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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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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12
일단 할 일을 끝내자 유진은 고주희를 가차 없이 쫓아냈다.
“당신이 가서 할 일은 따로 설명해주지 않을 거야. 대신 내 일정을 말해주지. 내일 저 실장이란 년을 조지는 걸 시작으로, 난 그 위로 걸리는 놈들을 전부 빠르게 조질 거다. 이 일이 길어져서 소진이 유치원 가지 못하게 되는 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질색이니까. 그 과정에서 그 중간이든 끝이든 성화의 누가 걸려도 그건 멈추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가서 일을 어떻게 남들 눈에 안 띄게 할 건지, 그리고 최악의 경우 나랑 어떻게 싸울 것인지 미리 계획해 두도록.”
다행히 고주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확실한 지침을 받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이 일에서 저와 회사는 무조건 당신을 지원할 겁니다. 그 와중에 우리 중의 누가 문제가 된다고 그건 변함없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뒤처리 정도는 저희가 맡을 수 있게 해주세요.”
유진은 잠시 눈빛을 빛냈지만,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마음대로.”
그 대답에 고주희는 다시 한번 공포로 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최악의 걱정은 없이 떠날 수 있었다.
차수연과 주다혜는 그렇게 떠나는 고주희를 보며 눈치를 보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유진이 다시 명확히 했다.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둘 다 내 눈 밖으로 벗어나지 말고, 쓸데없이 외부와 연락 같은 것 할 일이 있으면 내 앞에서 해. 몰래 쓸데없는 짓 하다가 들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아서 상상하고.”
차수연과 주다혜 둘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자신들에게 벌어지는 일이 점점 커지는 점이 매우 불안했고, 차민영이 부른다고 이 집으로 쪼르르 달려온 것도 후회되었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어쨌든 손님이어서 유진은 그녀들이 먹을 것은 차별하지 않았고, 둘은 이 긴장되고 무서운 상황에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끝내 주는 저녁 식사의 맛에 놀라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피폐해진 정신 상태로 거의 넋을 잃은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식탁에 앉았던 주다혜는 식탁 위에 펼쳐진 갖은 음식들, 오늘의 메뉴인 잡채, 불고기. 꼬치 산적, 미역국의 조합을 보면서도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요 며칠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하고 있었고, 오늘 너무 심하게 마음고생 하면서 체력 손상도 심했던 그녀의 몸은 굉장히 허기를 느끼며, 음식을 원하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그녀를 자극했고, 주다혜는 아무 생각 없이 젓가락을 놀려서 잡채를 한 젓가락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끝장났다.
“우와?”
주다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소하고 달달대면서도 짭짤한 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당면과 고기와 계란 지단과 채소가 섞이면서 만들어진 식감조차도 완벽했다. 그래봐야 고작 잡채인데 한 입 씹는 것만으로도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는 그런 기분이었다.
입에 넣은 양 허겁지겁 씹어 삼키고는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젓가락을 놀렸다. 몇 번 먹다 보니 밥이 당겨서 쌀밥도 살짝 집어서 삼키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미역국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전부 다 미칠 듯이 맛이 있었다.
“우와! 우와! 우와!”
입에 든 것을 목구멍 너머로 삼킬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다가 살짝 정신을 차려서 자기 모습을 자각하고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슬쩍 주변 눈치를 살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바보처럼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생각과 달리 그녀에게 관심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젓가락과 숟가락, 그리고 손을 직접 움직이면서 음식 먹는 것에 열중할 뿐이었다.
그나마 제일 여유 있는 유진은 소진이 밥그릇에 꼬치 산적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얹어 주느라고 바빴고, 차민영은 우아한 포즈로 고추장 불고기를 집중적으로 조지고 있었으며, 차수연은 조금 전까지의 주다혜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음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주다혜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자기가 아직 잡채만 먹어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우선 밥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은 다음에, 고추장 불고기를 집었다. 그리고 그걸 입에 넣는 순간 다시 한번 절로 감탄했다.
알싸하면서 묵직한 맛을 내는 매콤함과 은은한 달콤함이 고사한 밥맛과 함께 섞이면서 느껴지는 그 맛은 지금껏 그녀가 먹었던 그 어떤 고추장 불고기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극상의 맛이었다.
“씨발.”
