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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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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17
침묵 속에서 차는 그리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기예요.”
최명선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던 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여기라고?”
“네. 저기 길 건너에 건물 옆쪽에 작은 한자 간판 보이죠? 저기 통해서 내려가는 지하에요. 홍월은 이름은 있는 편이지만, 규모는 작아서 건물 지하 한 층만 쓰고 있어요.”
유진은 진짜로 당황했다.
유진은 홍월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이미 여자가 서버로 들어오는 고급 술집을 떠올렸다. 한국 특유의 술집인 룸살롱, 텐프로 등등에 대해서는 유진도 이미 보고 들은 바가 있었던 것이었다. 최명선은 홍월이 텐프로라고 직접 확인까지 해주었다.
그즈음에서 유진은 홍월이 위치한 곳에 대해서 어느 정도 편견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으슥한 뒷골목, 주변에 술집과 술을 파는 음식점 등으로 가득 찬 유흥가 한 가운데라거나, 아니면 아예 주택가 한곳에 간판도 달지 않고 영업하는 은밀한 가게 등을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곳은 6차선의 도로와 4차선 도로가 겹치는 번화가의 한곳이었다.
도로는 지나가는 차로 가득 차 있었고, 길거리에는 사람이 가득했으며, 주변에는 영업 중인 가게들로 가득했다. 그 가게들은 술집 같은 유흥계통의 가게가 아니라 식사가 메인인 음식점이나, 화장품 가게, 헤어샵, 편의점, 일반적인 사무용 건물 등이었다.
홍월이 있는 건물은 그중에서도 여러 종류의 병원에 약국, 편의점, 은행 영업소까지 온갖 멀쩡해 보이는 간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유진은 진짜 당황했다.
“이건 좀 예상외인데?”
이래서야 은밀한 행동은 무리였다.
이 정도 번화가에서는 지금처럼 얼굴을 가린 상태로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어려웠다. 거기에 일을 진행하는 와중에 소음이 발생하면 그걸 들을 수 있을 사람도 많았고, 경찰에 신고당할 확률도 높았다. 경찰이 출동하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도 분명했다.
여러모로 생각하던 대로 움직이기 힘들어 보였다.
살짝 고민이 되었다.
유진이 고민이 빠지자 최명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너무 번화가이고 사람도 많군. 어지간하면 상관없는 민간인이나 경찰까지 싸움에 말려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아. 경찰 수사 대상이 되는 거야 상관없는데, 뉴스에 나오는 것은 사양하고 싶군.”
유진은 프랑스 생드니 대성당 앞에서 벌였던 전투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당시 DGSE로 변장한 UE의 부대와 유진이 민간인과 목격자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총격을 퍼붓는 과정에서 민간인이 숱하게 죽어 나갔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 유진에게 별로 문제 될 부분은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와중에 누군가 죽는다면 그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행동을 한 상대의 문제라고 유진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다 눈 마주쳤다고 쳐 죽일 생각은 없고, 신고하거나 촬영하려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만 처리할 생각이었으니까.
문제는 유진과 UE 전투조직의 싸움에, 나중에 미국까지 끼어들어서 추가 전투가 벌어지면서, 결국 DGSE가 DGSE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과 기괴한 유진의 모습이 당시 살아남은 시민들의 스마트폰으로 찍혀서 증로로 남은 점이었다.
관련된 권력자들이 공식적인 언론은 어느 정도 다 차단한 모양이었지만, SNS나 인터넷 음모론 사이트에 당시의 사진이나 영상 일부가 아직도 믿거나 말거나로 포장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또 비슷한 모습으로 찍혀서 인터넷에 공개되면 꽤 귀찮아질 수 있기에 꺼려지는 것이었다.
최명선도 대충 알아들었다.
일반 시민이나 경찰을 죽일 수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그런 걸로 모습이 알려져서 유명해지는 것은 싫다는 의미는 그 의미를 말이다.
꽤 소름이 끼치는 그 생각에 대해, 최명선은 좋은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었다.
