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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40화 (14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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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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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여자들의 상관관계 – 15

유진과 차민영과 유미향이 함께 한 대화가 끝나고, 유진은 오후 간식을 만들기 위해 외출했다.

집의 주방이 아니라 가게 주방의 오븐을 사용하러 간 것이었다.

그 사이 유미향은 차분하게 차민영과 대화를 시도했다.

유미향은 유진에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좆같은 대답을 듣기는 했지만,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자기 실수를 스스로 인정했다.

유진이 차민영과 동거 중이라는 이유로 유미향을 그리고 행방불명된 여자들을 도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맞다. 유진의 우호적인 태도와 이미 주다혜를 도와주었다는 것 때문에 착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유진의 나이는 스무 살, 굉장히 어른스럽고 위엄있는 모습에 속기 쉽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직 어린 나이라는 점이었다.

유미향은 대학교수였고, 그것도 미대 회화과의 교수이며, 그녀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다.

젊어서 반사회적 성향을 보인 괴팍한 인물들과 교류가 많았고, 그녀 자신이 그런 성격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는 대학교 교수로서 요즘 스무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성향도 어느 정도 아는 편이었다.

대부분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약자를 동정하고 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호구라고 여기며 경멸했다. 극도의 경쟁 사회인 학창 시절에 주변에 그렇게 베푼 동정과 호의가 배신으로 다가오는 일을 당해봤거나, 비슷한 사례에 대해서 많이 들어본 경험 때문이었다.

미대 입시생들 같은 특기생들의 경우 자기들만의 극도로 좁은 사회에서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끼리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욱 그런 면이 강했다.

또 남자애들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와 비교해서 편의를 받는 여자들, 그리고 페미니즘을 거론하는 여자들에 대한 적대적 경향이 아주 강했다.

남자가 연애를 시도해보다가 실패하는 경험을 가장 많이 아는 나이대인 점과 보통 대한민국에서 국방의 의무에 대한 막대한 부담감과 상실감 그리고 분노를 느끼는 나이대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기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거의 2년 가까이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데, 동년배의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국방의 의무를 면제받으면서 남자 때문에 여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혐오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모든 여자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그 나이대에 그런 경향들이 있었다.

유진은 미국인이지만, 그게 한국의 그 나이대의 남자와 크게 달라질 이유는 아니었다.

미국인이라면 국방의 의무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겠지만, 미국은 미국대로 마초주의 성향이 있는 남자 대부분이 급격한 정치적 올바름 공세에 반쯤 미쳐가고 있는 것이 유명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보면 결과는 간단했다.

유미향은 유진에 대해서 파악하고, 유진이 뭘 원할지를 찾아내야 했다.

지금 사실상 희망이 유진밖에 없는 상태에서 친구들을 다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유진이 그녀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할만한 대가를 제공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우선 파악이 필요한 것은 유진의 성적 취향이었다.

당장 벗으라면 벗을 준비를 마친 자신을! 그리고 아무리 예전에 매춘부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누가 봐도 매력적인 다섯이나 되는 여자를 추가로 자기 것으로 만들 기회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남자라니!

유미향 생각에 그런 남자는 게이 밖에 없었고, 유진은 게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니, 왜 그런지 확인이 제일 급선무였다.

돈도 명예도 그 외 쓸만한 것 많이 가지고 있지만, 가장 확실한 재산은 자기 몸 그 자체니까!

그래서 일단 물었다.

“차 이사. 유진 씨랑 섹스해볼 생각 없냐고 아까 물었지. 그거 유진 씨랑 이야기된 것 아니었던 거야?”

차민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이가 여자를 늘리는 것에 별로 그렇게 적극적인 편이 아니야. 일단 교수님이 동의하면 천천히 기회를 만들려고 했어.”

