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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38화 (13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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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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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여자들의 상관관계 – 13

국가에 속한 수사와 첩보 조직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그림자로 자신들을 가린 조직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관련자 중에서 가장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둘 있었다.

그중 하나는 모두에게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민영후였다.

민영후는 일이 이 지경이 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벌인 작은 일이 어떤 폭풍을 불러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차민영에 대한 조사조차 예전 유학 시절의 멘토이자 현재 그를 로비스트로 고용하고 있는 인물의 부탁이 있어서였을 뿐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였던 부친이 한순간에 어떻게 몰락했는지 바로 옆에서 눈으로 본 경험이 있는 그는 곧바로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지뢰밭인지 깨닫고 재빨리 손을 뗐다.

그래서 차민영과 차수연을 중심으로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전혀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렇다고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긴 했다.

차민영 차수연 고영은 유미향 같은 여자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신 별로 영향력이 없고 유명하지도 않은 다른 여자들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쪽으로 접근 중이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단기간에 그 비밀 속 여자들의 수준까지 파악할 정도로 천지 사방 쑤셔댄 결과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자극받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비슷한 짓을 벌이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그걸 이용할 생각을 한 누군가의 음모까지 일어날 것까지 예상하기에는 그는 욕심에 완전히 눈이 먼 상태였다.

본인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몹시 불행하게도, 민영후는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파악할 수준이 되었고, 자기가 이걸로 강준화 수준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수도 없다는 것도 알 정도는 되었지만, 그래도 로비스트로서 이 끝내주는 수단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으며, 유진이라는 완전 새로운 위험 수준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강준화의 옛 성노예 중 완전히 몰락하여 그가 내미는 손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여자들에게 작업 중이었다.

그녀들을 적당히 이용해서 로비 상대에게 기름칠할 생각이었다. 어설픈 텐프로 아가씨나 이름 없는 연예인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여자들을 자기가 완전히 장악한하면 비용도 아낄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녀들은 이미 권력자들의 관심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가 무슨 짓 하는지 관심이 없었고, 반대로 그도 자신을 중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아버지 힘으로 군대도 면제받았고, 카마이타치 구미를 그저 흔해 빠진 일본 야쿠자 조직 중 하나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수준에서는 그가 머무는 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게릴라식 군사 방어선을 이해할 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단순히 협력 조직에서 파견한 경호팀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카마이타치 구미가 사실 그를 미끼로 쓰고 있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그저 자기가 손에 넣은 여자들을 처리할 수 있을 조용한 공간이 맘에 들었을 뿐이었다.

** ** **

관련자 중에서 가장 아무 생각이 없는 둘 중 또 다른 하나는 유진이었다.

어제 아침까지만 자신을 향해 아니 정확하게 말해 차민영과 소진이를 향해 뻗쳐 오는 노골적인 음모의 손길에 세상 다 찢어발겨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빡쳐 있던 유진은 이제 없었다.

지금 유진의 속마음은 이랬다.

‘뭐 눈에 띄는 놈 다시 나오면 나올 때마다 밟아주지. 그러다가 꼬리 잡히면 몸통도 자르는 거고. 벌레 너무 귀찮으면 싹 다 불 질러 버리는 방법도 있으니까.’

어제의 유진의 마음속은 사소하게 거슬리는 것이라도 싹 다 파괴하고 쳐 죽여서 말살해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오늘의 유진은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맨손으로, 칼로, 도끼로, 총으로 충분히 피도 보고 사람도 죽였다. 재미있는 여자들도 새로 만났다. 오랜만에 만족할 만큼은 아니어도 넉넉하게 섹스도 했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빵 구워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다음으로는 아침부터 소진이와 신나게 놀았다.

수영 연습을 위해 발장구를 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준다거나, 번쩍 들어 올려 점프대가 되어 준다거나, 물도 뿌려주고, 안아도 주면서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서 소진이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유진도 즐겁게 놀았다.

