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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09화 (109/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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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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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10

주다혜가 스스로 불러온 재앙은 그녀의 문제이지 내가 아니 우리가 알 바 아니다라는 유진의 차가운 선고가 있고 난 후, 여자들은 모두 각자의 고민에 빠졌다.

제일 타격이 적은 것은 의외로 당사자 주다혜였다.

그녀는 유진을 처음 보는 것이었고,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불운에 대해서 유진에게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유진의 말이 차갑기는 해도, 그녀가 인터넷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면서 받은 악플 수준에 비하면 별로 상처가 될 정도도 아니었다. 나락에 떨어진 경험이 처음도 아니라서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인 영향도 있었다.

차수연도 주다혜와 비슷했다.

그녀도 유진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유진의 결정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녀가 놀란 부분은 유진의 냉정함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차수연은 유진의 결정에 오히려 시원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도 당연히 이번 일에 대해서 주다혜에게 불만과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그래도 본인이 쌓은 원죄가 너무 커서 말로 구박하는 것 외에는 차마 어쩌지 못하고 돕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유진이 압도적 외모와 몸매를 가진 젊은 주다혜를 보면서도 차갑게 대하고, 그에 비해 자신을 더 가깝게 여기는 태도는 그녀에게 너무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 옛날 강준화조차도 젊음과 미모를 이유로 주다혜를 총애하고 차수연을 찬밥 취급한 기억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고주희는 상황 파악 중이었다.

유진의 냉정함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유진의 혈통에 대해 의혹이 있는 상황이었고, 그 의혹에 따르면 그런 냉정함은 그 혈통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고주희는 유진이 보여준 지금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굳이 오지랖 부려서 이런저런 일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주변을 좁게 여기는 성향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앞으로 유진이 벌이는 사고의 뒤처리를 담당해야 할 상황에서 이건 굉장히 좋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차민영. 의외로 유진의 반응에 가장 놀란 것은 차민영이었다.

어쨌든 그녀와 유진의 첫 만남은 위험에 빠진 차민영을 유진이 도와주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이후에 이어진 섹스도 유진이 강제로 그녀를 범한 것이 아니라, 구해는 줬어도 위험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유진을 달래기 위해 그녀가 먼저 시작한 것이었다. 한국으로 함께 오는 과정도 유진의 강압 없이 그녀의 동의하에 결정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에 도착한 후 유진이 소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민영은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물론 유진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고, 당연히 그냥 친절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한가지 더 차민영의 이번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차민영은 이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폭탄을 던졌다.

“저기, 여보. 혹시 저기 다혜 맘에 들지 않나요? 쟤 외모도 굉장히 멋지지만, 섹스 상대로도 진짜 괜찮아요. 예전에 인기도 정말 좋았어요. 저랑 달리 진성 마조히스트이고, 체력도 좋아요. 당신 취향에 맞을 거예요. 관심 없나요?”

다시 한번 경악으로 가득한 싸늘한 침묵이 거실을 맴돌았다.

‘이 미친년, 미쳤다 미쳤다 했더니 정말 미친 건가?’

고주희는 혐오와 경멸을 담아 차민영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약간 올라가고 있던 차민영에 대한 평판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에 비해 차수연과 주다혜의 놀람은 조금 다른 부분이었다.

그녀들은 경악의 눈으로 유진과 차민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둘 다 표정과 눈빛 모두 비슷했다.

그녀들은 지금까지 유진이 그냥 차민영의 젊은 애인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차민영의 말에서 그녀들은 죽어버린 그녀들의 옛 주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명백하게 차민영은 그 옛날처럼 그녀들을 새로운 주인에게 바치려 하고 있었다. 그건 지금 그녀들이 겪고 있는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그녀들을 포함해 옛 강준화의 성노예들은 사이가 좋건 말건, 원한이 있건 없건, 현재의 신분이나 재산에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서로 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너죽고 나죽자 식의 폭로전도 불가능하도록 철저하게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녀들 사이는 그저 서로를 소 닭 보듯이 보면서 욕이나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주다혜가 이런 대형 사고를 쳤는데, 차수연이 욕을 하면서도 대충 챙겨주고 있는 일에 이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차민영은 다르다.

