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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14화 (11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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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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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15

서울로 향하는 차 안.

얼빠진 것 같은 상태로 자기 차를 운전하는 것에만 집중하던 최명선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백미러로 뒷자리를 힐끔거리며 보았다.

오던 길에는 젊고 건방져 보이던 깡패 두 명이 서로 반대쪽을 창밖을 바라보던 자리 중 하나에는 자신의 골프백이 놓여 있었고, 반대쪽에는 검은 마스크를 쓴 모델 같은 남자가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었다. 잠시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마스크를 바라보던 최명선은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화들짝 놀라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놀라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뚫린 구멍 하나 없어 보이는데 앞이 보이는 걸까?’

시선은 앞쪽 도로를 향한 채로 눈치를 봤다. 등 뒤에서 별다른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쳐다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최명선은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살아날 수 있을까?’

최명선은 유진을 살인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진짜 프로라고 믿고 있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기 트렁크에 시체 두 구가 실려 있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유진이 살아 있던 깡패 둘을 하나씩 목을 부러뜨려 죽인 다음에 트렁크에 포개는 과정은 너무도 건조하고 기계적이어서, 차명선은 유진이 그들을 죽였다는 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주다혜가 자기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면 아예 생각도 못 할 정도였다.

그 후에는 놀라서 기절한 주다혜가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남자가 미리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배를 채우는 꼴도 구경해야만 했다. 자신이 죽인 시체들이 실려 있는 차 트렁크 옆에 서서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는 그 광경은, 그를 구역질 나는 미치광이로밖에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 미치광이가 지금 자신의 등 뒤에 앉아 있는 것이다.

겁먹고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 노출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지금 마스크를 쓰고 있을 리가 없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자기를 죽일 생각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뒈질 생각은 없었다.

방법을 고민했다.

‘왜 하필 오늘따라 경찰차도 하나 안 보여!’

가장 좋은 방법으로 떠올린 것은 경찰차에 사고를 내는 것이었다. 뒤에 있는 시체까지 고려하면 살기 위해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물론 이 일에 얽힌 사람들에 관련된 뒷일까지 생각하면 자기가 그 후 어찌 될지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 당장 살 방법은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꼼수 고민도 오래 하지는 못했다.

- 딸칵, 철컥.

쇠와 쇠가 마주치는 특이한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뒷자리로 시선을 향했던 그녀는, 마스크의 남자가 한 손에 권총을 쥔 채로 탄창의 탄환을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바라보는 와중에 탄창을 다시 총에 삽입한 후 슬라이드를 당겨 장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끼릭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녀도 영화에서 자주 본 적 있는 소음기까지 권총 앞에 돌려서 달았다.

시선을 다시 도로로 향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씨발.’

그녀는 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대로 저게 장난감은 아니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어쩌면 좋을지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단순히 총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사용하려고 하는 저 프로의 배후가 문제였다. 어설픈 깡패일 리가 없고, 주다혜의 그냥 아는 사람일 리도 없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거물이 아니라면 저런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배후가 그 정도 거물이라면 이제 자기 한 몸의 목숨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자식은 없지만, 조카들이 있었고, 그 조카들이 낳은 조카손자들이 있었다.

자기가 그 끔찍한 꼴을 당하고 있는 동안 결코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다녔고, 차마 사람들 사이에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과거를 가진 그녀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 준 오빠가 세상에 남긴 핏줄들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으면 죽었지, 그 아이들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목적지로 안전 운전을 시작했다.

** ** **

“저 앞이에요.”

유진은 최명선이 창밖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낡은 흔해 빠진 상가 건물들 사이로 커다란 철제문이 달려 있고, 그 뒤로는 꽤 넓어 보이는 공터에는 낡은 트럭 몇 대가 낡은 창고 건물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다른 건물과 비교해서 담장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 특이한 곳이었다.

한자로 된 상호는 읽기 어렵지 않았다.

“마상 주류? 뭐 하는 곳이지?”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그 상호만으로 누구나 뭐 하는 곳인지 인지할만한 곳이었지만, 유진은 아직 세세한 부분에서는 조금 약만 부분이 있었다.

최명선은 유진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오토바이 기업인 대정의 이름을 낯설어했다는 것과 함께 합쳐, 상대가 한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건 더 두려운 일이었다. 일을 위해서 외국에서 불러온 진짜 프로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생각을 티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동네 음식점이나 술집 등에 술을 도매로 판매하는 유통회사에요. 꽤 이권이 큰 사업이라서 깡패들이 꽤 노리지만, 어지간한 깡패 따위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신상사파라는 그 깡패들이 그냥 흔한 동네 건달은 아니라는 소리군.”

