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37화 (13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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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여자들의 상관관계 – 12

** 주의 : 이번 편에 묘사되는 재벌과 역사에 관한 부분들은 현실과 별개인 글 속 세상의 이야기이며, 그중에서도 각 등장인물의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실제 현실과는 물론이고 이야기 속 세상의 상황과 역사와도 꼭 맞는 것이 아닙니다. **

제임스 박은 코너에게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가진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그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악명을 자랑하는 세 개 재벌에 대해서 우선 설명했다.

“일단 이 나라 대기업 중 오랜 역사를 가지고 실질적으로 국가 경제를 좌우했던 3대 재벌 가문인 명천, 태성, 성화의 정보력은 한국 내로 한정하면 한국 정보부는 물론이고 저희조차 압도할 정도입니다. 사실상 애초에 그냥 기업 집단이라고만 여기면 안 되는 곳들이기도 하고요.”

“그 정도인가요?”

“한국의 재벌에 붙은 벌이라는 단어는 문벌이나 군벌이라는 단어에 나오는 벌자가 붙은 겁니다. 벌은 소속된 국가와 체제와 분리되어 독자적 세력을 형성한 이익집단을 말하는 거죠. 재벌은 단순 기업 집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 체계를 갖춘 정치적 조직이자 작은 왕국이기도 합니다. 회장이 왕에 비교되고, 후계자들의 회장직 쟁탈을 왕자의 난이나 내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냥 농담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설명이 계속되었다.

30대 재벌 중 거의 절반 가까이가 이 3대 재벌을 뿌리로 분가하거나 분리된 조직들이라거나, 공권력이 영장을 가지고 수사를 들어가도 직원들이 그걸 몸으로 막을 정도로 회사에 비정상적인 충성심을 보인다거나, 고위 임직원 중에는 직원이 아니라 가신이라고 불리며 회장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들 중 일부는 범죄 혐의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도 들었다.

어느 정도 사전에 공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이 가진 특유의 여러 가지 특성에 대해서는 어두울 수밖에 없는 코너는 들르면 들을수록 질려 버리는 기분이었다.

재벌에 대한 악명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 정도면 마약이나 범죄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란 점을 빼면 어지간한 마피아 조직과 다를바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이게 기업인지 마피아인지 애매할 정도로 막 나가는 기업은 미국에도 흔한 편이니까. 그래도 미국 기업은 조직이 주는 이득에 협조하지, 조직의 수장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기업에서 충성심이라는 말조차 웃겼다.

제임스 박은 설명을 계속했다.

한국의 재벌은 이미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나 사법도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단지 국민의 눈을 생각해서 그리고 정치와 사법 권력자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계를 스스로 그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는 무소불위였다.

외부의 눈을 피해서 어둠 속에서 뭔가 크게 움직이면 가장 먼저 그들의 눈에 띄게 된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발견한 일이 자기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고, 그걸 어둠속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기꺼이 국가 자체를 동원하는 것도 꺼리지 않을 것이었다.

이 부분은 비슷한 조직을 여럿 알고 있기에 코너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단지 그런 조직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밖에서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있는 것이 황당할 뿐이었다.

거기에 명천, 태성, 성화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한 번씩 나라를 반쯤 뒤집어엎은 전적이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무서운 곳들이었다.

제임스 박은 증거는 없지만 이 나라가 가장 크게 격동했던 순간들에 그들의 공작이 있었다고 믿었다.

나라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던 독재자가 순간적으로 몰락하여 쫓겨나거나, 군부가 쿠데타를 벌이거나, 쿠테타로 나라를 장악했던 군벌이 순식간에 다시 몰락하거나, 행정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던 경쟁 거대 재벌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서 흔적도 남지 않은 등의 일들에서 그들이 남긴 흔적이 있었다.

설명을 다 들은 코너가 한숨을 쉬었다.

제임스 박의 말이 맞다면 이 한국의 재벌은 UE같은 초국가적 비밀결사가 아예 회사라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미국을 등에 업고 있더라도, 절대로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다.

“좋아요. 성화가 그 정도로 살벌한 곳이라면, 제임스 생각에 지금 일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요?”