어른이라고 해도 이렇게 놀아본 경험이 없는 것은 소진이랑 똑같았고, 그래서 소진이가 즐거워하는 만큼 유진도 즐거웠다.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일은 모두 다 즐기고 있는 상황인 때문인지, 유진의 공격성은 매우 급격하게 하락하고, 게으름과 여유로움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건 사실 어젯밤 섹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

유진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유진은 명백한 성욕에 대한 욕구불만 상태였다.

차민영과 2~3일에 한 번씩 한 번의 사정으로 끝나는 섹스만으로도 유대감과 친밀감 애정 표현 등의 정신적인 욕망은 충분히 충족하고 있었지만, 몸은 그걸로 부족했다.

유진의 육체는 2~3일에 한 번이 아니라 하루 3~4번씩 사정을 해도 성욕 해소가 부족한 상태였다. 정신적으로 필요를 못 느끼는 것과 별개로 육체는 성욕이 쌓이고 있었고, 그에 관련해서 육체는 주인에게 성욕을 자극하는 신경 물질들을 과다하게 분비하며 섹스를 요구하고 있었다.

유진이 인간을 초월한 무엇인가처럼 보이기는 해도, 인간의 범주를 아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감정과 의지가 호르몬에 조정되는 것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쌓인 신경 물질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유진을 공격적으로 만들고 있었는데, 어젯밤 4번의 사정은 그렇게 쌓인 신경 물질들을 충분히 소모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유진은 관대해진 것이었다. 가장 거슬리는 존재인 주다혜에게도 약간은 동정을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아마 그것이 고주희가 다시 한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유력했다.

** ** **

고주희는 사실 차민영의 집 앞에서 유진에게 전화하면서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바로 이틀 전에 병신 취급당하며 쫓겨났었고, 어제 통화에서는 그런 병신을 같음을 재확인시키며 쓸모없는 인간 취급도 당했다.

아무리 상대가 원하는 자료를 들고 방문한 것이라고 해도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이 잡히고, 현관문이 열리고, 놀러 온 아이들과 부모들로 가득한 마당을 지나 거실로 들어선 다음 식탁에 마주 앉은 유진의 부드러운 표정에 많이 놀랐다.

그 와중에 개와 고양이 수준으로 사이가 나쁜 차민영이 웃는 얼굴로 아이스 커피와 먹음직스러운 쿠키까지 앞에 놓아주는 상황은 현실감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조금은 자신 있게 자기가 가져온 정보를 유진에게 건네었다.

민영후. 이자가 그 누구도 건드리거나 언급하려고 하지 않는 한국 상류층의 금기 중의 하나인 강준화의 스캔들을 파헤치며 온 동네를 설치고 다닌 바람에, 잊혔던 강준화의 성노예들인 차민영과 그 외의 관련된 인물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고, 그로 인해 여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여기서 민영후가 중요한 부분은 이 일이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로 일어난 일이지, 유진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화가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고주희는 내부 태업으로 자신에게 정보가 차단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성화 내에 유진을 곤란하게 하기 위한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에 대한 견제라고 판단했고, 그 부분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이걸로 유진이 이번 일에 유민영이나 성화 건설이 연관되어 있다는 오해를 푼다면, 나머지는 천천히 하나씩 시간을 들여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민영후를 처리하고, 유진이 혹시 지금 곤란한 처지가 된 다른 성노예 출신 여자들도 구하려고 한다면 그걸 도우면서 유진과 좀 더 관계를 진전시킬 수도 있다고까지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설명을 다 들은 유진의 질문 하나에 숨통이 턱 막혔다.

“그래. 그래서 당신은 지금 이 친구가 명색이 30대 재벌 후계자 중의 하나가 포주 짓을 할 결심을 하게 만들고, 대한민국 치안 정보 책임자에게 들어가는 정보를 조작했다는 거군. 그럼 이 대단한 친구는 배후가 누구야? 고작해야 끈 떨어진 전직 국회의원 아들 중 하나인 이 친구가 그걸 자기 힘으로 했을 리는 없잖아. 그 정도는 생각해 뒀겠지?”

