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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83화 (18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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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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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Scent of A Man, Dream of A Woman - 002

차수연이 점심을 위해 고른 가게는 백화점 내의 전문 식당 가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유명 레스토랑의 분점이었다.

평일에도 손님이 넘쳐나는 곳이라서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서 예약했고, 여유 있게 이 집에서 유명한 메뉴는 전부 다 맛을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굳이 이곳을 고른 이유도 있었다.

백화점에 딸린 식당이라고 하지만 본점은 무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도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고 공인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한국에서 인기 있는 파스타와 피자류가 메인이기는 해도 이탈리아 정통 방식으로 해산물 요리를 취급하는 몇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최근의 동거 생활 중에서 유진이 내놓은 갖가지 요리를 맛보는 중에 유진이 해산물 쪽으로는 별로 경험이 없고 관심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해산물 요리들에 대한 경험을 늘려줄 목적으로 고른 것이다.

차수연은 열심히 사심을 채우는 중이기는 했지만, 지금 그녀들이 젊다 못해 어린데다가 세상 경험이 부족하다는 유진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기 위한 일이라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단지, 시내 중심가의 이 백화점이 나름 패션에 관심 있는 어느 정도 부유한 여자들이 잔뜩 모이는 곳이라는 것과 이 식당이 이 백화점 손님 중 그런 분류의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던 점이 문제였다. 무엇보다 그런 여성 중에 자기와 껄끄러운 사이인 여자들이 많다는 것도.

다행히 서로를 경멸하는 두 여자의 만남은 당장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서로 일행이 있었던 것도 있었고, 이런 공개된 자리에서 과거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둘 다 개념이 없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크지 않은 가게에서 두 일행의 자리도 조금 떨어진 곳으로 안내받아서 더 이상 문제가 늘어날 소지는 없었다.

그래도 기분 자체는 좋을 수가 없었고, 무시하고 그냥 없던 일로 하기도 어렵기는 했다.

- 무슨 일이야? 가족과 연관되는 일은 절대로 없는 것 아니었어?

주다혜가 굳이 이걸 언급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성조운의 이름을 듣고 보니 그냥 넘어가면 밥 먹다가 체할 것 같은 기분인지라 결국 폰을 꺼내서 문자를 날렸다.

어지간하면 유진도 있는 곳에서 예전 일을 화제로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성조운이라는 이름이 너무 거슬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옛 고객들 대부분이 개쓰레기인 것은 다 비슷하지만, 그중에서도 성조운은 질이 가장 나쁜 편이었고 차수연과 주다혜를 특히 선호해서 더 짜증 나던 인간이었다.

- 그 인간이 좀 많이 병신이었잖아. 룰 위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연히 외부 행사 장소에서 만나자 행사장 으슥한 곳에서 내 옷 안으로 손 집어넣은 적이 있었어. 아마 내가 아무리 잘나도 자기는 날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나 본데, 그러다가 지 딸인 저년에게 들켰었지. 병신.

- 그런데 왜 피해자인 언니에게 지랄인데?

- 저 년은 지 애비가 딸 같은 여자에게 성희롱한 것을 보고도, 그게 내가 지 애비에게 꼬리를 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더라. 아니면 그 병신이 지 딸에게 변명한다고 우리에 대해서 뭔가 모호하게 말했던가.

- 그래서?

- 나중에 우연히 샤X 매장에서 만났는데, 내가 지랑 똑같은 가방 사려고 온 것이 맘에 안 들었는지 거기서 창녀 짓 해서 번 돈은 좀 아끼는 것이 어떠냐고 나한테 헛소리하다가 매장에서 쫓겨났지. 가끔 백이나 한두 개 사려고 들르는 저년과 달리 나는 아예 등급부터 비교가 안 되는 VIP였으니까.

- 그걸로 끝?

- 그럴리가. 나중에 그 인간이 그 병신에게 룰 위반 그것도 딸년에 대해 공식적으로 경고 날려서 쟤가 나한테 사과하러 왔어. 그것도 나 일하던 공항으로. 사람들 다 보는 데에서 머리 숙여야 했으니까, 본인 딴에는 꽤 굉장히 굴욕스러운 경험일걸? 그래도 똑똑했지. 사과하러 안 왔으면 네 후배가 되었을지도 몰랐으니까.

- 그거 나름 사이다 결말인데?