코너의 질문에 제임스 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민영후는 이미 시체입니다.”

** ** **

비슷한 시간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인물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유진의 정체를 알고 이번 일에 관련하여 회의를 진행 중인 조직 중 유일하게 책임자가 남자인 조직이었다.

“이대로라면 민영후의 죽음은 이제 기정사실입니다. 이 성화의 인물들이 마루타에게 정보를 제공할지, 직접 처리할지는 애매하지만, 성화는 절대로 이 분란의 원인을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이들은 유진을 마루타라고 불렀다.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들에게 익숙한 용어였다.

부하의 단언에 책임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민영후는 손절 할까요?”

그 질문에 누군가 발작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건 안 됩니다! 민영후는 저희가 지금 진행 중인 계획의 핵심입니다. 민영후를 잃는다고 계획 자체가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잃게 될 시간과 손해 보게 될 투자금이 너무 큽니다. 거기에 민영후처럼 알맞은 협조자는 다시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또 다른 누군가가 의견을 제기했다.

“잡죠.”

그건 전혀 생각도 못한 의견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두의 시선이 의견을 제시한 사람에게로 모였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가 이 자리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입을 열어도 될 자가 아니어서 모두의 시선은 좋지 못했다.

양복 정장 차림인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일하게 검은색 점프슈트를 입고 있던 그 젊은 사내는 그런 모두의 시선에도 당당했다.

책임자도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일단 확인은 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 유진이라는 마루타가 뛰어난 수준을 갖춘 오리진이라고는 하지만 영화 속 슈퍼맨 같은 무적의 존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파리에서는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건 방심의 결과일 뿐, 사실 거의 제압이 성공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요?”

“민영후를 이용해서 함정을 파고 그 마루타를 처리하죠. 그 마루타는 이번 일에서도 현장에서 획득한 권총 한 자루 말고는 칼과 도끼 정도만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는 한국입니다. 총기를 구하지 못한 거겠죠. 하지만 우리는 필요하다면 중화기도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습니다. 생포는 무리여도 그 몸이 총탄을 튕겨내는 것도 아니니 사살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으으음.”

책임자는 망설였다. 본토의 지휘부가 마루타를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마루타는 자기가 잘못 건드렸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에게 그럴 권한은 없습니다.”

극렬한 반대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책임자도 그들의 의견에 동감이었다.

그들은 다른 작전을 위해 파견된 상태였다. 원래 이 오리지널 마루타에 대한 정보조차 그들에게 필요해서 제공된 정보가 아니라, 한국에서 작전 중인 그들에게 가급적 접촉을 피하라는 차원에서 제공된 정보였다.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정보를 확보하면 좋지 않겠냐는 욕심에 민영후가 주변 인물을 조사하다가 차민영을 타겟으로 삼았고, 차민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차민영의 과거와 강준후의 스캔들과 여자들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민영후가 정보 획득을 위해 주변을 들쑤시는 바람에 이 일이 다시 수면으로 떠 올랐고, 관심이 생긴 자들이 다시 사방을 쑤셔대면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이다.

그들이 파악한 바로는 말이다.

이건 시점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실수라고 여길 수도 있는 일이었고, 상부에서 그걸 추궁당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기왕에 일이 생겼으니 일을 더 크게 벌이자는 이런 의견은 절대로 정상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점프슈트의 사내는 책임자를 계속 설득했다.

“우리가 마루타를 습격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 협조자를 보호하자는 것뿐입니다. 그 와중에 마루타의 공격을 방어조차 못한달 말입니까? 마루타가 죽이면 우리는 그냥 죽어야 한다고 부하들에게 말할까요?”

꽤 과격한 그의 발언에 나머지는 침묵했다.

납득할 수 없는 말이지만, 지금 전투 팀을 장악한 것은 점프슈트의 사내였다. 총을 든 전투병들이 저딴 소리를 들으면 무슨 짓을 벌일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임자가 흔들렸다는 것을 느낀 점프슈트가 협박에 이어 달콤한 미끼를 던졌다.

