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36화 (136/196)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3월 9일 기준으로 8-27편의 연재가 누락되어 있었음을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8-26편에 뒤늦게 내용을 추가하였으니, 혹시 이전에 보신분은 확인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09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여자들의 상관관계 – 11

처음 신원 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수상한 인물이었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위험을 절감했으며, 건설 현장 지하 주차장에서의 학살 사건으로 그 위험한 본질에 대해서 절실하게 느끼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일 저지르고 뒤처리까지 확실하게 처리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눈꼽만큼 안심한 부분도 있었다. 사건은 벌여도 문제를 크게 만들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듣자 하니 무대뽀도 이런 무대뽀가 없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뒤처리도 안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러다가 증거라도 나오면 미국 정부라도 그를 보호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가 생각났다.

‘응, 증거?’

민주훈 팀장의 이야기에는 유진이 범이라는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증거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경찰이건 특수부대건 이미 유진을 잡기 위해 출동 중일 것이다.

“이야기 잘 듣기는 했는데, 그래서 이 일이 더블M과 관련되었다고 어떻게 확신하시는 거예요? 증거가 있나요?”

이번에는 민주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죽은 인간 중에서 핵심 인사들은 전부 고과장이 조사 요청한 인간들이잖아. 덕분에 나도 밑에 새끼들 병신 짓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 아마 고과장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고 과장도 이거 더블M 짓이라고 생각하잖아. 애초에 이런 일 벌일 수 있는 존재가 더블M 말고 더 있기나 할까?”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력의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유진은 이미 확실하게 자신이 그럴 수 있는 능력과 실행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바가 있었다.

물론 고주희는 이걸 순순히 받아들인 생각이 없었다. 이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이 일의 책임이 자신에게 넘어오게 된다. 일의 시작은 민팀장의 부하 새끼들과 자기 부하 새끼들 그리고 부서 전체의 병신들이 저지른 태업의 문제였는데, 그걸 혼자 떠맡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면서요? 그냥 우리 생각에 그럴 것 같다고 판단해도 되나요?”

“그야 당연히 확인부터 해야지.”

“어떻게요?”

“자네가 가서 더블M을 만나서 물어봐야지. 왜 이런 짓까지 했고 앞으로 어쩔 생각인 건지. 혹시 들킬만한 증거 같은 것은 남긴 것이 없는지, 전부 다.”

고주희가 입을 떡 벌렸다.

이건 미친 소리였다. 유진이 얼마나 위엄한 놈인지 잘 아는 사람으로서, 특히 저지른 일로 봐서 지금 얼마나 더 빡쳐 있을지 충분히 예상하는데, 그 원인 제공자 중의 하나인 자기가 거기에 얼굴 맞대라는 소리는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고주희는 사자 대가리에 머리를 집어넣어 보는 서커스는 사절이었다. 그것도 머리에 후추 뿌려서 재채기 유발 시키기 딱 좋은 상태로는 더욱더!

하지만 그녀가 거절하기 전에 민주훈 팀장의 말이 더 빨랐다.

“이 건은 부회장님 허가 미리 받은 걸세.”

평소라면 부회장님 이름에 물러났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고주희는 전화기를 꺼냈다.

“뭐 하려고?”

“부회장님에게 전화하려고요. 제가 왜 제 책임도 아닐 걸로 죽으러 가요. 상황 다 설명해 드리고 못 한다고 말씀드려야죠.”

민주훈이 대경실색했다.

“이러지 마, 고과장. 진짜 큰일 나는 수가 있어! 한두 사람 징계받는 걸로 안 끝나.”

“그래봐야 징계겠죠. 전 갔다가 시체가 돼서 나오는 수가 있어요!”

“아니, 아니. 그냥 맨손으로 가라는 거 아냐. 자네 회의하는 동안 우리도 부서 총동원해서 자료 찾고 정리했어. 자네는 물론이고 그쪽 사람들도 충분히 관심받을 만한 충실한 자료이고, 이 일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확인했네. 이거라면 더블M도 자네에게 심하게 화내지는 않을 거야!”

민주훈이 말과 함께 보안 처리된 태블릿을 내밀었다. 입력은 가능해도, 내부 파일을 밖으로는 못 내보내는 물건이었다.

고주희는 일단 전화기는 집어넣고 태블릿을 받았다.

민주훈 팀장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유진이 그녀의 담당인 이상 사실 이 일을 확인하기는 해야 할 일이기는 했다. 이게 단지 그냥 말썽 하나 떠맡은 것이 아니라 회장님 일가의 가장 은밀한 비밀에 관련된 일이라서 회피도 사실은 불가능했다.

단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갈 생각이 없었을 뿐이었다. 어제의 유진의 태도로 봐서는 그랬다가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자료는 쓸만했다.

그리고 확인할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이 일이 어디서 시작된 건가요?”

“자네 혹시 민영후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나?”

** ** **

유진이 일으킨 난리에 관련하여 수많은 관련 기관과 조직들이 사방을 들쑤시고 있었지만, 이 일에 유진이 관여한 것을 실제로 눈치챈 곳은 단 세 곳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성화나 다른 조직보다 가장 깊게 관여하고 있는 조직은 이들이었다.

