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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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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20
고주희와 유진은 가까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노리는 바가 있었다.
일단 고주희는 위험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잠깐 상황을 보고 대응하자는 어제 자기의 선택이 개 같은 멸망으로 이어진 것으로 확인된 지금 상황에서, 다른 사람 눈이 없는 곳에서 유진과 절대로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유진은 적당히 할 이유가 필요했다. 사실 진짜로 성화랑 끝장을 보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고주희와 적당히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주희도 유진 자신의 패턴은 어느 정도 알 것이다. 그러니 고주희가 일이 좀 적당히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해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필요했다.
성화 물산 본사 건물 근처의 빌딩에 있는 카페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는 유진 생각에는 평소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납치된 사람의 숫자가 네 명이 아닌 다섯 명이더군. 기본적인 정보부터 틀렸어.”
“어제 이야기 나눈 후 상황이 변한 겁니다.”
“너희가 세 명을 확보 중이라고 했지. 그중 하나를 놓친 거야. 그런데 왜 변경된 상황이 전달하지 않았나?”
“그, 그건.”
고주희는 이야기 끝나자마자 상황이 변한 걸 다시 이야기해서 곧바로 또 깨지고 싶지 않았다고 변명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차라리 깨졌으면 오늘 이런 개같이 멸망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 이후로 유진은 정보 제공이 늦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에까지 다 짜증을 부렸다.
고주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고 변명하고 또 변명해야 했다.
그녀는 오히려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고 끝내고 싶어 했지만, 유진은 상대방에게 그런 식의 사과를 바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상대의 마음 같은 것은 유진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정확한 이유와 원인을 알고 그에 대책과 보상을 원하는 것이 유진의 스타일이었다.
결국 고주희는 탈탈 털리다 못 해서 그녀의 권한으로 약속해서는 안 되는 부분까지 승낙하고 말았다.
유진이 미국 정부가 움직인 것을 숨기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외부 용병팀을 고용한 것으로 사기를 친 다음에 그 비용을 뜯어낸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번에 구출된 그리고 문제가 된 여자들의 향후 거취 문제에 관련된 비용까지 몽땅 성화에 요구한 것이었다.
유진의 생각에 사실 이건 좀 무리한 요구였다. 성화 쪽 관련이나 실수랑 별개로 여자들의 미래까지 성화의 책임은 아니니까.
이걸 고주희가 받아들인 것은 그녀에게는 유진이 성화의 혈통이라는 개념이 생각의 바탕에 깔려 있고, 대한민국 재벌은 회장 일족의 개인적 사용 비용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고주희는 유진이 이런 걸 요구하는 것을 그런 관례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주희가 자신이 성화 핏줄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재벌 기업의 회사 예산에 대한 오너 사적 유용에 대한 관습 같은 것도 잘 모르는 유진은 이것도 결국 성화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많아서 그래서 그걸 돈으로 막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둘 다 엉뚱한 이유로 헛짚은 것인데, 둘 다 진실이라는 점이 웃기는 점이었다.
어쨌든 한참 할만 다 했다고 생각한 유진은 마지막 용건을 꺼냈다.
“이 일에 관련해서 민영후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거나, 다른 인간들이 또 고개 들이미는 일은 없기를 바라지. 최소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겠지?”
“어? 그 인간 처리한 건가요?”
여자들의 경우, 추가로 납치 시도당한 여자들을 쫓거나 지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추적중이었다. 하지만 민영후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후 성화에서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주희는 민영후도 처리되었다는 말에 약간 당황했다. 여자와 민영후를 별개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흥.”
유진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답 없이 코웃음을 치고는 자리를 마쳤다.
유진은 이걸로 고주희와의 일을 계획대로 처리했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약간 뿌듯함을 느끼며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했다. 오는 길에 보안 메신저를 이용해 최명선과 약속을 잡아 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 후 유진이 최명선과 만나서 그녀에게 성화 그룹 일족들과 그들의 배후자 친인척 등에 대한 광범위한 그리고 위험하지 않은 한에서 그들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의 조사를 지시하는 동안, 유진과 관련된 사람들도 모두 목표는 달라도 비슷한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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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희는 유진이 떠날 때까지만 해도 몸을 벌벌 떨며 늘 그렇듯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그가 떠난 후에는 대화를 곱씹으며 눈을 빛냈다.
‘민영후를 처리했는데, 민영후의 배후에 대한 추궁을 안 한다고?’
고주희도 민영후가 배후도 없이 이 일에 끼어들었을 리가 없다는 유진의 판단에 동의했고, 정황상 그 배후는 최소 3대 재벌급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이 일의 근원이었던 자기들 성화이거나, 지금이라도 성화를 물 먹이고 싶은 라이벌 명천 혹은 태성이거나.
또한 고주희가 유진에게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룸살롱 홍월에서 벌어진 대학살에 대해서는 지금도 한참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조사한 전문가들이 주목한 부분은 주요 3인방에게 고문이 행해졌다는 부분이었다.
