려했다.
성지은의 경우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원피스이기는 하지만 어깨끈이 굉장히 얇고 등이 거의 엉덩이까지 파여 있는 앞뒤 반전 스타일의 수영복이었고, 이혜인은 경우는 색은 검은색으로 단정해 보이지만 노출이 제법 심한 모노키니 스타일이었다.
둘 다 그녀들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평범하게 입을 수 있는 흔한 종류의 수영복이기는 했지만, 지금 여기가 젊은 남자와 아이들만 있는 집에 딸린 수영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지식한 원피스가 아닌 점은 아주 살짝 어색할 수도 있었다.
이전에 수영 교실에 학부모 보호자로 참가했을 때는 둘 다 상반신을 완전히 가리는 스타일의 선수용 스타일의 원피스를 착용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나름의 고민 끝에 노골적으로 헐벗은 비키니 스타일은 피해서 나름의 노출과 단정함 사이의 균형을 잡은 수영복 스타일을 골라 입은 이혜인은 조금 고민이 되었다.
‘혹시 지은 씨도 유진 씨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
엄격한 성격에 차민영과 친하기도 해서 전혀 의식도 하지 않았던 그녀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심란했다. 유진이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다른 여자의 존재는 신경에 거슬렸다.
그에 비해 성지은도 이혜인을 보며 마음이 심란했다.
성지은의 수영복은 그냥 급한 와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을 골라 입고 온 것이었다. 성지은의 수영복도 노출도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앞부분은 얌전한 원피스 스타일이라서 본인은 자각이 없었다. 그에 비해 차민영의 모노키니는 같은 여자로서 그녀가 그걸 고른 이유를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명백한 스타일이었다.
‘혜인 씨, 정말 유진 씨에게 관심 있는 건가? 유혹이라도 해보려고? 민영씨 알면 어쩌려고 저러지? 동네에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 날 텐데?’
하지만 그런 것 치고 유진에게 노골적으로 들이대거나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모습은 또 없어서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동감하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아이스 카페 라떼입니다. 두유랑 저당 바닐라 시럽으로 맛을 낸 거니까 칼로리 걱정하지 않고 마셔도 됩니다.”
“어머, 고마워요.”
“별말씀을.”
유진이 내미는 커피를 받으며, 성지은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가릴 생각도 없는지 넉넉한 반바지 하나만 입은 채로 상의를 다 노출하고 있는 유진의 근육질 몸을 가까이서 보니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배우 못지않은 외모의 미남이 완벽한 근육질의 몸을 이렇게 노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반하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어쩐지 이혜인의 마음이 이해될 것 같았다. 꼭 유혹하려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멋진 남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여자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둘에게 커피를 넘기고는 물로 뛰어들어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한 유진의 모습을 구경하며 성지은이 말했다.
“커피 진짜 맛있네요. 어지간한 전문점에도 이 정도는 못 먹어 본 것 같아요.”
“유진 씨가 손맛이 정말 끝내주는 것 같아요. 요리도 엄청나게 잘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때 피자랑 스파게티 진짜 맛있었죠. 주영이 그거 먹고 밤새 아팠으면서도 다음에 또 먹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핫도그도 허락해 준거군요.”
“유진 씨가 특별히 조심해서 만들었으니 큰 문제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것도 믿어 봐야죠.”
두 사람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지만, 둘 다 눈은 은밀히 유진을 향하고 있었다.
노골적인 사심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알 것 다 아는 중년의 그녀들에게 젊고 미남에 멋진 근육까지 자랑하는 유진의 몸은 눈을 떼기 어려운 자극이었다.
아이들은 노느라 정신이 없고, 유진이 이런 덜 노골적인 일에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었다면 참 못 볼 꼴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차민영에게는 복장 터지는 상황이기도 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민영 씨. 강준이가 너무 좋아하네요.”
“저도 고마워요, 민영 씨. 주영이가 저렇게 좋아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 수영장 물 피부에 안 좋아서 자주 데려가지도 못하는데, 여기는 특별해서 문제없다니까 더 고맙네요.”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두 분이 평소 저희 소진이 얼마나 신경 써주시는지 아는데, 제가 어떻게 이런 걸로 공치사를 받겠어요.”
웃으면서 인사하는 둘에게 차민영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속까지 웃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두 사람의 수영복이 그녀의 눈에 너무 거슬렸고, 슬쩍 슬쩍 유진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시선도 너무 불손해 보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강준이 엄마 이혜인은 그렇다 치고, 전혀 생각도 못 한 주영이 엄마 성지은의 모습은 표만 내지 못할 뿐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결국 조용히 화가 난 차민영은 선을 넘겨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일이 아닌데, 아이들 물놀이에 같이 있겠다고 어젯밤의 그 이벤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그녀들 사이에 끼었다.
