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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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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Scent of A Man, Dream of A Woman - 003
차수연은 유진이 쓸데없는 것들에게 쓸데없는 관심을 쏟지 않기를 원했다.
저것들이 매우 같잖기는 하지만 유진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죽을죄를 지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지금은 유진이 자기에게 더 집중하기를 원했다.
“신경 쓰지 마. 병신 같은 것들의 병신 같은 질투에 다 신경 쓰면 이쪽이 더 손해야.”
차수연은 우아하게 웃으면서 유진의 앞에 놓인 초코케이크를 향해 포크를 뻗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저 하찮은 것들보다 눈앞의 초코케이크 맛이 더 큰 관심 사항이었다.
“그런가?”
유진은 별로 납득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대화의 와중에 팔길이가 약간 부족한 차수연 대신 초코케이크를 한 조각 작게 잘라서 자기 포크로 찍어서 차수연에게 내밀었다. 매일 소진이 밥 먹여주다 몸에 밴 습관이 우연히 자연스럽게 발휘된 것이었는데, 차수연은 생각도 못 한 그 자상한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름 받아먹었다.
의도치 않게 꽤 로맨틱한 장면이 연출되었고, 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질투와 감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 나도?”
주다혜가 작게 질투를 일으키자, 유진은 별생각 없이 그녀에게도 한 조각 잘라서 포크를 내밀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유진은 먹는 것에는 진심이었다. 평소 구박을 많이 하는 주다혜지만, 그녀에게도 절대로 먹는 것 가지고는 서운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유진은 이걸 뭘 특별한 애정 표현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받아먹는 주다혜의 얼굴에 가득한 행복과 애정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못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누군가는 꽤 관능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어머,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라니?”
“삼각관계인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여자들끼리 너무 무난한데?”
“이거 혹시 그 건가?”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커졌고, 성희진의 일행들도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수연과 주다혜는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는 별로 관심 없었다.
둘 다 워낙에 미모가 출중한 편이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주목이 대상이 되고 시기와 질투를 받는 일은 상시로 있는 일이었다. 이 경우는 단지 본인들의 미모만이 아니라 유진의 존재가 추가된 것이라고 해도 사실 평소 겪는 일과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미모나 걸치고 있는 명품보다 함께 하는 남자로 인해 그런 눈길을 받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사실 무척 슬픈 일이지만, 그녀들은 남자라는 생물과의 성적인 경험은 많아도 호감 있는 이성과의 이런 알콩달콩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전자이건 후자이건 상대 남자가 남들에게도 나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동년배나 연하인 경우는 더욱더 없었다.
멋진 남자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남자와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들에게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맛있는 것 한 입 먹을 때마다 보여주는 유진의 행복한 눈빛과 그 와중에 별로 의식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보여주는 스윗 한 행동은 덤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특히나 차수연은 성희진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현재 벌어진 여자의 싸움에서 누가 이긴 것인지는 판정도 필요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하찮은 시선과 질투 따위에 관심과 마음을 나눌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아니었다.
‘거슬리는데.’
입안에 들어오는 음식들이 맛있고 색다른 자극을 느끼게 해주고 그래서 행복한 것과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거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성희진과 그 일행이 둘러앉은 테이블에서는 차수연과 주다혜 그리고 유진을 대상으로 하는 온갖 험담과 악의적인 추측이 오가는 중이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다른 테이블에서도 은근히 그들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차수연과 주다혜를 남자관계가 난잡한 창녀이자 걸레 같은 여자라고 험담하고, 유진도 그녀들이 돈 주고 데이트 중인 호스트바 선수일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들의 험담에 진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이 근거라고 내미는 소리는 유진조차도 있지 않은 일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허황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뭔가 알아서 그런 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기 질투로 생각 없이 마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거기에 그러면서 유진에 대한 비하와 평가도 매우 웃겼다.
자신들이라면 호스트 생활을 시키지 않을 거라는 대화는 살인마가 부업이기는 해도 엄연히 요리사이자 가사 노동자이며 그런 자신에게 꽤 만족하고 있는 유진을 자기들 맘대로 호스트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여자들은 차수연이나 주다혜 같은 여자들과 달리 자기들의 인맥과 힘이면 모델이나 배우로도 충분히 밀어줄 수 있겠다면서 유진이 마치 자기들 물건인 양 품평을 하고 있었고, 남자는 얼굴만 그럴듯하면 다인 줄 아냐면서 저런 외모 따위 널리고 널렸다면서 유진을 비하하고 있는 것은 덤이었다.
‘이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유진은 이런 상황이 너무 낯설었다.
기분이 나쁜 것은 확실한데, 어떤 조처를 하기에는 애매했다.
유진도 리스크 관리의 기본 개념 정도는 있었다.
예를 들자면 룸살롱 홍월에서 대놓고 수십 명의 인간을 속전속결로 다 죽여버린 것은 지금 막지 않으면 일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거라는 예감이 있어서 저지른 일이었다. 그 일이 그냥 평범하게 넘어갈 거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이후 그 배후에서 발견된 UE와 성화의 그림자를 생각하면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동으로 지금 대한민국 전체의 사법, 치안, 정보 조직들이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이 나라 자체와 싸울 각오가 아닌 이상 자신이 드러나는 일은 당분간 조심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여자들과 남자는 자신이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고 죽여 버려야 할 정도로 위험하고 적대적인 존재인지 애매했다.