사지에 총알이 박히는 고통은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고통 그 자체만을 원했다면 그보다 더 치명적인 방법을 썼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에 고문은 사태를 조사하는 관련자 모두에게 확정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이건 3인방은 그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깔끔하게 다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었는데도 마무리로 깔끔하게 머리를 날려버린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주희는 유진이 민영후라고 그냥 날려버렸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배후에 관해서 확인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부유층으로 태어나 평생을 편하게 살아온 민영후가 관절에 총알부터 박고 시작하는 유진 식의 고문을 견뎠을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진이 그 부분에 대해서 아무 말도 없었던 부분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고주희 힘으로 유진을 추궁할 수는 없으니, 다른 사람을 조일 필요가 있었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대충 다 알면서도 정보를 조절하고 있는 사람, 바로 제2부속실의 수장인 전략기획2실장이었다.
다행히 그는 이번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약점도 노출했다. 도피시킨 사생아 딸과 사위가 아니라, 미국에 도피시킨 내연처와 그녀의 도피에 사내 사조직이 관련되었다는 것이었다. 고주희는 현재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는 중이었고, 성과도 이미 어느 정도 있었다.
실장의 눈을 피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전력기획실이나 부속실과는 별개로 형성되어 외부인은 접근할 수 없는 고주희와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이용 중이라서 가능했다.
‘불길해.’
고주희는 좋지 않은 예감에 몸을 떨며 서둘러 회사로 돌아갔다. 준비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가진 정보로 실장을 압박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단 약속했던 여자 3명 중에서 2명은 확보했고, 유진이 나머지 여자들에 대한 상황을 끝냈다는 것을 들은 실장은 자기가 충분히 책임을 피할 정도로 할 만큼 했다고 판단하고, 고주희의 생각보다 쉽게 정보를 공개해주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민영후의 배후였다. 그리고 그게 고주희를 기겁하게 했다.
“강지섭 검사요? 그런 인간이 관련되어 있는데 그걸 저에게 비밀로 했다고요!”
화를 내는 고주희에게 실장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자네가 그쪽 파벌에 속한 사람이니까, 자네가 그걸 알면 어떤 식으로든 그쪽 정보는 무마하고, 유민영 여사 쪽만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건 내게 불리하거든. 더블M이 민영후를 처리했다면, 이제 그도 유성준 이사 쪽에 대해서 알게 되었겠지.”
“미쳤습니까! 제가 왜 그쪽 파벌이에요!”
“자네는 유성준 이사를 담당하면서 부각 되기 시작했고, 유성준 이사의 사생아인 강소진 양을 전담하면서 특혜를 받고 있지. 그런데도 자네가 그쪽 파벌이 아니라고?”
실장의 냉소에 고주희는 미칠 것 같았다.
이 병신같은 인간들이 성화 본가의 심연을 모르니까 회사가 전부인 자기들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면서 헛짓거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실장의 말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네도 이제 슬슬 눈치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이 회사의 어둠에 손을 담가서 임원급이 되면 어느 순간 눈치챌 수밖에 없어. 회장님 일가가 평범하지 않고 이상하다는 것을.”
고주희는 뜨끔했지만, 말을 돌렸다.
“이 땅에서 새로운 왕조나 다름없는 세력을 일으킨 가문입니다. 평범할 리가 없잖아요.”
실장은 오히려 눈을 빛냈다.
“그래, 고과장 정도면 눈치챌 줄 알았지. 그러니까 이렇게 움직이는 거겠지. 살아남으려고.”
고주희는 침묵으로 대답을 회피했고, 실장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이제 자네에게 약속한 보수를 지불 할 시간이군. 내가 내 딸과 사위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명색이 이 회사의 이 정도 고위직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따르는 파벌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민영 여사나 정동성 이사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 말이야.”
“그런 게 있나요?”
“응. 알고 있거든. 누가 무슨 지랄을 해도 그 사람들은 해를 입을 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확고하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 고주희가 혀를 찼다. 유진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인간이 아는 그녀로서는 실장의 저런 확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인간의 무지막지함을 실장이라고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실장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자네 같이 어린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더블M은 우리가 예전 70년대나 80년대 혹은 90년대에 상대했던 적에 비하면 오히려 별거 아냐.”
“7, 80년대에는 실장님도 아직 회사에 근무하실 때가 아니실 텐데요?”
“하지만 내가 입사했을 때 내 사수들과 상관들이 그때 분들이었지. 당시까지만 해도 이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정보가 후배들에게 꽤 자세히 전달 되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흐흐흐. 듣고 놀라지마라?”
“미국에서 특수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인간 병기가 날뛰는 지금 보다 놀랄 일이 있었다구요?”
“우리나라 독재자가 몰래 보낸 군의 특수부대가 사택을 습격한다거나, 동남아에서 지방 순방 중에 북한 특작 부대랑 조우 한다거나, 중동 호텔 방에서 갑자기 일본에서 파견된 닌자 출신 자객이 튀어나오는 정도라면 어때? 아 미국에서 길 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마피아 총격전에 휘말린 일도 있었지.”
고주희가 입을 딱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