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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13화 (11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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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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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14

“죽은 거예요? 죽인 거예요? 당신 미쳤어요!”

주다혜는 실장 언니, 최명선이 유진의 손에 목이 졸려 쓰러지자 숨죽인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유진이 문답 무용으로 최명선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는 모습에 기겁하던 그녀의 눈에는, 유진이 진짜로 그녀를 죽여버린 것으로 보여서 기겁할 정도로 놀랐다.

유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다혜를 노려보면서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 쉿.

호들갑 떨던 주다혜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두려움에 몸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유진이 최명선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유진은 최명선을 죽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데 벌써 죽일 이유가 없었다. 세밀하게 조절해서 정교하게 죽지 않을 정도로 기절시킨 것이었다.

그걸 딱히 주다혜에게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유진에게 그녀는 최명선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서의 가치 외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최명선이 손에 들어온 이상 그녀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딱히 뭔가 할 이유는 없으니 조용히 해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렇게 만들어줄 의향도 있었고.

분위기는 자꾸 망각해도 눈치는 빠른 주다혜는 입을 다물고 유진의 눈을 피했다.

유진은 최명선을 어깨에 둘러메고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이 가든은 손님을 받는 커다란 메인 식당 부분과 요리를 준비하는 조리실 부분이 별도의 건물로 분리되어 있는데, 유진이 향하는 곳이 그 조리실이었다. 둘이 타고 온 차도 그 조리실 가까이에 눈에 잘 띄지 않게 주차되어 있었다.

가게가 폐업한 후 당연히 조리실의 문도 두꺼운 자물쇠로 잘 잠가져 있었지만, 그 자물쇠는 유진의 손에 이미 부서진 다음이었다.

조리실은 비싼 종류의 냉장고 같은 집기들은 다 사라지고, 조리대와 싱크대, 그리고 버려진 몇 개의 찬장들만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던 공간이었다. 그걸 일찌감치 주다혜와 함께 일찌감치 도착한 유진이 물을 뿌려 청소해서 대충 바닥과 조리대의 먼지는 치워둔 상태였다.

유진은 들고 온 최명선을 대충 바닥에 던져두고는 다시 밖으로 나섰다.

남겨진 주다혜는 그때야 최명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민했다. 최명선의 모습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에 그녀를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최명선이 그녀를 배신했다는 유진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고 있었다. 주다혜는 그 정도로 최명선을 믿고 있었다. 의절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가족보다 그녀를 더 믿고 의지하면 살아온 참이었다.

그래도 어설프게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생각은 있었다.

그러는 사이 유진은 최명선을 제압하기 전에 먼저 제압해 두었던 두 깡패를 양쪽 어깨에 둘러메고 다시 조리실로 돌아왔다.

두 깡패는 최명선과는 조금 다른 대우를 받았다.

그냥 바닥에 조금 험하게 내던져진 것 외에 따라 뭔가를 당하지 않은 최명선에 비해, 두 깡패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상태로 테이프로 둘둘 말렸다. 애벌레처럼 허리 정도는 튕길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졌다.

다음 차례로 유진은 싱크대에 물을 받았다.

주다혜는 그걸 보면서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유진이 따로 용도를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주다혜는 그게 무엇을 위한 용도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고,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정말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진이 쓰러졌던 최명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들고, 그녀를 싱크대로 끌고 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유진의 팔을 잡았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마요. 이건 아니잖아요. 제발.”

주다혜는 울먹이면서 애원했다.

설마 진짜로 최명선이 배신한 것이라고 해도, 그래서 그녀가 죽어 마땅하다고 해도, 차라리 칼로 찔러 죽이거나 때려죽인다면 몰라도 물고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다혜에게 그 고문은 영혼을 파괴하는 트라우마였다. 자신의 앞에서 누가 그 꼴을 당하는 것을 절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유진에게 주다혜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 그녀가 싫어한다고 해서 유진이 그걸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특별히 꼭 해야 할 일이 아닌 상황에서, 그녀가 이렇게까지 간절히 싫어하는데 굳이 그걸 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뜻도 되었다.

유진이 물을 생각한 것은 그것이 그나마 뒤처리할 일이 좀 적을듯해서 고른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피가 좀 튄다고 해도 청소를 자신이 할 생각도 아니니 상관없을 듯했다.

물고문보다는 그쪽이 좀 더 유진의 성향에 맞는 점도 있었다.

