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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23화 (12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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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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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o It Yourself – 24

사업가와 경찰이 똑같이 무릎에 총알 한 방씩이 박혀서 같은 꼴이 되었지만, 그 둘은 그걸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둘은 이 일의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그래서 상대방과 같은 꼴이 된 것에 억울해했다.

둘은 시간이 좀 지나서 고통에 약간 익숙해지자, 협상을 시도했다.

“이봐, 외국인이라서 잘 모르나 본데, 난 대한민국 경찰에서도 손꼽히는 고위직이다. 인터폴과도 연계 업무가 있는 고위직이라고! 나 죽이고 우리나라 뜨면 그만이 아니야! 외국으로 가도 절대 추적을 피하지 못할 거다!”

“이봐, 당신 프로인 거지? 이거 얼마 받고 하는 거야? 1억? 2억? 3억? 내가 20억 아니 30억 주지. 나중에 주겠다는 거 아냐! 추적되는 현금으로 주겠다는 헛소리도 아냐! 코인! 코인으로 지금 줄 수 있어! 그거 추적 안 되는 거 알지?”

유진이 듣기에 김호석 총경의 어설픈 협박에 비해, 명지훈의 매수 시도는 약간 그럴싸했다.

그래서 한 번 물어보았다.

“당신 생각에는 내가 그 말에 넘어갈 것 같아?”

명지훈은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지 못했다.

돈을 더 주겠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장면이었다. 이런 경우 프로가 돈 더 받자고 배신하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납득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연출되는 법이었다.

명지훈 본인만 해도 지금 당장 최소 3~4가지 이유 정도는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죽을 일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씨발! 그럼 어쩌라고! 너도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 우리를 죽이지 않고 있는 거잖아! 뭘 원하는데? 뭘 어떻게 하면 살려줄 건데!”

그래도 재벌이지만 고작 방계라서, 나름 자기들 세계에서는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온 명지훈은 자신들만의 리그에서만 살아온 김호석 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감각이 있었다.

명지훈은 협박도 협상도 안 되면 일단 협조라도 해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유진으로서는 꽤 상대하기 편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굳이 더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물었다.

“이미 물어봤잖아.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주다혜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차수연과 차민영까지 노린 거냐고? 대정 그룹 회장이 시키기라도 하던가? 성화랑 한번 붙어 보려고?”

명지훈이 대정 그룹 방계라고는 하지만, 유진은 이 일에 실제로 대정 그룹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이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성화의 누가 관여한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이 꽤 의외로 튀었다.

“아, 아니! 회장님은 이런 거 몰라! 그분이 이런 일에 나설 리가 있나! 그냥 작은 형님이.”

대답하던 명지훈이 황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급하게 대답하다가 해서는 안 될 대답을 실수로 언급한 것이 틀림없었다.

생각지 못한 인간이 또 튀어나온 것에 유진이 살짝 짜증을 내며 물었다.

“그 작은 형님이 누군데?”

명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숨이 위험한 지금 상황에서도 자기 입에서 나온 그 인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태도에서 느껴졌다.

듣고 있던 김호석이 끼어들었다.

“명 사장이 말하는 작은 형님이라면 대정 그룹 명 회장의 삼남인 명세훈 대정 건설 부사장이야. 이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명지훈 사장과 달라. 난 차수연씨나 차민영씨는 몰라. 난 그냥 주다혜에게 알아볼게 있었을 뿐이야. 자네 배후가 날 노릴 이유가 없어!”

그 말에 명지훈이 발끈했다.

“오해다! 나랑 형님은 그냥 예전에 인연이 있었던 두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시 예전과 같은 일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정도뿐이었어! 저 인간처럼 그녀들을 이용해서 과거를 캐낸다거나, 그때의 비밀 자료 같은 걸 찾으려는 것이 아니었어! 어차피 그런 자료가 있다면 우리 것도 포함된다고. 그냥 소문만 듣고 파고든 저 인간과는 달라! 자네 배후가 우려할 만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저 인간이라고!”

유진이 굳이 갈라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명지훈과 김호석이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미루고 비난하면서 상대방에게 불리한 정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진은 따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그들의 말싸움을 듣는 것만으로 그들의 상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 ** **

김호석 총경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 일에 접근했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경찰에 특채되어 승승장구했다. 경찰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경찰 내 최대 파벌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련해서 검찰과의 싸움에서 칼로 쓰기 위해 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의 싸움이 검찰의 압승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충분한 활약을 하지 못한 김호석은 입지가 많이 불안해진 상태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싸우는 동안 상대 쪽인 검찰만이 아니라 그걸 이유로 승승장구하는 과정에서 경찰 내부에도 적을 많이 만든 이유였다.

이러한 불안한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자기 인사권을 가진 상관과 자기 약점을 케비넷 가득 쌓아두고 있을 검찰을 견제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우연히 과거 고위직 사이에서 유명한 섹스 모임이었던 강준화의 하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멤버 중 하나인 주다혜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명지훈에게 작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 뒤를 봐주던 신상사를 동원해서 이 일에 끼어든 것이었다.

강준화가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당시의 자료만 확보할 수 있다면, 아니 그것은 힘들더라도 그중에서 자기 상관하고 모 검사장이 그녀를 두고 다퉜다는 소문이 있는 주다혜의 정보만 제대로 확보할 수 있어도 충분히 보험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명지훈은 그런 김호석 총경에 비해 훨씬 경제적인 이유로 이 일에 접근했다.

