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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26화 (126/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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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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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여자들의 상관관계 - 1

경찰이 술집 홍월에서 벌어진 엽기적 대량 살인에 대해서 알게 된것은, 유진이 벌거벗은 최명선을 옆에 세워두고 한참 시체 구덩이를 파고 있던 시간이었다.

유진이 홍월을 떠나고도 1시간이 훌쩍 넘은 다음이었다.

사실 유진은 자기가 떠나면 살려둔 사람들이 포박을 풀고 곧 경찰을 부르리라 생각했다. 떠나기 전에 흥미를 끈 에이스 아가씨 손수빈에게 자기가 떠난다는 것을 알려주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묶은 걸 풀고 밖으로 나온 그녀들이 복도에 널브러진 시체들, 칼날에 멱이 따여 목이 덜렁거리거나 도끼에 대가리를 찍혀 뇌수가 보이거나 배를 난도질당해서 피가 철철 흐르는 시체 등을 발견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손수빈을 제외한 두 아가씨 중 하나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녀는 차라리 좀 나았다. 다른 하나는 황급히 뒷문을 열고 도망가려다가 열리지 않는 뒷문에 패닉에 빠지고 그러다가 시체가 흘린 피에 미끄러져 넘어져 피투성이가 되는 꼴을 당하고는 자기 몸에 묻은 피에 비명을 지르는 난장판을 벌인 후에야 기절했다.

손수빈은 그녀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절한 그녀들을 시체가 널브러진 복도에 버려두고 대기실로 도망쳐 모포를 하나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경찰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다.

슬슬 묶인 것을 풀 생각을 하던 웨이터들은 문밖에서 들려온 그 비명들에 놀라서 꼼짝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유진이 떠나고도 거의 한 시간 동안 밖에서는 누구도 그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에 대해서 몰랐다.

상황이 변한 것은 오후 영업 준비를 위해 출근한 매니저급 웨이터가 가게 뒷문 앞에서 유진이 목을 부러뜨려 피를 보지 않고 죽인 깡패의 시체를 발견한 다음부터였다.

나름 이 세계에서 쌓은 경험이 있는 이 중년의 남자 매니저도 시체를 발견하자마자 112에 신고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선 가게를 들어가려 시도해보고,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뒷문은 유진이 한번 부순 문을 억지로 열고 나와서 다시 닫는 과정에서 완전히 망가져 버린 상태였다.

그다음으로 내부에 있을 관련자들에게 전화나 문자를 시도했다. 마담과 아가씨들 그리고 부하 웨이터 중에 오늘 출근하기로 한 멤버 등에게 모두 골고루 연락했는데, 하나도 대답이 없었다.

그쯤까지 돼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도 112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생활안전과 간부에게 전화했다. 이 와중에도 가게가 시끄러워지는 일은 최소한으로 피하려는 시도였다.

관련된 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이 생활안전과의 간부는 유흥업소 단속 정보 같은 것에 관련해서 뒷돈을 조금 받아먹은 적은 있어도, 아예 바닥까지 썩은 것도 병신같이 무능한 인간도 아니었다.

그는 일단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들은 순간 이 일이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곧바로 이웃한 형사과에 연락해서 제대로 강력반의 출동을 요청했다. 죽은 인간이 깡패라는 것을 알리고, 신고자가 유흥업소 사람이라는 것과 그의 연락처도 전달했다.

업무를 인계받은 강력반 형사는 일단 살인이라는 이야기에 동료와 함께 긴급출동을 하며 신고자와 전화를 연결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람이 죽은 곳이 유명한 텐프로 가게의 뒷문 바로 앞이며, 가게 안에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문도 열리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듣게 되었다.

누가봐도 일이 심상치 않았다.

원칙적으로는 시체를 확인할 119요원과 검시관 등에도 연락이 가야 하지만, 형사들은 일단 그런 원칙은 살짝 미루고 조용히 소란스럽지 않게 현장으로 출동했다.

형사들은 우선 신고자와 접촉하고 시체를 확인했다.

강력반인 그들은 관내의 유력한 폭력조직 중 하나인 신상사파에 대해서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래서 시체가 신상사파에서 제대로 조직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깡패나 건달 양아치는 수도 없이 많지만, 경찰이 제대로 조직으로 분류하고 거기에 속한 정식 조직원으로 분류해서 관리하는 인물은 생각보다 적다.

그런 인간 중 하나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목뼈가 부러져 죽은 일은 절대로 흔하게 있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나름 이름있는 텐프로 가게 문 앞이라면 더욱 더.

