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지루하고 구질구질 한 옛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고 넘어갈까 합니다.
이 강준화가 성노예 하렘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증오하던 가문의 도움이 있었다고 좌절하고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가 원래 이 이야기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완전 100% 에로 성인물에, 유니콘 사냥물이 될 예정이었던 거죠.
여러가지 이유로 초기 컨셉이 버려지고, 지금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 제 머리 속에 남아 있던 과거 이야기들이 계속 제 제어를 뚫고 뿜어져 나오고 있네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이 이야기를 무조건 이번 화에 정리하려고 드니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이야기가 또 미친 듯이 제어가 안됩니다. ㅠㅠ
그래도 무조건 이번 9화 내에서 이 이야기는 완전히 처리하고, 다음 화부터는 좀 더 과거와 상관없는 현재의 이야기로 나가겠습니다.
몇 편만 더 양해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09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여자들의 상관관계 – 25
유진에게 전달한 태블릿의 정보를 작성할 때부터 이미 유진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던 고주희는 냅다 고개부터 땅에 박았다.
어차피 유진은 물론이고 동석한 여자들에게 체면 챙길 생각은 없었다. 지금 고주희는 그녀들의 앞에서도 고개를 들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고주희는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살려주세요. 이건 제가 결정한 것 아니에요. 전 알자마자 곧바로 달려온 거라고요! 거기에 회사 공식 입장도 아니에요. 이거 확인되자마자 본사도 지금 난리예요. 어쨌든 당신이 요구한 증거다 가지고 왔잖아요!”
“그래, 가지고 왔지. 범인이나 관련자들은 다 도피시킨 다음에 말이야. 하.”
유진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어이없는 마음은 고주희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어색했다.
‘씨발.’
고주희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어젯밤을 떠올렸다.
** ** **
고주희가 제대로 된 핵심을 파고들어 오기 시작하자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고 생각한 전략기획2실장은 고주희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더러운 이야기였다.
강준화 부친은 성화 방계가 직계를 상대로 일으킨 일종의 반란 과정에서 죽었다. 정작 원흉인 모친은 살아남아 강준화를 버리고 재혼했다. 강준화는 조부모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그 과정에서 성화와 부모의 일을 알고 완전히 일그러졌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주는 여자를 학대하는 이상한 방식으로 발현되었다. 들키는 것을 겁내지도 않았다. 세상에 알려지면 성화 얼굴에 먹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준화 생각이었다.
전략기획실은 초기에는 그런 강준화를 보호하다가 나중에는 처리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누군가가 강준화의 여자들을 이용해서 성상납 로비 조직을 비밀리에 운영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에도 이미 제2부속실의 2인자 이자, 전체 전략기획실에서 서열 5위였던 현재의 전략기획2실장이 이 계획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는 어린 강준화가 최악까지는 가지 않도록 보살핀 책임자였고, 그래서 강준화에게 정이 있었다.
그 당시 상황에서 강준화가 살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그룹의 전체적인 기조 와도 맞지 않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회장님이나 사모님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룹 내에는 당시 회장님의 성품으로 인해 경쟁 그룹들에 비해 로비력이 떨어지는 것에 불만이 있는 세력들이 있었고, 그 세력의 대표들이 바로 차기 후계자 싸움을 벌이고 있던 회장님의 자녀들이었다.
후계자들의 은근한 묵인 혹은 노골적 지원을 받으며 제2부속실은 관련 팀까지 만들어서 강준화와 그의 성노예 하렘을 보호하고 관리하고 로비가 필요한 상대들과 연결하여 일종의 사교 클럽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조직은 만들어낸 그들조차 기대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냈다.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였다. 이 정도면 나중에 강준화에게도 성화에 한 자리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차민영이 다른 사람도 아닌 유성준의 아이를 배고, 강준화가 갑자기 사고로 죽고, 소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주희가 소진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유초혜 여사가 관련된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 사항에 대해서 회장님은 몰라도 그녀는 용납하지 못했다. 단지 같은 여자들이 겪은 불행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고주희는 이 부분에 대해선 실장에게 따로 물었다. 사모님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럼 사모님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셨던 건데요?”