저렇게 말로 떠드는 것 외에 뭔가 행동으로 간섭해 오려는 느낌이 전혀 없는데. 듣자 하니 이 나라에서 제법 영향력 있는 부자 혹은 권력자의 가족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면, 처리할 만한 가치에 비해 처리 과정에 들여야 할 노력의 양과 그 후 뒤처리에서 문제가 될 화제성과 그로 인한 리스크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적대적인 존재이지만 죽이기 위해 들일 노력이 아까울 정도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하는가?
유진은 생각도 못한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딜레마와 만났다.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대부분 내 편 혹은 적 혹은 전혀 상관없는 존재만 보아왔지, 적대적이지만 위험하지 않은 중립적 존재는 유진에게는 정말 생소한 존재였다.
그리고 원래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삶의 와중에 지겹도록 많이 접하게 되는 이런 유형의 인간들을 드디어 접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상황은 유진이 드디어 나름 평범한 삶을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다행히 고민과 사념의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폴 코스 만찬을 즐기고 있는 그들과 달리 성희진의 일행은 단품으로 식사 정도만 하려고 들린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은 굳이 유진의 일행과 비교당하는 묘하게 기분 나쁜 지금의 시간을 늘리려고 하지 않았다.
“언니, 쟤들 가나 본 데요?”
“가거나 말거나.”
유진과 달리 차수연은 진심으로 그들에게 관심 없었다.
그들이 떠난 이후 식사 자리는 더욱 화기애애하고 즐거웠고, 식사 후 이어진 쇼핑도 무난하게 이어졌다.
유미향이 요구한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을 슈트와 구두부터 우선 해결했으니, 그다음은 차수연의 취향을 즐길 차례였다.
그녀들은 유진을 데리고 스포츠 브랜드 매장부터 방문해서 갖가지 운동화부터 사서 신겼다.
대충 입고 대충 신고 사는 차민영과 달리 차수연은 방 하나를 구두와 운동화로 가득 채우는 여자였고, 자기가 좋아는 하지만 신을 수는 없는 온갖 운동화들을 유진에게 신겨 보면서 즐겼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신발에는 나름 예민한 유진도 거부감 없이 같이 어울려 주었다.
그 후 청바지 매장에서 유진이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녀들의 관점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인 청바지도 열 벌정도 샀다. 역시 유진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들 눈에는 힙하고 멋있다는 스타일의 옷들도 여럿 입어 보고 구매했다.
유진은 일단 자기 맘에 안 들어도 그녀들이 어울린다고 하면 군말하지 않고 입었다.
최소한 자신에게 패션과 예술에 대한 감각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의외로 이 부분도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 발견되었다.
유진의 양손에 커다란 쇼핑 가방만 열 개 이상을 들린 상태로 차수연이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샤X 매장이었다. 유진의 것을 사려고 온 것은 아니고, 쇼핑의 마무리로 자기 것 사러 온 것이었다.
원래는 최근에 주다혜 때문에 겪은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유진과의 일이 결정되기도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다. 유진과의 즐거운 쇼핑과 데이트로 스트레스는 날아간 상태였지만, 대신 유진에게 예쁜 모습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일정을 유지했다.
첫사랑인 그에게 그야말로 철저하게 이용만 당한 차수연은 여자라면 어지간하면 있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옷을 고르는 경험이 없었다.
유진을 그 정도로 마음 깊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유진이 자기 남자이며, 그녀가 오히려 유진에게 매달리는 처지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 유진과 이런 경험을 가지는 일은 그녀에게는 꽤 기대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사실 처음 갈아입은 원피스를 유진에게 보여줄 때는 그냥 이쁘다는 소리 정도만 들으면 만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진의 반응은 달랐다.
“그거 뭔가 당신에게 안 어울리는데? 색이 당신 피부랑 안 어울려.”
유진은 의외로 진지하게 그녀의 선택에 대해 의견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다른 옷과 다른 장신구 등에도 세심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신구 이상한데? 체인 좀 바꿔보지. 금색 말고 은색으로.”
“그거 허리띠 색깔이 괴로운데? 디자이너가 원래 정한 거라고? 당신 남의 선택을 고민 없이 그냥 따르는 스타일이었나?”
유진은 패션 그 자체는 모르더라도 색을 바라보는 감성이 날카로웠다. 그리고 의외로 본인 패션에 무감각한 것과 달리 차수연이 입었을 때 더 예뻐 보이는 것과 덜 예뻐 보이는 것은 확실하게 구별했다.
주다혜가 감탄했고, 차수연은 그야말로 즐거움과 만족감의 한계를 돌파한 새로운 수준의 즐거움과 행복함을 즐기는 수준이었다.
쇼핑 중에 지루하다고 짜증만 내지 않아도 훌륭한 남자라는 것을 모르는 여자는 없다.
그런 상황에 명백하게 자기가 매달리는 처지인 남자가 쇼핑 중에 진지하게 의견을 내고 품평까지 해주며 적극적으로 어울려 주는데 그게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끝나나 싶은 쇼핑의 마지막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어?”
차수연이 새로운 옷과 새로운 액세서리를 갖추기 위해 피팅룸으로 향한 사이에, 매장에 들어오는 새로운 손님이 있었다. 주다혜가 나름 익숙한 그 손님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점심때 식당에서 만났던 성희진과 함께 있던 일행 중 남녀 두 명이었다.
그들은 주다혜와 유진을 보자마자 인상을 확 찌푸리면서 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딱히 말은 없어도 무슨 의도인지 모를 수가 없을 무례한 행동이었었다. 표정만으로 내뱉지 않은 대사가 머릿속에서 자동 플레이될 정도로 전형적인 그 모습에 주다혜가 욱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유진은 다시 한번 딜레마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정도의 상황인가?
여러 가지 노력과 수고와 뒷일의 리스크 관리를 생각해도,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싫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