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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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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20
유진이 호스티스들의 방으로 접근했을 때, 방은 조용했다.
쉽게 느껴지던 부산스러운 움직임도 없었고, 말소리도 한껏 작게 줄어 들어 있었다.
유진은 그녀들이 뭔가를 느꼈다는 것을 알았다.
‘민감하네? 별로 들킬만한 것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지?’
유진은 꽤 신기하게 여겼지만, 별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들의 방과 옆에 있는 웨이터들의 방은 사실 제대로 된 방음이 안 되는 공간이었다. ㄴ작게 속삭이는 그녀들에 비해, 소란스럽게 떠는 편인 웨이터들의 소리는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는 없어도 대충은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옆방에서 살려달라고 말하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가게 내의 다른 사람들 웨이터나 마담 등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숫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문 밖을 살펴보려 하다가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낮에 비밀스럽게 만나고 있는 VIP 손님 중에 포함된 깡패 두목과 그와 어울려서는 안 되는 손님들의 존재까지 고려하자, 뭔가 일이 벌어지다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들은 목소리를 한껏 죽이고 경찰에 신고할지 말지를 싸우고 있었다.
유진은 부숴진 손잡이의 잠금 부분을 염동력으로 돌려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옷걸이와 화장대, 소파 등이 벽을 따라 배치되는 방의 한 가운데에 노출 심한 가벼운 옷을 입은 이쁜 여자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유진은 옆방에서 했던 것처럼 나이프를 입가에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쉽게 생각했는데, 효과가 생각보다 나빴다.
“히이익!”
“꺄아악!”
하나는 숨을 들이켜며 괴상한 소리를 내는 정도로 끝냈지만, 하나는 짧게 비명을 질렀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그런 자신에게 다시 놀라 서둘러 입을 틀어막기는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유진은 그녀들은 볼 수 없는 마스크 안쪽의 눈살을 찌푸리고는 일단 문밖의 기척부터 살폈다. 다행히 비명이 들린 것 자체만으로 누가 당장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을 조심스럽게 대해줄 의지는 잃었다.
“지금부터 소란을 피우는 년은 죽는다.”
유진은 칼과 도끼를 그녀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줬다.
비명을 질렀던 여자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놀라서 딸꾹질을 시작한 여성은 참지 못하고 나오는 자신의 딸꾹질 소리에 놀라고 겁먹어 울기까지 시작했다.
유진은 우선 딸꾹질을 시작한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에 수건을 물리고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그리고 이어서 손발을 묶었다. 겁을 먹고 바들바들 떨면서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그녀는 순순히 묶였다. 그 와중에 서로에게 다행스럽게 딸꾹질도 멈추었다.
이어서 비명을 질렀던 여자도 같은 절차가 진행되었고, 유진은 마지막 여성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유진이 자기 입을 막으려 하기 직전에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열었다.
“당신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거 후회하게 될 거예요.”
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여자의 목소리에 유진에 대한 적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진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의외로 유진에 대한 공포가 느껴지지 않았다. 앞의 두 여자가 겁을 먹고 거의 이성을 잃은 것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유진의 관점에서 이 여자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유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뭘 후회하게 된다는 거지?”
그녀는 유진이 대답할지 몰랐던 것인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굳히고는 말을 받았다.
“지금 벌이고 있는 짓 말이에요.”
“내가 뭘 벌이고 있는데?”
“우리를 묶고 있죠. 바깥을 보니까 우리 말고 다른 사람도 제압한 것 같네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왜 불가능하지?”
“웨이터 애들 어떻게 제압한 건지 알 것 같고, 우리도 겁먹고 반항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 가게에 우리만 있는 줄 알아요? 여기 지금 전국구 조폭 보스랑 재벌가 사람이랑 경찰 간부까지 있어요! 그 사람들이 데려온 경호원들도 한둘이 아니고! 당신이 그 사람들 다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진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왜 네가 신경 쓰는데?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되던,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게 제압당해있고, 내가 다른 생각 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일 텐데? 그런데 그런 걸 굳이 나한테 지적해서 지껄인다고?”
“그, 그건.”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뭔가 크게 생각하고 결심해서 유진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평소 그렇게 잘난 척 도도하게 굴던 자신들이 갑자기 나타난 괴한이 내미는 칼에 벌벌 떨며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제압당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한마디 한 것뿐이었다. 자기는 그냥 겁쟁이가 아니라고 자기 스스로 변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유진의 모습이 무척 무서웠지만, 그의 모습에서 자신들을 해치지 않으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기에 내본 무모함이기도 했다.
이쯤에서 유진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를 대충 이해했다.
위험한 상황에도 자기가 겁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오기를 부리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재미있는 것은 유진이 상대했던 사람 중에서 유진의 살의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오기를 부린 사람은 정말 특별한 몇 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약간 시간을 두면 닥터 리샤르, 가까운 시기로는 정동후 정도가 있었다.
이 아가씨가 보이는 태도는 그런 면에서 꽤 재미있었고, 유진의 흥미를 끌었다.
“당신 이름이 뭐지?”
여자가 당황했다. 많이 당황했다.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은 그녀를 노출한다는 뜻이었다. 하다못해 손님들에게까지 가명을 알려주는 판에, 처음 만난 남자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명이라도 말해주려고 하기 전에 유진이 먼저 말했다.
