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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87화 (18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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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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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Scent of A Man, Dream of A Woman - 006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된 이유는 유진이 화가 나서 관련자들에게 화풀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하찮은 남녀가 보여준 그 하찮은 도발도 그렇고 거기에 넘어가 그를 함부로 대하는 백화점이나 매장 직원들의 태도도 유진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인은 생각했다.

유진은 남이 자신에게 보내는 시선이나 경멸 따위에 굉장히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바라보는 시선 중 상당히 많은 수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내는 그런 경멸과 하대 따위가 자신에게 실제로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는 진리는 아주 어려서 터득했다. 그래서 그런 하찮은 것으로 마음의 상처 따위는 입지 않는다고 믿었다.

물론 아예 화도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화는 난다. 단지 유진은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해봐야 손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에 대한 보복이 필요하면 보이지 않는 그리고 누구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해왔다.

조용히 차분하게 흔적 없이 정동후 일당을 갈아서 아예 존재의 흔적조차 지워버렸던 방식이 가장 유진의 취향에 가까운 처리 방식이었다.

난장판을 벌인 전투들인 성화의 아파트 건설 현장 지하 주차장, 룸살롱 홍월, 강원도 지하 비밀 기지 등에서의 화려한 학살은 각자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벌인 쇼케이스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백화점에서의 일을 처리한 방식도 비슷한 경우였다.

일단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던 분노 조절 실패로 사고를 친 후, 유진은 스스로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실수했다고 인정해도 난리가 난 것은 큰 문제였다.

쓰러져서 대가리 깨진 놈이나 추한 모습 보인 여자, 혹은 그들의 편을 들은 매장 직원들이나 백화점 직원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그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었다는 것이었다.

금방 소문이 돌 것이고, 성화도 UE도 미국도 관련해서 곧바로 정보를 입수하고 상황을 분석할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성화에서 붙인 미행자로 보이는 인원이 있었고, 샤X은 마담 보른이 사업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 그녀와 관련된 기업이었다.

자신이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면 그들이 그걸 어떤 식으로 판단할지 고민해보았다.

유진은 이미 여러 차례 사소한 분쟁만으로 사람이 수십 죽어 나가는 과격한 보복을 일삼았다.

수비 하기 불리한 입장에서 선제공격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전술적 선택임과 동시에, 전략적으로 자신의 위험성을 강조해서 적대적인 존재가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망설이게 만들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자기의 존재를 강조해서 소진이나 차민영에 관한 관심을 줄이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UE나 미국은 몰라도 특히나 사소해 보이는 트집으로 수십 명 죽어 나가는 꼴을 계속 보았고, 거기에 계속 관련되어 있던 성화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조용히 성화를 노리고 있는 유진의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넘어가도 될 일을 분쟁 거리로 만들고 미국까지 끌어들였다. 당분간 자신을 감시하던 관련 조직들은 이 일과 그에 따른 진행 상황에 대해서 주목하게 될 터였다.

유진 자신도 적당히 백화점 측과 제어할 수 있는 선에서 분쟁을 즐기며 분위기를 조성할 생각이었다. 성화 쪽을 제대로 공격할 기회를 찾고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연막으로 꽤 괜찮을 것 같아서, 전화위복이라는 생각도 했다.

단지, 그런 계산을 하는 도중에 소진이와 차민영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가해질 물리적 위험의 정도는 계산했어도, 이게 차수연에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제법 타격이 있을 것 같은 차수연이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드러낸 이상, 자신도 그만큼 신경 쓰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결국 마지막으로 이걸 처리할 때, 수연씨 이야기도 확실히 해 두지. 그쪽들이 수연씨를 오히려 고맙게 여길 방법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

그녀에게 걱정하지 않게 만들어주겠다는 말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었다.

차수연과 주다혜는 유진과 즐겁게 데이트도 즐기고 그에게 마음도 표현했으며, 유진도 그걸 웃으면서 받아준 훈훈한 결말 앞에 사실 백화점에서의 분쟁은 사소한 일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SNS를 확실하게 얕본 생각이었다.

여전히 삐짐이 덜 풀린 소진이를 달래느라고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저녁 식사가 끝나고, 차수연과 주다혜가 사전 계획의 하나로 사 온 소진이 옷과 신발 그 외 여러 선물들을 내밀며 소진이에게 열심히 아부하는 사이, 유미향이 슬쩍 쉬고 있는 유진에게 다가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이거, 당신이죠?”

그녀의 스마트폰에는 샤X 매장에서 유진의 자기 몸으로 차수연과 주다혜를 가려서 그들의 얼굴이 찍히지 못하게 막고 있는 뒷모습이 찍혀 있는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유진도 이게 뭔지 알았다.

한국 생활 고작 100일이지만, SNS는 동영상 사이트와 케이블 TV 채널과 함께 유진이 가장 먼저 익힌 일상이었다. 본인에 관한 것을 올리는 경우는 없지만, 어떤 일이 요즘 화제가 되는지는 가끔 들여다보기는 했다. 무엇보다 가게 손님들이 유진의 음식을 찍어서 자랑하는 내용들을 구경하는 것을 꽤 좋아했다.

