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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의 2/3편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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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27
손녀딸과 그 배에서 나온 증손자들의 죽음을 결정한 유혜선 여사는 유준선 부회장을 불렀다.
“준선아.”
“네, 어머니.”
“너도 다 들었으니 굳이 더 말해줄 필요 없지? 이건 네 선에서 잘 대응해라. 아무리 그래도 네 형에게 직접 하라고 할 수는 없잖니.”
“네, 어머니.”
“임자도 명심하고. 실무는 임자 책임이니까.”
“네, 사모님.”
고주희는 갑작스러운 지목에 식겁했지만, 얌전히 대답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마지막 존재를 향했다.
“그리고 혜주야.”
“네, 큰할머니.”
원래 큰할머니라는 호칭은 할머니뻘 중에서 직계 할머니보다 연장자에게 쓰이는 호칭이지만, 유혜주는 증조할머니 유혜선을 큰할머니, 할머니 유초혜를 작은할머니라고 불렀다. 같은 집에 할머니가 둘이다 보니까 어린 시절 생각 없이 붙인 호칭인데, 그게 그녀만의 특권적인 애칭이 되었다.
유혜선 여사는 태블릿에서 차민영과 소진이가 나온 사진을 골라서 그녀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넌 이 아이를 주시하고.”
“소진이를요?”
차민영과 소진이의 존재가 최근 워낙 이슈가 된 지라 그녀도 간략하게 정보를 확인해둔 상태였다.
“너도 느꼈지. 얘가 차대야. 너도 이 할미들이나 애비, 에미 같은 꼴이 될까 무서워서 연애도 안 하는 것은 아는데, 그것도 얘가 너를 이어주면 다 벗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니 할미가 벌인 일에서 긍정적인 것이 이거 하나는 있구먼.”
원래는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할 무녀의 선덕(禪德)이 유초혜가 유명선과 결혼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악업(惡業)으로 변해서, 그 이후의 후손들은 다들 결혼으로 인한 배우자와 그 자식이 다 악몽이 되었다. 하다못해 유초혜의 두 여동생마저 끝이 좋지 못할 정도였다.
유혜주도 커가는 동안 온갖 악몽 같은 일을 많이 겪었고, 그래서 서른 넘은 나이가 되도록 남자 한 명 사귀어 보지 않았을 정도였다.
유혜선은 그런 증손녀에게 소진이를 이용하면 그런 악업(惡業)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었다.
하지만 유혜주는 그걸 그렇게 반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보고 내 악몽을 고작 다섯 살 조카에게 넘기라고? 그것도 제대로 우리 집안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온갖 고생 하면서 자란 아이에게? 큰할머니는 내가 진짜 그런 쓰레기 같은 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유혜주의 너무 정상인 같은 반응에 고주희가 되려 놀랐다.
유혜주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가는 소문 정도밖에 들어본 적 없는 그녀는 이 집안에 이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오히려 놀랐다.
유혜선이 그런 손녀의 반응에 오히려 기분 좋게 웃었다.
“흘흘흘. 그럴 리가 있나. 우리 손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것은 이 할미가 더 잘 알지. 너를 그렇게 키운 사람이 이 할미인데.”
“그럼?”
“이 할미가 그 양반하고 통(通)은 끊어졌어도 교(交)는 아직 좀 남아 있거든? 그런데 요즘 그 양반 아주 맥을 못 쓰더라.”
“응?”
“초혜가 만든 아이가 원래 그 양반을 노리고, 나름 그 양반에게 대항할 만한 혈통을 이어서 만든 것도 있지만, 그 아이가 자라오면서 붙은 양반들도 한둘이 아닌 것 같아. 흐흐. 우리 양반도 거기서는 크게 힘을 못 쓰는 느낌이더라. 그래서 지금 아기가 아주 살판이 났어. 그 양반이 소유권은 주장하는 모양인데, 옆에 붙어있는 아이의 힘 때문에 실제로는 전혀 안 먹히는 느낌이야. 이대로 크면 아기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그 양반도 그냥 지나가는 잡신 정도의 영향력밖에 안 남을 거다. 자기 덕이나 털리는 신세가 되겠지. 흘흘흘.”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에 고주희는 뇌를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에 별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재능이 이게 들여다봐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녀를 보호했다.
반면에 유혜주는 색다르게 받아들였다.
“그 아이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그럼 굳이 아기를 끌어들일 필요 없잖아.”
“응? 그건 또 무슨 소리니?”
“이런 조건 저런 조건 다 생각해도 걔가 내가 평생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제대로 된 남자일 것 같은데? 더군다나 나도 결국 누군가의 애를 낳아서 피는 이어야 할 거 아냐. 괜히 아기에게 그런 것 떠넘기는 것보다는 내 새끼를 낳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나? 걔가 내 이복동생인 것은 아는데, 그래서 뭐? 어차피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남이었나?”
유혜주가 굳이 다른 사업 다 두고 문화 예술 사업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가 반쯤 미쳐버린 똘아이라는 점도 있었다.
손녀의 입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유명선과 유준선은 말을 잃었고, 유초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어디 남매간 근친상간을 동성동본에 비교해!”