“마포에서는 그래도 나름 이름있는 애들이에요. 세력도 좀 되고. 마포에 우리나라 최고 유흥 지역 중 하나인 홍대거리도 있고, 음식점 등으로 유명한 연남동도 있고 해서, 여기가 그렇게 만만한 동네는 아니에요. 여기서 주류 도매 사업할 정도면 정치권이나 고위 공무원과도 끈이 없으면 힘들어요.”

신상사파가 이쪽 동네에서는 나름 이름있는 곳이라는 점은 유진에게 고민이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대의 족벌 세력인 5대 재벌 중 하나인 성화 그룹조차 유진의 기준에서는 고만고만한 세력에 불과했다. 동네 깡패 따위, 자기 중에서 나름 목에 힘준다고 해봐야 유진이 신경 쓸 정도가 될 수가 없었다.

단지, 그 정도로 잘나가는 사업이라면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럼 저 안에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그 조직에 속한 깡패는 아니겠군.”

마피아의 업소에서 일한다고 다 마피아일 리는 없었다. 규모가 크면 더욱더.

“예, 아마 대부분은 일반 직원들 일거에요.”

“그럼 그 조직 우두머리는 사장실에 있으려나?”

“어? 아니요. 아마 사장은 바지사장 일거에요. 경찰이 아무리 조직을 묵인해준다고 해도, 조폭 두목이 직접 주류 도매 허가를 받아서 사업체 사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법이 만만하지는 않거든요.”

“그럼, 그 새끼는 저기서 직책이 뭔데?”

“아마 정식 직책은 없을 거예요. 그냥 실질 소유주이지, 저기서 일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 어이없는 대답에 유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명선은 기가 확 죽어서 유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얼른 대답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곳은 저기뿐이에요. 그리고 직원의 최소 반 이상은 조직원일 거예요. 사장도 보스인 신상사가 아닐 뿐이지, 신상사 심복일 거예요. 그 사람들 추궁하면 신상사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유진을 혀를 좀 찼다. 확실히 그녀를 더 추궁할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저 안에 있는 놈들이 전부 깡패들이라고 해도, 전부 다 쳐 죽일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낮이고, 주변에 주택과 상가들이 제법 있었다. 사람들 눈을 적당히 피할 필요가 있었다.

별로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조용한 잠입 침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유진이 차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자, 최명선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냥 가는 거예요? 날 두고? 괜찮아요?”

여러 의미가 담긴 그 질문에 유진은 고개를 한번 갸웃해 보이고는 그냥 대답 없이 차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열렸던 뒷문이 닫히고 차 안에 혼자 남겨진 최명선은 다시 한번 몸을 움츠렸다.

조용히 있으라는 협박보다 방금의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자기에게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저 자신감이 허풍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최명선은 핸드폰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고 몸을 웅크려 창밖으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 ** **

‘재미있는 구조군.’

유진은 대놓고 정문을 뛰어넘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 이기는 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할 자신도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가볍게 침투에 대해 배운 바를 한번 테스트해 볼 생각이었다.

우선 블록을 좀 크게 돌아서, 마상 주류의 뒤쪽으로 보이는 가정집으로 향했다. 마상 주류 쪽보다 훨씬 좁은 골목에 대문이 있는 그 집은 벽도 낮았고, 감시 카메라도 없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벽을 뛰어넘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과 벽의 거리로 예측하기는 했는데, 가정집인데도 마당이 전혀 없었다. 차 한 대 간신히 주차할 수 있을 정도의 주차장을 사이로 대문과 현관이 마주 보고 있었고, 건물과 외벽은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거리만을 두고 바싹 붙어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이 각박한 마당 구조의 집에 유진은 꽤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약간 곤란함도 느꼈다. 건물과 외벽 사이의 공간이 너무 좁아서 유진의 덩치로는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이 집 뒤쪽의 마상 주류가 목적인 유진으로서는 아주 약간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벽 위를 걸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도 누군가의 눈에 띄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마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자기가 숨어 들어온 이 집안 쪽 건물에서 일반적인 가정집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이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자 들려오는 소리도 있었다.

“야 씨발, 조영이랑 명준이 어디 갔냐? 이 새끼들한테 분명히 내가 내 양복 챙겨두라고 했는데, 보이지를 않네?”

“아, 막내들은 아침에 심부름 나갔습니다.”

“심부름? 누구 심부름?”

“큰 형님이 불러서 나갔습니다.”

“큰 형님? 큰 형님이 그렇게 구박하던 막내들은 왜?”

“그거야, 저도 모르죠.”

누가 누구에 대해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분석 같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굳이 마상 주류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어 보였다.

유진은 건물 내의 인기척을 좀 살피다가, 이 집이 반지하 포함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주로 반 지하층과 1층에 있고, 2층 인원은 상대적 적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봐야 7명, 6명, 3명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높은 놈일수록 쾌적한 곳에서 적은 인원으로 지낸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유진은 가볍게 뛰어서 2층 난간에 손을 걸친 다음에, 부드럽게 몸을 끌어 올려 2층에 딸린 테라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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