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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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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07
유진은 일단 김은주의 몸을 끌어안고 문 쪽으로 이동했다.
문은 잠겨 있었다. 염동력을 이용해서 잠금쇠를 열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특수 처리한 금속 재질의 문은 유진의 투시력과 염동력을 미묘하게 방해했고, 복잡한 잠금 방식의 독특한 구조는 염동력으로 내부를 조작해 풀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이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한 놈들이라면 당연히 그 부분 대응도 해뒀겠지.’
실내의 황산 가스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었다.
방이 꽤 커서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몇 분이 아니라 몇십 초만 시간이 더 지나도 김은주는 버틸 수 없게 될 것이다.
유진도 문을 부술 정도의 시간을 버티는 것은 어려웠다.
피나 물같이 어느 정도 이상의 점성을 가진 물체라면 염동력으로 막아낼 수도 있겠지만, 유진의 염동력은 기체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거나 압도적인 능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진이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한번 시도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
유진은 방의 모서리 쪽으로 이동한 후 장막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은색과 은색, ‘바벨의 기억’과 ‘이름 없는 사슬’이 마치 물처럼 흘러나와 유진과 유진이 안고 있는 김은주를 둘러싸고 작은 상자를 만들어 냈다.
작은 관사이즈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면 황산 가스 공격을 피해 2~3시간 정도는 넉넉하게 버틸 수 있는 크기였다. 김은주만 없었으면 2박 3일도 상관없었다. 유진의 몸은 일반인에 비해 극도로 적은 산소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유진이 앞으로도 자주 겪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 함정과 포위 공격에 대한 카운터로 고안한 완벽한 대처 방법이었다.
계단 복도의 클레이모어를 처리하기 위해 생각하고 있던 방법이기도 했다.
‘바벨의 기억’과 ‘이름 없는 사슬’은 동급의 아티펙트 외의 것으로는 훼손할 수 없다. 그 어떤 외부 충격으로도 ‘바벨의 기억’이나 ‘이름 없는 사슬’ 그 자체는 절대로 손상을 입지 않는다.
핵폭탄급이면 알 수 없지만, 그 이하의 급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걸 파괴하려면 동급의 아티펙트를 공격용으로 셋팅해서 함정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유진이 아는 한 그런 아티펙트로 함정을 만들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UE조차도 불가능했다.
‘바벨의 기억’은 UE가 가진 아티펙트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귀한 것이고, 이 정도 수준의 물건은 유진이 전해 듣기로 세계 전체를 다 뒤져도 20개 남짓이 고작이었다. 걔 중에는 유진에게 이식된 심장의 원주인처럼 물리적인 위력을 갖추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아티펙트로 다른 아티펙트를 훼손시킨다는 것은, 사용한 아티펙트도 같이 훼손된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더 키’가 정말 놀라운 기능을 가진 아티펙트이고, 수량도 다른 아티펙트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귀하고 보기 드문 이유는 그걸 이용해 다른 아티펙트를 제어하면 1 회용으로 소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정도를 동원해서 유진을 죽일 함정 따위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핵을 사용하고 말지.
어쨌든 유진은 함정 속에서도 여유가 있었다. 초조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함정을 판 놈들이 유진을 확인하러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못할 터였다.
마당과 집안의 시신들이 누군가에게 들킬 수 있는 위험은 둘째치더라도, 이 정도 함정을 판 놈들이 이곳 주변에 은근슬쩍 배치되기 시작한 미국 애들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얼마나 참으려나?’
유진은 빈 탄창을 채우고, 수류탄과 연막탄 등을 정리하고, 무엇보다 클레이모어의 상태를 확인하며 느긋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통신이 끊기고 영상이 차단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미리엄과 미국인들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 ** **
문이 닫히고, 상대가 그 문을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영상 카메라로 보였다.
그리고 오염 제거 절차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이 한쪽 계기판에 떴다.
“해치운 건가?”
회(會)의 한국지부장인 키노아키 료헤이가 흥분해서 외쳤다.
그는 원래 유진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는 전부 모른 척 할 생각이었으나, 협력자인 민영후의 요청으로 잠시 면담을 위해 이곳 기지를 방문했다가 갑자기 시작된 유진의 공격으로 발이 묶인 참이었다.
갑자기 습격이 시작되고, 짧은 시간 만에 외부 대기 인원들이 전멸했다. 그중에는 그의 경호를 맡은 인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인원들은 지부장 개인이 가진 개인적인 힘의 일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타격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이번 작전의 책임자인 이누카이 히로유키 조장을 탓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히로유키 대장이 만든 함정에 저리도 쉽게 빠져버리는 것을 보게 되자, 조금 전까지의 일을 잊고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작전을 성공시킨 당사자인 히로유키 조장이 더 침착했다.
“아직입니다.”
“아직이라고?”
“고농도 황산은 분명 재생력을 가진 실험체들을 상대로도 확실한 효과가 증명되었고, 오리진이라도 그걸 견딜 능력은 없다고 전달받기는 했지만, 저건 오리진입니다. 오늘 보인 전투력만 해도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는데, 황산만으로 끝났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럼 어쩔 생각입니까?”
“히드라의 전설에도 나오듯이 재생하는 괴물에는 불이 답이죠. 백린소이탄을 잔뜩 준비해두었습니다.”
“호오? 백린탄을요?”
“시설에 손상도 적을 테니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좀 아깝군요.”
유진을 상대하는 일에 부정적이었지만 정작 유진에 대한 사냥이 성공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료헤이 지부장은 결과에 아쉬움을 표하기 시작했다.