“준화의 아내가 유성준 이사의 아이를 뱄다는 것. 잊지 말게 고과장. 회장님과 사모님은 그분들 성격이나 품성과 상관없이 젊어서 처음 두 분이 사랑에 빠지신 이래 이날 이때까지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면서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오신 분들 일세. 그래도 주변에서 보고 들어오신 것들이 있으니까, 자식과 손자들이 본인들과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참고 있으셨지만, 손자놈이 조카 손자 놈에게 아내를 빌려서 가지고 놀다가 임신까지 시켰네. 그 와중에 손자 놈과 조카 손자 놈은 그렇게 생긴 아기를 죽여서 문제를 없애려 했지. 그걸 어떻게 참으시겠나. 건설 쪽이 그렇게 개판을 치는데도 당하기만 하던 재단 쪽이 그렇게 조용한 것이 그냥 점잖아서 그런 줄 알았나, 설마?”
생각이 부족하다는 듯이 고주희를 타박하는 실장에게 고주희가 짜증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 강준화가 그룹 혈통인지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요. 잘도 그걸 담당자인 저에게 까지도 숨기고 계셨군요. 이렇게 일이 커질 때까지 말이죠.”
“흠흠.”
민망한 실장이 헛기침으로 고주희를 외면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후 대 숙청이 있었다. 관련자들이 죽거나 회사에서 쫓겨나는 예는 없었지만, 상당수가 한직 밀려나거나 본사에서 쫓겨나 지방이나 다른 계열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재벌 그룹 중 한 곳에서, 음지에서 나마 세상을 움직이고 있던 그리고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던 그들에게는 너무도 굴욕 스럽고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암중에서 치열한 후계자 싸움을 벌이고 있던 회장님의 두 딸에게 너무 쉽게 포섭되었다.
여기까지 듣던 고주희가 혀를 찼다.
유진의 말이 맞았다. 둘 중 누구인지는 아직 말이 안 나왔지만, 이건 성화 내부의 짓이었다.
‘그 인간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리 봐도 단순히 그냥 찍은 것은 아니었는데.’
찍은 것이 맞다. 단지 유진에게는 그 찍기의 바탕이 된 예감이 단순히 운이나 기분의 영역이 아니라 초월 인지의 영역이 아닐 뿐.
어쨌든 고주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인가요? 이 상황을 일으킨 진짜 배후가.”
실장은 고주희의 질문에 잠시 시계를 봤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고 과장 알고 있나?”
“또 뭐를 요?”
“자네 선배 중에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 말이야. 어디서 위험한 일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되는 회사 기밀에 손대서 제거당한 것도 아닌데 그냥 갑자기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제법 많아.”
고주희가 실장을 노려봤다.
실장이 말하는 선배가 그냥 이 회사의 직장 선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고주희와 같은 여자들, 어려운 시절 회사 차원에서 도와주고 회사가 받아들여서 회사를 위해 사용하는 그녀와 같은 여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고주희가 늘 걱정하듯이 가족도 지인도 없어서 쥐도 모르게 많이 실종되고 잊힌 사람이 많았다.
“이제 와 협박이라도 해 보시려는 건가요?”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행방불명 된 자네 선배 대부분이 상상과 달리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거네.”
“예?”
“고 과장 자네는 좀 특이한 편이지만 자네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성향이 있지. 다들 외롭고 힘들게 살아와서 그런지 정에 약한 편이야. 그리고 어리고 젊은 남자들보다 어른스럽고 성숙한 남자들에게 많이 약하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데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고주희가 어리둥절했지만, 실장은 이제 고주희의 반응에 상관없이 스스로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효진이도 그런 여자였어. 고아원에서 자라 여대에 다니고 학창 시절 내내 우리 장학금을 받기 위해 기숙사에 처박혀 공부만 한 아이였지. 그래서 그런지 남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어. 난 그냥 예쁜 아이에게 관심 있는 음흉한 과장 나부랭이에 불과했는데 말이야.”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깨달은 고주희는 많이 놀랐다. 전략기획2실장이 그룹 전체를 따져도 무난하게 20위권 안에 들어오는 이 자리에 앉은 것에 대한 평가 중 하나는 그의 깨끗한 사생활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 유명선과 유초혜의 전설적인 사랑이야기 외에도 그 둘의 영향을 받은 부회장 유준선, 그리고 초기 유명선을 따른 지금의 주요 가신들까지. 성화 그룹은 재벌 그룹 답지 않게 깨끗한 사생활을 가진 경영진으로 유명했고, 그걸 관리 못하면 승진이 어렵다는 평가가 있는 회사였다. 아래 세대로 내려가면 다른 재벌보다 더 개 쓰레기가 되었다는 평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직 현 세대는 그랬다.