그녀는 강준화를 대신해 그녀들을 관리하던 실질적인 관리자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강준화가 남긴 자료가 있다는 것을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그 자료는 권력자들이 걱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을 노린 자료가 아니었다.

강준화는 똑똑했다. 강준화는 이너서클 내에서 그들과 협력 관계를 형성하며 대가는 그때 그때 모두 받아두었다. 나중을 위한 보험 따위는 만들지 않았다. 그는 깡패나 기업가들이 뇌물 장부 따위 아무리 적어 두어도 그걸로 진짜로 처벌당한 권력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강준화가 기록한 자료들은 권력자들이 아닌 자기 노예들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자료는 너무도 철저하고 압도적인 것으로 성노예 중 그 누구도 감히 강준화에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조차 못 했을 정도였다.

그것이 차민영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아무도 걱정하지 않고 있기도 했다.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차민영이 그걸 악용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차민영의 그 자료가 자기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보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민영에게 그 예전 강준화와 같은 주인이 생겼다면, 이제 그 자료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차민영이 찍으면 그 누구도 새로운 주인을 섬겨야 하는 걸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두려움을 유진이 새롭게 다시 한번 깨부숴버렸다.

“별로인데.”

“네?”

“저 여자별로라고. 외모가 뛰어나다고? 내가 보기에는 그냥 흔해 빠진 여자인데? 전혀 매력이 없어. 당신이나 수연씨는 고사하고 저기 있는 고 과장만도 오히려 못한 것 같은데?

이건 차민영이 던진 두 번재 폭탄보다 더 큰 폭발을 일으켰다.

차민영과 차수연은 자신들도 모르게 흔들리는 눈으로 주다혜와 고주희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고주희는 엉뚱하게 지목당한 탓에 갑자기 떠오르는 안 좋은 상상들로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있었고, 주다혜는 자신과 비교된 고주희를 바라보며 넋을 잃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주다혜가 폭발했다.

”아니, 씨발!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런 아줌마랑 나를 비교할 수 있어! 너 눈이 삐었어! 아니면 씨발 숙녀물 취향 변태냐! 어떻게! 어떻게 나를 저런 여자와 비교를 할 수 있지? 어떻게!“

주다혜는 벌떡 일어나 유진과 고주희 과장을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며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바보짓을 알기에 참고 있었고, 유진의 무서움에 얼어붙기도 했으며, 차민영이 보인 광기에 겁먹은 상태이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폭언을 들은 당사자 고주희는 잠시 헛기침했다. 면전에서 이런 소리를 들은 것이 화가 나기는 했지만, 솔직히 사실 주다혜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고주희도 외모가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그녀도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는 용모 단정한 미녀라서 뽑힌 것이었다. 회사 생활 초기에 힘든 업무에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최근 여유가 생기면서 나름 외모 관리에 돈도 많이 썼다. 동료나 부하직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서 여자를 향한 감정도 느낄 수 있어서 뿌듯한 정도였다.

그래도 차민영이나 차수연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부족한 외모였다. 그리고 주다혜는 누구나 다 미녀라고 인정하는 차민영이나 차수연을 압도할 정도의 미녀였다.

큰 키에 동양인 기준이 아닌 서양인 기준의 큰 가슴과 골반, 그 사이를 잇는 날씬하고 탄력 있는 허리, 날씬하게 쭉 뻗은 긴 다리, 사슴 같은 목, 그리고 어지간한 연예인 뺨치는 미모까지.