그나마 이성이 조금 남아서 안쪽에 노출 방지 패드를 껴서 제대로 수영복으로 만들어서 입고 오기는 했지만, 그 수영복이 아이들 노는 곳에서 엄마가 입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고, 그걸 입은 그녀의 뜻도 너무 명확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노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나름 즐겁게 어울리는 유진을 바라보며, 세 명의 엄마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평온하지 않은 미묘한 긴장이 넘쳐흘렀다.
저녁 식사도 원래 차민영이 기대하던 것과 달리 유진과 그녀만의 로맨틱한 술자리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너무 신나게 놀아서 허기를 느낄 정도가 되었는데, 아이 중 한 명인 하윤이의 엄마가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원래 하윤이는 지금 학원에 있을 시간이었다.
엄마 없는 집에 아이를 돌려보낼 수도 없었고, 하윤이만 남겨 두기도 애매했다.
차민영은 차마 배고픈 아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다 함께 일찍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원래 그녀가 먹을 예정이었던 분위기 있는 스테이크는 아이들 먹기 좋고 맛있는 챱스테이크가 되었고, 와인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래도 맛은 정말 끝내줘서 아이들은 물론, 나름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풍기던 엄마들도 정신없이 포크를 놀리며 감탄하는 저녁 식사가 되었다.
소진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유진을 자랑하면서 뻐겼고, 아이들도 모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엄마들도 인정했다.
워낙에 즐거웠던 때문이었을까?
집으로 가기 위해 신발을 신던 현관에서, 평상시 얌전해서 먼저 나서는 법이 거의 없다는 주영이가 차민영을 붙잡고 부탁했다.
“아줌마, 내일 또 놀러 와도 돼요?”
주영이 엄마 성지은이 놀라서 말리려고 했지만, 차민영이 먼저 대답했다.
“응, 또 와도 돼.”
엄마들과의 신경전과는 별개로 딸이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거기에 아이들 놀러 와도 어차피 고생하는 건 자기가 아니라 유진이라는 점도 있었다.
오늘 일에 유진의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화가 나고 심술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진은 별생각 없었다. 그는 오늘 자기가 의외로 아이들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참이었다. 소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먹을 것 챙겨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 생각 외로 꽤 즐거웠다.
“고마워요, 민영씨. 내일은 나도 빈손으로 오지 않을게요.”
성지은도 이혜인도 웃으면서 떠났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엄마들이 오지 않은 지아와 하윤이는 성지은과 이혜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래다주었다. 어차피 다들 가까운 집이라서, 아이들끼리 다닐 수 있을 거리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날 밤, 차민영은 고민이 많았다.
원래는 어젯밤에 이어 오늘도 유진과의 로맨틱한 밤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건 무산되었다.
오늘 엄마들과의 분위기 때문에 그럴 기분이 들지 않은 것도 있었고, 어제와 달리 소진이가 찰싹 달라붙어서 잠결에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진이 어제의 그 로맨틱한 분위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섹스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강준이 엄마 이혜인을 좀 의심하기도 했고, 오늘 그녀의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그와 반대로 유진이 그녀와 별다른 관계가 아니라는 분위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젖혔다.
‘나한테 벌써 질린 걸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젯밤의 그 기억은 절대로 유진이 이제 자신에게 애정이나 관심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그녀에게 주었다.
단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나만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 위험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겉으로만 보면 워낙에 매력적인 사람이잖아. 다른 여자들이 그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유진이 그 여자들의 유혹에 넘어가면, 나는 그것을 말릴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왔다.
이제 와 새삼 과거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원한 것도 책임질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자기가 세상을 원망하기도 애매하지만, 세상이 자신을 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유진에게 자기 한 명만을 사랑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게 가능하리라고 믿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들은 싫었다.
평범하게 학생 시절을 보내고, 평범하게 연애해서, 자신들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이 자신과 유진 사이에 끼어들어 오는 것이 싫었다.
유부녀라고 해도 창녀나 걸레라는 욕에 가슴이 찔릴 수밖에 없는 자신과는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녀들과 유진을 공유하는 신세라도 되었다가는 자격지심을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역시 수연이를 끌어들여야 해. 그리고...’
차민영은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은 그녀라도 양심에 찔렸다.
‘내일은 수연이에게 연락해야겠어. 저번 일 이후로 왜 소식이 없는지 확인해야지.’
차민영은 그쯤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잠이 들었다.
가슴 두근거리는 로맨틱 마음으로 시작했던 하루가 참으로 참혹한 생각으로 끝을 맺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자신이 어딘가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