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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35화 (13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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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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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여자들의 상관관계 – 10

차민영이 자기 집 식탁에 앉아서 맛있는 아침 식사를 즐기고 커피와 함께 느긋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성화 물산의 어느 폐쇄 회의실에서는 고주희가 만들어지고 반나절이 지나면서 슬슬 딱딱해지기 시작한 김밥을 주워 먹으며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회의실에는 고주희 포함 6명의 인원이 참석 중이었지만, 지금 고주희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고주희의 거의 유일한 심복인 성미연 주임뿐이었다.

성미연은 경력 7년 차로 주임 중에서는 가장 선임이었고, 고주희처럼 회사가 여러 용도로 쓰기 위해 전략적으로 키워서 회사에 입사시킨 고아 출신이었다. 또 첫 입사 시절에 고주희가 그녀의 사수로 업무 전반을 가르친 직속 후배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고주희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고주희가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회사 내의 문제를 확인하도록 부탁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럼 이걸로 이 대리님은 넘어갔다고 봐야 할까요?”

“넘어갔다기보다 눈치를 보고 있는 것에 더 가깝겠지.”

“씨발, 이 상황에서 이런 기밀을 다루면서 직속 상사와 학교 선배 사이에서 줄타기 따위를 하고 있으면 그게 넘어간 거지 아니면 뭐가 넘어간 거예요?”

“그 학교 선배가 자기를 여기에 박아 넣어준 장본인이자, 앞으로 자기 상사가 될 예정인 인물이니까. 이제는 예외가 된 내가 이런 말 하기 우습지만 남자 직원들은 우리랑은 아무래도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

“씨발, 그래도 그 새끼들은 우리처럼 목숨을 걱정하는 신세는 아니잖아요. 더 출세하지 못해서 걱정할 뿐.”

“대신 일단 배신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랑 달리 그쪽은 줄을 잘못 타는 걸로 모가지가 날아갈 수 있지.”

“흥, 그래봐야 우리처럼 진짜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퇴사자 중 행방불명의 비율이 우리 반의반도 안 되는데.”

“대신 절댓값 숫자 자체는 우리 3배가 넘지.”

“그래서 뭐에요? 이 대리님 봐주기라고 하라고요?”

“아니 이 대리 사정이야 어쨌든 그놈은 이제 아웃이야. 모든 업무 과정에서 패스하고, 원래 이 대리 업무는 네가 맡아. 팀원들 전체에게도 그렇게 통보하고.”

“이 대리님은 그렇다 치고, 김 대리님은요?”

“아아, 씨발. 그 새끼는 또 어떻게 하지. 이 새끼는 워낙 절묘하게 일을 처리해서 이게 태업인지 실수인지, 무능인지 구별을 못 하겠어.”

“그게 뭐 달라요? 어쨌든 쓸 수 없다는 뜻이잖아요.”

“야, 내가 무슨 팀장님들 같은 금수저 엘리트인 줄 알아? 능력 부족하다는 것만으로 쳐내면 내 밑에서 누가 일하겠어?”

“우리가 하면 되죠.”

“씨발, 이 상황에서 그런 무능한 새끼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백번 낫죠. 과장님 우리 못 믿어요?”

성미연이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후배들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고주희와 눈이 마주친 그녀들은 모두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후배들은 모두 고주희나 성미연과 비슷한 처지의 여직원들이었다. 전부 고아는 아니지만 걔중에는 차라리 고아였으면 하는 처지도 있었고, 회사의 도움으로 지옥에서 기어 올라와 신분을 세탁한 그런 처지도 있었다. 어떤 것이건 회사를 벗어나기 위해서, 회사가 자신들에게 제공한 것의 대가를 갚으려면, 정말 목숨으로도 부족한 그런 신세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고주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야, 너희 그러지 마. 이게 장난일 줄 알아? 나 정말 지금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단 말이야. 실수하면 말 그대로 정말 시체도 못 남기고 행방불명될 거야. 니들 정말 그런 일에 끼어들고 싶어?”

대답은 그녀들을 전부 대신해서 성미연이 했다.

“씨발 우리 중에 얌전히 살다가 적당히 눈 낮춰서 시집이나 가겠다는 애들은 이미 다 비서과나 재무팀, 회계팀으로 다 빠졌어요. 저나 얘들은 다 이 좆같은 세상에서 과장님처럼 한번 폼이라도 잡아 보자는 애들 뿐이에요. 그러다가 뒈져도 어쩔 수 없죠. 어차피 다들 걱정해줄 사람도 없는 좆같은 신세들인데 무슨 상관이에요.”

“씨발 우리가 걱정하잖아! 우리가 서로!”

“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과장님을 걱정하고 있죠. 그러니까 함께 하겠다는 거고.”

“씨발.”

