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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68화 (16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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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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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14

협상을 요청하는 상대방의 헛소리에 대꾸할 마음이 없었던 유진은 무반동포라는 새로운 공격 수단과 현재 상황에 대해 살펴보는 일에 집중했다.

좌우의 인물과 중앙의 인물이 모두 공격선이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포구를 조준하고 있었다. 모두 유진을 노려서 유진이 한꺼번에 피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격할 수 있는 범위 전체를 한꺼번에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그리고 앞서 두 명이 왜 동료들을 버리고 후퇴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휴대용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거치대까지 갖춰서 배치된 그리고 그 앞을 강철판으로 막아 놓은 무반동포의 숫자는 4개였다.

중앙에서 헛소리하는 인간은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만으로 지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앞에서 죽은 2명과 여기에 있는 2명이 합쳐서 여기서 2차 방어선을 형성할 예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함께 사용하지 못한 것은 후폭풍을 고려해서인가?’

방패를 믿고 곧바로 전진하는 방법은 일단 배제했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로켓 정도의 충격량을 일시적으로 받으면 아무리 유진이라고 해도 몸이 흔들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훼손불가]는 그걸 들고 있는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물리력까지 상쇄해주는 법칙은 아니었다.

그리고 유물들과 달리 유진은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였다. 지지대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유진의 힘이 대단해도 외부 물리력을 상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수류탄도 애매하군’

조금 전 일차적으로 교전이 벌어졌던 장소는 통로 사이에 반원형으로 일종의 확장 공간이 펼쳐져 있던 곳이었다.

넓은 장소에 다수의 병력을 부채꼴 형태로 배치해서 좁은 중앙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소수의 적을 압도적 화력으로 공격하겠다는 방식,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학익진 방식의 전투를 위한 설계 의도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크고 넓은 와중에 천장도 높아서 수류탄을 포물선으로 던질 거리가 나왔다.

하지만 여기는 높이와 폭이 3m 정도밖에 안 되는 직사각형 형태의 통로이다.

일반적인 건물 복도들에 비하면 매우 넓고 높지만 그래도 30m 거리를 수류탄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기는 애매한 높이다.

사실 30m라는 거리도 유진이니까 쉽게 돌파한 거지, 일반적인 실내 교전 중에는 공격자에게 지옥 같이 멀게 느껴질 거리로, 거기서 중화기로 방어하는 병력이라도 있다면 보통 시체로 벽을 쌓아도 통과하기 어려운 거리이기도 했다.

유진이 방패로 완전히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적들도 최고 수준 방탄복에 무반동포 앞에는 따로 포방패 형태의 바리케이드도 설치되어 있어서 총으로 쏴서 타격을 입히는 것도 힘들었다.

고작 3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폭발 시 유효 타격 거리만 최소 50m는 될 물건을 저렇게 다수로 운영하기 위해 세운 바리케이드였다. 소총탄 따위로는 어림도 없었다. 수류탄을 잘 던져도 뒤쪽으로 떨어뜨리지 못하고 중간에 요격당하면 이전의 경우처럼 뭔가 이득을 볼 수도 없는 구조였다.

유진이 여기서 목숨의 위험을 느낄 정도의 상황은 아니지만, 손해 없이 뚫고 나갈 방법도 좀 애매한 대치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상대의 헛소리가 이어지지만 않았다면 유진은 조금 더 이 상황에서의 전술적 행동에 대해서 고민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상대의 말이 유진의 머릿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몇 개 끊어버렸다.

“무리한 요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대로 싸운다면 우리도 다 죽겠지만 그대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질도 있지. 인질 교환이라고 생각해라. 살아남은 내 부하 여섯 명을 보내준다면 인질 넷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이 일에 책임이 있는 나와 내 상관 그리고 아마 그대가 추격해 왔을 그 한국인 남자는 여기에 남는 조건이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히로유키의 제안은 제안 당사자가 생각하기에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유진의 마이크를 통해 같이 들은 미국 측도 이 정도면 유진도 응할만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몇 있을 정도였고, 조장을 믿고 있던 부하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인질 넷을 안전하게 건네는 대가로 부하 여섯은 수가 좀 많은 듯하지만, 대신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진짜 수뇌부를 모두 건네는 조건이었다. 히로유키는 인질을 구하러 여기까지 쳐들어온 상대가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유진에게는 여전히 헛소리였다.