“여기 있는 저 가방 중의 하나는 당신 거겠지? 거기에는 분명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이 있을 거고?”
그 의미는 명백했다. 여자는 괜히 쓸데없는 짓을 벌였다고 살짝 후회하면서 본명을 말했다.
“손수빈이에요.”
유진은 그걸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최명선이나 고주희를 통해서 추가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이 가게 여자고 외모도 튀는 편이니 본명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래, 수빈씨. 혹시 전에 운동했나? 몸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단련되어 있네?”
“단거리 육상 선수였어요.”
나름대로 실력 있는 선수였다고 자부하는 과거였다. 그래봐야 운동도 공부도 하다못해 공무원 공채도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이 세계에 들어온 처지에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더 마음에 드는군.”
유진의 말이 그녀를 몸서리치게 했다.
“자, 수빈씨. 이제 슬슬 당신도 조금 후회하고 있을 거야. 내가 왜 쓸데없이 입을 놀렸나 하고. 어쩌면 당신 눈에 저 둘이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모습이 병신 같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내 생각에 저 둘은 현명했어. 저 둘에 비해 당신은 정말 바보야. 지나가는 재앙을 굳이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며 이름을 불러보다니.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고, 만용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은 무시한 것은 분명하군. 하지만 맘에 들어. 당신에게는 아마 더 안 좋은 일이겠지만, 당신은 내 호기심을 끌었어.”
손수빈은 안색이 아주 나빠졌다.
“자 그러니까 이쯤에서 내가 당신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얼굴이나 가슴에 흉터 같은 걸 만드는 처벌은 안 할 이유를 만들어보자고.”
유진의 끔찍한 말에 손수빈이 벌벌 떨었다.
“뭘 원하죠?”
그녀가 사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몸이었다. 그녀가 아는 한 남자 대다수는 그녀의 몸을 원했다. 상황이 좀 애매하지만, 이 남자가 미친놈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진도 그녀의 몸에 살짝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그보다 그녀와의 대화 중에 더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깡패, 재벌, 경찰 그리고 경호원. 당신이 말한 그 사람들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이야기해봐.”
유진의 질문에 손수빈은 안도와 함께 약간의 허탈함과 아주 작은 실망감도 느꼈다.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남자가 자기 몸을 우선적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그녀에게 미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하지만 스스로 자각할 정도는 아니었고, 유진이 슬슬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VIP 손님들과 그들이 데려온 경호원들 그리고 지금 가게 내에 있을 종원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 설명 중에는 유진에게 참 재미있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그녀는 깡패도 재벌도 경찰도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녀는 이건 자기 목도 걸을 수 있다고 아주 확신했다. 자신들 정도 되는 여자들은 남자가 대화하는 꼴을 보면서 그런 걸 모를 수가 없다고.
거기에 유진은 자기가 조리실에서 제압한 나이 든 여자가 공식적으로는 이 가게의 대표인 마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가게가 이런 업소 중에서도 유별나게 방음에 특별하게 신경 써서 방을 만든 것을 특징으로 내세운 가게라는 점이었다.
어지간한 소리는 방 밖으로, 방 안으로 그리고 다른 방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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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아가씨야. 너무 좁게만 살았나? 잠깐 밖에 나왔더니 하루 만에 흥미로운 사람을 두 명이나 만나네? 동네에서는 한 달 내내 서너 명 정도밖에 없었는데.”
유진은 부엌에서 챙긴 칼들로 저글링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최명선도 그렇고 손수빈도 그렇고 유진에게 꽤 흥미와 자극을 주었다.
미모는 주다혜가 훨씬 압도적이었지만, 이상하게 흥미가 가지 않는 그녀에 비해 젊고 아름다운 손수빈은 물론, 이미 늙어 버린 최명선도 훨씬 매력적으로 보였다. 사람 자체로 매력적이다는 의미 외에 성적으로도 그렇다는 의미였다.
특히 최명선이 재미있었다. 유진은 마담 보른이나 마담 블루아 등의 경우가 있어서 자기가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혐오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명선은 나이도 많고, 외모가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뭔가 자극되는 점이 있었다. 건방진 손수빈도 그랬다.
물론 당장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런 느낌이 드는 자기 스스로가 재미있을 뿐.
그리고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눈앞에 있으니, 그건 나중에 고민할 일이었다.
부엌칼들을 저글링하면서 당당하게 걷는 유진의 모습은 곧 일단의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야 너 뭐야?”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유진의 모습에 약간은 중구난방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모두 합쳐 7명.
손수빈에게 설명 들은 무리 중 재벌 명지훈이 데려온 경호원들로, 그들은 가게 입구 쪽에 있는 바 쪽에 모여 있었다. 그들에 가까이 가는 중간에 목표인 신상사와 명지훈 그리고 모 고위 경찰이 있는 방도 있었고, 신상사가 데려온 깡패들이 모여 있는 방도 있었지만, 이들을 목표로 삼은 것은 이들이 개방된 복도에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유진은 그들의 말에 따로 대답할 생각하지 않고 저글링하며 돌리고 있던 부엌칼들을 순서대로 그들을 향해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