고주희는 감격해서 울어야 할지 아니면 이 철없는 후배들의 생각에 절망해야 할지 조금 고민했다. 솔직히 회장 일가의 비밀에 대해서 들은 지금은 후자 쪽의 심정에 좀 더 가까웠다. 그래도 그것까지 말해 줄 수는 없으니 일단은 그냥 감격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입만 함부로 열지 않으면 그래도 나만 죽는 걸로 어떻게든 될 거야.’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기는 한데, 후배들과 함께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검토한 자료와 정보들이 너무 좆 같았다.

그녀에게는 업무상으로 그녀의 조직을 관리하기 위한 4명의 대리급 부하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지휘 보고의 편의성을 위해서 서류상으로만 그녀의 휘하로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차민영과 강소진 모녀를 감시 경호하기 위해 편성되어, 그녀들의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안전 가옥에 상시 배치된 팀을 관리하는 인물이었던 것이었다.

이 팀은 업무에 관련해서 철저하게 그녀의 지휘를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인원 편성에 관해서 그녀에게는 전혀 권한이 없었다. 상호 견제를 위해 관리팀과 실행팀의 인사권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고주희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부회장님 직속 조직이 자기 뒤통수를 감히 때리지 못 하리라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3명의 대리였다.

이 중 하나는 반쯤 배신자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맡은 임무가 조만간 고주희에게서 분리될 예정인 성문후 이사 관련이었던 때문인지 벌써 줄을 바꿔 잡고 있었다. 본인은 새로 성문후를 맡을 부서로 이동해서 거기서 승진을 노려볼 모양인데, 고주희 생각에는 그전에 방출될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는 아주 사보타주와 무능 사이에서 판단이 모호한 놈이었다.

사보타주면 배신이 위험하고, 무능하다면 그걸로 또 위험할 수 있는 놈이라서 성미연의 말대로 역시 쓸모가 없었다.

결국 4명이 되는 대리 중에 쓸만한 놈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몹시 슬프게도 이 마지막 놈은 믿을 수도 있고, 업무 능력도 괜찮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쓸모가 없는 놈이었다. 회장 일가는 아니어도 사장단 급에 혈통이 걸려 있는 금수저 엘리트로, 현재는 그녀 밑에서 일을 배우기 위해서 배치되어 있을 뿐, 조만간 어딘가에 뭐라도 큰일을 맡게 될 예정인 놈이다.

대리급들이 이 지경이니 그 밑에 주임급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밑에 일반 사원급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고주희가 그냥 적당히 성문후 이사 하룻밤 상대들이나 관리하고, 차민영과 소진이만 관리하던 시절이면 이런 부하들이라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사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적당히 일하다가 적당히 챙겨서, 조용히 사라지겠다는 자기 처신을 내보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차기를 노리는 후계 싸움의 피가 튀는 한복판에 휘말려 들어온 상태였고, 후계 싸움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 비밀에 대해서도 알게 된 상태였다.

적당한 놈들 적당히 부리면서 적당히 일하다가는 어느 순간 적당하게 토막 나서 적당한 곳에 적당히 버려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결말은 싫었다.

“하아, 좋아. 어쩔 수 없지. 그럼 일단 네가 이 대리 자리 맡기로 하고, 김 대리 자리는?”

“그건 고 주임 추천해요.”

“화연아 할 수 있겠어?”

지목받은 여직원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고화연은 경력 5년 차에 주임 1년 차에 불과했지만, 똑소리 나는 업무처리로 자신들뿐만 아니라 부서 전체에서 유명한 유망주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고 남은 것들은.”

한참 그렇게 이야기를 진행하려는 찰나에 누가 회의실을 문을 두드렸다. 아니 그냥 노크만 한 것으로 끝내지 않고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방해하지 말라고 하시긴 했지만, 지금 2팀 민 팀장님이.”

하필이면 지금 제일 말이 많은 이 대리가 그러는 꼬라지에 고주희가 폭발했다. 2팀의 민주훈 팀장이 자신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어제저녁부터 계속 듣고 있었지만, 자기 회의 끝나기 전에는 안 만난다고 몇 번이나 분명히 이야기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다른 팀장 눈치를 보면서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고밖에 여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민 팀장님이 찾으면 찾는 거지 네가 그걸 왜 지랄이야! 회사 조직이 개좆으로 보여? 직속상관인 내가 지금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니가 왜 우리 직속상관인 3 팀장님도 아닌 2 팀장님 대신 지랄이야, 이 새끼야! 같은 한국대 선후배라 이거냐? 한국대 선후배면 회사 조직과 직책 같은 건 다 개좆으로 보이냐?”

상상도 못 한 폭언에 이 대리가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고주희가 입이 얌전한 편은 아니지만, 부하 직원 그것도 엘리트들인 대리급에게 이 정도로 폭언을 한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사내에서 금기나 다를 바 없는 직속 조직을 벗어난 인맥 활용을 통한 업무처리를 거론하는 것은 아예 이걸로 논란 만들어 죽여버리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정도의 의미였다.