서울의 주한 미국 대사관 내에 있는 CIA 한국지부용 비밀 회의실에서 관련하여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민영후라는 자는 누구죠?”

현재 회의실 가장 상석에서 질문을 던진 것은 금발머리를 가진 비교적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CIA 한국 지부장도 아니고, CIA 한국지부 소속도 아니며, 하다못해 CIA 소속도 아니었지만 지금 회의실에서 가장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리엄 코너.

CIA 한국지부가 머무는 미국 대사관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국무부의 관료이자, CIA의 전설이자 악몽 앤 헤이즈의 심복이며, 현재 유진에 대한 작전을 책임지는 특수 목적 임부 부대인 테스크 포스 2074의 한국 파견 팀 지휘관이었다.

코너의 질문에 한국계 미국인으로 CIA 한국지부의 최고참인 제임스 박이 느릿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민영후는 다선의 경력을 가진 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 민정기의 셋째 아들입니다. 부친인 민정기는 군인 출신 독재자인 예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꽤 오랜 시간 정치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몇 년 전에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영향력을 모두 잃고 나락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재산도 상당히 잃었고, 감옥에서 죽는 것만 간신히 면한 정도입니다.”

“그런 인간의 아들이 왜 갑자기 튀어나온 거죠?”

“그에 대한 대답은 제가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대답을 한 것은 본토의 CIA 본부에서 차출되어 팀에 파견된 로버트라는 이름의 요원이었다.

“제임스 선임 요원이 이 민영후라는 자가 드러난 이후, 민영후가 한국에서 가진 영향력과 발휘할 힘에 비해 너무 비정상적인 움직임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움직임을 생각할 때 자살 행위에 가까운 짓이고, 민영후는 그 정도는 알법한 집안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민영후의 존재에 의구심을 제시하신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민영후의 움직임이 한국 내에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하에 그가 외국과 가진 커넥션을 살펴보았습니다.”

말이 좀 장황하기는 한데, 정보에 대한 보고는 그 정보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습득한 것인가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 정석이기는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 과정에 대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기하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저희는 민영후가 코넬 대학에서 유학하면서 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그 중간에 일종의 교환 학생으로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교환 학생으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으며, 그 과정에서 노블 애브게니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참고로 노블 애브게니 장학금은 영국 귀족 중 일부가 귀족 혈통을 이었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한 후손들을 위해서 만든 장학금입니다.”

“거기 UE의 인재 수급처로 의심받는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그런 표나는 짓을 했다구요?”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노블 애브게니가 UE와의 연관성을 의심받고 있기는 하지만 노골적인 정도는 아니고, 실제로 기금 기부자들이나 장학금 수여자들도 UE 비관련자들이 대다수입니다. 또 그쪽의 규정에는 영국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고귀한 혈통의 후손이라면 장학금을 수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고, 그런 식으로 영국계가 아닌 외국계 귀족들을 포섭하는 수단으로도 쓰기는 합니다. 그래서 저희도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문제는 민영후가 그 증조부가 대한민국의 전신인 대한제국 시절 마지막 황후로 유명한 황후의 일족이자 고위 관료이며 오랜 전통을 가진 명문의 유력 귀족이었던 점이 그가 장학금을 받은 명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기 계신 제임스 선임 요원을 포함한 한국계 요원들이 이 자료를 보더니 당장 이런 결정을 내린 영국인이 눈앞에 있으면 목을 비틀어 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회의실 내의 비 한국계 요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제임스 박을 향했다. 그리고 약간들 놀랐다.

제임스 박은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요원으로 한국계라고는 해도 한국에서 서류만 뒤적이면서 보낸 그런 요원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 일본과 대만과 홍콩과 중국 본토를 오가면 이룬 그의 작전 성과 중 일부는 동아시아에 파견되는 요원들이 필수로 공부해야 하는 그런 작전일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베테랑의 표정이 지금 약간이지만 평상심을 잃고 있었다.

“민영후의 증조부라는 그 민씨 개새끼는 나라가 어려운 그 시절에 뇌물과 부정부패로 재산을 축적하고 어려운 나라의 재정을 좀 먹다가, 일본 제국에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협조한 후, 일본 제국에서 작위를 받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먹은 개새끼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다시 독립하자 그때 쌓은 부와 재산으로 자기 범죄를 숨기고 자식 손자를 이 나라의 권력층으로 키워냈죠. 그런 인간의 후손에게 명예로운 귀족이라는 이유로 장학금을? 제가 장담하는데 이 일이 이 나라 일반시민들에게 알려지면 영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영국과의 국교 단교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고도 남을 겁니다. 아마 영국 시민과 귀족들의 반응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미국인이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분쟁이 생기면 단호하게 미국을 선택할 사람인 제임스 박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한국계라는 정체성은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독립투사와 매국노를 구별해서 분노할 줄은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분노에 그렇게까지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 나라의 주류층 일원인 거군요. 거기에 그래봐야 고작 시위 구요.”