- 지랄하네. 그래봐야 쟤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내가 기분 좋을 리가 있겠냐? 거기에 나중에 들어보니까 쟤는 여전히 내가 지 애비에게 꼬리 쳤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더라. 어쨌든 더 신경 쓸 일은 없을 거야. 그날 이후 그 인간 얼굴 볼일 없었고, 소문 들어보니까 요즘은 그 인간도 예전만 못한 모양이니까. 요즘 그 회사 엉망이잖아.

- 그래?

- 그래. 그러니까 너도 신경 끊고, 우리 밥 먹는 것에 집중하자. 슬슬 진이 째려본다.

스마트폰에 시선 집중하고 미친 듯이 놀려서 손가락을 말하는 것보다 빠르게 대화를 나누던 주다혜가 마지막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유진이 메뉴판을 내려놓고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수연 말대로 째려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차가운 그 눈빛은 주다혜로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준은 되었다.

“대화 끝났나? 더 할 말이 있더라도 일단 주문부터 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때?”

“끝났어요. 메뉴는 골랐어요?”

“난 이것들로.”

유진은 문어가 들어간 문어 카르파쵸를 애피타이저로 시작해서 해물이 잔뜩 들어간 링귀네 파스타와 살시챠 피자를 거쳐서 커다란 등심 스테이크에 디저트로 다크초콜릿 케이크까지 풀코스로 메뉴를 골랐다. 이탈리아식 정식 만찬 코스에서 식전주만 뺀 구성이었다.

원래 이 가게에서의 점심은 보통 이 중 하나나 둘 정도를 고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유진은 그런 것 몰랐고 알아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차수연은 거기에 한술 더 떴다.

“여기 그렇게 양 많이 나오는 곳 아니야. 자기 그걸로 부족할걸?”

“그런가?”

“응, 그런데 나랑 다혜는 당신처럼 풀코스 다 못 먹으니까, 우리 것도 같이 먹으면 될 거야. 우리 것 덜어 먹어도 괜찮지?”

“상관없지.”

다른 사람의 음식을 덜어 먹는 것을 특히 지금처럼 여성이 다 먹지 못해서 남기는 듯한 느낌의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을 굉장히 모욕적이거나 더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차수연은 그 부분을 확인한 것이었는데, 유진은 그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유진은 먹는 것에는 진짜 진심이었고, 같은 접시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오히려 유대감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소 시절에 같은 접시의 음식을 나눠 먹을 기회가 있던 사람은 정말 유진에게도 소중했던 몇 안 되는 소수의 친구가 전부였다.

그 시절에 유럽 귀족식의 까다로운 테이블 매너에 대한 교육도 철저하게 받았지만,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 정도만을 빼면 일부로 싹 무시하는 편이었다.

차수연이 그런 유진의 태도에 그녀의 나이에 비어 젊어 보이는 얼굴에서도 훨씬 더 어려 보이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 자기. 그거 알아?”

“뭐?”

“자기는 먹는 것 하나도 여자들이 바라는 이상향 그 자체라니까.”

“응?”

엉뚱한 말에 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차수연이 주다혜에게 말했다.

“다혜야, 들었지? 우리는 맛만 보면 나머지는 진이 다 해결해 줄 거야. 그러니까 양 걱정하지 말고 평소에 먹고 싶었던 것 겹치지 않게 다 시켜보자.”

“그거 좀 낭비 아니에요?”

유진이 먹는 것이 낭비라는 뜻이 아니라, 음식점 가격표가 불만인 주다혜가 살짝 이의 제기를 했다.

주다혜도 여기 처음 오는 것이 아닌데, 그녀 기준으로는 이 가게는 맛과 양을 가격과 비교하면 가격이 너무 비싼 편이었다.

주다혜 생각에는 유진이 해주는 요리들이 이 가게 음식보다 더 맛있었다. 굳이 이 가게 음식들을 그렇게 먹을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차수연도 이 가게 음식이 유진이 만들어주는 것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여러 가지 맛있게 먹여 놓으면 나중에 유진이 만들어주는 음식들에 다양한 레퍼토리가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금수저인 그녀는 맛있는 음식들을 여러 종류로 많이 먹어 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자식 교육 중의 하나라고 배우면서 자랐고, 그걸 유진에게도 적용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아무리 시켜봐야 오늘 사려고 봐 둔 드레스 하나 가격도 안 나와. 너한테 내라고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낼 거 아니면 가성비는 알 바 아닌 법이다.

“사랑해요, 언니.”

“꺼져.”