유진에게 인질 구출은 2순위였다. 유진에게 우선순위는 감히 자기 옆까지 기어 들어와 수작을 부린 UE의 버러지들을 박멸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미향에게 최선을 다해 여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그 와중에 민영후를 놓치게 되더라도 여자들을 우선하겠다고 약속하기는 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들은 UE의 전투원들이었고, 굳이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있는 유진의 옆에까지 기어들어 온 놈들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유미향이 민영후 만을 거론한 것은 그만을 알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행운이기도 했다. 만약 유미향이 알건 모르건 민영후 외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들도 언급해서 UE를 유진에게 떠올리게 했다면, 유진은 그녀와의 협상을 단순히 거절하는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 터였다.

유진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히로유키는 유진의 감정에 호소해 보려 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그대도 우리도 넓게 보면 같은 초인이자 새로운 세계를 이끌 신인류가 아닌가? 굳이 서로 공멸할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울 필요는 없다.”

먼저 시비 건 것으로 모자라 잔뜩 함정을 파고 기다리며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이제 와 끝까지 싸울 필요 없다고 지껄이는 일은 웃어넘길 수 있었다.

유진이 느끼기에 자기 위주의 편의적 상황 판단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수준의 사고방식이었다. 유진 본인조차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나와 많은 문화 매체들을 접하면서 저딴 소리 하는 것을 것이 웃음 요소로까지 여겨지는 것들도 많이 접했다.

유진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두 단어였다.

우선 ‘신인류’.

유진과 친구들은 단 한 번도 자기들을 신인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명백하게 비하의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자기들을 실험체라고 부르고,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들을 인류의 새로운 진화 즉 신인류 탄생을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증오했기 때문이었다. 그딴 소리 지껄일 정도로 미친놈들은 연구소 연구원 중에서도 닥터 리샤르를 지지하는 소수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은’.

멀쩡하게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살던 자가, 하는 행동과 모습으로 보아서는 일반적인 소시민도 아니고 기득권층이었을 것이 분명한 자가, 유진 자신을 제외하면 평생 하늘도 안 보이는 실험실에서 갇혀 살면서 실험용 쥐나 원숭이처럼 이용당하다가 소나 돼지처럼 도축 당해서 죽은 자기 친구들과 자기들이 같은 처지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것이다.

유진은 도저히 이 말들을 용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유진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유진의 머릿속에서 뭔가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부분이 부서졌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끊어지고 부서지고 망가졌다.

유진은 생각도 판단도 하지 않고, 그냥 움직였다

유진의 몸이 전조도 없이 그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협상을 시도해보고 있었지만, 방심한 것은 아니었던 히로유키와 부하들은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쾅! 쾅! 쾅!

2발의 대인 특화 고폭탄과 1발의 대전차 고폭탄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발사관을 떠나 유진을 향해 발사되었다.

고작해야 3m 정도의 폭밖에 되지 않지만 사실 유진의 동체시력과 몸놀림이면 탄두들을 아예 피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인 특화 고폭탄은 일종의 발사용 크레모아다. 안에 들어있는 화약의 양과 쇠구슬의 숫자는 크레모아 이상이다. 정면에서의 폭발은 피하더라도 그게 2발이나 등 뒤에서 터지면 방패로 가릴 수도 없는 공격이 유진의 등으로 쏟아질 것이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이미 증명되었듯이 그것은 유진에게도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을 수준이다.

거기에 히로유키는 일부로 좌우의 두 부하보다 아주 약간 딜레이를 두고 발사했다.

부하들에게는 미리 상대의 좌우 어깨를 바로 바깥을 노리고 쏘라고 지시해 두었다. 상대의 동체시력과 운동 능력을 고려해서 그가 두 발의 포탄을 가운데에서 피한 순간, 자기가 가운데로 발사한 포탄을 피할 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그는 저 엉성해 보이는 방패가 어떻게 발칸포탄을 막아낸 것인지 의문이기는 했지만, 500mm 전차 장갑도 관통하는 탠덤 대전차고폭탄이라면 혹시나 상대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상대의 방패에 자신이 쏜 고폭탄이 명중하려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희망이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상대가 대단해도 생물인 이상 탠덤 대전차고폭탄을 맞고도 버틸 수는 없다.

‘잡았다!’

