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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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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02
‘제대로 갖춰 입고, 제대로 챙기니까 확실히 편하네.’
나무와 수풀 간간이 보이는 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뛰어가며 유진은 매우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몸에 딱 맞춰진 내의와 산악 전투복은 피부로 느끼는 재질부터 시작해서 동작의 편의성과 은닉성 등 모든 것이 그냥 대충 주워 입던 옷들과는 느낌부터 전혀 달랐다.
거기에 따로 상대방 무기 노획을 노릴 필요 없는 끝내주는 수준의 미육군 제식 M4A1 carbine 소총과 M17 권총, 소모되는 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한 탄창에, 역시 잔뜩 챙겨온 섬광폭음탄과 세열 수류탄, 연막탄, 가스탄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몇 개 챙겨온 클레이모어까지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등 뒤에 폭탄만 잔뜩 들은 가방을 메는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묘했지만, 그 폭탄들에 여러모로 고생한 경험이 많은 유진은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M4A1 carbine과 M17 그리고 폭탄류는 작전 끝나면 남은 것은 다 반환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래도 탄환류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
M17은 유진이 서브로 보유 중인 권총인 SIG220과 군용과 민수용의 차이만 있는 물건이라서 탄창과 탄환이 다 호환되기 때문에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거기에 싸우면서 뒷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정보 차단은 미리엄이 CIA한국 지부뿐만 아니라 미군까지 동원해서 지원 중이었고, 뒤처리도 그녀가 다 맡기로 했다.
지금부터 유진이 상대할 적의 정체를 생각하면 그녀와 미국이 뭘 노리는지 뻔히 보였지만, 그건 이제 슬슬 포기하기 시작한 부분이었다.
지원 나온 미군과 미리엄의 부하들 중에서도 몇 명 느껴지는 인원이 있을 정도였고, 다시 그중 몇 명은 유진의 오리지널이나 그것을 복제한 것 혹은 친구들의 몸에서 개량된 것도 아니고 그 복제 개량품을 재복제한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세포, 우리 피, 우리 장기 가진 놈 다 죽이고 지우려면 정말 세계 멸망이 더 빠를지도.’
그 점을 빼고 보면 불만이 없었다.
싸우기 전에 이 정도로 든든한 경우는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다.
제대로 지원받으면서 싸우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자 점점 더 욕심도 생겼다. 미국과 친해지자는 욕심은 아니고 이런 지원이 가능한 내 조직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한편으로는 많이 신경에 거슬렸다. 이런 일이 가능한 자들이 치밀하게 준비하고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막을 것인지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중을 위한 지금 당장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목적지가 눈앞이었다.
그곳은 험난한 오지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쉽게 돌아다닐 만한 곳도 아닌 바위 절벽과 경사가 가파른 산지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 안의 건물이었다.
위치상으로는 별장이 유력하지만, 생김새는 절대 별장이 아니었다.
회색 시멘트만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 2층 건물은 명백하게 실용성과 효율만을 추구했고, 마당에는 조경수 하나 없이 잔디도 아닌 자갈만 깔려 있었으며, 사방에 담벼락 대신 매쉬 울타리를 치고 울타리 바깥으로 5~6미터 거리까지 시계 청소까지 되어 있었다.
정면이나 주변 어느 쪽 방향으로 진입해도 최종 순간에는 감시 카메라나 경계 병력에 노출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미리엄의 팀이 추천하고 유진이 선택한 방향은 후면의 절벽 쪽이었다.
말이 절벽이지 사실 7~8m 정도 높이의 경사가 몹시 가파른 바위 산등성이에 가까웠는데, 어쨌든 사람이 맨몸으로 다닐만한 곳은 아니라서 거기가 가장 감시가 약할 것이라고 미리엄의 팀이 분석했다.
유진이 봐도 절벽 위에 사람을 배치할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시계가 나오지 않으니 가장 취약해 보이는 지역이었다.
단지 상대도 그걸 아는지 장거리 촬영 과정에서 동작 감지기나 여러 종류의 부비트랩이 확인되었고, 건물 옥상에서 그쪽을 바라보고 있는 고정 감시 카메라도 여러 개 있었다.