고주희는 당연히 어제 홍월에서 일어난 대량 살인이 유진의 짓일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 친구 배후에 CIA라도 있는 거야? 아니지, CIA는 내 배후군. 그럼 이 친구 배후는 뭐 KGB라도 돼? 아니야. KGB도 이제 사라졌지. 그럼 러시아의 해외 정보국 SVR?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아니면 영국의 MI6. 뭐 그 정도는 되는 거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초강대국의 무시무시한 첩보 기관들의 이름을 줄줄히 늘어놓는 이유도 꽤 명백했다. 고주희를 놀리는 것과 동시에 유진이 직접 조사한 바로 그 정도로 치밀하게 진행된 모략을 느꼈다는 뜻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고주희는 어렵게나마 질문을 하나 던졌다.

“명지훈 씨와 김호석 총경이 뭔가 남긴 말이라도 있는 건가요?”

너무 뻔하게 떠보는 질문이었지만, 유진은 그냥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명지훈은 우연히 자기가 스폰 하는 여자를 자기 사촌형 명세훈 사장이 알아보더니, 그걸로 수연 씨랑 민영 씨 엮여서 조직을 재건해보자고 했다더군. 그거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지 고과장도 모르지 않지?”

“물론입니다.”

강준화의 경우가 정말 특별하고 특이했던 거다. 그런 걸 만들 힘이 있는 자들은 그 오명을 감당할 수 없고, 그 오명을 마다하지 않을 만한 자들에게는 그런 것을 유지할 힘이 없다. 명세훈 사장으로 말하자면 힘도 애매하고, 오명도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김호석 총경은 자기에게 보고 되는 정보를 조작당했더군. 아주 교묘하게 그에게 보고되는 정보를 순차적으로 조작 제공해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제대로 판단도 못 하고 이 일에 끼어들었어. 내가 대한민국 경찰을 뭐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기가 이 민영후라는 친구의 손에 놀아날 정도로 형편없는 곳은 아닌 것 같더군.”

고주희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유진은 별거 아닌 듯 말했지만, 고주희는 한국 경찰의 정보 수집력이 그 깊이라면 몰라도 범위의 광대함으로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들과 같은 조직들도 다들 거기에 빨대 하나씩 꽂고 긴급상황에 써먹을 정도로.

고주희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유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불렀다.

“고 과장.”

“네?”

“내가 예전에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 한 적 있는데, 나 바보 아니야. 그리고 자존심도 굉장히 강해. 이딴 식으로 대충 사람 속이려 들면 기분이 매우 나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당신 바로 직전에 나한테 이딴 헛소리 한 인간은 내가 그 인간 대가리에 구리를 씌운 납탄을 박아주는 걸로 끝냈지. 설마 당신도 그런 끝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

말은 담담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고 있는데, 살기가 바늘처럼 몸을 꼭꼭 찌르는 느낌이었다.

고주희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아직 시간이 부족해서 조사와 정보 취합이 부족했던 거예요. 말씀하신 부분까지 확실하게 조사해서 다시 추가 보고하겠습니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자. 고과장. 당신 말고 다른 사람과 관계 설정하는 것이 귀찮기는 한데, 그래도 이제 슬슬 그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 다음에는 당신들 내부에서 관여한 증거 확실히 가지고 와.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고주희는 또 쫓겨났다.

고주희가 떠나자 차민영이 다가왔다. 그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유미향 교수도 함께였다.

“그 여자 그 와중에도 이건 다 먹고 갔네?”

유미향이 고주희 자리에 있던 커피잔과 접시가 빈 것에 혀를 내둘렀다.

그건 사실 고주희가 담대했다기보다는 일에 바빠 지나치게 굶주려 있던 탓이 컸다. 유진이 태블릿을 읽는 동안 고주희는 빵 냄새에 패배해서 자기도 모르게 허겁지겁 그걸 다 주워 먹었다.

유진이 이번에도 다시 한번 고주희를 너그럽게 대한 이유 중 하나였다. 자기 눈치 보면서 열심히 빵 뜯어 먹던 모습이 조금 짠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둘은 고주희가 떠난 자리에 앉았고, 차민영보다 유미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보내도 돼? 그 새끼 정보를 가져왔잖아. 이용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유미향이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그랬다.

이번에 언급된 이름 민영후가 바로 유미향을 이곳으로 오게 만든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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