두 여자는 깔깔거리면서 메뉴판을 거의 박살 낼 기세로 온갖 메뉴들을 골랐다. 직원이 주문받다가 당황했을 정도였다.

“손님 이 정도면 10인분이 훨씬 넘습니다. 괜찮으신가요?”

“걱정하지 마요. 남긴다고 포장해 달라고 하거나, 중간에 주문 취소하지는 않을 테니까.”

“손님이 원하시면 남은 메뉴들은 다 포장해드릴 수 있기는 합니다. 다만 따로 포장비를 받습니다.”

“그럼 문제 될 것 없잖아요? 애피타이저부터 코스 순서 맞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되니까 준비되는 순서대로 주세요.”

“네, 손님.”

꽤 파격적인 이야기가 오간 덕에 주변에서 시선이 몰렸다.

사실 셋은 그렇지 않아도 시선을 끌고 있었다.

주다혜는 나름대로 인지도 있는 인플루언서로 여기 있는 사람 중에 한둘 정도는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고, 차수연은 그런 주다혜보다 나이가 많은 표가 나면서도, 젊고 유명한 주다혜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미녀였다. 당연히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손님의 9할 비중인 여성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히 그녀들이 아니라 유진이었다.

190cm를 넘는 큰 키에 동양인보다는 서양인 모델 스타일의 비율, 거기에 역삼각형의 근육질 몸은 블레이저를 벗어 면티 차림이 되자 더욱 두드러지게 돋보였다. 거기에 그 훌륭한 몸에 화룡점정을 찍는 날카로우면서도 화려한 얼굴까지 더해지면, 어지간하게 특이한 취향을 가진 여성이 아닌 이상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외모였다.

그리고 그 정점은 유진이 선보이기 시작한 먹방이었다.

차수연과 주다혜가 한두 번 포크를 놀려 맛만 살짝 보고 내민 접시가 유진의 포크가 두어 번 지나가면 깨끗하게 빈 접시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났다.

거기에 그렇게 먹고 있음에도 급하게 먹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유진이 포크를 움직이는 횟수는 차수연이나 주다혜의 것과 거의 비슷한 횟수에, 씹는 시간도 그녀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단지 유진이 한 번에 입으로 가져가는 음식의 양이 그녀들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자들과 유진의 체격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슷해 보여서 전혀 어색한 느낌이 없을 뿐이었다.

거기에 그렇게 잔뜩 입에 가져가는 동작 중에도, 입안에서 음식을 씹는 순간에도 유진의 자세와 표정이 변함없이 우아한 느낌을 풍겨서 더욱 천박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 와중에 맞은편에 앉은 두 여자는 유진이 한 입 먹을 때마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눈빛을 통해서 느낄 수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덤도 있었다.

“와, 뭐 하는 남자지? 모델인가? 아니면 신인배우?”

“운동선수 아닐까? 몸매 좀 봐. 죽여준다.”

주변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다른 여자들의 감탄과 그녀들을 향한 질투의 눈빛으로 뿌듯하고 우월감 가득한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래서 돈 많은 남자들이 트로피 와이프를 원하고, 연예인 애인을 두려고 하는 거군.’

이 와중에 주다혜는 자기에게 스폰질 하던 남자들의 마음까지 체감하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지금의 분위기가 너무도 마음에 드는 나머지, 유진이 중간에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짜증 나는 화제를 꺼내도 타격이 없을 정도였다.

“입구에서 마주쳤던 여자와 그 일행들이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군. 그냥 둬도 되는 건가? 원한다면 나서 줄 수 있는데?”

유진이 눈조차 돌리지 않고 작게 말했지만,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차수연은 그쪽을 바라보지 않고 슬쩍 곁눈질만 했다.

입구에서 마주쳐서 분위기를 망쳤던 성희진과 그녀의 일행은 본인 포함 여자 세 명과 남자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차수연은 그냥 보기만 해도 친구에게 자기 남자 친구를 소개하러 나온 일행이라는 것과 남자가 성희진의 남자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일행 중 여자 하나가 유진에게 꽤 관심을 보이고 있고, 남자가 얼굴이 일그러져 있으며, 성희진이 뭔가 조용히 입을 놀리는 꼴을 보고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훗, 니가 그래봐야 뭘 할 수 있는데?’

이미 한쪽이 스스로 만족하는 상태에서 다른 쪽이 시기와 질투를 보내고 있다면 누가 이긴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차수연은 조금 전 입구에서 나락으로 갔던 기분이 오히려 반대로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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