최근 후계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던 대정 그룹의 회장 아들들의 싸움에 결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남이 회장의 지지를 바탕으로 결국 후계자 자리를 굳혔고, 실적을 바탕으로 형의 자리를 노리던 차남은 사실상 숙청되었다. 이 과정에서 3남인 명세훈도 덤으로 그룹 핵심인 기계나 금속, 수출입 관련 회사에서 밀려나서 건설의 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방계라서 그룹 후계 싸움에는 얼씬도 안 한 명지훈도 장남이 전후 공신들에게 보상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특권을 상당히 빼앗기고 밀려났다. 밀려난 명지훈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리고 비슷한 신세가 되어버린 명세훈과 의기투합했다.

명세훈은 비록 그룹 핵심에서 밀려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건설은 자기 손에 떨어졌으니, 건설을 키워볼 생각을 했다. 그룹에서 비자금 창구로 쓰기 위해 만들어둔 명목상의 회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기업 계열사인 덕에 능력 있는 인재도 충분했고, 기술도 있었다.

문제는 일할 능력은 있어도, 일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아파트 브랜드 같은 것 만들어서 분양할 정도는 아니니, 다른 대기업 건설사나 국가나 지방정부 등에서 발주하는 공사를 수주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로비 능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세훈이 우연히 주다혜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명지훈이 새로 스폰하기 시작한 모델을 사촌형에게 자랑하는 과정에서였다. 명세훈은 주다혜가 자기가 옛날에 다른 권력자들과 어울려 즐기던 유명한 강준화의 노예 중 하나라는 것을 쉽게 알아보았다. 유진의 취향과 별개로 주다혜는 확실히 남자들 기억에 남는 개성 있고 뛰어난 미녀였다.

강준화의 아내와 여자친구들 그리고 그 외 성노예 여자들을 이용한 사교 섹스 모임과 거기서 파생된 인맥 그리고 로비력은 아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전설로 남은 이야기였다.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끼리는, 거기 끼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여길 정도였다.

로비력이 절실한 명세훈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주다혜를 보고는 과거의 강준화와 같은 모임을 새로 만들 생각을 했다. 이미 손에 들어온 주다혜가 우선 적으로 목표가 되었다. 차수연과 차민영을 노린 것은 명세훈이 그녀들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었다.

강준화와 친분이 있던 그는 여자들을 실제로 관리하는 것은 강준화가 아니라 강준화의 아내인 차민영과 세컨드이자 강준화의 앞잡이로 여자들을 포획하는 일을 맡은 차수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돈으로 여자를 고용해서는 그런 조직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명세훈은 차민영과 차수연이 가지고 있을, 그 예전 강준화가 여자들을 늘리고 관리할 수 있었던 그 시스템이 필요했다.

명세훈이 직접 나설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명지훈이 이 일을 맡았다.

조직이 만들어지면 실질적인 관리도 명지훈이 맡을 예정이었다.

그걸 위해 명세훈이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인력을 동원해서 명지훈에게 붙였다. 유진이 오늘 그 실력에 나름 감탄하면서 도륙해버린, 명지훈의 수준에서 부릴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그 경호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로 지금 명세훈이 붙인 경호원들은 다 도륙당했고, 명지훈은 파멸을 눈앞에 둔 상황이 되었다.

** ** **

그들의 대화에서 대략 핵심적인 내용을 다 파악한 유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둘 다 특별히 누군가의 조정을 받아서 이 일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필요로 본인들이 결정해서 이 일에 뛰어들었다. 명지훈은 그 위에 명세훈이라는 인간을 얹고 있지만, 그라고 해도 뭐 특별히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걸 확인해 보았다.

우선 김호석부터였다.

“거참 편리한 이야기군. 상사와 경쟁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둘을 한꺼번에 노릴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에 이어 그걸 위해 필요한 상대가 누군지도 확인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상대를 다른 사람이 확보하려는 것과 거기에 끼어들 기회가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고? 고작 며칠 만에 한꺼번에 연속으로? 그렇게 편리한 이야기를 나보고 믿으라고? 당신이라면 믿을 수 있겠나?”

김호석은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굉장한 우연의 일치이지만 사실이라고. 어쩌다 운이 좋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니까! 없을 만한 일도 아니야!”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필 지금 시기만 아니었다면.

“그래서 누군데?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들만 그렇게 쏙쏙 만들어서 딱 알맞게 당신에게 알려준 사람이 누군데? 무슨 독심술사야? 아니면 예언자?”

“어?”

김호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그냥 일상적으로 올라오는 정보 보고서에 확인한 내용인데.”

그의 임무는 각지의 정보 관련 경찰들이 범죄에 대한 정황이나 소문 등을 정리해서 올린 자료들을 취합해서 눈앞의 것밖에 볼 수 없는 일선에서는 알 수 없는 큰 규모의 정보를 만들어내고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들은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들에 지목받고 나자 김호석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보 관련 보고들은 굉장히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그중 95% 정도는 쓸모없는 쓰레기 정보였다. 그중 유의미한 5% 정도도 그 자체만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뽑아내고 엮어내서 의미 있고 유용한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와 그의 부서의 일이고, 그건 보통 꽤 오랜 시간의 정보 수집과 분석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정보들은 그가 너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알맞은 내용이 알맞은 시기에 알맞게 모여서 보고 되었다. 어지간히 하찮은 범죄 정보도 이렇게 알맞게 확인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정보가 그에게 정말 절실한 정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유진은 김호석의 표정에서 그도 이 일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김호석도 누가 자기를 이렇게 조정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도.

유진은 혀를 찼다.

명지훈은 아예 추궁해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얼핏 들으면 명지훈과 그의 6촌 형이라는 명세훈의 생각이 굉장히 그럴 듯 하게 들리지만,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도 명색이 재벌 후계로 거론되던 인물이 로비가 필요 하자 성노예 조직을 만들 생각부터 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이에 관해서는 차민영이 죽은 자기 옛 남편 강준화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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