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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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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01
아이젠하워 행정동 빌딩은 미국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한때는 세계 최대의 사무용 빌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 중요성에 비해 정말로 인지도가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어떤 저명한 작가는 ‘미국에서 가장 멍청한 빌딩’이라고 평가했고, 세계 최악의 무기의 사용승인을 내리고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로 벌어진 전쟁의 마무리를 맡았던 옛 미국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크고 흉물스러운 건물’이라고 평가했다.
연면적 10 에이커에 566개의 사무실이 있는 이 건물은 미국 백악권 바로 옆에 위치한 백악관의 업무 지원 빌딩으로,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백악관 실무진의 거의 대부분은 바로 이곳에 근무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백악관 서쪽 별관인 웨스트 윙이 백악관 직원들의 근무지로 유명하지만, 거기는 진짜 소수의 최측근만 근무하는 곳이고 실제 직원과 참모진 대부분은 이곳에 근무한다. 웨스트 윙 근무자 중 최고위직인 부통령도 사실 웨스트 윙보다 여기가 주 업무 장소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이유가 이 비밀회의를 웨스트 윙이나 백악관 본관인 오벌 오피스 지하가 아닌 이 아이젠하워 행정동 빌딩의 지하 보안 회의실에서 열리게 만들었다.
“부통령님 오셨습니다.”
남녀노소, 군인, 관료, 정치인과 민간 기업인에 학자까지 섞여서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던 회의실에 비서의 알림과 함께 미합중국 부통령 존 라이언이 들어섰다.
“미안합니다, 로버트. 미안해요 앤. 미안해요, 모두. 잭과 상의가 좀 길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한 그의 사과에 모두 조용히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1분 1초가 아까운 그들을 한 시간 가까이 대기 시킨 것은 아무리 그가 차기 혹은 차차기에 대통령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현직 부통령이라고 해도 몹시 무례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자 대부분은 그냥 웃어넘겼다. 현재의 넘버 원과 미래의 넘버 원의 비위를 한꺼번에 거스르는 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도 꽤 껄끄러운 일이었다.
어떤 할머니 한 명 빼고.
“괜찮습니다, 존. 하지만 예정 회의 시간을 줄이기는 어려우니, 이다음 일정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미리 처리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회의실에서 회의 테이블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인물 중 아예 그런 것이 없는 민간인을 제외하면, 가장 공식 의전 서열이 낮은 앤 헤이즈가 부통령 존 라이언을 타박했다.
일흔 살까지 일이 년밖에 안 남은 이 할머니는 여기 있는 사람 중 가장 연장자였을 뿐만 아니라, 부통령 존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전설로 불리던 여인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 중 하나라고 현재는 실권 하나 없는 부통령인 존이 아니라, 현재의 대통령 잭이라고 해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 정도 중요한 회의에 임기 말 레임덕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대통령인 잭이 얼씬도 안 하는 이유가 바로 그녀이기도 했다.
존은 재빨리 손을 들었다.
“그건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다 처리했습니다. 제 최우선 업무가 발생하지라도 않는 한 오늘의 제 업무는 이 회의가 전부입니다.”
미국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부속이자 토템에 가깝다. 존의 최우선 업무가 발생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가 한 농담은 꽤 과격하고 무례한 이야기였다.
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보여도, 젊은 보수 강경파 정치인답게 자기를 만만히 보지 말라고 기싸움을 벌이는 언행이었다.
앤 보다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더 긴장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공식적으로는 최고 책임자인 존이 사실 앤에 관한 기밀 정보에 가장 어두운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앤은 대범하게 무시하고 넘겼다. 그녀는 주도권 싸움 것에는 의욕을 잃은 지 벌써 꽤 되었다. 의무감으로 이 일에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다가 누가 사고 쳐도 유진에게 직접 피해만 가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었다.
존이 저러다가 실수해서 미국의 국익에 손해가 가더라도, 이제는 상관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의 상태를 대충이나마 짐작하는 다른 사람이 나섰다.
“이야기 끝났으면 시작합시다. 저 친구 너무 오래 서 있군.”
로버트 E 하인리히 의원은 여기 있는 사람들중에서 앤이나 존을 껄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거물이었다.
