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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23
신상사의 어깨 양쪽에서 피와 살점이 튀어 오르고, 구멍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아아아아악!”
신상사는 다시 한번 목이 찢어지라고 비명을 질렀다.
몸도 마구 바둥거렸다. 하지만 몸통은 유진이 발로 밟고 있었고, 무릎과 어깨는 완전히 부서져 버렸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신상사는 마치 짓밟힌 벌레처럼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신상사는 강하고 단단한 사내였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맘먹은 독립투사도 아닌데, 고작 깡패 따위가 무릎과 어깨가 총상으로 박살 난 고통을 견뎌내면서까지 독기와 의지를 지킬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어어. 어어. 어어.”
신상사는 이제 완전히 독기가 빠져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유진은 그가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름.”
굳이 꼭 이름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심문에 대한 대응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질문은 효과적이었다. 신상사가 제때 대답하지 않았고, 그걸로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항이라기보다는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그를 도와주었다.
좀 더 확실하게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가장 먼저 45구경 탄으로 크게 부숴버린 오른쪽 무릎을 살포시 지려 밟아 주었다.
“으아아아아악!”
다시 한번 듣기 괴로울 정도로 섬뜩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유진은 충분히 자극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에 무릎에서 발을 떼고 다시 물었다.
“이름.”
이번에는 빠르게 대답이 터져 나왔다.
“유준희! 유준희다!”
어쩐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그 이름에 유진은 신상사가 본명 두고 굳이 신상사란 별명에 집착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여전히 반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름 감탄하기도 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대답의 내용이나 태도가 아니라 그가 제대로 대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오늘 부하들 시켜서 납치를 시도한 이유는?”
“무, 무슨 이야기야?”
“최명선이라는 이름 모르나? 그 여자 손가락 몇 개 잘라주니까 그 여자 따라와서 사람 납치하려다가 죽은 둘이 네 부하라고 자백하던데? 너 아냐? 내가 최명선 남은 손가락 더 자르러 돌아가야 해?”
사실 최명선은 그냥 배 한 대 맞고 기절했다 깨어나서는 뭐든지 다 술술 불었지만, 유진은 좀 과장해서 말했다. 신상사만 아니라 지켜보고 있는 둘도 좀 겁을 주려는 의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상사는 대충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그래서 더 억울한 마음에 외쳤다.
“몰라, 씨발! 난 그냥 김총경이 부탁해서 우리 애들도 아니고 심부름하는 애들 좀 붙여준 게 전부란 말이다! 선금 떼먹고 도망간 아가씨 잡아 오는 일이라고 들었다고!”
“김총경?”
유진이 생소한 그 호칭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신상사가 고개를 돌려 지금 구경만 하는 두 사람을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저기 저 인간 말이다! 저 빌어먹을 짭새 새끼!”
원래 함부로 이런 말을 해도 되는 사이가 아니지만, 지금 신상사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신상사는 이 꼴이 된 것이 고작 심부름꾼 좀 빌려준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총상이 아니라 혈압으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건 그냥 기분만 그런 거였다. 지금 그는 총상 부위에서 지속되고 있는 출혈 때문에 위험할 정도로 저혈압인 상태였고, 그 때문에 더 제정신이 아니긴 했다.
유진은 그제야 총경이 경찰 직위라는 것을 대충 이해했다. 시선이 구경만 하는 둘을 향했다.
그중 누가 사업가인 명지훈이고, 누가 경찰인 김 총경인지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이와 옷차림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표가 났다.
유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김총경은 긴장했다.
상황도 약간 이해하고 있었다.
‘씨발, 외국에서 들어온 킬러다. 일 시작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런 반응이 나와? 누가 발작 한 거야 이거?’
총질을 마구잡이로 한다는 점과 한국 경찰의 직위에 어둡다는 점에서 한국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국말 하는 거야 필리핀이나 베트남, 중국 조선족, 러시아 고려인 계열의 킬러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런 킬러를 동원한 것이 누구일지도 대략적으로는 감이 오고 있었다.
