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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10화 (11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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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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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11

유진이 고주희에게 물었다.

“일단 우선 한 가지 묻지. 저 여자가 그놈들 창녀로 전락하거나, 수연 씨 비밀이 폭로된다고 그게 우리에게 영향이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분명 유진, 차민영, 소진의 3인 가족이 분명했다. 넓게 생각하면 차수연이 들어갈 테고, 일 처리 해야 하는 고주희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주다혜는 절대 아니었다.

고주희는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건 일은 있을 수 없죠. 저기 다혜 씨 일도 일이지만, 수연 씨 일은 절대로 폭로 안 됩니다. 그놈들이 폭로 한다고 해도 절대로 이슈도 안 됩니다.”

“호오? 그걸 확신할 수 있다고? 요즘 같은 개인 미디어의 시대에? 인터넷 SNS로 그런 것 순식간에 퍼져나가면 국가도 그거 감당 못하지 않나?”

“세상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렇게 알겠죠. 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자유로운 세상인 것처럼 보여도, 그거 다 자본의 지배를 받는 거대 기업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겁니다. 문제가 확인되면, 그런 정보들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삭제되고, 그거 올린 사람들 추적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것 장악하고 있는 것은 다 미국기업이잖아? 그 자존심 강한 놈들이 고작 이 작은 나라의 별것 아닌 권력자들을 위해서 그런 수고를 해준다고?”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로 보여도 경제 규모로는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갑니다. 더군다나 같은 IT 기업이라고 해도 제조 기반 기업이라면 모를까, SNS 같은 것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기업 광고를 수익으로 굴러가는 곳입니다. 차라리 정치적인 폭로라면 모를까, 권력자와 얽힌 여성의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한 폭로? 그 딴걸 언론의 자유랍시고 보호했다가는 권력자와 부유층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날걸요?”

“자신이 있나 보군?”

“SNS가 세상에 활성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연예인이나 일반인 섹스 비디오가 화제가 된 적은 있어도 진짜 권력자나 진짜 부자의 섹스 비디오가 화제가 된 적은 거의 없어요. 있어도 순식간에 묻혀서 거론도 안 되게 되었죠. 부자와 권력자들은 정보와 통신에 대한 통제와 지배권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거기가 진짜 통제되지 않는 공간이라면 이 세상에 해커 따위가 있을 리가 없고, 전 세계 권력자와 부자의 3% 정도는 이미 포르노 배우로 등록되었을 겁니다.”

누군가 확률 계산이라도 해봤다는 듯이 느껴지는 애매한 숫자의 확률이 설득력을 더했다.

그래서 유진이 질문을 바꾸었다.

“그런데 왜?”

“네?”

“그런데 왜 당신은 이걸 큰일이라고 여기까지 왔을까? 그것도 수연 씨랑 저 여자까지 달고서?”

차수연과 주다혜는 고주희가 부른 것이 아니라 차민영이 부른 것인지만, 고주희는 그걸 변명하지는 않았다. 일이 그렇게 된 원인은 그녀가 차민영에게 전달한 정보이기 때문이었다.

“차수연 씨에 대해서 살피다가 그녀에게 접근한 자들이, 차 이사님에게 접근하고 있는 정황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위험성을 생각하면 알려줘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 대답에 유진이 웃었다. 하지만 고주희는 그 표정에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웃고 있는 유진의 눈에서 다시 살기가 돌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당장 고주희를 산채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그놈들이 어떤 병신새끼 들인지는 묻지 않겠어.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굳이 말하지 않는 건 다른 사람이 듣게 하기 싫어서이겠지. 하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아.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거든.”

“그, 그럼 뭐가 문제인가요?”

“그놈들은 문제가 될 수 없는 놈들이야. 수연 씨에 대해서 폭로 못 한다고 당신이 자신했지. 수연 씨에 관한 것조차 폭로할 수 없는 놈들이 민영 씨 상대로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그리고 그러는 동안 당신들은 그걸 지켜보고 있는다고? 정말?”