숨길 수 없는 감탄이 욕설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 이후로는 거의 이성이 남아나지 않았다. 몸매 유지를 위한 칼로리 계산이나, 지금 겪고 있는 심각한 위기 따위는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열심히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고, 최선을 다해서 입안에 들어온 음식을 씹어 삼켰다. 점점 줄어드는 잡채와 고추장 불고기, 산적의 양을 보며 입에 아직 씹지 못한 음식물이 남은 상태에서도 공격적으로 음식을 집어 오고, 그러다가 줄어든 음식이 다시 처음의 양으로 리필 되는 것을 보면서 소리 없이 환호했다.
차민영이 유진에게 밥 더 떠달라고 비어버린 밥공기를 내미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유진을 무서워하던 것도 잊고 자신도 더 달라고 밥공기를 내밀기도 했다. 옆에서 차수연도 똑같은 짓을 같이 해줘서 창피하지도 않았다.
아니 좀 창피해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식사는 손님 둘이 배가 부르다 못해 아플 정도로 과식해서 나가떨어질 지경이 된 다음에야 끝났다.
유진이 소진이 양치질을 도와주기 위해 함께 화장실로 향한 사이, 주다혜가 배가 너무 불러서 슬슬 아프기까지 한 자기 배를 쓰다듬으며 차민영에게 물었다.
“큰 언니, 오늘이 좀 특별한 거에요, 아니면 매일 이렇게 먹는 거예요?”
차민영이 은근히 콧대를 세우며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연기하며 대답했다.
“오늘은 좀 아쉽네. 준비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좀 평범했어.”
재수 없는 말이기는 한데, 사실 거짓말도 아니었다.
잡채나 산적은 오늘 식당에 나갔던 반찬 챙겨온 것이었다. 저녁을 위해 직접 추가한 주요리는 고추장 불고기 하나뿐이었는데, 그건 유진의 저녁치고는 확실히 소소한 편이었다.
듣고 있던 차수연이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매일 이렇게 먹는데 선배는 어떻게 살도 안 쪘는데?”
차민영은 못 들은 척했다.
사실 이건 그녀도 요즘 신기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는 했다. 소진이랑 둘이서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식사량이 두 배도 아니고 거의 세 배에서 네 배로 늘어났고, 그 시절에 비해서 따로 운동을 더 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몸매는 20대에 가장 빡빡하게 관리하던 시절로 역행 중이었다.
이건 유진의 정액이 가진 질병 치료, 노화 방지, 회춘 효과 같은 것들이 그녀의 몸에서 발휘되는 것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그녀는 그저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이뻐진다는 통념을 떠올리며, 자신이 유진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만 더 굳히고 있을 뿐이었다.
주다혜는 다른 부분에서 감탄했다.
“우와! 매일 이렇게 차려주는 거예요? 어쩌다 하루가 아니라?”
“응, 그이가 일단 요리사거든.”
“요리사들도 대부분 가게에서나 열심히 음식 만들지 집에서는 늘어진다고 들었는데요. 자기가 만드는 최고급 요리보다 와이프가 끓여주는 라면이 더 맛있다고 인터뷰하는 것도 봤는데.”
“그이는 돈벌려고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 거라서. 특히 소진이 맛있는 거 먹이고, 배불리는 먹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걱정해야 할 지경이야. 소진이 아직 어린데 초콜렛 케이크나, 크레페, 피자랑, 치킨 같은 것도 너무 자주 해주거든.”
걱정하는 척 말하면서 사실은 자랑하는 명백한 기만이었지만, 주다혜는 그냥 순수하게 감탄했다.
“우와! 형부, 끝내 주게 멋지시네요.”
주다혜는 자기보다도 더 어린 유진에게 기꺼이 형부라는 칭호와 경칭을 썼다. 이 정도로 끝내 주는 남자라면 자기보다 어려도 기꺼이 윗사람으로 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도 멋지고 능력 있으면 오빠라는 것이 그녀의 평소 지론이기도 했다.
그녀들 사이에서 잠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맛있는 것 먹고 배가 부르면 분노와 슬픔과 근심과 걱정이 약해지는 것이 인간의 어쩔 수 특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살짝 유진의 눈치만 보면서 적당히 내일 일은 외면하고, 세 여자 사이에서 못 본 동안의 일상에 대한 적당한 잡담이 오가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차수연과 주다혜는 예전에도 차수연이 묵었던 2층 메인 침실에서 같이 자게 되었다.