유진은 물을 받아둔 싱크대로 끌고 가던 최명선을 다시 바닥에 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아니라 깡패들 용으로 생각하고 있던 물건을 집어 들었다. 별것은 아니고, 근처에서 주워온 마른 나뭇가지였다. 적당한 굵기를 가진 도낏자루 사이즈의 물건이었다.

주다혜가 보기에는 그것도 끔찍해 보였다. 그래도 그것까지 말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물을 말린 것만으로도 자신이 주제를 이미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이 칼과 손도끼를 챙기는 것도 보았었다. 이것까지 말렸다가 다음에 뭐가 나올지가 무서웠다.

‘이 정도면 나는 할 만큼 한 거야.’

주다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최명선에게 최악이면서도 최선의 결과가 되었다.

유진은 최명선을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아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깨우기 위해 물을 좀 끼얹기는 했다.

질식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이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최명선은 그것만으로 의식을 되찾고 깨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보게 된 광경, 자신의 눈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내려다보고 있는 유진의 모습에 경기를 일으켰다.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살려주세요! 다 할게요!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할게요!”

최명선은 마치 거북이라도 된 것처럼 사지를 웅크리고 엎드려서 벌벌 떨었다.

그건 유진은 물론이고, 주다혜에게도 매우 의외의 모습이었다.

최명선은 그리 쉬운 여자는 아니었다.

단지 목숨이 위험하다는 정도로, 폭력이 눈앞에 있다는 정도로 쓰러질 정도라면 포주 그것도 나름 이름있는 유명인 여자들을 돈과 권력이 있는 남자들과 연결해주는 브로커 일은 못 한다.

그녀는 젊은 시절 진짜 지옥을 겪었고, 거기서 살아남아 나름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사이에 겪은 일들은 어지간한 느와르나 조폭 영화 따위 시시해서 못 볼 정도였다.

그녀는 누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인다고 협박하면, 죽여보라고 비웃어 줄 정도의 강단을 갖추고 있었고, 그러다가 진짜 죽는다고 해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여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주다혜는 강준화에게 유혹당한 강간과 물고문으로 조교되어 성노예가 되었다면, 최명선은 굉장히 많이 다른 과정을 걸쳐서 지옥 같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주다혜처럼 누군가에게 유혹당해 멍청하게 함정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주다혜처럼 일단 성인이기라도 한 것도 아니었다.

최명선은 어린 여학생 시절 자율학습 끝나고 집에 가다가 길거리에서 납치당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하게 될 때까지 며칠은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같이 끌려온 여자 중에 그 과정에서 죽는 여자도 보았다. 남자들에게 강간당하기 시작했을 때는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까지 맞았다. 그렇게 창녀가 되었었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그녀는 더 이상 그때의 어린 소녀가 아니고, 이제 고통에 그렇게 쉽게 굴복하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폭력, 기절, 깨어나서 보게 된 생소한 장소, 그리고 자신을 두들겨 패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있는 젊은 남자라는 연이은 조합이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공포를 깨워버렸다.

상대가 유진만 아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최명선이 유진이 미약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발산하고 있던 살의와 정신계 동조에 영향을 받은 탓이기도 했다.

“이건 또 의외로군.”

유진이 최명선과 조우한 이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진은 기본적인 상식으로 최명선이 절대로 쉬운 여자일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제압하는 것에 꽤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사실 그녀보다는 두 깡패 쪽을 메인으로 여길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명선이 보이는 모습에서 일이 매우 쉽게 진행될 조짐이 보였다. 이건 나름 유진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사납지 않게 그녀를 대했다.

“이름.”

“최명선입니다.”

“널 뭐라고 부르면 될까? 명선 씨?”

“최, 최 실장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최 실장. 여기 다혜는 왜 팔아넘긴 거야?”

“명지훈 사장이 거절하면 해치겠다고 위협했고, 대신 협조하면 저에게 텐프로 가게를 만들 수 있을 자금과 라인을 제공해주기로 했어요. 다혜를 파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는 했지만 대가가 컸고, 거절하기가 무서웠습니다.”

완전히 압도당한 상황이었지만, 자기를 변명하는 것은 생존 본능의 영역이었다. 최명선은 자기 욕심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위협은 최대한 확대했다.

그 대답에 주다혜는 충격을 받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로 그녀가 자신을 팔아먹었다는 것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주다혜는 최명선이 이 일에 관여했다고 해도, 협박받아 어쩔 수 없이 참여한 것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답으로 그게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판단할 수 있었다.

유진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명지훈이라. 네가 알고 있던 상대도 이 이름이 맞아?”