자그마치 6선의 경력을 자랑하는 상원의 노장이자,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인 그는 존 라이언 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이자, CIA 배신으로 나락에 떨어졌던 앤 헤이즈의 구원을 지원한 당사자로 두 사람 모두에게 받을 빚은 있어도 눈치 볼 이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로버트의 지원을 받은 발표자가 그에게 눈빛으로 감사를 보내고 입을 열었다.
육군 정보 장교로 현재 중령 계급인 그는 미국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통틀어서 수위권에 들 것 같은 권력자들로 가득 찬 이 회의실에 이미 기가 죽어 있던 참이었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 여기까지 온 인물답게 막상 자기 업무를 시작하자 전문가의 느낌을 한껏 뽐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보시게 될 내용은 어제 낮에 있었던 TM의 전투를 기록한 영상과 그에 대한 분석 자료들입니다. 전투가 벌어진 장소는 이곳입니다. 가장 가까운 주변 인가는 1.5마일 정도 떨어져 있고, 험준한 산악 지형과 여러 가지 이유로 전투는 시작부터 끝까지 외부에는 완전히 비밀인 상태로 진행되었습니다. 궁금하거나 확인하고 싶으신 부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질문은 일단 준비된 자료부터 다 보신 다음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유가 있나?”
“저를 포함해 현장에 있던 관찰 조사팀과 나중에 영상을 확인한 분석팀 모두 실제로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분석 결과와 판단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걸 보신 다음에 저희가 내린 분석과 판단을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무진이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판단을 존중하지. 시작하세.”
“감사합니다.”
은연중 회의 주제를 맡은 로버트 의원의 말을 시작으로 중령은 준비되어 있던 자료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첫 장면은 동영상이었다.
거대한 모니터에 여러 개의 화면이 겹쳐서 떠올랐다. 가장 중앙에 헤드 캠으로 바라보고 있는 영상이 떠올랐다. 흔하게 보는 특색 없는 산의 나무들이 보였다. 그리고 각 모서리에는 지형 지도, 정찰 드론 영상, 위성 촬영 영상 등이 보조를 위해 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영상들이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영상이 플레이되는 순간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야 말로 모두의 주목을 끌었다.
“내 목소리나 들리나, C? 화면도 잘 나오고?”
“잘 나오고 잘 들립니다, M. 하지만 상태 점검을 위해서 조금만 더 아무말이라도 계속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신기하군. 이 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영역에 전파 방해와 통신 차단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한 건 당신 아닌가? 이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우리나라가 국방과 과학에 쏟아부은 예산과 인재가 어느 나라들과는 달리 예산을 빼돌리기 위한 사기극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해 드리죠.”
“유럽 애들 말인가? 하긴 최근 10여 년간 그쪽 나라들은 나랑 내 친구들 해부하는데 미쳐서, 이쪽 기술은 좀 등한시한 모양이기는 하더군. 아시아 국가들에도 밀리는 것 보니까.”
“그러고 보니 영어가 굉장히 능숙하고 발음도 훌륭하시군요, M. 유럽에서 지내신 기간 동안 영국에는 거의 계시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프랑스, 스페인, 독일에서 주로 보냈지. 하지만 내가 본 인간의 반 이상이 영어 사용자였어. 참고로 영국인은 정작 소수였다고 말해두지.”
“영어를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한국어나 불어, 독어, 스페인어 아무거나 사용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만큼 본인이 다재다능한 언어 사용자라고 뽐내는 건가? 재미있군. 하지만 사양하겠어. 이거 당신도 지금 당장만 쓰려는 것이 아니라 기록해서 위에 보고용으로 쓸 생각인 거잖아. 당신 상관들도 다들 당신처럼 다국어 사용자일 것 같지는 않군. 미국인들은 자막을 싫어한다면서?”
“거기까지 신경을 써 주시다니 놀랍군요. 당신이 우리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너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야. 그냥 누군가 최악의 경우가 되더라도 미국은 가능한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것과 나도 그걸 꽤 납득하게 되었다는 정도만 이야기해 두지.”
“그런 제대로 된 조언을 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군요.”
“너도 아는 사람일 것 같은데?”
“그녀인가요?”
넋을 잃고 여기까지 듣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들도 모르게 앤 헤이즈를 향했다. 하지만 정작 앤은 무심하다가 못해 약간 짜증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지. 사실 그녀의 직속이라는 점에서 당신도 아슬아슬해.”