그녀는 외모만으로는 모델 중에서도 탑티어에 꼽히는 여자였다. 사실 어지간한 연예인 중에서도 단순히 외모만으로는 그녀보다 월등히 낫다고 자부할 수 있는 여자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주다혜도 그런 자기 외모에 강한 자부심이 있었고, 현재의 외모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름다움을 면 전에서 어린 남자에게 부정당했으니 미쳐 날뛰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그녀에게만 당연했다.

”닥쳐. 지금 너 따위가 입을 열 상황인 줄 알아!“

여러모로 짜증 난 차민영의 차가운 일갈이 있었고, 옛 기억에 더불어 조금 전 느꼈던 공포까지 겹쳐서 주다혜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가슴이 철렁하며 이성이 돌아온 그녀는 재빨리 다시 주저앉아서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옆에 앉은 차수연이 그런 주다혜의 철없음에 혀를 차서 그녀를 한층 더 수치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이 차민영은 굉장한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주다혜의 외침에서 차민영의 뭔가를 건드리는 단어가 있었다.

- 아줌마. 그리고 숙녀물 변태.

자신이 이제 아줌마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짜증 난 것은 아니었다.

30대 중반은 사실 아줌마라는 소리 듣기는 어색한 나이였다. 하지만 소진이 친구 엄마들 나이가 보통 30~40살 사이였다. 애 엄마들의 평균이라는 점에서 아줌마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나이이기도 했다.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문제는 유진이 지금까지 관심을 보인 여자들이었다.

차민영 본인, 차수연까지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본인은 본인이고, 차수연은 차민영이 붙인 여자니까. 하지만 최근에 유진이 관심을 보인 여자는 차민영보다 두 살 연상인 강준이 엄마 이혜인이었다. 또, 정황상 유진이 이 단지 내에 누군가 여자를 만든 것이 분명한데, 이 단지 내에는 아예 학생이 아니면 젊은 여자가 없었다.

차민영이 예측하기에 유진이 자기 모르게 만나고 있는 여자도 나이가 좀 있는 편일 가능성이 컸다. 성무연은 비교적 젊은 여자이지만, 유진이 오히려 더 흥미를 느낀 장화진은 거의 50에 가까운 40대 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차민영은 제대로 예측하고 있었다.

거기에 고주희까지 언급되었다. 이건 거의 결정타였다.

차민영은 유진이 진짜 나이 많은 여자가 취향일 수 있다는 의혹을 품게 되었다. 옛날 강준화가 해줬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남자는 어릴 때는 엄마나 누나 같은 여자를 원하고, 나이 들면 딸이나 조카 같은 여자를 원하고, 늙으면 손녀 같은 여자를 원하는 법이라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불길함이 배가 되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차민영이 유진에게 붙이기 위해서 계획 중인 여자들의 나이가 대부분 서른 미만의 그래도 비교적 젊은 여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차수연과 주다혜의 두려움이 맞았다. 차민영은 옛 강준화의 성노예 중 비교적 젊은 애들을 다시 끌어들여서 유진에게 붙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녀가 자기 남자를 붙잡기 위해 배운 유일한 경험인 때문에, 그것이 잘못이라거나 그렇게 끌려올 여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유진의 취향이 나이 많은 아줌마라면, 유진은 그녀가 통제할 수 있는 여자들보다 단지 내의 엄마들에게 더 관심이 높을 확률이 높았다.

그건 아주 매우 차민영에게 부정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차민영의 목소리가 약간 불퉁해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쟤들 그냥 보내?“

주다혜를 은근슬쩍 어필할 때 조심스러운 존댓말이었던 것이 이제는 퉁명한 반말이 되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해서 유진이 또 한 번 모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니지, 저 여자와 상관없이 이 일에 관련된 놈들은 다 잡아다 족쳐야지. 그냥 두면 위험하니까.“

유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짜증과 살의가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시선은 엉뚱하게 고주희를 향하고 있었다.

유진의 대답은 이젠 거의 그녀들의 생각과 예측을 부수는 것에 재미가 들린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일 정도였다.

여자들은 모두 다시 한번 의문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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