차민영은 이제 진짜로 반지하의 여러 서브룸 들과 3층을 꼭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소진이가 잠든 후 조심스럽게 유진의 방으로 향했다. 유진은 옷도 벗지 않고, 잠들 준비도 전혀 하지 않은 채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민영은 유진의 품에 살짝 안기며 말했다.
“자기. 오늘 밤 어때?”
차민영은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유진의 감정에 조금은 더 민감했다. 저녁 식사 이후로 유진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명백하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 화를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유진을 달래주고 싶었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살갗을 마주하고 종래에는 섹스까지 이어지는 것은 부부나 연인이 상대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애정 행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거절했다.
“오늘은 좀 그렇군.”
“왜?”
“지금 내 기분으로는 요즘처럼 그렇게 당신을 대할 수 없을 거야. 아마 많이 험하게 다루면서 많이 괴롭게 만들겠지. 당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는 하지만, 그거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유진은 말은 차민영을 약간 당황스러우면서 기쁘게 만들었다.
그녀는 유진이 자신의 취향까지 생각해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유진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사실 고통을 주는 강압적인 섹스에 몹시 익숙하고, 그런 섹스에도 충분히 쾌락을 느끼는 몸이기도 했지만,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최근 유진과의 섹스처럼 부드럽게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런 진짜 애정과 일체감이 느껴지는 그런 섹스였다. 아니면 아예 반대로 그녀가 지배하는 섹스이거나.
하지만 유진이 그녀를 파악한 만큼, 그녀도 유진을 약간은 파악하고 있었다.
“당신 지금 몸이 달아올랐잖아. 내가 아니면 어쩌려고? 옆방으로 가려고?”
유진이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섹스를 원한다는 것을, 그것도 몹시 과격한 섹스를 즐긴다는 것을 차민영도 약간은 눈치채고 있었다.
유진의 대답이 없자 차민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차라리 옆방으로 가는 것이라면, 차수연과 주다혜를 범하고 그녀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려는 것이라면 차민영은 차라리 안도했을 것이다. 어차피 차수연은 그러기 위해 그녀가 준비한 상대였고, 주다혜도 일이 이렇게 돼서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차민영은 그녀들을 자신의 소유 혹은 자신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유진과 섹스하는 것에는 질투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진은 그녀들의 방으로 갈 생각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럼 유진이 어디로 향하려는 것인지는 너무 뻔했다. 차민영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유진이 이 주택단지에 만든 다른 여자에게로 향하려 하는 것이었다.
차민영은 그녀가 누군지 묻지 않았다. 유진이 먼저 말해주지 않는다면 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솔직히 가능하면 모르고 싶었다. 누군지 알고 추하게 질투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실 유진을 말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유진을 붙잡고 애원해 버리고 말았다.
“가지마요, 여보.”
“누나?”
굉장히 처연한 그녀의 목소리에 유진이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호칭으로 그녀를 불렀다.
“오늘밤은 오늘밤은 저랑 있어줘요. 제발.”
차민영은 차마 고개를 들어 유진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로, 두 손으로 유진의 옷자락을 꼭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애원했다.
유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
차민영의 애원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사실 바로 이웃이라고 해도 이 집을 나가 다른 집을 방문한 사이에 안전에 문제가 없을 것인가에 대해 유진이 약간 고민하고 있던 것이 사실 더 컸다.
차민영은 그 대답에 기쁨을 느끼며, 고개를 들고는 유진에게 입을 맞추었다.
안전을 고려해서 이성적인 영역에서 판단한 부분이 큰 유진과 달리 차민영은 그걸 애정으로 느꼈다.
사실 큰 차이도 아니었다.
어쨌든 유진이 스트레스를 풀 섹스보다는 그녀와 소진이의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도 애정은 애정이었으니까.
둘의 그 좋은 분위기는 오늘은 섹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차민영은 유진의 손을 꼭 잡고 1층으로 향했고, 유진과 차민영은 소진이를 가운데에 두고 한 침대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잠들었다.
이건 그녀와 유진이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이래, 진짜 잠자리를 같이한 기념할만한 첫날 밤이었다.
차민영은 안도감과 함께 큰 행복을 느꼈고, 유진도 차민영에게서 느껴지는 애정과 함께 잠들어 있는 소진이의 아기 냄새에 꽤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생소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에 유진은 스트레스를 조금은 덜 느끼면서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