고주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사실 고주희도 가지고 있는 의문이었다. 사모님 유초혜 여사에게 보고하면서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유이기도 했다. 유초혜가 이걸 알리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그냥 자기 선에서 처리해 버렸을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초혜에 관한 것은 거론할 수 없으므로 고주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의 시선은 한층 싸늘하고 살벌해졌다.

고주희는 첫날 그랬던 것처럼 사타구니 사이에 힘이 풀려서 실수라도 할 것 같은 느낌에 정말 사력을 다해 다리 사이를 조여야 했다.

“그런데, 당신은 굳이 이걸 민영 씨에게 이야기했고, 민영 씨는 그래서 수연 씨랑 저 여자를 이 집으로 데리고 왔지. 이게 뭐가 문제인지 아나?”

완전히 질려버린 고주희가 그 질문에 대꾸도 못 하고 있는 사이에, 긴장한 차민영이 물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거야?”

“그놈들은 일단 저 여자에게 미끼를 던졌지. 그 미끼로 수연 씨가 끌려왔어. 그리고 수연 씨가 다시 미끼로 사용되었고, 이제 이 집이 거기에 다시 걸렸지. 이제 그놈들에게는 우리를 노릴 명분이 생긴 거야. 어떻게 알고 여기를 노린 것이냐고 추궁받는 순간이 오면 수연 씨를 추적하다가 알게 되었다고 말하겠지. 민영 씨가 목표가 되고, 소진이가 목표가 된 것에 대해서, 그놈들을 사주한 놈들은 자기들하고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발뺌할 수 있겠지. 자 여기서 고 과장에게 묻지. 그 일을 사주한 자들이 변명할 상대가 누구일까? 경찰? 검찰? 법원?”

고주희는 입을 열어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이 분명하게 있었다.

유진이 마지막 결론까지 내렸다.

“지난 5년간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에게, 권력자들의 암묵적인 비호와 침묵 속에서 보호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그냥 우연일까? 어떤 개새끼가 개짓거리하다가 죽고, 그에 관련되어 수십 명이 더 죽은 지 고작 며칠 만에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어때 고과장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당신이 아니라고 하면 난 이 일을 그냥 우연이라고 여겨줄게. 물론 그게 틀리면 고작 당신 하나 죽는 걸로 끝나지는 않을 거야. 어때 목숨 걸고 한번 당신 회사 성화 그룹을 믿어 볼래?”

고주희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또 한 번 속옷을 적신 상태였다.

유진도 무서웠지만, 분명 이걸 뻔히 알면서도 일을 시킨 것이 분명한 유초혜 여사에 대한 두려움도 더해진 결과였다. 이걸 보고 할 때, 유초혜 여사가 딸과 사위와 살아 있는 손자의 이름을 거론한 것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유진은 잠시 더 고주희를 바라보다가 차민영에게 말했다.

“소진이 유치원에 전화해서 당분간 소진이 유치원 못 나간다고 이야기 해둬. 당신 회사에도 마찬가지로 당신 당분간 재택 근무해야 한다고 알리고.”

차민영은 조금 당황했지만, 수긍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수영장 파티는 어떻게 해요? 강준이 엄마에게 연락해서 당분간 못 한다고 해야 할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지. 소진이 또 유치원 못 가게 하면 스트레스 받을 텐데, 수영장 파티까지 못 하게 하면 그거 감당 못하지 않겠어? 이 집은 내가 있는 한 기갑부대나 특수부대가 사단 규모로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문제없어. 집에서는 마음껏 놀게 해주자고.”

이 와중에도 유진은 소진이를 철저하게 챙기고 있었다.

애초에 유진이 지금의 상황이 가져온 위기에서 화가난 이유도 그리고 진짜 위험하다고 여기는 대상도 소진이뿐이었다. 소진이의 유치원은 현재 상태에서 유진이 커버하지 못하는 거의 유일한 사각이었다. 이번이 첫 걱정도 아니었다.

유진은 장기적으로는 소진이 다니는 유치원을 이 마을 안쪽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까지 했다.

나중에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면 그건 또 그때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그건 나중일이었다.

차민영은 수긍했다. 기갑부대나 특수부대는 살짝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진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여기에 누가 얼마나 어떻게 쳐들어올지 몰라도, 유진이 지는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유진의 시선이 차수연을 지나 주다혜로 향했다.