유미향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무 살 남자애가 여자를 늘리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하룻밤에 여자 셋 한꺼번에 상대한 걸 보면 자기 여자에게만 집중하는 순애 주의자도 아닌 것 같은데? 무엇보다 차민영이 유진의 동거녀라고는 하지만 둘 사이가 무슨 사랑이 불타오르는 끈적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하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유미향은 유진에 대해서 더 묻기 전에 잠시 차민영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고등학생 시절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그 후 학창 시절을 아웃사이더로 홀로 보냈다. 대학에 와서 사람들과 좀 친해지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는데, 그 첫사랑에게 납치당해서 6개월 이상 성폭행과 학대 고문 등의 흔히 말하는 성노예 조교를 당하고 결국 마음이 꺾여서 말 그대로 성노예로 전락했다.

그 성노예 조교는 유미향도 당해본 처지에서 볼 때, 그걸 6개월이나 버텨 낸 차민영의 지독함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유미향은 그녀의 신분과 가족 등 때문에 2달의 시간제한이 걸려 있어서 견뎌낸 거지, 그녀도 차민영처럼 6개월 이상 그 꼴을 당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경험이었다.

차민영과 유미향을 빼면 그걸 2달 이상 버텨 낸 여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몇 달은 고사하고 며칠도 버텨 내지 못한 여자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독하게 버텼기 때문에 차민영은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속으로는 완전히 망가졌다. 다른 성노예들이 그냥 어쩔 수 없이 협박에 굴복해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에 반해, 차민영은 능동적으로 성노예로서의 자신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버렸다.

강준화가 굳이 자기에게 반해서 이 일을 처음부터 도운 차수연이나 그 외 다른 특별한 여자들을 두고 차민영과 결혼까지 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강준화의 노예들은 다들 배신의 가능성이 조금씩 있었다. 그 차수연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강준화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흔들리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직 차민영만이 변화가 없었다. 강준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성노예로의 자신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생활 방식으로 여겨 버리고 바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강준화가 죽었다고 망가져 버린 그 정신 상태가 갑자기 정상화 되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최근 유진을 만나기 전까지 다른 남자는 없었다는 것도 확인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유미향은 문제를 발견해 내었다.

‘씨발, 이게 문제군. 이년 섹스 경험만 많지, 남자와의 연애에 대한 제대로 된 경험이 없고, 섹스나 업무가 아닌 개인이자 사람으로서의 남녀 관계에 대한 개념도 없어. 당연히 저 남자애가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인지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리가 없군.’

누군가가 늘 말하던 대로 차민영은 확실하게 남자 보는 눈도 없고, 개념도 없는 것이 맞았다.

이걸로 유미향은 차민영이 그녀의 관점에서 판단한 유진에 대한 정보는 신뢰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미향은 이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서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질문을 바꿨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된거야?”

“그건 왜 궁금한데?”

“넌 내가 저 남자의 여자, 정확하게 말하자면 섹스 프랜드가 되길 바라는 거잖아. 나라고 아무 남자에게나 다리 벌리는 것은 아니야. 특별한 관계가 되려면 나도 미리 좀 뭔가 알고 판단해야지.”

유미향의 구슬림에 차민영은 손쉽게 넘어갔다.

차민영 입장에서 유미향은 무척 껄끄러운 상대이기는 하지만 뭔가 숨기거나 감춰야 할 필요가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호불호와 상관없이 서로의 어떤 비밀도 확실하게 지켜줄 거라는 절대적 신뢰가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 유진과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놓기 시작했다.

물론 알려지면 유진이 싫어할 것이 분명한 부분들인 그를 쫓는 거대 조직이나, 누가 봐도 평범한 인간의 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몇 가지 특별한 능력들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저 유진이 아주 능숙한 살인 및 전투 능력자로, 살인이나 고문 등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정도만 언급했다.

유미향은 아주 능숙하게 차민영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 가면서 이야기를 파고들었다.

그 와중에 성화와의 관계를 설명하던 과정에서 소진이 친부에 대한 것도 조심스럽게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건 유미향이 다른 쪽 정보 계통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서 화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차민영이 이걸 다른 곳에서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짜증을 느꼈을 뿐이었다.

이야기가 결국 쭉 진행되어 유진의 성적 능력이 굉장히 출중해서 차민영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과 차민영이 모르는 그의 여자가 이 단지 내에 추가로 있다는 것 그래서 차민영은 그 새로운 여자를 견제하기 위해 자기가 알고 있는 여자들로 유진의 주변을 채우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들었다.

