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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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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7
유진이 차민영에게 폭탄을 던지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그 며칠 동안 차민영은 정말 많이 앓았다.
그 옛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와 죽은 남편 새끼에게 납치당해 강간당하고 조교 당하던 그 시기를 빼면 이 정도로 아파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 차민영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마음이 이렇게도 아프고 힘든데 몸은 너무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그 예민한 소진이조차도 행복에 빠져서 엄마 아픈 줄 잘 몰랐고, 눈치가 거의 신급이라고 생각하던 회사 부하이자 후배 한수정조차 차민영이 요즘 너무 예뻐진 것 같다고 질투나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일에는 정말 눈치가 전혀 없는 유진은 아예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일도 생활도 너무 멀쩡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서 정말 아무도 그녀의 마음고생을 눈치도 채지 못했다. 아니 멀쩡한 정도를 넘어서 그녀가 직접 느끼기에도 점점 더 건강해지고, 미모도 물이 오르고 있었다.
집에 찾아오는 아이들 엄마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노골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고, 겉모습은 누가 봐도 행복에 빠져 주체할 수 없는 여자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유진과 몇 일 만에 다시 섹스를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거절하고 싶었는데, 유진이 손을 뻗는 순간 마음의 아픔 따위 순간 다 잊어버리고 그 손을 잡고 유진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 달밤의 수영장에서 마찬가지로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유진의 손길과 부드러운 몸짓 그리고 자기 자신과 유진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과 일체감을 느끼며 온몸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 후 차민영은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일단 유진에게 은근히 배신감을 느끼던, 마음이 아프던, 질투심을 견딜 수 없던 그런 것은 다 상관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남자를 잃을 수 없었다. 오직 하나의 여자가 아니라 수많은 여자 중 하나가 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의외로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은 알겠는데, 그녀에게 진심인 것이 느껴졌다. 착각일지도 몰랐다.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몸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그녀를 안아주는 유진의 모든 행동에서 그녀를 향한 진실한 애정과 마음을 느꼈다.
아마 차민영이 평범하게 살아온 여자였다면, 사랑의 진실함을 믿고, 남자의 외도를 배신이라고 생각하고, 신뢰를 잃은 남자에게 당연히 사랑도 식어 버리는 그런 여자였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첫사랑에 강간당하고, 그 첫사랑에게 강제로 조교 당해서 창녀로 팔리기도 하고, 그렇게 자기 포주와 결혼해서 아내가 된 다음에, 그 쓰레기의 다른 여자들을 관리하면서 살아온 기억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비틀리고 왜곡된 후 부서져서 그로테스크한 모양으로 굳어져 있었다.
차민영은 유진이 자신에게 애정을 모두 잃고 그냥 섹스용 자위기구 정도로만 여기고 있어도 유진에게 매달릴 수 있는 여자였다. 하물며 자신을 향한 유진의 애정이 아직 진짜인 지금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사고방식은 비틀린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번의 폭탄선언이 아니었어도 애초부터 노리던 바가 있었다. 유진을 자기 하나로 만족시킬 수 없다면 새로운 여자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여자들이어야 했다.
차민영은 원래부터 노리고 있던 차수연에게 더 자주 연락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차수연은 제대로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외국 노선 항공기 승무원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것 치고도 너무 연락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그녀가 자신의 연락을 피하는 것이라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차민영이 슬슬 초조함을 느껴서 원래는 절대로 거기까지는 가지 않으려던 차선 안까지 고려할 때쯤 관련해서 전혀 엉뚱한 사람이 등장했다.
성화 그룹 소속으로 차민영의 담당자인 고주희가 연락도 없이 회사까지 쳐들어왔다.
원래부터 그녀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던 차민영은 대놓고 그녀에게 까칠하게 굴었다.
“우리 사이에 뭐 할 말이 남았어요? 가능하면 그이 없는 자리에서 대화 따위 나누고 싶지 않은데?”
이제 자기를 지켜주는 유진이 있으니 그녀가 무섭지 않다고 표현해 본 것이었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용건이 전혀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최근에 차수연씨하고 연락 시도하고 있었죠. 그에 관련해서 알려줄 정보가 있어서 왔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요즘 꽤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민영 씨 연락도 안 받고 있는 거예요.”
차민영은 차수연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보다 다른 점에 더 놀랐다.
“당신들 설마 그 아이까지 감시하고 있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주희도 좀 할말이 많았다.
“당신이 그녀에게 하루에도 열 번씩 전화를 걸지만 않았어도 내가 관심을 둘 필요는 없었겠죠.”
고주희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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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죽은 것만도 못한 꼴이 된 정동후의 일과 그에 이어진 유진의 대학살과 뒤처리, 거기에 다시 정동후의 죽음과 장례식까지 겹치면서 성화 그룹은 한동안 보통의 난리가 아니었다.
사모님은 당신이 직접 망가진 외손주의 죽음을 명령했다는 사실을 별로 숨기려고 하지도 않으셨고, 회장님은 한술 더 떠서 내 새끼도 아닌데 그딴 일에 관심 없다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다시 한번 회장님과 사모님의 냉혹함이 표출되면서, 직계와 방계를 가리지 않고 성화의 핏줄이라고 여겨지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바싹 엎드렸다.
그 와중에 사건의 원흉인 성화 건설 비서실에는 말 그대로의 의미로 피의 숙청이 몰아쳤고, 엉뚱하게 성화 물산의 전략기획실과 본사 고위급 임원들도 때아닌 물갈이를 당했다.
사내 움직임을 이해할 정도의 고위 임직원은 이 부분에 대한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했다. 은근슬쩍 수면 위로 떠 오르던 차기 후계자에 관한 이야기가 어둡고 깊고 차가운 심해의 어딘가로 가라앉아 얼어붙어 버렸다.