실제로는 오히려 침투 중 발각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유진은 빠르게 절벽으로 달려간 후,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지점에서 점프로 뛰어올랐다. 마치 나는 것처럼 허공을 달린 후, 경사지 끝을 넘어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다음 약하지만 확실하게 물리력이 있는 염동력을 발아래 쪽으로 형성해서 추락에 가속도가 발생하는 것을 줄였다. 그리고 육체 관절과 근육을 아주 철저하게 컨트롤해서 충격을 줄였다. 부드러운 흙바닥의 도움까지 합쳐지며 그야말로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소리 없이 착지하는 것에 성공했다.
자신했던 것처럼 완벽한 착지였다. 그리고 착지 후 놀라 버렸다.
‘이건, 생각 이상인데?’
바로 앞에 보초가 분명한 인원이 엎드려서 잠복하고 있는데, 얼마나 정교하게 위장하고 있는지 유진조차 절벽 위에서는 놓쳤다. 몸의 대부분이 아예 땅속에 파묻혀 있고, 상반신 일부만 주변에 맞춰 위장하고 있는데, 유진의 눈으로도 제대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파리에서의 교전 이후에 상황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주목한 능력, 자기 몸에서 나온 물질들이나 그것을 복제한 물질을 이식받은 자들의 몸에 있는 그 물질, 통칭 초인 에센스를 느끼는 능력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놓쳤을 수도 있었다.
그동안 유진이 상대했던 특수 부대나 슈퍼 솔져 부대들은 치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정교한 연계를 선보이거나, 특별한 육체 능력을 활용하여 고도의 화력전을 펼치는 방식으로 싸우는 자들이었다. 이렇게 은밀하게 싸우는 자들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잠복 후 건물 정면 쪽만을 주시하고 있었고, 등 뒤로 다가온 유진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유진은 기척 없이 다가가 뒤에서 그의 턱과 뒷머리를 잡은 다음에 놀란 상대가 소리라도 내기 전에 목을 가볍고 빠르게 돌려 버렸다.
- 우드득.
목뼈가 작살나는 작은 소리만을 남긴 채 상대는 비명 하나 피 내음 한 방울 풍기지 못하고 즉사했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에센스의 양을 생각하면, 본인은 이렇게 간단하게 죽기에 몹시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직 그 어떤 실험체와 슈퍼 솔져도 뇌와 심장, 척수 손상을 버텨내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유진 본인도 뇌는 자신 없었다.
소리 없이 경계병을 정리한 유진은 상대방의 머리에 걸려 있는 전술 헤드셋을 발견했다.
이 정도 정예라면 주기적으로 생존을 채크 할 것이 분명했다.
다음 채크까지 얼마나 시간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죽인 자를 기준으로 건물 주변을 살폈다.
죽은 자와 비교해서 비교적 쉽게 위장이 확인되는 인원이 건물 사방으로 넷이나 더 있었다. 모두 상호 간에 엄호 및 견제를 할 수 있는 위치로, 들키지 않고 제거하는 일은 유진도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들 넷은 상호 엄호하는 중이었지만, 지금 유진 손에 죽은 자는 그들의 상호 엄호 망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서로를 엄호하는 과정에서 쉽게 넷의 위치를 찾았던 것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첫 번째로 죽인 인원이 나머지 넷을 백업하는 최종 포지션인듯했다.
나머지 넷의 에센스를 다 합쳐도 이 하나만 못한 것으로 보아 정말 중요한 인물이었다.
처음 운은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언제나 유진에게 친절한 적이 별로 없었고, 많은 경우 첫 행운은 이후의 불행을 위한 유인책일 뿐이다.
고가치 목표물을 처음부터 쉽게 제거한 것과 달리, 이후 유진에게 몹시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전에 구한 건물 설계도로, 건물 뒤쪽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뒷문이 없었다. 주변과 미세하게 다른 시멘트색으로 보아서 원래 있던 문을 떼어내고 벽으로 메워버린 것 같았다.
거기에 건물 뒤편의 창문들은 하나같이 침투 통로로 쓰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것들밖에 없는 것으로 부족해서, 전부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유진의 힘으로 부수지 못할 것은 없었지만, 소리 없이 안쪽에 들키지 않고 부수는 것은 무리였다.
위치상 관측 사각에 있어서 사전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점이 좀 치명적이었다.