형사들은 단속 등에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그리고 가끔은 몰래 사람에게 휘두르는 용도로 가지고 다니는 빠루를 이용해서 닫힌 뒷문을 따고 들어갔다.

명백한 비상상황이고, 관련자의 동의를 받은 상황이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확 풍겨오는 익숙한 피 냄새와 함께 죽은 깡패들과 그 근처에 쓰러져 있는 아가씨들을 발견했다. 처음 보고 놀란 것과 달리 아가씨들은 살아 있었지만, 그건 이 상황에 큰 영향력이 없었다.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 형사 몇 명과 강력반 차원에서 감당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 건물 바로 위에서 영업 중인 은행이나 병원 등을 고려해서 가능한 한 조용하게 처리하려는 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포서 형사과와 경비과 그리고 지구대에서 동원될 수 있는 인물들이 총동원되었고, 시체 처리를 위해 119과 검시관, 국과수에까지 연락이 갔다.

내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문 쪽에서 학살당한 경호원들과 룸 안에서 학살당한 조직원들이 발견되는 시점에서는 마포 경찰서장에게 직접 보고가 들어가고, 서장이 현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은 인간들 중 가장 핵심 인사들인 신상사와 명지훈 그리고 김호석의 시체와 총이 발견되고, 그들의 신원이 확인되는 순간 이 일은 이제 그 마포 경찰서장 수준에서 감당할 만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서울청도 아니고 경찰청 본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청장이 직접 현장에 출동한 모든 인원에게 함구령을 내렸고, 국과수에서도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동원되었다. 군대로 치면 투스타 사단장 급에 해당하는 치안감인 본청 형사국장이 직접 사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국가 전체의 의전 서열 24위이자, 실제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행정부의 실세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까지 이 일이 보고되는 데까지 신고 후 고작 2시간도 걸리지 않았고, 그 후 추가로 1시간도 되지 않아 대통령까지 이 일을 보고 받았다.

청와대를 포함해서 정부 전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대형 사건은 건국 초의 전쟁 시기나 군부 쿠데타가 벌어지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통행금지가 사라진 시절 이후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이 하나씩 추가로 보고되면서, 일은 점점 더 커져갔다.

우선 심각한 부분은 우선 이 일이 벌어진 장소가 이런저런 술집으로 가득한 어딘가의 유흥가 한 가운데가 아니라, 주택가와 상가가 섞인 주거 지역의 한곳이자 일반 시민들이 활발하게 드나드는 은행과 병원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지하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었다.

텐프로 같은 최고급 룸살롱 등은 유동 손님이 아니라 고정 손님을 받기 때문에, 굳이 유흥가가 아닌 곳에 자리 잡는 경우가 흔하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이 일을 어딘가 자신들이 모르는 특별한 곳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곳에서 벌어진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인식하기라도 하면, 정권이 받을 타격이 얼마나 클지는 정치와 행정에 손가락 끝이라도 살짝 담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죽은 인간들의 끔찍하게 많은 숫자만큼이나 그 구성원들도 문제였다.

깡패들은 상관없다.

시민들은 깡패들이 어디서 마구 죽어 나가도 의외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자기들끼리 죽여서 숫자가 줄어들면 이득이 아닐까 하는 병신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고, 영화나 드라마 때문인지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거기서 죽어 나간 사람 중에는 정식 경호업체 소속인 경호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군의 특수부대 출신이었고, 그들이 소속된 회사는 흔해 빠진 제대 군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군부의 실세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에 재벌의 자금을 섞어서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만든 곳이었다. 이건 군부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유명한 깡패 조직 두목과 재벌 방계의 사업가 그리고 경찰 고위 간부가 한자리에서 그것도 대가리에 총을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마담과 아가씨, 웨이터들은 그들이 비밀리에 약속을 잡고 모였고, 습격자가 그들을 노리고 습격했다는 것까지 증언했다.

그 와중에 국과수 현장 조사관들이 사용된 총이 습격자가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깡패 두목 신상사 본명 유준희가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올렸다. 총기 안전 관리 문제까지 덤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정보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경찰과 행정부, 청와대는 이제 이 일을 정권의 위기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 권력 시스템 자체의 위기로 느끼기 시작했다.