주다혜의 과거를 건드리는 일에 대한 위험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그가 주다혜와 강준화에 얽힌 일에 관한 정보를 아는 것 자체가 이들과 인연이 있는 자기 윗선 중 하나와 모 검찰 고위직 등에 관한 첩보 중에서 찾아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찰 전체에서 고작 83명밖에 안 되는 경무관이나 검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차장검사급의 인물이 얽히는 비리이고, 그들 수준에서 누가 얼마나 더 얽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위험한 정보였다. 사실 최 총경도 본인이 나름 거물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스스로도 함부로 손대기 위험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정도였다.
단지 그걸 공론화 시킨 것도 아닌데, 고작 그중 하나에 그것도 현역으로 매춘 일을 하는 년에게 손을 조금 댔다고 갑자기 킬러가 튀어나오는 지금 상황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선이 자신을 향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김호석은 두려움을 달래며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 이봐. 그 친구 말이 맞아. 납치라니 오해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최 마담 경호하려고 애들 딸려 보낸 것은 내가 맞네. 그러니까 그 친구는 내버려 두고 나랑 이야기하지. 들었지, 내가 총경이라는 거?”
그는 자신이 총경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했다. 그만큼 자신이 높은 사람이고 건드리면 위험하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다 보니 김호석은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귀동냥으로 이런 프로 킬러들이 가장 금기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권력자와 척지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의 원한을 사는 것이라는 것도 들은 적이 있었다. 경찰이나 검찰 같은 조직이라면 어디나 있는 미친놈들이 어떻게 관할권이나 국경 따위 무시하고 동료의 원수를 갚았는가에 대한 전설이 전세계의 수많은 수사조직에 매우 많이 전해지고 있으므로, 무척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김호석 자신은 경찰의 꽃이라고 부르는 총경이었다.
그것도 50대 이상이 전체의 70%가 넘는 중에 총경 중 얼마 안 되는 40대, 그중에서 가장 젊은 편에 들어간다. 맡은 업무도 경찰 권력의 가장 핵심 중의 하나인 정보관리였다.
전체 경찰 중에서도 실질 서열 100위안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핵심 고위직이었다.
김호석 생각에 상대를 고용한 권력자가 누굴 지는 몰라도, 절대로 자기 죽음을 무마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프로라면 그걸 모를 리가 없으니, 절대로 자기를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권력자의 힘이 자기나 자기 배후보다 못할 수도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진짜 권력자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직접 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권위로 찍어 누르는 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상황을 주도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그 친구 죽겠어. 내 앞에서 사람 죽으면 나도 나지만 자네가 아주 곤란해질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 친구 상처 좀 어떻게 해보지 않겠나?”
이 위험한 상황에 총을 들고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김호석 총경은 상황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고, 상대도 그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했다.
그건 권력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에서 일선 업무를 모른 채 고위직만 맡아 살아오면서, 온 세상이 다 자기 직위에 조심하는 꼴만 겪다 보니 현실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었다.
문제는 그의 세계에서는 그런 사고방식이 통할지 모르지만, 유진에게는 그 꼴을 계속 보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탕! 탕!
유진의 손에 들린 권총이 다시 두 번 불을 뿜었다.
한방은 신상사에게 그리고 한방은 김 총경에게였다.
“으아아악! 내 무릎! 내 무릎!!!”
비명은 김 총경의 입에서만 터져 나왔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신상사는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났기 때문에, 비명 따위 지를 필요가 없었다.
유진이 신상사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신상사가 이 일의 눈에 띄는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명지훈과 별다른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끼어들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명지훈 외의 다른 배후가 있다는 의미였고, 그 배후를 확인하기 위해서 신상사를 추궁한 것인데, 어이없게도 그 대상이 바로 옆에서 나와 버렸다. 그러니 신상사는 유진에게 더 이상 살려둘 가치가 없었다.
별로 크게 관계한 일도 없는 신상사 본인은 아주 억울하겠지만, 유진 입장에서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한두 명 죽인 것이 아니었다. 신상사라고 굳이 살려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이일에 딱히 책임이 없더라도 죽여서 죄책감이 느껴질 인간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죽였다.