별생각 없이 문을 열었던 이 대리는 정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그런 이 대리를 밀어내며 누군가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고주희조차 깜짝 놀라게 만든 그 상대는 지금 고주희가 입에 담은 민주훈 팀장이었다.

민주훈 팀장은 일단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고주희에게 고개부터 숙였다.

“일단 사과부터 하겠네, 고 과장. 내가 부하 직원 관리 제대로 못 해서 자네가 고생한 것 뒤늦게 알게 되었네. 내 불찰일세. 다시 한번 사과하네.”

고주희는 갑작스러운 민주훈 팀장의 태도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 대리는 아예 사색이 되었다.

이 대리는 고주희가 자기 상관이기는 해도 별로 크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아원 출신에 이름도 없는 지방대 나와서 임시직으로 일하다가 운이 좋아 벼락출세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래봐야 좋은 집안 출신에 한국대 나와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니, 조만간 자기가 그녀보다 높은 자리로 승진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회의실에서 나오지 않는 고주희의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는 민주훈 2팀장을 대신해서 자기가 회의실 문을 열었던 것도 다 그런 노림수의 일환이었다. 이 기회에 한국대 인맥의 핵심 중 하나인 민주훈 팀장에게 자기를 어필하려는 수작이었다.

설마 그게 지옥문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자기 처지에서는 까마득한 하늘 같은 존재인 민주훈 팀장이 고주희 과장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나,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로 자기가 좆 되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대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이 대리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고주희나 회의실 내 다른 팀원들은 물론이고, 민주훈 팀장 조차 말이다.

“사과만 하러 오신 건 아닌가 보군요.”

“물론.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자네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기 힘들 정도의 이야기지. 나만 문제가 아니야. 제 2 부속실이 아니라 지금 전략기획실 전체가 비상 대기 중이야.”

고주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 유진과의 마지막 통화가 생각났다.

자기가 그 인간에게 뭔가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해줬으니, 그 인간이 무슨 사고라도 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유씨 일가 중에 누가 죽은 것 같지는 않으니 많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 정도 대 사건이라면 이 대리가 지금 저런 상태일 리가 없으니까.

생각난 김에 이 대리부터 내보냈다.

“넌 문 닫고 나가.”

의례적으로 붙여주는 직급 명칭이나 반존대도 사양했다.

이 대리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망설이면서 민주훈 팀장의 눈치를 봤다. 민주훈 팀장이 자기 편이라도 조금 들어주길 바라는 모습이었지만, 애초에 자기 부하들도 지금 갈아버리고 온 그가 이 대리 따위에게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결국 이 대리는 고주희가 한마디 더 하기 전에 문을 닫았고, 이 대리가 사라지자 고주희는 성미연에게 명령을 내렸다. 기왕 하려던 것, 이 기회에 아주 박살을 낼 생각이었다.

“저 새끼 오늘 중으로 사내 징계위원회 신청해둬. 회의 중에 확인된 거라 지금 걸로. 팀장님도 이건 감안해 주셔야 하겠어요.”

“물론일세. 징계위원회에 소환되면 똑바로 상황 설명하겠네.”

“후우, 좋아요. 그럼 이제 왜 오셨는지 말씀해주시죠.”

민주훈 팀장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슬쩍 여직원들을 살펴보았다. 나중에는 그녀들도 알게 되겠지만, 어쩐지 그녀들처럼 평소 중요한 일에서 배제되는 인원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꺼렸다.

하지만 고주희는 눈치를 줘도 그녀들을 내볼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입을 열었다.

“더블 M이 아주 대사건을 쳤내. 그것도 저번 지하 주차장은 소소해 보일 정도의 대사건이야. 지금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최상층 전부가 비상사태야.”

민주훈 팀장은 이어서 텐프로 룸살롱 홍월에서 일어난 대규모 살인과 그 과정에서 보인 잔혹성과 높은 전투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체로 발견된 깡패 두목과 재발 방계와 경찰 고위 간부의 부적절한 만남 및 그 과정에서 사용된 무기들 특히 총기의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 정부가 이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와 관련되어 얼마나 많은 특수한 조직들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거기서 발견된 총기가 미군에서 유출된 걸로 확인되는 바람에, 미군 헌병대까지 관련해서 움직이고 있을 정도야. 아직 외부에는 더블M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거 밖으로 새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거 알려지면 얼마나 큰 문제가 될지 상상이 가나? 저번 일로 미국에 엮일 뻔한 것보다 이게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

듣고 있던 고주희는 그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건 무슨 사고를 쳤다 스케일이 다 이따위야.’

고주희는 어쩐지 현 회장님 유명선이 젊은 시절에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벌인 전설적 일화들이 떠올랐다. 유진의 경우는 그게 살인 사건이라는 것만 빼면 비슷한 정도로 크게 일을 벌이고 있었다.

‘이게 그 부전자전 따위인 건가? 아주 좆같네, 씨발.’

유진만이 아니라 어쩐지 회장님에게도 욕이 나오는 고주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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