“황산에 백린까지 사용하면 제대로 된 시체는 얻기 힘들겠죠?”
이 작전에 책임조차 지지 않을 생각이던 주제에, 조금 전까지도 자기를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히로유키 조장을 탓하던 주제에, 이제 와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나오는 소리를 내뱉는 그의 꼴에 같이 듣고 있던 부조장 스즈무라가 오히려 발끈했지만, 히로유키는 그런 심복을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말했다.
“과연 그럴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황산에 백린까지 동원해서 태우면 몸에서 건질만한 부분은 뼈와 장기 정도밖에 안 남을 것 모릅니까?”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장기가 남습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심장이 남는다는 의미죠. 본토의 최고 지휘부조차 실물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그 전설적인 신의 몸의 유일한 성공적 이식체가 말입니다.”
료헤이 지부장이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UE가 손에 넣은 고대의 유물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임과 동시에 가장 신비에 싸여 있는 유물. 머리도 사지도 없이 오직 몸만 남아 봉인된 상태에서도 최소 수천 년 이상 살아 있다는 이 유물은 불로불사를 원하는 이 세상 모든 권력자의 꿈으로 불리는 물건이었다.
이 신의 육체라고 불리는 물건은 수많은 신비와 비밀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도 존재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던 물건이었다. 오랫동안 UE가 권력자들을 자기들에게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3년 전에 유진 등이 일으킨 반란으로 일어난 대격변으로 초인에 관한 관련 정보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그 성과물들도 사방으로 유출되는 과정에서 극히 일부만이 그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었다.
최초의 오리지널 초인인 유진이 바로 그 신의 육체에서 채취한 심장 조작의 이식에 성공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유진 이후로 신의 육체를 이식해서 성공한 경우가 없었던 것과 달리, 유진의 심장 조직이나 그 외의 여러 가지 이식을 통해서 만들어진 조직들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있는 히로유키 조장과 스즈무라 부조장 조차 그렇게 유진의 조직, 초인 에센스를 이식 받아 초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쩌면 신의 육체보다 유진의 심장이 더 중요한 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피부나 근육 피는 몰라도 심장은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료헤이 지부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 히로유키의 부하 중 하나가 부조장 스즈무라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둘은 상관들에게서 살짝 떨어져서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무슨 일이지?”
“주변이 심상치 않습니다. 주변 마을에 외부인들이 여럿 방문했고, 이쪽으로 접근하는 외부인들도 몇몇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부와의 통신이 복구가 안 되고 있습니다.”
“성화 그룹이 관여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잖아. 그쪽 인원은 걱정할 필요 없어. 그놈들이 이 땅에서 아무리 대단한 척 해봐야 슈퍼 솔져 하나 없고, 소총 하나 동원할 능력이 없는 놈들이야. 통신이야 그놈들이 이 나라의 최대 통신사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정도야 감안해야지.”
“하지만 위성 전화는요? 끽해야 이 반도 국가에서 조금 잘나가는 3류 기업 따위가 무슨 재주로 위성 통신을 차단한단 말입니까? 다른 곳이 끼어든 겁니다.”
이미 일본 전자 회사들을 다 몰락시키고, 한국 내의 다른 경쟁사 두 곳과 함께 전 세계 전자제품 시장의 9할을 나눠 먹고 있는 성화 그룹이 들으면 대폭소를 일으킬 헛소리였지만, 부하의 말은 근거와 상관없이 중요한 결론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었다.
성화에서는 위성 통신을 차단할 정도의 능력은 없었다. 그런 것이 가능한 곳은 전 세계에 오직 하나뿐이었다.
스즈무라도 부하도 그곳이 어디인지 입에 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료헤이 지부장과 달리 강화된 청력으로 부하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히로유키도 그들이 입에 담지 않은 대답을 똑같이 생각해 냈다.
원래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작전을 진행하려던 히로유키도 그 이름에는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3번 대. 2차 작전 실행하라.”
미리 대비하고 있던 부하들에게 히로유키의 명령이 떨어졌다.
유진이 지하실로 내려오면서 사용했던, 그 좌우로 부비트랩이 설치된 계단의 일부가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1층의 계단이 시작되던 그 지점 아래로 문이 드러났다.
유진이 지금 갇혀 있는 지하실의 문과 같은 모양으로 된 그 문이 열리고, 노란색의 방호복으로 전신을 감싼 4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용량 탄창을 사용하는 소총을 든 두 사람이 뒤에서 엄호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 청음 도구를 문에 대고 귀를 기울여 안쪽의 동정을 살폈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사람이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이 문은 자동으로 잠기면 안에서는 열리지 않지만, 밖에서는 특별한 열쇠나 장치 없이도 간단하게 열 수 있는 구조였다.
소총으로 엄호하던 인원들까지 모두 눈짓을 나눈 후 백린탄의 핀을 뽑았다.
그들의 임무는 백린탄 투하까지였다.
안쪽의 상황을 살피거나 하는 위험한 일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행동과 달리 사실 긴장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기들이 입고 있는 보호복까지 고려하면 실수한다고 해도 다칠 일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 하나, 둘, 셋.
서로 말없이 고개 짓으로 수를 센 후 한 명이 문을 당겨 열었다. 이제 그 안으로 들고 있는 백린탄을 던져 넣고, 문을 닫으면 그들의 간단한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열린 문으로 불쑥 튀어나온 총구가 불길과 함께 소총탄을 뿌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