주다혜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유진은 혀를 찼다. 예상은 했지만, 일이 별로 쉽지 않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진은 이 일에 분명 성화 그중에서도 죽은 정동후와 관련된 누군가의 개입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주다혜를 납치한 상대와 그걸 사주한 상대가 다르다면 거기서 뭔가 파고들어 갈 여지가 생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후가 너무 쉽게 드러났다. 이건 정확한 목표라기보다 함정이나 미끼의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일단 확인은 했다.

“그 놈은 뭐하는 놈이지?”

“대정 그룹 방계예요. 자동차 수출입 관련 업무를 하면서 나름 큰돈 좀 만지는 사업가예요.”

“대정 그룹?”

대정은 한국에서 재계 서열 28, 29위 정도의 회사였다. 보통 재계 서열 30위까지를 대기업으로 쳐주는 것을 고려하면, 재벌의 끄트머리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 정도로도 한국에서는 충분히 대단한 곳이지만, 유진이 알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 성화 그룹이랑 좀 관련 있는 곳인가? 아니 그 명진훈 본인이라도.”

최명선은 왜 성화가 언급되는지 의문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아는 대로 곧바로 대답했다.

“재벌은 자기들끼리 복잡한 혼인 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완전히 남이라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에요, 명지훈 사장은 방계라서 더욱 관계없을 거예요.”

“하아.”

유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너무 노골적이었다.

명색이 회사 사장이라는 놈이니 주로 머무는 곳은 회사일 테고, 거처도 사람 많고 보안 철저한 곳일 터였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 뒤처리도 꽤 문제가 될 확률도 높았다. 뒤처리는 자신이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대로라면 고주희를 시키는 것도 곤란했다.

유진은 고주희가 이 일에 성화가 관련되었다고 전혀 고려조차 하지 못한 것에는 분명 그쪽 내부에 문제가 있어서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그들에게 뭔가 일을 맡기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기리라 판단했다.

그래도 그냥 놔두면 곤란하니, 혼자서라도 움직일 것인가 고민하다가 묶어둔 두 깡패에게 시선이 갔다.

“이 새끼들은 그럼 그 명지훈이란 인간의 회사 직원들인가?”

성화와의 다툼에서 만난 인간들이 그쪽 직원들이었던 때문에, 유진은 한국 재벌은 이런 일에 쓰는 직원을 고용해서 부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재벌 중에서도 5대 그룹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설혹 대성 그룹에도 그런 일을 하는 직원들이 있다고 해도 방계가 그들을 동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요, 걔들은 마포 신상사파 애들이예요.”

“응? 신상사파? 무슨 군대 소속이야?”

“아니요. 그냥 흔한 조폭 이름인데요.”

“조폭?”

유진은 성화 건설이 자신을 습격하기 위해 동원했던 인간 중에서 명백하게 조폭의 느낌이 드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놈들은 혹시 대정이나 성화랑 관련된 애들이야? 아니면 명지훈 놈이 부리는 놈들?”

“아니요. 그 정도로 대단한 놈들 아니에요. 그냥 유흥가에서 술집 관리하는 일로 먹고 사는 흔해 빠진 조직 중 하나에요. 그렇다고 명지훈 정도가 아랫사람으로 부릴 정도로 만만한 애들은 아니고요.”

재미있는 대답이었다.

유진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왜 당신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어, 그게 그러니까?”

최명선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어제 주다혜에게 연락받은 후 명지훈과 통화했을 때, 명지훈이 보내주겠다고 해서 받은 애들일 뿐이었다. 신상사파라는 것은 소개 받기는 했는데, 굳이 왜 신상사파가 명지훈의 일에 끼어든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돈 받고 심부름하는 거로 생각해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지금 질문을 듣고 보니 둘이 그런 식으로 일할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은 최명선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결정되었다.

유진의 목소리가 경쾌해졌다.

“그 신상사파라는 놈들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그쪽 계통 정보가 밝은 그녀는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신상사가 어디 있을지는 말라도, 조직원들이 주로 어디 모여 있는지는 알고 있어요.”

최명선은 대답하면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 무서운 분위기와 공포가 약간 가시고, 이제 재대로 숨을 쉬면서 다른 생각도 약간은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잘됐군. 당신 차 트렁크에 저 새끼들 들어갈까?”

“골프백 뒷자리로 옮기면 아마요?”

유진은 씨익 웃었다.

이걸로 점심 먹고 할 일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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