“별생각 없이 보낸 하룻밤이었는데 스물 하고도 셋이나 먹은 아이가 처녀였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지. 그 와중에 자기를 책임지라고도 못 했어. 씨발. 내가 유부남인데 뭘 어떻게 하겠냐고, 자기는 그냥 좋아하는 나랑 하룻밤 보낸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했지. 말해보게. 고 과장. 자네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나?”
“저라면 그런 일을 애초에 저지르지도 않았겠죠.”
고주희는 아주 차갑게 경멸을 담아 대답했다.
고주희 본인이 바로 지금 실장과 같은 일을 저지른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엄마는 아버지 도움을 받아 몇 년 고주희를 기르다가 불륜이 들통나고, 아버지의 지원이 끊어지자 그녀를 버렸다.
고주희가 이 좆 같이 무서운 회사에서 살 떨리게 두려운 사모님에게 계속 충성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그녀가 비록 목적이 있었더라도 고아가 된 고주희를 후원해 준 사람이고, 고주희에게 세상에 다 자기 부모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니까.
“흐흐. 자네는 그런 가? 하긴 자네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설득력 있는 말이군.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네. 그리고 일을 저지른 이상 책임을 져야 했지.”
실장은 고주희의 친부보다는 훨씬 나았다. 아니 어쩌면 더 나빴다고 해야 하나.
실장은 아내와 이혼을 준비했다. 중매로 결혼해서 서로 간에 별로 정도 없는 사이이자, 부잣집 딸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아내보다 자기가 세상에 전부인 것이 분명한 어린 후배를 선택했다.
“하지만 경고가 내려왔지.”
“경고요?”
“응.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직장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가 어디 감춰지나? 부서 내에 소문이 돌았고, 위선에서 그걸 알고 엄중하게 경고가 내려왔지. 내가 자네들에 대해 알게 된 순간이자, 존경하던 회장님과 사모님의 진짜 얼굴을 본 순간이었고, 이 회사에서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박살이 난 순간이었지. 흐흐흐.”
실장의 표정이 변했다. 노년에 접어든 나이에도 날카롭고 이지적인 느낌이 강한 그의 인상이 지금은 매우 음침해 보였다.
“그때 도움의 손길이 내게 다가왔네. 알고 보니 효진이 같은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고, 사내에 나와 비슷한 임직원도 한둘이 아니었지. 우리는 서로 뜻을 같이해서 뭉쳤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 감옥 같은 곳에서 구해내겠다고 뜻을 모은 거지.”
고주희는 참 병신 같은 남자들의 병신 같은 모임에 거창한 의미를 붙인다고 경멸했지만, 그래도 아예 남 이야기가 아닌 터라 참고 계속 들어줬다.
“모두 힘을 합쳐서 자기 여자들을 조심스럽게 빼돌리기 시작했네.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지. 사실 별거 아닌 일인데 위험한 일처럼 꾸며서 거기서 잘못된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 아예 대놓고 외국으로 출국시켜서 거기서 위조 신분으로 신분을 세탁하기도 했지. 90년대가 해외여행이 막 자유화되던 시기이고, 그룹이 해외 지사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던 시기라서 생각보다 여러모로 관리가 허술한 편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최고 위선에서 어느 정도 묵인해 주고 있으셨던 일이라서 가능한 것이었지만. 나도 안전하게 효진이를 미국으로 빼내는 데 성공했지. 덕분에 우리 딸 제시카는 완벽하게 합법으로 미국 시민권도 얻었고 말이야.”
계속되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이제 슬슬 끊어야 하고 고민하던 고주희는 실장이 거론한 딸의 이름에 순간 움찔했다.
제시카라는 특이한 이름을 들어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 기억을 뒤져서 한 7년쯤 전에 자기 직속 상관이었던 과장의 결혼식장에서 본 신부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제시카 심. 한국계 미국인 다운 이름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전력기획2실장의 이름은 심무진. 심씨였다.
‘씨발.’
고주희는 전략기획2실장이 이 일에 나선 이유를 확실하게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