이 와중에 은근슬쩍 고주희가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원래부터 사모님 라인의 숨은 실력자로 여겨지던 그녀에게 회장님의 공식적 언급과 더불어, 그룹의 명실상부한 2 인자인 부회장님의 노골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다.
직급이나 직책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급여와 예산 그리고 권한은 크게 올랐다.
그녀 휘하 부하직원의 수가 3배로 늘었다. 다른 부서들에도 그녀의 요청이 있으면 우선 적으로 처리하라는 명시적인 명령서가 내려갔다.
원래도 필요하면 동원할 수 있었던 경호원이 있었지만, 그녀를 위한 전담 경호팀이 배치되었다. 이사급은 고사하고 사장급에도 거의 없는 대우였다.
회장님이 숨겨두셨던 사생아 아니냐는 헛소문도 잠시 돌았다. 하지만 그렇게 대우받는 고주희 본인이 워낙 긴장해서 날이 선 모습을 보이자,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녀에게 붙은 경호팀이 경호와 함께 감시를 담당하고 유사시 최종 처리까지 맡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대충 눈치챈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주희는 새로 맡은 자기 업무인, 유진과 소진이에 대한 감시 및 관찰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시작은 좋았다.
야생 식인 호랑이는 사람 죽일 만큼 죽이고 배가 불렀는지 자기 굴에 틀어박혀 주변이나 어슬렁거릴 뿐이었고, 차민영은 언제나처럼 별일 없이 회사 업무에 바쁠 뿐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소진 아가씨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집안의 수영장에서 온 동네 아이들 전부 다 돌아가면서 초대해서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즐거운지 가끔 몰래 찍는 모든 사진에 다 웃는 얼굴만 찍혀 있을 정도였다.
고주희에게 있어 소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매일 지켜보며 그 성장을 다 지켜본 아기였다. 비록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안타까움도 있었다.
가난 따위로 고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와 단둘이서의 삶이지만 부족함 없고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딘지 매우 쓸쓸해 보이는 느낌이었고, 미묘한 그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였다. 그걸 지켜보면서 고주희도 기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걸 자료로 모아 사모님에게 가져가면서 새삼 뿌듯함을 느낄 정도였다. 사모님도 소진이에게 관심이 많으셨으니, 그걸 보고 기뻐하리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유초혜 여사는 행복한 소진이를 보고 좋아하기는 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게 다야?”
“예?”
“그냥 소진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고, 그 아이는 그냥 아무 일 없이 일상적인 생활만 하고 있으며, 애 엄마는 평범하게 회사 일만 하고 있다고? 이게 전부야? 주변에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야? 정말로 아무런 사고도 문제도 없이 모두가 평온하다고?”
고주희는 유진을 둘러싸고 그 동네 유부녀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그걸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사모님이 겨우 그딴 일을 사고나 문제로 여길 리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유초혜는 명확하게 명령했다.
“그 아이들 주변을 좀 더 넓게 살펴봐. 고과장이 예전 수준으로 하던 조사 정도로는 찾을 수 없는 은밀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확정하고 제대로 인력 투입해. 그 아이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 아이가 틀림없다면, 지금 그 주변 어디선가 범상치 않은 일들이 틀림없이 일어나고 있을 테니까.”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고주희는 사모님 명령에 얌전히 따랐다.
차민영이 사는 전원주택 단지와 차민영의 회사 그리고 차민영의 옛 인연들을 중심으로 조사가 확대되었다. 소진이 유치원 친구들을 중심으로 하는 인연에 대한 고려도 있었지만, 그건 연결고리가 너무 약하다는 의견이 강해서 뒤로 미뤄졌다. 인력이 많이 보강되었어도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우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사를 한 세 곳 모두에서 뭔가가 하나씩 다 발견되었다.
첫 번째로는 그동안 생각지 못한 정동후와 유진의 연결고리, 장화진과 성무연 모녀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명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의심의 여지가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초혜 여사가 명확하게 지침을 내렸다.
“죽은 애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이 모녀에 대해서도 모두 잊도록 처리해. 특히 큰 애 쪽으로 이야기 못 들어가게 관리하고. 혹시 큰 애 쪽에서 이걸 알게 되더라도 그 동네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직접 처리해. 필요하면 피를 봐도 돼. 큰 애 본인이나 정 서방, 동성이 아니면 고 과장 전결로 처리해 버려. 걔들도 그렇게 처리해도 상관없지만, 그건 아무래도 고 과장에게는 무리겠지.”
고주희는 다시 한번 회장님과 사모님이 장녀 쪽은 이미 가족으로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 그것도 자신이 배 아파 낳은 큰 딸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유초혜 여사의 칼날 같은 냉정함은 고주희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그에 비해 첫 번째에 비해 조금은 가볍게 생각한 두 번째와 세 번째 건의 경우가 사모님의 관심을 끌은 점은 고주희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서 내려진 그녀의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이 건은 그쪽에 제대로 알려줘.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네.”
“도움도 줘야 할까요?”
“아니, 그냥 알려만 줘. 그래도 주시는 하고 있도록 해. 아마 뒤처리할 일이 생길 거야.”
고주희는 뒤처리라는 단어 자체에 질색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일은 유초혜 여사의 명령대로 그래도 따랐다.
그래서 지금 차민영을 방문해 그녀에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게 된 것이었다.
고주희가 차민영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통보했다.
“좆같은 기분이겠지만, 당신들의 과거가 당신들을 다시 쫓아왔어요. 차수연 씨는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된 어떤 사람들에게 협박받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신과 당신 회사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재산을 노리는 사람도 있어요.”
차민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