하지만 환호하는 히로유키의 눈에 자신이 쏜 탠덤 대전차고폭탄이 상대의 방패에 맞아 폭발하는 대신 그대로 그의 방패와 몸을 통과해 뒤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뭐?”

이해할 수 없는 그 광경에 히로유키가 기겁하는 사이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포탄들을 그대로 통과해서 달린 유진은 히로유키의 몸이 손에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방패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높이 1.8m에 넓이 90cm에 이르는 방패를 마치 거대한 칼처럼 사용해서 수평 베기를 실행한 것이었다.

- 스걱

날카로운 절삭 음과 함께 유진의 방패는 오른쪽 벽부터 시작해서 왼쪽 벽까지, 중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어떠한 걸림도 없이 회전했다.

그 중간에 걸린 모든 것들, 유진이 휘두른 방패의 반경 내에 있었던 우측의 벽을 시작으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4대 대원들과 그들이 들고 있던 칼구스타프 무반동포 그리고 그들의 전면을 보호해주고 있던 바리케이드 역할의 포방패와 함께 카마이타치 구미를 상징하던 조장 이누카이 히로유키까지 거침없이 지나친 방패는 시작된 반대 방향인 우측의 벽마저 지나친 다음에야 회전을 멈추었다.

유진이 잘라버린 부위는 자르기 좋은 목도 아니었고, 그래도 사람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복부도 아니었다. 유진이 휘두른 방패에 잘려버린 부분은 사람 몸에서 가장 단단하고 넓은 폭을 가진 부위인 어깨에서 어깨까지의 가슴 부분이었다. 그리고 쇳덩어리들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 앞의 얇은 종이짝처럼 단숨에 잘려 나갔다.

방패의 크기와 그로 인한 풍압이 갈라진 사람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와 합쳐지면서 유진이 그들을 베고 지나가는 등 뒤로 피보라가 맴돌았고, 곧바로 복도 끝에서 터진 3발의 포탄이 만들어낸 압력과 화염이 다시 그곳을 덮쳤다.

좁은 복도에서 30m 거리는 무반동포로 발사된 대인 특화 고폭탄의 유효 살상 거리의 반도 안 되는 거리다.

마하 3의 속도라 날아든 수백 개의 쇠구슬과 폭발 화염이 반으로 잘린 3구의 시체를 덮쳤다. 시체들은 그들의 몸에 걸치고 있던 방탄복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폭발의 화염과 쇠구슬과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사람 시체와 피의 조각이 함께 섞여 다시 유진의 등 뒤를 덮쳤다.

그리고 유진의 몸을 그대로 지나쳐 유진이 바라보고 있는 이 비밀기지 안쪽의 복도를 향해 흩뿌려졌다.

유진은 폭발이 만들어낸 공기의 흐름이 모두 멈춘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몇 초 더 흐른 다음에 유진을 향해 발사된 무반동포의 화염을 마지막으로 영상 전송이 끊겼던 미리엄의 서울 사무실 모니터에 현장 화면이 다시 전송되기 시작했다.

“신이여!”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조금 전까지는 어느 정도 희희낙락해가면서 유진의 헤드캠 영상을 바라보고 있던 서울의 미리엄의 팀 상황실에 경악과 혐오의 감정이 맴돌았다.

조금 전까지 무장한 병력이 보이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냥 평범한 콘크리트 통로에 불과했던 곳이 잠시 영상이 끊겼다가 연결된 지금은 불길에 그을린 피와 살점으로 가득 찬, 어딘가의 지옥에 사는 짐승의 내장 같은 꼴로 그들이 보는 모니터 안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앞서서 누군가를 처치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내뱉던 ‘클리어’라는 말도 없이 뚜벅뚜벅 그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미리엄이 약간 떨리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M, 상황이 어떻게 된 거죠?”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M? M?”

미리엄이 재차 그를 부르자 유진이 아주 낮고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 닥쳐.

미리엄은 물론이고 그걸 듣고 있던 모두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과 함께 칼날이 자기 목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작은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도 담기지 않은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특수 전송을 위해 소리의 상당 부분을 깎아낸 무선 통신 음성을 별로 좋지도 않은 스피커로 재생한 것이었음에도 그것을 듣는 모든 사람이 그 목소리에 담긴 것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증오였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것은 분노였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허무한 무엇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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