이야기를 대충 다 들은 유미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민영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면서도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싫었다.

그래서 하면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은 알지만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넌 저 남자를 제 2의 강준화로 만들고 싶은 거야? 니가 바라는 것이 그런 거야?”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 나누다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말을 들은 차민영이 분노했다.

“아니야! 어떻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우리 모두 그 새끼 노예이기는 했어도 우리 누구도 그 새끼를 사랑하지 않았어! 내가 그 새끼 법적인 아내였다고 해도 어떻게 나한테 그딴 개소리를 할 수 있어!”

차민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집이 떠나가라 악을 썼다. 이 집이 방음에 철저하게 신경 써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집이 아니었다면 아마 바깥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까지 들렸을 정도의 고함이었다.

그런다고 유미향이 주눅이 든 것은 아니었다. 유미향은 오히려 차민영을 다그쳤다.

“아니면 뭔데 이 병신아! 젊은 남자의 마음을 잡아두기 위해서 기껏 한다는 짓이 직접 여자를 붙이는 거라고? 그것도 하필이면 다 그런 끔찍한 과거를 자기하고 공유하는 여자들만 골라서? 그게 그를 제2의 강준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면 뭔데! 저 남자가 매춘만 시키지 않으면 강준화가 아닌 거야? 나중에 그걸 강요하면 거부할 자신은 있고!”

차민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차민영은 충격받은 얼굴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야. 아니야. 난 그런거 원하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아니야.”

몸을 덜덜 떨면서 부정하는 차민영을 보면서 유미향은 약간 동정심이 생기기는 했다.

사실 차민영의 과거를 아는 처지에서 마냥 그녀를 욕할 수가 없었다. 남자를 상대하는 방법으로 아는 것이 그 방법밖에 없으니 그냥 무의식중에 그렇게 된 것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확인이 필요하다.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너 그 사람을 사랑하니? 연인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과 결혼할 거야?”

다시 훅 치고 들어온 생각도 못 했던 질문에 차민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녀는 잠시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의외로 굉장히 빨리 결론을 내렸다.

“그이를 좋아해. 하지만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리고 결혼은 생각도 해본 적 없어. 앞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니가 아무리 미친년이라고 해도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으니, 내가 더 많은 여자를 붙여야겠다고까지 생각할 리는 없지.”

유미향은 사랑이 독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현재의 차민영의 유진에 대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여자나 남자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것으로 더 큰 사랑과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지만, 차민영은 절대로 그런 성향도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해!”

“그래 좋아하겠지. 너를 보호해주고 외로움을 달래주고 불안감을 물리쳐 주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무엇보다 소진이에게 필요한 완벽한 아빠 역할인데.”

“.......”

“네가 그 사람에게 여자를 붙이려는 이유도 그거겠지. 네가 관리하는 여자들로 그를 둘러 싸놓으면 그가 너와 소진이를 두고 떠나지 않을 테니까. 그가 너를 좋아하지 않거나,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냥 그가 떠나는 것이 두려운 거야. 넌.”

너무도 날카롭고 통렬한 비난이었다.

“아니야. 나 그런 여자 아니야. 몸으로 사람 유혹해서 이득이나 뽑아 먹는 그런 여자 아니란 말이야.”

“나도 알아. 넌 그런 여자 아니야. 그런 여자였다면 강준화 그 개새끼가 죽자마자 혼자서 이런 곳에 숨어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을 만들거나, 너를 좋아해서 뭐든지 할 그 수많은 남자 중 하나를 붙잡았겠지. 하지만 그 대신 넌 숨어서 소진이를 보호하는 것을 택했지. 네 말이 맞아. 넌 그런 여자 아니야.”

“그런데 왜?”

“그냥 지금 상황이 그렇다고 이 바보야! 니가 나쁜 년이라서 남자 등골 뽑아먹는 중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희들 상황이 그런 꼴이 되어가고 있다고!”

차민영은 더 이상 견뎌내지 못했다.

차민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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