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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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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04
유진이 갑작스럽게 창문에 달린 방범 쇠창살을 뜯어내면서 시작된 전투는 섬광폭음탄이 연달아 터지고, 연막탄 여러 발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실내를 가득 채우는 바람에 카메라로는 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미리엄은 일단 유진이 전투를 시작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실전 상황에서 교전 중인 인원에게는 도움을 주려는 통신조차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했다.
연막탄이 터진 직후 일본어로 외친 교전 상대의 외침을 대충 해석해준 것이 미리엄이 한 전부였다.
그 이후 미리엄과 지원팀들은 오로지 모니터를 숨을 죽이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인채로 모니터만을 지켜봤다.
사격 소리가 들리지만 누가 맞았는지 알 수가 없다. 유진이 거침없이 쏘고, 피하고, 반격당하는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쳐갔다. 이쪽도 저쪽도 정확하게 노리고 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둘 다 정확하게 노리고 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와우.”
유진이 세열 수류탄 세 개를 차례로 3방향으로 속도를 조절해서 던지는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탄성을 참아내지 못했다.
수류탄이 터지기도 전에 다시 건물 밖으로 몸을 던지고, 순식간에 2층 옥상으로 올라간 다음에야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기로만 가득 차 있던 카메라에 제대로 된 영상이 표시된 것도 잠시, 유진은 2층 옥상 출입문으로 다가가더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어? 저게 열려 있다고?”
누군가 의아한 소리를 내는 것도 잠시, 유진은 다시 연기로 가득 찬 실내로 진입했고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옥상으로 나오더니,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앉아 엄폐하고는 탄창을 교체했다.
소총에 익숙지 않은 유진이 눈으로 보면서 탄창을 교체했기 때문에, 미리엄을 비롯해 모두가 그 광경을 같이 보게 되었다.
유진이 소모된 탄창부터 뽑아서 백 팩에 보관한 후, 가슴의 탄입대에서 새로운 탄창을 꺼내서 재장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말했다.
“빠르고 정석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여유롭네요.”
연습 사격 중이라면 모를까, 실전에는 사용한 탄창을 회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지금 유진이 여유 있는 상태라는 뜻이었다.
미리엄은 지금이 유진에게 말을 걸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M,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죠?”
- 실내에 있던 인원 8명 중 전투원 추정 인원 7명 사상. 6명은 죽었고, 1명은 중상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제 실외의 4명을 제거한 다음, 다시 실내로 재진입하겠다.
“눈으로 보지도 않고 그게 확인이 되는 건가요?”
- 처음에는 눈에 보여서 내부 인원 카운트했겠나?
“그들이 죽음을 위장했을 가능성은 없나요?”
-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그걸 위장할 수 있는 인간은 아직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
“씨발.”
미리엄과 같이 듣고 있던 요원 중 하나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유진이 초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거짓말이나 허풍일 리가 없어서 오히려 더 어이없는 소리였다.
“심장 박동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청력이 예민하다고 해도 저렇게 시끄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그걸 구별해서 들을 수 있다는 거지? 무엇보다 뛰는 것은 들었어도, 멈췄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하는 거야?”
“소리가 아니라 다른 감각 아닐까?”
“어떤 감각?”
“육감?”
“그게 그런 것을 설명하는 감각은 아닌 것 같은데?”
뒤에서 팀원들이 속삭이듯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미리엄이 유진에게 물었다.
“다음 계획은요?”
- 외부에 잠복 중인 4명을 우선 제거하고, 실내로 재진입해 중상자를 확인, 마지막으로 지하실로 진입하여 인질을 확인하겠다.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 나머지는 어디 있는지 확인 부탁하지.
유진은 그녀를 탓하지는 않았지만, 미리엄은 이를 살짝 악물었다. 꽤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죠.”
- 믿지.
이에 관해서 미리엄이 팀원들에게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녀만큼 자존심이 상한 팀원들이 이미 정보원들과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미리엄은 유진에게만 계속 집중했다.
그녀의 등 뒤에서 십여 명에 이르는 인원들이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통화를 하느라고 바빴다.
** ** **
‘이것 봐라?’
유진은 상태를 확인하다가 상황이 예상외라는 것을 알았다.
실내에서 난리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외부에 매복한 4명은 전혀 미동도 없이 매복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군이 교전 중인 상황이니 지원을 위해 움직이리라 생각한 유진의 예상을 아주 간단하게 부수고 있었다.
유진은 동료를 돕기 위해 움직이는 것과 매복상태를 유지하는 것 중에서 전술적으로 어떤 것이 맞는지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상대방이 자신들이 이미 들켰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굳이 상대방과의 빠르게 상대방과 교전에 들어갈 필요 없이, 충분히 준비해서 한 방에 끝내면 되는 것이다.
유진은 수류탄을 쓰기 위해 계산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소리나 연기 괜찮은 건가?”
- 빨리도 물어보는군요. 현재까지 사용한 수준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형의 특성도 있어서인지 현장 주변에 배치된 요원들에게서 아직 특별한 연락은 없었습니다.
현재 유진이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이 건물과 가장 가까운 민가도 직선거리로 거의 2km가 떨어져 있고, 중간에 산봉우리도 있었다. 수류탄 소리가 크다고 해도 들릴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연막탄 연기를 누군가 볼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좋군.”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망설임을 지우고 배낭에서 남은 수류탄들을 꺼냈다. 자기 힘과 컨트롤 능력이면 정확하게 4명이 몸 위에 하나씩 떨어뜨릴 자신이 있었고, 폭발 사이에 시차가 생겨도 피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어차피 남겨봐야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잔뜩 사용해서 쉽게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저거 저격총인가?’
