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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63화 (16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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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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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09

외부 건물의 대기조와 매복조가 모두 사냥당하던 동안에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히로유키 조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죽은 인원 중 2층의 두 명은 애초부터 미끼였고, 1층의 3명은 자기 팀원도 아니었다. 실외에 매복하고 있던 다섯의 죽음이 좀 안타까웠지만 거기까지는 그의 예측 범위 안이었다.

목표가 거의 완벽하게 함정에 걸렸으니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 함정의 뒤처리를 하러 간 인원이 오히려 추태를 보이고 전멸하고, 죽지는 않았어도 무력화되었을 거로 생각했던 목표가 반격까지 하는 상황이 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실전 경험이 부족했고, 자신의 계획이 이처럼 완벽하게 파훼 되는 경험은 더욱 부족했다. 이런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약했다.

그래도 그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지, 병신은 아니었다.

히로유키는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누구를 탓하거나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다.

“2번 문 폐쇄.”

“폐쇄합니다.”

아직 영상을 보내고 있는 감시 카메라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통하는 문이 원격으로 닫히고, 내려갔던 계단들이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는 모습이 보였다.

침입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지만, 백린소이탄이 연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더 컸다. 백린소이탄은 사실 화염보다 그 자체의 독성이 더 문제이고, 내부 인원 중에는 화학전 방호 준비가 안 되어있는 사람도 많으니 예리한 판단이었다.

불타고 있는 3번 대의 시신 일부가 그 계단에 떠밀려 올라가다가 굴러떨어지는 참혹한 광경이 연출되었지만, 그것을 보고 흔들리는 사람은 민간인인 료헤이 지부장밖에 없었다.

“1번 대. 2번 대. 교전 준비. 바리케이드와 중화기를 배치하고 화학전에 대비하라. 4번 대는 예비 계획에 있던 부비트랩들을 가동하고, 사용에 대비하라. 5번 대는 최후 계획을 준비한다.”

히로유키는 마음속은 흔들리고 있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은 냉정하게 유지했다.

속 마음과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는 그의 겉모습에 잠시 동요하던 부하들도 제정신을 차리고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퍼 초인 부대가 그 막강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회(會)에서 심부름꾼 취급이나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장인 그가 부하들의 지지를 받으며 뭔가 해보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그의 품성과 유능함을 부하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히로유키 조장과 비교하면 료헤이 지부장은 전형적인 일본식 엘리트였다.

본인은 우수한 학력을 바탕으로 일본 최고의 대학에 있는 최고의 학부에 진학해 최고의 인재라고 불리는 자들과 인맥을 쌓고 경쟁하며 실력을 키웠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그가 한국 지부장이 된 것은 그의 조부가 회(會)의 창립 멤버 중 하나라서 조부가 부친에게 만들어 주었던 자리를 부친이 승진하면서 위로 올라가자 세습 받은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렇게 물려받은 자리조차 앞으로 자기가 올라갈 진짜 지위로 가는 과정에서 거쳐 가는 자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되면 위로 올라갈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은 공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실수하거나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었다.

또한 그는 권위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이 히로유키 조장보다 상급자이며 또 중요한 사람이니 그에 걸맞은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다급한 비상 상황에서도 자신은 특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요구했다.

“나는 어떻게 할 거요, 조장!”

“무슨 말씀입니까?”

“내 안전은 어떻게 할 거냐고! 상황이 위험하니 나를 피신 시켜야 할 거 아니오! 싸우는 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평소 같으면 조장인 히로유키 대신 그에게 화를 낼 스즈무라는 이미 우선 적으로 방어를 맡은 1번 대와 2번 대를 지원하러 갔다.

최종 대책과 오퍼레이팅을 맡은 5번 대 팀원들이 그런 둘을 바라보며, 조장이 어떻게 대응할지 눈여겨보았다.

히로유키는 점잖은 사람이었지만, 료헤이의 이 추태는 그가 더 이상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구 일본제국 시절부터 윗사람들이 보여주는 이런 무책임한 자기 보신 방식에 집안 대대로 원한을 가진 명문 군인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습은 때려치우고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무슨 안전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건 무슨 소리야!”

“알다시피 당신은 공식적으로는 여기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 있지도 않은 사람의 안전을 제가 왜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료헤이가 현실감각이 좀 부족한 인간이기는 해도 경멸과 비아냥이 가득한 그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자주 쓰는 사용하는 방식이라 더 잘 알았다.

그간 약간 반항적인 면은 있어도 자신에게는 언제나 고분고분하던 히로유키의 돌변한 모습에 료헤이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손가락질했다.

“너! 너!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그건 이제 당신이 알 바가 아닌 것 같군. 나보다 당신의 무사부터 먼저 생각해보시지.”

이제는 존댓말까지 때려치운 히로유키의 모습에 료헤이의 눈이 돌아갔다.

그는 당장 이 반역자를 체포하라고 주변의 다른 부하들에게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고개를 돌린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부하들의 눈빛을 보고는 목에서 막 튀어나오려던 그 말을 다시 삼켜야 했다.

히로유키처럼 경멸 정도의 눈빛이 아니었다. 히로유키의 부하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지금 당장 료헤이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두, 두고 보자.”

결국 료헤이는 딱 그의 수준에 맞는 마지막 경고를 남기고는 상황실에서 도망쳤다.

위협을 느낀 것도 있었고, 이 와중에 머리를 굴려 방법을 찾아낸 이유도 있었다.