저녁 시간까지 합쳐도 아직 3시간도 안 된 일이 벌써 알려졌다는 것은 유진에게는 혀를 찰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이걸 누구에게 받은 거야? 설마 추천이라도 뜬 건가?”

“그러니까 당신이 맞기는 한 거죠?”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당신 정도라면 나랑 수연씨 다혜 정도는 얼굴 안 나와도 알아볼 것 아닌가? 굳이 왜 묻는 거지?”

“그럼 이것도 설마 당신이 저지른 일이에요?”

유미향이 사진들을 몇 장 넘겼다.

뒤로 자빠져서 대가리 깨진 다음에 바지에 똥 지리고 실려 나가는 남자와 소변 지려서 치마와 바닥을 다 적신 여자의 사진이 여러 장 지나갔다. 꽤 자극적이고 아주 상세하게 보일 정도의 고화질 사진들이었다. 심지어 얼굴에 모자이크 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유미향은 그 말의 의미를 금방 알았다. 유진의 폭력성과 두려움이 꼭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이미 경험해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지옥 같은 경험을 하고도 어떻게든 멀쩡하게 살아갈 정도로 멘탈 하나는 자신 있는 그녀도 유진이 노려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죄이고 숨통이 막힐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화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유미향은 그 위압감과 살기를 평범한 사람이 눈앞에서 겪게 되면 옛사람이 산에서 호랑이 만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도 있겠다고 이미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지금 상황도 충분히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손가락만 대지 않았다는 거겠죠, 그건. 이 인간들이 무슨 짓을 해서 그렇게 화가 났던 거예요?”

“글쎄, 딱히? 나를 남창이라고 단정하고 위아래로 훑어보며 아주 경멸하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는데?”

“그거 죽여버릴 화가 났다는 뜻이죠?”

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니까? 죽여버릴 정도로 화가 났다며 죽였겠지.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 인간들이 살아 있는 것 아니겠나?”

“그 말은 어쨌든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의 물리적 접촉은 확실히 없었다는 거죠? 혹시 대화는 했어요? 죽여버리겠다고 겁을 줬다거나?”

“그딴 것과 대화를? 그럴 리가.”

화가 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주제에 혐오와 경멸과 분노를 전혀 감출 생각도 없이 드러내는 유진의 태도에 유미향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로 화가 났으니, 죽이지 않고 이 꼴로 만든 거군요. 어쨌든 원한을 샀으니 시끄러워지는 것은 각오해요. 이 인간 집안이 무슨 재벌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힘 있는 집안이니 꽤 귀찮게 굴 거예요.”

“응?”

유미향의 말에 유진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유진은 이 일과 관련해서 샤X이나 백화점에 대해서는 고민해도 남자나 여자 쪽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남자가 뒤로 넘어지면서 좀 다치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여자는 전혀 다친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고작 이 정도로 원한을 가진다고?”

유미향은 이것도 유진의 화가 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식의 반어법인가 생각하다가, 유진의 표정에서 진짜로 유진이 이걸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진이 꽤 폐쇄적인 곳에서 성장했다고는 알았지만, 명예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은 그녀의 예상외였다.

그래도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진을 위해 설명은 해주었다.

“이건 해당 인물만 죽인 것이 아니라 그 집안 전부를 사회적으로 죽인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쪽 집안은 조만간 집안 전체가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하게 될걸요?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당신에 대한 분노만 더욱 불태우겠지만.”

“이게 그 정도 일이라고?”

“앞으로 그 집안의 사람들은 남들에게 공공장소에서 바지에 똥 산 남자의 가족이라고 불릴 거예요. 가족들은 앞으로 저분 아들이 백화점에서 바지에서 똥 싼 그 사람이래. 너희 오빠 백화점에서 바지에 똥 쌌다는 그 남자라며. 같은 소리를 평생 들으면서 살아야 하겠죠.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평생 그 딴소리 들을 일을 생각하면, 그 남자는 이제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긴 글렀어요.”

유미향은 본인의 경험으로 미루어 단언할 수 있었다.

본인이나 차민영 혹은 주다혜같이 그 지옥이 끝나고 사람 같이 살 수 있었던 여자는 몇 안 되었다.

차민영과 차수연 정도를 빼면 다들 중간에 정신과 약물 사용을 포함해서 온갖 치료를 받고 간신히 이 정도가 된 것이었다.

그 지옥에 해방되었음에도 결국 인간으로 돌아오지 술과 마약에 의존해서 숨만 쉬고 살거나, 그렇게도 버티지 못해서 죽음을 택한 많은 동료가 훨씬 많았다.

앞으로 겪을 일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남자라면, 유진의 위협에도 그런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녀도 유진이 아무리 무서워도 소변을 지리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야기가 유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니까, 이게 차라리 죽이는 것보다 저 잔인하고 효과적인 일이었다?”

“물론이죠. 자비로운 죽음이라는 말 몰라요? 대부분 이런 꼴을 겪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생각할걸요.”

“호오?”

유미향의 말은 굉장히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유진은 그 관점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유진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관련 사항을 보고 받은 고주희는 이제는 그 기간이 아니어도 상시로 챙기는 자신의 물건을 떠올리며 치를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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