“흠.”
계속해서 이어지던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C가 충격이라도 받은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신 상태나 기타 상태 점검 끝났습니다. 상태 올그린. 잡담은 여기까지 하죠. 이제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M. 행운을 빕니다.”
“행운은 내 편인 적이 별로 없지. 그런 것 따위 기대하지 않는다. 시작하겠다.”
그리고 헤드 캠으로 보이는 영상 속에 멈춰 서 있던 나무와 바위들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왁!”
누군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화면 속의 경치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급격한지 마치 누군가 화면 밖을 향해 나무와 바위를 집어 던지는 느낌이었고, 좌우상하로 맥락 없이 휙휙 변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 중에는 멀미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다.
“웁. 자, 잠깐!”
누군가의 요청으로 잠시 회의가 중단되었다.
화면이 멈추자 몇몇이 헛구역질하거나 차가운 물을 마시면서 속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누군가 중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거 정말 TM의 목소리인가? TM과 이런 정도로 관계가 진전되었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조인트 오퍼레이션이 가능할 정도로?”
어지간하면 중령도 영상 끝난 다음에 답변드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물어본 인물이 너무 거물이었다.
에릭 클라크는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사령관으로 그 막중한 직책과 별개로 어깨 위에 빛나는 4개의 별로 자신을 나타내는 인물이었다. 중령은 이 정복 군인의 정점에 선 인물의 질문을 도저히 나중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이번 경우는 여러모로 특별한 것으로, 사실 이번 상황이 한국 지부의 첫 접촉이었습니다. 제안했던 책임자인 미리엄 코너 참사관도 보고서에 TM이 이걸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의견을 첨부했을 정도입니다.”
“그럼 TM은 왜 이걸 왜 받아들인 건가?”
“현장 팀과 실무팀은 그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 정도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첫째는 현재의 남한 상황입니다.”
“남한 상황?”
“바로 며칠 전에 TM이 남한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술집에서 고위 경찰 관계자와 재벌 가문의 일원 그리고 지역 마피아 두목을 포함하여 수십 명의 마피아와 전직 특수 부대 출신 경호원을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현재 남한 정부 차원에서 경찰, 정보조직, 군대까지 총 망라된 대책팀이 가동 중인 상황입니다. TM과의 연관성은 아직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TM이 혼자 뭘 더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그 정도 판단은 한다는 거군.”
“네. 파리 사태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무작정 사고부터 치고 보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술집 학살 사건도 정말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그런 짓 할만한 존재가 그 밖에 없다라는 점에서 그 사건을 TM이 했다는 것으로 추정하고, 그에게 직접 확인한 다음에야 확신할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저희도 증거는 전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제 멀미하던 인간들도 다 진정하고 다시 준비를 마친 상황이라서 브리핑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맞았지만, 참석 인원 모두가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중령은 할 수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둘째로 TM은 이 전투에서 단순히 적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질 구출이 목적이었습니다. 무작정 이기면 그만이 아니라 최대한 은밀한 행동과 상대방과 해당 지역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한 것은 물론, 일이 끝나면 구출한 인질을 치료하고 뒤처리를 해줄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TM 주변에 사람과 조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번에 우리 쪽 지원을 받아들였습니다.”
클라크 대장은 인질이 된 여자들은 누구인지, 여러 가지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지만 거기까지 묻지는 않았다. 그런 건 나중에 브리핑 끝나고 묻거나 보고서 보고 확인할 일이지 지금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 마지막은?”
“실무진들은 마지막 이유로 TM이 경고와 함께 함정을 팠다고 판단했습니다.”
“경고? 함정?”
“네. 그리고 이 부분은 영상을 보지 않으신 상태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런가?”
클라크 대장이 주변을 살피고는 중령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때문에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군. 다시 시작하게.”
“네. 감사합니다. 그럼 여러분 영상에 집중해주시고, 이제는 혹시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분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진행하겠습니다. 문제가 생기시는 분은 개별적으로 해결 부탁드립니다.”
중령은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고는 멈췄던 영상을 다시 플레이했다.
이리저리 날뛰던 영상에 이제는 허공을 날아가는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