유명선과 유초혜의 결혼에 문제가 많았던 것 중 하나는 둘이 같은 동성동본에 속하는 유씨라는 점도 있었다. 그래봐야 유초혜의 유씨는 최소 10대 가까이 독자로 이어진 가문이고, 유명선은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동생 말고는 일가친척도 없는 고아라서 별 의미는 없었다.
유초혜는 손녀딸이 끔찍한 발상에 자기 부부의 일을 끌어들인 것에 격노했다.
하지만 유혜주의 반격이 날카로웠다.
“흥, 그런 소리 할 거면 애초에 할머니가 잘 했어야지. 이거 다 할머니가 애먼 짓 해서 시작된 거잖아.”
“그게 나 좋자고 한 일이니! 니 애비를 보호하고 너를 보호하려고 벌인 일 이잖니!”
“그럼 할머니가 직접 했어야지! 애꿎은 엄마는 왜 끌어들였어!”
심각하기 그지없는 분위기가 갑자기 할머니와 손녀의 디스 전으로 번졌지만, 고주희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웃고 있는 유혜선 여사나 허망한 눈으로 한숨 내쉬고 있는 회장 유명선과 부회장 유준선이 그러면서도 뿜어내고 있는 위압감이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심각한 이슈도 있었다.
‘씨발, 뭘 어떻게 하든 차민영의 가치가 더 높아질 거라는 소리잖아. 이거 괜찮으려나?’
차민영과 고주희의 사이는 여전히 회복 불능 상태였고, 사실 그 원죄는 고주희에게 있었다. 고주희 로서는 속이 타는 일이었다.
고주희는 차민영과 소진이의 사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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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같은 시간 차민영과 소진이의 사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여자가 하나 더 있었다.
“이들인가요?”
“네, 마담.”
“사이는 어때요?”
“최근에 이들 모녀를 공격하려고 한 자들이 있었는데, 유진의 손에 최소한 수십 명이 죽어 나갔습니다. 아주 거칠 것 없이 도륙해 버리더군요. 이번 연구소 사건도 사실은 거기에서 파생된 일입니다. 저희는 유진이 이 모녀를 진짜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린 겸 목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아주 성공적이기는 합니다. 저희가 준비한 역린이 아니라는 점은 문제지만요.”
인천 공항을 통해 막 한국에 입국한 에반젤린 린데르 통칭 이브는 현지에서 미리 준비 중이던 부하가 보여준 사진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마리아 리페 박사가 한국에 준비 중이던 거점과 그녀가 보낸 인원에 문제가 생기자, 파벌 간 교섭 끝에 그 뒷수습을 위해서 긴급 파견된 상태였다.
“그런데 마담, 이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너를 약하게 만든다라는 말도 있다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의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전 지금 상황에서 유진 같은 존재를 보면서 그걸 그냥 이야깃거리라고 치부할 자신이 없습니다.”
부하의 걱정에 이브가 고개를 저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작전에 [역린(逆鱗)]이라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도 않은 동양식 명칭을 붙인 이유를 잊지 마십시오. 역린(逆鱗)은 용의 약점인 동시에 용을 진심으로 화나게 만드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위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유진을 세상에 잡아 두기 위해서 그에게 역린을 만든 것이지, 그의 약점을 만들기 위해서 역린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역린이라는 말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명칭입니다.”
“그렇군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차후는 어쩌겠습니까?”
“일단 한국 내에 거점을 만들어서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리페 박사님의 계획은 끝입니다. 회(會)와는 연결을 끊습니다.”
“회(會)에 새로운 연구소 제공을 요청하지 않고 말입니까?”
“그쪽은 이 상황이 되고도 우리 쪽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 아직 대답도 없습니다. 유니언 차원이라면 몰라도 그룹이나 우리는 그쪽과 절대로 연합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럼?”
“정상적인 공식 업무만을 통해서 활동하고, 연구도 공식 루트로 공식적으로 가능한 것만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일단 유진과 이들에게 접촉할 방법부터 찾아야겠죠.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해당 여성이 한국에서 제법 신망 있는 소규모 IT 회사를 운영 중입니다. 시스템 구축이나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엮어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전에 우선 좀 쉬죠. 숙소는 어딘가요?”
“실례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부하 직원과의 대화를 끝냈지만, 이브는 차민영과 소진이의 사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유진을 외부로 내보내고 외부에서 가족 같은 존재를 만들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자는 것은 마리아 리페의 계획이었다.
연구소 안에 가둬 둔 상태에서는 더 이상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게 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과 소통하게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UE 내에 유진을 단순히 실험용 원숭이로만 여기는 파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월자인 유진이 자신들을 이끌 미래의 새로운 신 혹은 위대한 지도자가 될 거라고 믿는 파벌이 있어서 진행할 수 있었던 계획이었다.
오래된 장기 계획이었고, 계획에 이름도 있었다. 위버멘쉬 프로젝트라고.
그리고 그 계획에서 마리아 리페가 다른 파벌들을 견제하고 협조받기 위해서 유진의 가족으로 계획하고 있던 존재가 바로 이브였다.
‘너희들의 그 자리는 원래 내 것이었어!’
차민영과 소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질투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01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