약간 비꼬는 듯한 누군가의 발언에 제임스 박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게 내가 지금 미국인인 이유 중 하나죠.”

잠깐 썰렁해진 분위기에 로버트가 다시 나섰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분석팀은 민영후의 장학금 수여가 매우 비정상적인 경우이며, 민영후가 UE가 계획적으로 포섭한 협력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왜 민영후인지는 애매하지만요.”

“그 장학금을 받았다는 시기가 언제인가요?”

“8년 전입니다.”

“그건 굉장히 애매하군요.”

8년 전이면 CIA가 아직 유진에 대해서 눈치도 못 채고 있을 시기이며, UE도 유진과 관련해서 한국에 관련된 뭔가를 진행할 이유가 없는 시기였다.

“제임스 선임 어떻게 생각해요? UE가 TM과 관련된 이유로 이 자를 섭외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그냥 한국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었을까요?”

TM은 미국이 유진에게 붙인 암호명이었다. 미국의 유명 코믹스에 나오는 어떤 히어로 겸 빌런에서 따온 이름으로, 그는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 육체로 곧바로 그 지식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한 초능력자였다.

아군의 암호명은 그 명칭으로 본인을 유추할 어떤 근거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해군 출신 요원에는 물고기나 바다에 관련된 단어도 붙이지 않을 정도인 것에 비해, 유진 같은 외부 이레귤러는 인식을 높이기 위해 연상이 쉽게 될 수 있는 암호명을 붙이는 수가 있었다.

어쨌든 코너의 질문에 제임스 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왜죠?”

“이 나라는 제국주의 시절에 영국에게 더럽혀지지 않은 전 세계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바로 옆의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찢겨나갈 때도 구경꾼이었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 나라도 영국의 침공을 받은 적은 있지만, 아주 제한적이었죠. 그 후 냉전 시기 이후에는 더 말할 필요 없겠죠? 이웃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영국이 이 나라에 가진 영향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영국만이 아닙니다. 이 나라에는 미국 우호 세력이나 친일파 친중파는 있어도 친유럽파는 없습니다. 유럽이 뭔가 영향력을 발휘해볼 만한 구석이 없어요. 그런 나라에 고작 저런 정도의 인물을 포섭해서 영향력 행사할 생각을 했다면 그건 병신이겠죠. 하지만 최소한 외교적 모략 부분에서 영국이나 UE가 그런 병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회의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제임스 박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한편으로는 최고의 동지이자, 또 한편으로는 최고의 숙적인 영국은 비록 지금은 많이 몰락하고 있지만 그 정치적 파워와 첩보 능력, 특히 더러운 일에 관해서는 절대로 얕볼 수 없는 나라였다. 유럽 제국주의의 성과와 더러움을 상징하는 조직 UE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다시 들려온 누군가의 말에 모두 생각에 잠겼다.

“그럼 도대체 이 자는 뭘까요? 어떤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요?”

여기 있는 인원 대부분은 작전 요원이 아니라 분석 요원이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게 진행되는 상황과 그 동기와 목적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에 대해서 매우 거리낌을 느끼고 있었다.

미래와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목적과 동기의 확인이 필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 그 부분에 신경 쓰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 현재 상황에 집중합시다. 이런 피라미에 대한 너무 빠지지 말고요. 그래서 이 인간에 대한 정보는 누가 알고 있습니까?”

“현재는 저희와 성화 그룹 정도만 확보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직접 TM과 접촉하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 하니, 그러면 일은 성화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따라 결정되겠군요.”

“네.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일단 성화의 움직임에 주목해 주세요. 동선도 체크하고요. 어제 중간에 들린 그 호숫가도 누가 좀 체크 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매우 소극적인 조치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한국이 겉으로 보기에 좀 만만해 보여도, 외교 안보 이슈가 터지면 그들 같은 실무진 선에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는 되는 선진국이자 동맹국이었다. 한국 정치권이 움직이고 있는 이상 개입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 제임스 잠시 남아 주세요.”

코너가 회의의 종료를 선언하면서, 한국계 선임요원 제임스 박을 남겼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이상해하지 않고 회의실을 나섰다. 제임스 박은 직급과 직책은 그리 높지 않아도, 한국이 본거지인 베테랑 요원이었다. 직급과 직책과 별개로 존중을 받고 있었고, 직급과 직책은 높아도 현지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코너에게 조언을 건네는 실질적인 2인자였다.

두 사람이 따로 남아서 뭔가 상의한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할 이야기가 있나요, 팀장님?”

코너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신중하게 말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낯선 이 나라에서 고립된 TM의 주변에 서서히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사람을 배치해서 천천히 그를 우리 색으로 물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연결된 이 성화라는 회사가 TM과 관계되면서 이 계획은 지금 엉망이 되었어요. 그 여자의 주변 인들과 성화 관련 인원만으로 TM의 주변은 지금 완전 포화상태에요. 현장 상황에 따라 작전이 변경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건 좀 매우 심하네요. 가능하면 지금부터라도 이 성화를 배제하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임스?”

코너의 질문에 제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가씨가 이러는 심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 전문가의 관점에서 이건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제임스 박은 그 부분을 코너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