가장 처음에 제거했던 매복병은 유진이 유럽에서 많이 봤던 HK416소총을 사용하고 있어서 관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총을 쓰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은 4명의 매복병 중 2명이 사용하고 있는 총이 저격총으로 보였다.
특징 없이 평범하게 생겨서 정확한 제조사나 모델은 모르겠지만, 상부의 스코프와 볼트 액션 노리쇠로 보아 저격총이 유력했다.
소총은 탄환 수급 등의 문제가 있어서 별로 매력적이지 않지만, 저격총은 탄창 하나만큼의 탄환만 있어도 여러모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냥 탄환 호환이 된다는 이유로 조금 탐이 나던 기관단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욕심이 났다.
유진은 꺼냈던 폭탄 중에 세열 수류탄은 다시 주섬주섬 배낭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미 한번 끝내주는 위력을 발휘했던 연막탄들을 꺼냈다.
원래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연막탄으로 오히려 상대방의 시야를 차단하는 요령을 알려준 미군 장교에게 새삼 고마웠다.
‘역시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해.’
유진의 손짓과 함께 적색과 흑색 연막탄들이 4명의 매복병 머리 위로 골고루 떨어지고, 이내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자기들 위치를 정확하게 노리고 떨어진 연막탄에 매복병들이 당황하는 사이, 유진은 옥상에서 뛰어내려 가장 가까운 매복병을 향해 뛰어갔다.
유진의 첫 번째 목표가 된 그는 위장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위치를 옮기려고 했지만, 무릎이 땅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자기 목덜미 뒤에 닿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ちくしょう.”
운명을 직감한 그의 입에서 짧은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유진이 방아쇠를 당겼다.
틱과 탁의 어딘가에 해당하는 어중간 소리와 함께 소음기 달린 M17에서 발사된 9mm 구리 탄환이 그의 두개골 안쪽으로 밀고 들어가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강한 힘과 높은 체력, 보통 사람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월한 상처 회복 능력 같은 것이 발휘될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 즉사였다.
유진은 죽은 자의 머리가 땅에 닿기도 전에 이미 다음 타겟을 향해 뛰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던 검은 연기가 갑자기 휙 사라져서 맑은 하늘이 보이다가, 다시 갑자기 휙 하면서 붉은 연기로 가득 찼다.
두 번째로 노린 상대는 저격총을 들고 있던 인원 중 하나였다. 유진이 굳이 근접전으로 처리할 결심을 한 메인 타겟이었다.
건물 입구 쪽을 감시하던 첫 번째 타겟과 달리 건물을 등지로 진입로 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몸을 일으키고 막 유진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 참이었다.
개조 받은 슈퍼 솔져답게 빠른 반응이었지만, 근거리 사격이 불편한 저격총 대신 부무장으로 무장을 바꾸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유진을 느끼고 저격총으로라도 쏘려고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어느새 다가온 유진이 이미 그가 내밀고 있는 저격총의 총구보다 더 안쪽까지 도착해 버렸다.
유진은 왼손으로는 저격총의 개머리판 연결 부분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매복 저격병의 눈과 눈 사이에 총구를 가져갔다.
다시 한번 낮은 총성과 함께 피가 튀었고, 두 번째 매복병도 뇌를 박살 낸 9mm 구리 탄환에 의해 즉사했다.
유진은 시체가 되어 뒤로 쓰러지는 그의 손에서 저격총을 빼앗아 재빨리 어깨 뒤로 메었다. 연막에 가려 헤드 캠에 보이지 않았을 테니, 기회를 봐서 적당한 곳에 숨겨 두었다가 나중에 회수할 생각이었다.
목표를 확보했으니 남은 둘은 수류탄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기왕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계속 총으로 해결할 생각을 했다.
유진이 3번째 타겟을 향해 다시 이동하는 사이에, 남은 둘은 꽤 제대로 된 반응을 보였다
역시 저격수인 3번째 타겟은 자신의 저격총 대신 부무장으로 가지고 있던 MP5SD를 꺼내 들고, 유진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확실히 실내 교전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시각을 차단한 상태에서도 이들은 유진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예민한 청각을 이용해서 소음기를 끼었어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던 총격 소리를 듣고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3번째 타겟이 사격을 가하는 방향이 그가 있던 곳과 방금 유진이 2번째 타겟의 머리를 박살 낸 곳의 직선상 경로에 해당하는 방향이라는 것으로 그걸 알 수 있었다.
유진의 존재를 느낀 것이었다면 그곳으로 쏘았을 리가 없었다.
왜냐면 유진은 초승달 모양으로 부드럽게 호를 그리며 그의 정면이 아닌 옆쪽을 노리고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탄창 하나를 다 비운 그가 재빨리 새로운 탄창으로 갈아끼는 순간, 이미 2명의 머리를 부순 그 총의 소음기가 그의 왼쪽 눈과 왼쪽 귀 사이에 닿았다.
“haha!”
그도 첫 번째 타겟과 비슷하게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죽었다.
유진의 그의 머리에 3번째로 탄환을 박아 넣어 준 다음에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마치 웃음소리처럼 들렸지만, 비통하고 애절한 그 어조에서 절대로 웃음소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던 탓이었다.
‘일본어인가? 나중에 공부 좀 해야겠군.’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학구열을 느끼는 사이에 마지막 남은 매복병이 이제 은밀히 행동하는 일 따위는 때려치우고 대놓고 고함을 질렀다.
“死ね! このモンスター!”
여전히 일본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몬스터라고 부르는 정도는 애매하게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고함이 아니라 함께 시작된 총성이었다.
- 타타타타타타
빠른 연발 발사음과 함께 총알이 유진을 향해 퍼붓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