고문받다가 죽어버린 신상사와 조심스럽게 나섰다가 무릎이 박살 나서 바닥을 뒹구는 김 총경의 모습을 보며 명지훈은 두려움에 떨었다.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놈이다. 미친놈이야. 저건 미친놈이야!’
명지훈은 대가리에 구멍이 뚫린 신상사보다 김 총경이 당한 총격에 더 충격을 받았다.
재벌 방계로 살아온 명지훈의 사고방식도 김 총경과 상당히 비슷했다.
신상사 같은 깡패 따위야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하다 보면 얼마든지 뒈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버러지 같은 깡패 따위 원래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는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가 가진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 총경은 달랐다. 그는 국가 권력의 핵심 중 하나인 경찰의 핵심 고위 간부였다. 권력자라는 뜻이었고, 신상사 같은 버러지와 달리 누구라도 같은 권력자 아니라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마치 자신처럼.
명지훈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그런 김 총경에게 거침없이 총을 쏴대는 놈이라면 미친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 미친 짓을 자기에게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대가 앞서 신상사의 경우처럼 무릎을 박살 낸 김 총경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말을 걸었을 때 기겁하고 말았다.
“저게 김 총경이니, 네가 명지훈이겠군. 반가워. 너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오늘 길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지.”
“나, 나를 왜?”
“네가 주다혜에게 욕심을 부린 것이 이 일의 시작이잖아. 그걸 모르겠다고?”
유진의 추궁에 명지훈이 펄쩍 뛰었다.
“씨발, 고작 창녀 년 하나 건드렸다고 이 난리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니가 그 창녀 년 애인이라도 우리가 아니라 몸 팔아먹던 그 창녀 년을 탓해야지!”
명지훈은 진짜 억울하고 원통하다는 듯이 외쳤다. 누가 보면 아무 죄 없이 봉변당한 사람처럼 보일 꼬락서니였다.
유진은 명지훈 같은 인간을 너무 많이 봐온 탓에 그런 그의 반응에 새삼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냥 추궁을 계속할 뿐이었다.
“주다혜 같은 여자야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런 지옥에서 해방된 후에도 다시 몸을 팔 생각을 하다니. 그 머저리 같은 년이 정말 인간인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야. 아마 당신이 주다혜에서 끝냈다면 나를 만날 일 없었겠지.”
“어? 어?”
“명백하게 차수연을 노렸더군. 그녀는 거기서 완전히 벗어난 여자인데 말이야. 그리고 그녀에게서도 멈추지 않았지. 묻지 않을 수 없군. 도대체 뭘 믿고 차민영에게까지 손을 뻗칠 생각을 한 거지? 그녀가 성화의 보호를 받는 다는 것을 몰랐나?”
사실 명지훈이 차민영을 노렸다는 것은 유진의 추측이었다. 증거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추궁하는 유진의 말에 명지훈은 단번에 반박하지 못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차민영을 노리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차민영을 성화 그룹이 보호하고 있다는 것은 명지훈도 알지 못했다.
오히여 이 부분은 김 총경이 알고 있었다. 애초에 김 총경도 노리는 바가 있어서 주다혜를 손에 넣으려는 명지훈에게 협조하고 있었지만, 그는 성화가 보호하는 차민영은 고사하고, 차수연도 언감생심이었다. 차민영 정도는 아니어도 차수연도 나름 핵심 인사에다가, 그녀 본인 자체가 만만치 않은 금수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명사장 이게 무슨 소리야! 당신 감히 무슨 짓을 한 거야!”
최 총경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명지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명지훈은 그런 최 총경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 와중에 유진에게 협박도 시도했다.
“이봐 혹시 너 성화에서 나온 거냐? 그럼 내가 대정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나를 건드리면 성화랑 대정 사이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최 총경이 그런 그를 비웃었다.
“명 사장 정도로 무슨.”
유진은 그걸로 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질 심문으로 편하게 진행할 수 있겠는걸?’
이건 매우 좋은 일이었다.
유진은 의외로 고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고문을 주는 행위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을 통해서 얻은 정보의 품질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태도가 불량한 명지훈을 고문은 안 해도 가볍게 주의 정도는 주기로 했다.
탕!
유진은 명지훈의 오른쪽 무릎에도 총알 한 방을 먹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