거기에 건물 주변은 별달리 엄폐가 가능한 곳이 없었다. 죽인 인원의 생존 채크까지 고려하면 이대로 가만히 생각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유진은 만약을 대비해 자신이 죽인 관측병을 겉으로 보기에는 최대한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일단 할 수 있는 최선을 위해 건물 벽에 바싹 달라붙어 바닥에 엎드렸다. 건물 안쪽에 있는 사람이 유진을 확인하려면 창문 밖으로 머리를 완전히 내밀어야 가능한 위치지만 창살 때문에 불가능하니, 임시적으로 시간을 벌 정도는 되었다.
물론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고, 문이 있더라도 그곳으로 진입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 예비 계획이 있었다.
유진은 입가의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려 모스 부호로 신호를 보냈다.
- 1번 루트 실패. 2번 루트로 이동한다.
이 건물의 2층은 반은 건물, 반은 옥상으로 되어 있었다.
아주 기초적인 군사 상식만 있어도 절대로 관측병이 배치될 위치이고, 옥상으로 올라서면 안쪽에서 감시하고 있을 감시병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각이 없어서로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루트였다.
구조상 여자들이 감금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실로 가는 계단과 가장 동선이 먼 입구라는 점도 이유였다. 하지면 정면 돌파를 할 생각이 아닌 이상 여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
미리엄의 통신이 들어왔다.
“인근 주민들에게 최근 몇 년간 그 집으로 대량의 건축 자재가 반입되었다는 이야기를 확인했습니다. 뒷문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 구조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니 사전 구조도는 참고만 하십시오.”
작전을 시작함과 동시에 미리암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가장 가까운 인근 마을에 팀원들을 몇 명 파견해 두었다. 팀원들은 지금 작전을 진행 중인 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부동산 업자로 위장하여, 마을 노인들에게 술을 접대 중이었다.
실제로 작전이 완료되면 뒤처리를 위해서 이 건물과 인근 부지를 사들일 예정이었고, 작전 중에 혹시나 마을 사람들이 이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차단하는 것과 이런저런 자잘한 정보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이런 정보는 미리미리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CIA를 포함한 미국 팀들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목표에 대한 정보 수집을 결정하고 2~3일, 작전 실행이 결정된 지 하루 만에 취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진은 오히려 미리엄과 그의 팀이 이렇게 실시간으로 상황 변화에 따라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순간적으로 첫 탈출 시도 반란 당시 아무리 잘 훈련된 정예라고 해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진압부대에 자신들이 패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지식만으로는 안돼. 경험이 절실하군, 정말.’
심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유진의 지식 습득인 동화 능력은 단순 기술과 기초 상식에 대해서는 지식과 숙련도까지 주는 사기적인 능력이지만, 전문 기술에 대한 지식은 주지 않고, 적절한 기술 사용을 위한 판단력도 주지 않는다.
‘이건 나중에.’
잠깐 떠오른 고민은 날려 버리고 다시 현재에 집중했다.
미리 파악하고 있던 내부 구조가 의미를 잃었다는 말은, 내부 구조를 고려해서 적의 배치를 예상했던 것도 쓸모가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그럼 현장에서 직접 내부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었다.
유진은 청각을 증폭해서 미세소리를 잡아내는 방식으로 내부의 기척을 살폈다.
이런 숲속에서는 워낙 자연이 만들어 내는 미세 소음이 많아서, 소리를 이용해 일정 범위를 탐색하는 일에는 다른 일은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상대가 기척을 숨기는 것에 매우 능숙한 특수부대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사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익숙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부산한 소진이의 움직임이나 상태를 살피거나, 집 주변을 간간이 훑어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복제된 초인 에센스를 느끼는 5감 이외의 감각까지 합쳐지자 어떻게든 집안 내부의 인원들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이상했다.
‘7명? 어째서지?’
건물 1층에 4명, 2층에 2명, 지하로 여겨지는 부분에 1명. 건물 밖에 4명, 자기 손에 죽은 1명을 포함해도 총인원이 13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 중 자기가 찾고 있는 납치된 여성은 지하실의 1명뿐이었다.
나머지 여자 4명은 물론이고, 우선순위 목표인 민영후로 여겨지는 기척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