80년대 조직폭력배의 전성기 시절에 모 룸살롱에서 조폭들 간의 칼부림이 일어나 4명이 죽은 것만으로도 당시 나라가 거의 뒤집혔었고, 두 명이 사형까지 당했다. 이후에 그 유명한 범죄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계기도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해자만 당시의 몇 배가 넘으며, 깡패들이 회칼이나 쇠 파이프를 동원한 수준이 아니라 영화에나 나오는 프로 킬러가 전투 도끼와 전투 나이프 그리고 총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죽은 것은 깡패와 재벌과 경찰이 비밀리에 모여 뭔가를 꾸미려다가 누군가의 원한을 산 것 때문으로 보였다.

치안이 불안하던 옛날도 아니고 세계 최고의 치안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국민이 받아들일 수준이 아니었다.

죽은 놈들은 진짜 권력자들의 눈에는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피라미들이었지만, 그들의 상징성이 너무 컸다.

잘못하다가는 시민들이 깡패와 재벌과 군부와 정권이 함께 얽힌 초거대 규모의 비리로 이 일을 인식하게 될 수 있었다. 가능성이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기였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과 국정원과 군의 정보사 등 관련해서 동월할 수 있는 조직들을 총동원해서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팀을 조직했다.

거대 언론사 사주들에게도 관련해서 엠바고에 대한 요청이 들어갔고, 주요 재벌들에게도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으며, 뉴스 채널을 가진 방송사들에 입마개가 채워졌다.

모두 도대체 뭘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추적하기 시작했고, 일단 명지훈이 대정 그룹의 방계이며, 명세훈의 심복이었기 때문에 그쪽이 주 타겟이 되었다.

명세훈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설마 이 일이 주다혜의 일 때문에 벌어졌다고까지 생각하지 못했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일은 언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장 조사를 위해 비밀리에 방문한 검찰의 차장검사와 경찰청의 치안감이 예전에 그 일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을 정도였다. 강준화의 강자만 언급되어도 목숨이 위험한 정도를 넘어 대정 그룹 자체가 박살 날 수 있을 상황이었다.

일이 터지고 고작 6시간 만에 검경의 고위 간부급이 관련해서 재벌 사장님을 직접 찾아갈 정도로 일이 상상 초월하는 속도로 진행되었지만, 그만큼 모두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이 헤메고 있었다.

오직 한 곳만 빼고는.

“명지훈? 김호석? 신상사? 이거 다 최근에 어디선가 본 이름들 같은데?”

“네. 최근에 고주희 과장이 더블M 관련해서 정보를 요청했던 대상들입니다.”

더블M은 성화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유진에게 붙인 별칭이었다.

초콜릿 이름 같은 느낌이지만, Mass Murderer. 대량 학살자의 약자였다.

“조사 결과는? 요청이 있었으면 뭔가 조사가 있었을 거 아냐? 혹시 문제 될 가능성은? 이런 대형 사건에 얽힌 인간들에게 동시에 뒷조사를 했다는거 알려지면 분명 누군가는 우리를 의심할 텐데?”

“그, 그게.”

“야! 지금 상황 모르겠어? 똑바로 말 못해 이 새끼야!”

“요청이 있기는 했지만 다급한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있어서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 문제가 될일도 없습니다.”

성화그룹 전략기획실 제2부속실에서 정부 부처나 다른 재벌 인사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리와 대관 업무등을 책임지는 민주훈 2팀장은 부하의 대답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부하도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것인지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민주훈의 뇌리에 회장님이 직접 서명하신 업무 명령서와 직접 전화까지 하셨던 부회장님 목소리가 생각났다.

고주희의 상관인 김명준 3팀 팀장이 유진이 사건을 벌인 현장 뒤처리를 하고 돌아와서 술자리에서 더블M이 자기가 아니라 고주희 담당이라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던 것도 생각났다. 고주희의 부상은 김명준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줄어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야망에 불타는 김명준 팀장조차 유진을 상대하느니 고주희가 잘나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민주훈은 이 일에 유진이 관련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에 이런 일을 벌일 미친 인간이 갑자기 둘이나 되었을 것으로 생각 되지 않았다.

수습과 확인이 필요했다.

“고과장 불러와.”

“네?”

“고주희 과장 불러오라고 이 개새끼야! 그리고 너 포함해서 이 일에 관련된 인원 누구누구인지 다 적어서 보고해 이 새끼야. 너희들 다 죽은 줄 알아!”

민주훈이 날뛰기 시작했고, 소문을 들은 옆 부서들도 난리가 나기 시작했으며, 전략기획실 전체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유진은 그저 연구소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프랑스에서 하던 일들을 평범한 일상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것에 불과했지만, 이 일이 대한민국을 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실 프랑스에서도 당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난리가 난 테러 사건 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았다는 것을 유진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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