“저 정도 가게는 방음 처리 정도는 완벽하게 되어 있어요. 안에서 밴드가 라이브 연주도 할 정도이고, 그 외에도 여러 일들 벌어지는데, 그 소리가 밖에서 들리면 여러 사람 곤란하거든요. 소음기 낀 권총 소리 정도는 밖에서 절대로 안 들려요. 그리고 대로변에 있다고 해도 워낙 그렇고 그런 곳이라서 낮에 들여다볼 사람도 없어요.”
“호오?”
유진은 감탄했다. 꽤 적절하면서도 훌륭한 조언이었다. 그래서 추가로 물었다.
“일 시작되면 도망가는 놈은 문제 되지 않을까?”
“정문 출입문 외에 후문이 있기는 할 거예요. 그리고 따로 비밀 출입구도 있을 거예요. 거기로 도망가는 사람까지는 어떻게 못 하겠죠.”
“그건 곤란한데?”
“할 수 있다면 정문 쪽을 막고, 비밀 출입구를 찾아서 거기도 막은 다음에, 눈에 덜 띄는 후문 쪽으로 쳐들어가는 방법이 있어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가끔 피 볼일 있을 때 그런 식으로 하더군요.”
“응? 아무래도 사람 눈에 덜 띄는 뒷문을 막는 것이 더 쉽지 않나? 그리고 기왕에 눈에 안 띄게 쳐들어가려면 비밀 출입구 쪽이 더 눈에 안 띄는 것 아니야?”
“저런 가게는 단속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밖에서 함부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정말 튼튼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유사시 안에 있는 사람들도 나오기 어렵죠. 비밀 출입구는 말 그대로 비밀 출입구에요. 아주 가끔 비밀스럽게 쓰는 곳이라서 평상시에는 잘 숨겨두고 안에서 꼭꼭 잠가두고 막아둬요. 거기로 드나들면 대번에 표가 나요. 그런 면에서 후문도 단속 같은 것 대비해서 튼튼하게 만들어 두기는 했겠지만, 보통 종업원들 드나드는 곳이라서 정문보다는 좀 허술해요. 특히 지금처럼 영업시간이 아닐 때는 정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후문은 열려 있을 거예요.”
“그럼 비밀 출입구는 어디 있을까? 옆 건물 같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그런 가게도 있는데, 저 가게는 아닐 거예요. 저건 남의 건물에 세를 내고 쓰는 거예요. 이 비싼 동네에서 옆 건물까지 구멍 뚫어서 비밀 출입구 만들 수준은 아니에요. 끽해야 1층 어딘가로 통하는 비상계단 수준이거나 아예 없을 가능성도 커요.”
“만약 당신이라면 비밀 출입구 어디에 만들 거야?”
“나라면 저기 편의점 창고 쪽으로 만들었을 거예요. 편의점 손님 흉내 내서 빠져나가기도 편할 테니까. 하지만 저기는 아닐걸요.”
“왜?”
“옆에 은행 영업장 있잖아요. 그런 공사하다가 큰일나요.”
결국 비밀 출입구의 존재는 유진이 직접 찾아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런 결론과 별개로 유진은 최명선과의 문답에서 꽤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녀가 이야기해주는 이쪽 세계의 이야기가 유진이 상상하던 것과 달라 꽤 재미있었다.
또 그녀의 대답은 그냥 이런 가게에 대해서 상식으로 아는 수준이 아니었다. 단순히 가게를 운영해본 정도를 넘어서, 이런 일을 직접 당해봤거나 혹은 해보려고 계획해본 적이 있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주 조금 더 그녀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물론 그건 지금의 일은 아니었다.
설득력 있고, 가능성 큰 조언을 들은 유진은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갔다 오지. 기대하고 있으라고.”
“기대? 무슨 기대요?”
“내가 저기서 죽던지, 아니면 당신을 죽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과를 얻어서 오던지.”
최명선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그녀는 혹시 자기가 죽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는지 물으려 했다.
유진은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기다려 주지 않고 차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최명선은 유진의 등을 향해 잠시 손을 뻗다가는 움츠렸다.
‘진짜인가? 장난일까?’
유진이 툭 던진 삶의 희망에 최명선의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 ** **
유진은 최명선에 대해서 별로 고민이 없었다.