자신들이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나쁜 일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과 성화 그룹의 이름이 나왔다는 것 때문에 그녀들은 패닉 상태였다.

특히 주다혜의 경우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자기 잘못인지, 아니면 차민영 탓인지 애매하다는 것과 자기가 지금 완전히 좆 됐다는 것을 새삼 추가로 깨달아서 더 멍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유진이 그녀에게 한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대꾸까지 했다.

“그리고 너, 넌 당장 너를 남자들하고 연결해 준 브로커 놈에게 연락해서 약속 잡아. 시간은 최대한 빨리, 장소는 이 근처로 해서.”

“어? 최 실장님은 이 일에 아무 상관이 없는데요?”

유진이 그녀의 대답에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팍 내쉬었다.

“뭐 이런 병신같은 년이 있지? 야 그 실장이라는 놈이……”

“여자인데요?”

“그래, 그래, 씨발. 그 실장이라는 년이 관리하는 창녀가 너 하나야? 그년이 관리하는 고객은 너의 그 개새끼 하나뿐이고? 그럴 리가 없지? 관리하는 년이 한둘이 아닐 테고, 관리하는 고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거야. 그런데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걸 그냥 두고 본다고? 네가 지금 무슨 길거리에서 몸 팔고 포주에게 보호비 내는 그런 창녀야? 아니잖아! 창녀도 창녀 나름이지! 넌 부자와 권력자들을 위한 최고급 에스코트잔아! 그런 곳에서 이따위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관리자가 모른다고? 비밀 관리가 안 되면 고객들 다 떨어져 나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과 권력을 가진 고객들에게 비밀 유지를 위해서 목숨이 위험하고도 남는 곳이라는 것을 거기에 속한 네가 몰라? 그런 걸 관리도 못하는 년이 살아서 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쪽 세계가 그렇게 널럴해? 애들 장난이야? 너 병신이냐! 당연히 그년이 너를 팔아먹었으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유진의 일갈에 주다혜는 정신이 멍한 정도를 넘어 미쳐버리기 직전이 되었다.

주다혜의 브로커는 최명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 여성이었다. 그리고 주다혜가 믿고 의지하는 지인이었다. 그녀는 그냥 돈과 권력을 노리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주다혜 본인 만큼이나 처절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서로 동변상련을 느끼는 그런 사이였다.

그래서 주다혜는 설마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부정하고 싶었다.

주다혜는 유진의 압박에도 통화 버튼을 누를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패닉 상태였다.

결국 차수연이 유진의 지시에 따라 주다혜의 폰을 빼앗아서 대신 문자를 보냈다.

비밀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상대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문자는 자동 삭제 기능이 있었지만, 아직 기일이 지나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주다혜를 흉내 내서 연락을 보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차수연은 이 최 실장이라는 여자와 대화하면서, 이번 일에 이 여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유진의 이야기에 동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주다혜의 위치를 굉장히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고, 내일 만나자는 약속에도 쉽게 동의했다.

차수연도 이 계통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었는데, 브로커들이 관리하는 창녀나 고객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얼굴 없는 존재이며, 목소리만 존재하는 안내원이었다. 가능하면 목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문자 정도로만 서로를 연결했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것치고 너무 쉽게 넘어왔다. 고객 수준을 보아 분명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 틀림없는데도 말이다.

‘병신 같은 년.’

결국 다시 주다혜를 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주다혜가 아주 호구에 병신으로 취급받고 있었다는 아주 명백한 증거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양심이 좀 많이 찔리기도 했다. 멀쩡하게 좋은 대학 잘 다니고 있는 외모와 지식과 교양을 함께 갖춘 재원이었던 그녀를 오늘날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도 했으니까. 그녀가 처음 주다혜를 유인해서 강준화의 먹이로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주다혜는 참 똑 부러지는 강인한 성격의 똑똑한 아가씨였다.

결국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차수연 그녀 본인의 원죄인 것 같았다.

‘병신 같은 년.’

다시 한번 속으로 터져 나온 욕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차수연 본인도 조금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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