이 시설의 출입구는 오직 하나다. 그 때문에 습격받은 상태에서 도망도 못 가고 여기에 있었다. 그러니 탈출은 불가능했다. 대신 탈출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유사시 쓸모 있을 존재들이 있는 곳은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이 일의 시작점이었던 민영후와 그가 고른 여자들이 이 시설 가장 안쪽의 임시 거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도망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명령만 떨어지면 사살할 생각으로 권총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던 부하 중 하나가 히로유키에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이번 작전 성공하면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든 상관이 없고, 실패하면 나중은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우리 서로 말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히로유키의 말에 부하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기의 임무로 돌아갔다.

최소한 그들은 이 일의 성공률을 아주 높게 봤지만, 실패하면 죽을 각오 정도는 하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위에서 무기력하게 학살당한 동료들도 있는데, 그 정도 생각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히로유키를 믿고 있었고, 아직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히로유키는 그 와중에도 료헤이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계속 감시 카메라로 보이는 영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1번 대와 2번 대가 바리케이드와 대형 환풍기 등의 설치를 마무리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위쪽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진이 폭탄과 연막탄 등을 사용하는 일에 대비한 것이었다.

적외선 차단 연막까지 쓴 다음에 시력을 빼고 나머지 감각만으로 싸우는 것은 그들도 실전에 구현하지 못했을 뿐, 계획은 짜본 적이 있었다. 직접 쓸 수는 없어도 관련해서 대응책은 생각해둔 적이 있다는 의미였다.

유진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백린 정도가 아니라 진짜 생화학 가스탄이나 네이팜 같은 진짜 소이탄 같은 것도 대응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유사시 그들이 화력에서 밀릴 경우를 대비한 추가 부비트랩과 함정 등도 지금 가동 준비를 끝내가고 있었다.

회심의 함정이라고 준비한 황산 화합물을 이용한 오염 폐기 절차에서 어떻게 견뎌낸 것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타오르던 백린 화염이 갑자기 꺼지고, 생각도 못 한 부하의 외침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염 폐기 시스템 에러! 오염 제거제가 더 이상 투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독 시스템 가동! 우리가 킨 것이 아닙니다. 중지 명령이 먹히지 않습니다!”

당황하는 부하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백린 화염이 꺼지고 백린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연막이 사라지면서 다시 시야가 확보된 카메라에 미끼로 두었던 여성을 품에 앉은 타겟이 방을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놀랍게도 몸에 황산 한 방울 묻은 흔적이 없어서 짧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것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약간 되살아나던 안도감이 급격히 사라지고, 심한 불길함을 느낀 히로유키가 다급하게 외쳤다.

“1번 트랩, 격발!”

“1번 트랩, 격발합니다!”

부하 하나가 히로유키의 명령을 복창하며 안전 덮개를 제치고 토클 스위치를 ON으로 올린 후, 옆에 달린 붉은 격발 버튼을 눌렀다.

입구 계단에 설치된, 유진이 가장 처음부터 눈여겨봤던 클레이모어들을 터트리는 격발 버튼이 눌렸지만, 카메라로 보이는 영상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함께 영상을 보고 있던 부하는 다급히 토글스위치를 껐다 켠 다음에 다시 격발 버튼을 누르는 동작을 반복하며 외쳤다.

“재격발!”

“3차 재격발!”

“4차 재격발!”

그래도 반응은 없었다.

이런 시스템은 가끔 접속 불량 등이 있어서 한두 번 정도 터지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4번이나 해서 안 되었다는 것은 고장 났다는 의미였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는데!”

본인이 직접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관리했으며, 바로 어제 점검까지 했었던 격발 담당 대원이 넋을 잃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히로유키는 타겟이 카메라 방향을 잠시 바라보는 것 같더니, 카메라 영상이 끊기는 것을 확인하고는 무전기를 열었다.

“조장이다. 타겟의 투시 능력과 염동력이 예상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총알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부비트랩 설치나 교전 장소 설정 등에 주의하라.”

부하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히로유키를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들이 원래 노린 사냥감은 거대한 강철 멧돼지였는데, 지금 상대하고 있는 맹수는 사람 맛을 보고 요괴가 된 시베리아 호랑이였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 야수인지와 상관없이 상대하는 방법이 전혀 달라야 하는 사냥감이라는 의미였다.

이건 히로유키가 본토에서 전달받은 타겟에 대한 성향이나 능력에 관한 정보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설마 이번 기회에 요즘 세력을 확장하는 우리를 제거하려는 음모인 건가?’

히로유키의 마음에 의심암귀(疑心暗鬼)가 들었다.

어쩌면 최근 세력을 대규모로 확장하고 있는 회(會)를 견제하기 위해 본토의 UE가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유진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UE의 공식경고를 무시하고 공로를 위해 자기가 굳이 이런 함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으로, 그도 아무리 그래봐야 어쩔 수 없는 구 일본제국 군인 가문의 후예라는 점은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나는 사고방식이었다.

그의 개인적 사상과 별개로 그 의심은 어떻게든 외부와 연락해서 지원을 받아보겠다는 약간 남아 있던 가능성을 차단해 버렸다.

히로유키는 여전히 어떻게든 외부와 연락해보려고 노력 중이던 부하의 통신 시도를 중단시켰다.

조직에 알리면 더 큰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덕분에 싸움은 이제 완전히 시설에 남은 자들과 유진만의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끊겼던 유진과의 통신이 재개되며 미국은 그걸 다시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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