“오리지널 마루타의 시체를 확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본토의 조직들 사이에서도 쟁탈전이 벌어진 물건이고, 우리 쪽에는 피 한 방울, 살점 한 조각도 그리 생색내면서 보내주던 물건입니다. 우리가 오리지널을 확보할 수 있다면, 본국에서 그 공을 얼마나 치하할지 상상이 안 됩니까? 자만심에 가득한 본토 놈들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습니다.”

“으으으음.”

책임자가 더 흔들렸다.

그리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책임자에게 점프슈트의 사내가 마법의 단어를 외쳤다.

“문제가 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민영후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협조자고 그의 경호는 이누카이 대장의 임무요. 그 경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그건 우리가 뭔가 고의로 한 것은 아니라, 그저 스스로를 보호한 것일 뿐이지. 알아서 하시오.”

책임자가 장황하게 떠들었지만, 의미는 간단했다. 그렇게 해보고 싶다면 알아서 하되 문제가 생기면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의미였다.

그런 주제에 성공하면 분명 자기가 책임자라고 으스댈 테지만, 점프슈트의 사내 이누카이 히로유키는 그 정도로 만족했다. 일단 책임자자 묵인했으니 부하들과 중무기를 동원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테고, 가장 껄끄러운 한국 경찰이나 군대 등은 책임자가 처리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성공하면 책임자가 아무리 자기가 책임자라고 으스대더라도 일의 최고 공로자는 자신이 될 것이었다. 본국은 물론이고 본토에서도 자기를 알아주게 될 테고.

“하잇! 맡겨주십시오. 우리 카마이타치 구미의 능력이 구라파 본토의 다른 구미들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일로 증명하겠습니다.”

이누카이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회의가 종료되었다.

다른 참석자들은 이누카이를 매우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누카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지금 한국에서 조직의 무력은 그의 카마이타치 구미가 담당하고 있었다. 상부에 가진 인맥이 껄끄러운 책임자라면 몰라도, 다른 양복쟁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회의실을 나서자 이누카이와 같은 검은색 점프슈트 차림의 부하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장?”

“예상대로다. 공식 사냥은 허락할 수 없지만, 경호 중에 반격의 형태는 묵인하겠다는 동의를 받았다.”

“제길. 양복쟁이 놈들이란.”

“괜찮다. 어쨌든 묵인은 해줬으니 병력을 모으고, 중화기를 동원해도 뒤처리까지 해줄 거야. 그거면 충분해. 어차피 더 도움받을 것도 없어.”

“그건 그렇죠. 하지만.”

“됐어. 그보다 지금 당장 미리 준비해두었던 청평의 그 별장으로 부하들 모으고, 벙커와 부비트랩들도 다 확인해.”

“네. 대장. 그런데 대장 솔직히 정말 괜찮을까요? 불란서의 그 총사대 놈들도 전멸 당하지 않았습니까.”

부하의 걱정에 이누카이가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즈무라. 한때 이 나라에 산마다 호랑이가 있었다는 것 알고 있나? 단위 면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호랑이 수가 가장 많은 땅이었지.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용맹한 종이었어.”

“그렇습니까? 하지만 전 이 나라에 호랑이가 산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요?”

“이제는 없지. 위대한 제국 통치 시절에 제국군이 모두 다 사냥해서 씨를 말려 버렸거든.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았지.”

“아아.”

감탄하는 부하에게 이누카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강하고 용맹해도 홀로 다니는 짐승이다. 사냥꾼도 아닌 군인 앞에서는 사냥감도 아닌, 그냥 표적일 뿐이야. 알겠나? 총사대 놈들조차 그 마루타보다 약해서 패한 것이 아니야. 죽였다고 착각하고 얕보다가 인질이 잡히는 바람에 놓친 것뿐이지. 진짜로 총사대를 몰살시킨 것은 아메리카의 또 다른 구미라는 것을 잊지 마라.”

“아! 그렇죠. 제가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냥 쏴 죽이면 되는 거다. 그리고 그놈의 시체는 우리의 미래를 번영시킬 열쇠가 되겠지. 그렇게 우리는 영웅이자 신화가 되는 거다. 알겠나. 스즈무라?”

“하잇!”

슈퍼 솔져 시술을 받은 두 명의 특별한 전투원들이 설레발 가득 희망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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