원래 죽일 생각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주다혜를 배신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배신은 기분 나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주다혜가 이번 일에서 보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볼 때, 그녀는 상대에게 그런 신뢰를 요구할 정도의 자격이 없었다. 포주와 창녀 사이에 신뢰라니, 사실 웃기지도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최명선을 죽이겠다고 생각하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유진에게 전혀 쓸모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굳이 마땅한 이유도 의미도 없는 상대가 자기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약간 마음이 변했다.
‘생각보다 쓸모 있네?’
홍월의 가게 정문을 보면서 유진은 최명선의 쓸모에 흥미를 느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별도의 출입구로 되어 있는 그곳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누구도 유진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또 사람들 눈 적당히 피해서 들어온 가게 입구는 한 뼘은 될 두께의 거대한 방화 철문으로 막혀 있었고, 한쪽에는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유진은 잘못 들어온 사람 연기를 대충 하기 위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척했다. 물론 나간 것은 아니고 카메라 사각지대로 움직여 문을 주시했다.
문 자체는 크고 거대하지만, 그 문을 잠그는 장치들이 무슨 은행 금고처럼 거창하고 교묘한 장치일 리는 없었다.
유진은 약간의 투시력과 발화 능력, 염동력을 섞어서 우선 디지털 도어락 장치를 고장 냈다. 그다음 문 자체에 달린 잠금장치를 잠그고, 그 잠금장치를 여닫는 손잡이 부분의 안쪽을 부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 문의 위쪽과 아래쪽에 달려 있어서, 문을 문지방과 고정하는 장치들도 잠근 다음 부숴버렸고, 동전 몇 개를 문 아래쪽 부분과 바닥 사이에 억지로 박아 넣어서, 밖으로 밀어서 여는 이 문이 바닥을 부술 정도의 힘이 아니면 열리지 않도록 쐐기도 박았다.
이 방화문은 이제 일반인에게는 문이 아니라 벽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쉽군.’
조처를 한 유진은 기분 좋게 입구를 나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건물 뒤쪽에는 주차장이 있었고, 건물 앞쪽에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출입문이 있었다. 그 출입문 안쪽으로 건물 위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계단은 한쪽에 1층과 연결된 별도의 문이 있었다. 그 구조로 보아 이 계단이 지하에 있는 가게의 뒷문으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문을 막았고, 뒷문을 확인했으니, 비밀 문을 찾을 차례였다.
비밀 문은 어이없어질 정도로 쉽게 찾았다.
건물 뒤쪽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었고, 그걸 관리하기 위해서인지 주차관리인이 머무는 것으로 보이는 작은 가건물이 있었는데, 유진은 약간의 투시력으로 그 가건물 지하에서 건물 안쪽으로 연결된 통로를 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비밀 문이야. 이리 나오면 다 걸리지 않나? 엄청 성의 없네?’
아무리 잘나가도 고작 술집에서 건물 손상 없이 만들 수 있는 비밀통로의 수준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굉장한 것이었지만, 지하로 4~5층씩 파고 들어가고, 산속을 깎아서 만든 비밀 연구소 등에서 살아온 유진에게는 마치 장난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찾은 것은 반가워할 일이었다.
유진은 가건물로 향했다.
안쪽에 사람이 있었다. 상대는 유진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당황해서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건물 관리인이나 주차관리인이라고 생각할수 없었다.
싸구려 정장을 입고, 목에는 문신이 보이는 커다란 덩치에 험악한 인상도 그렇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시간에 대충 풀어 해쳐진 옷차림에 담배를 입에 물고 폰이나 보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말없이 양손을 손을 뻗어서 상대의 목을 조르듯이 잡았다.
뒤에서 목을 조르는 리어 네이키트 초크와 달리 사람 목을 앞에서 조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팔뚝을 겹쳐서 V자로 꺾어서 조이는 것에 비하면 손의 악력은 비교도 안 되게 약하고, 등 뒤의 적을 상대하기 곤란한 것과 달리 정면의 적에게는 손이 닿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대로 갑자기 자기 목을 조르는 미친놈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 미친놈이 목을 조르는 대신, 힘을 주어 부러뜨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 우드득.
사내의 목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면서 머리가 스프링 머리 인형처럼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그가 휘두르려던 주먹과 팔도 힘없이 바닥을 향해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