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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90화 (19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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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Scent of A Man, Dream of A Woman - 009

정상적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경우 성매매에 종사하는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호의적으로 느끼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설사 성매매 종사자를 특별히 경멸하거나 혐오하지 않더라도, 그런 사람들보다 순결하고 깨끗한 과거를 가진 사람을 더 선호하게 되는 감정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사회적인 통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로서의 본능까지 관련된 감정이다.

하지만 그건 유진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상식이었다.

유진이 만난 보통의 여자 혹은 고귀한 신분을 가졌거나 남녀관계가 깨끗하고 의학적 의미로 순결한 여자들은 모두 다 유진의 정액을 착취하는 것에만 관심 있는 여자들이었다.

그들 중 유진을 건강과 미용 물질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는 자위 기구 정도로만 취급해도 꽤 높은 인격자였다. 대부분은 유진이 그녀들을 끔찍하고 치욕적으로 느끼게 했다. 그러는 여자들에게 미추와 노소의 구별이 없었다.

그에 비해 가끔 여러가지 필요성에 의해 동원된 프로들은 유진을 전혀 다르게 대했다.

그녀들이라고 유진에게 진심과 애정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은 최소한 유진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섹스조차 유진의 정액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유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에 집중했다.

유진의 감정이 프로 즉 창녀들에게 더 호의적으로 변해간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 여자 중에서 유진이 가장 호의적으로 대한 이브 본인도 넓은 의미에서는 창녀로 동원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브는 단언할 수 있었다.

“과거 따위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사회적 평판 따위에도 관심 없겠군요. 그녀들을 이미 가까이하고 있으니 그런 이유로는 헤어질 리가 없겠어요.”

“고전적인 이간질 같은 방법을 쓸 수 있겠죠. 아니면 여자들을 회유해서 역으로 포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혹은 여성들을 물리적으로 처리하거나요. 시도해 보시겠습니까?”

“아니요. 절대 안 돼요. 그러다가 유진의 마음이 상하면 그다음은 재앙이 벌어질 겁니다. 역린(逆鱗)의 의미 잊지 마세요.”

“그럴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결국 포기했다.

질투 때문에 미칠 것 같았지만, 질투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했다.

그러다가 진짜 마지막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약간 조급해지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일단 해당 남녀 쪽은 뭔가 해보려고 하기는 하겠지만,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습니다. 제법 힘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쪽에서 뭔가 해보기에는 우리가 아니어도 이미 관련된 거대 세력이 너무 많습니다.”

“미국 말이군요. 유진이 미국과 이 정도로 빠르게 친해질지는 정말 몰랐어요. 저도 앤 헤이즈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녀가 이 정도로 유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보다 이 나라에서는 태성과 성화 그리고 차라리 샤X의 영향력이 더 무서울 겁니다.”

“샤X이요?”

“거기 배후가 결국 우리이지 않습니까? 저희가 이 나라에 아직 준비가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 따위를 신경 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럼 그 남녀들은 제치고, 앞으로 나서기 곤란한 우리도 빼고, 이번 일에는 방관자인 성화도 빼면, 결국 미국과 태성의 문제로 귀결 되는 건가요?”

“미국은 그렇지 않아도 태성에 꽤 감정이 많습니다. 유진을 관리하기 위해 특별팀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번에 나선 것은 일반 부서 쪽일 정도입니다.”

“반도체 문제인가요?”

“그것 말고도 걸린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전 중국과 베트남 쪽 합작 사업 문제가 가장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뭔가 확실히 해보고 싶을 겁니다. 물론 그러기에는 이번 일이 너 무 작은 사건이지만, 이런 작은 것이라도 하나둘 쌓으면 결국 태성이 불리해지고, 미국이 유리해지겠죠.”

“태성은 어쩔 것 같나요?”

“그렇지 않아도 태성이 꽤 당혹스럽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미국 대사관보다는 당사자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생각 정도는 하겠죠. 관련해서 문제의 아스테리아 백화점 측도 아닌 태성 본사 쪽에서 샤X 코리아도 아닌 프랑스 본사 쪽에 협조 공문을 날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있을 공동 행사에 유진과 당시에 문제가 된 일행을 참석자 명단에 올리고 싶다고요.”

“행사요?”

“일주일 후에 샤X과 태성 문화 재단에서 공동 개최하는 문화 예술 행사가 태성 예술관에서 개최 될 예정입니다. 일종의 셀러브리티 초청 파티이고, 한국 및 아시아권의 유명 연예인들 다수와 재벌과 상류층 사람들도 많이 참석하는 대규모 파티입니다. 관련 분야에서는 한국 내 최대 규모로 추정됩니다.”

이브가 차갑고 경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유진은 겉보기에는 20살 남자에 불과하니까, 예쁜 여자 연예인들 잔뜩 동원해서 혼을 좀 빼고, 한국 내 다수 권력자를 동원해서 세력을 좀 과시해 보겠다는 생각이군요.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상대가 유진만 아니라면. 예쁜 여자들? 세를 과시하는 권력자들? 오히려 반감을 사서 더 화나게 만들기 딱 좋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본사의 우리 측 인원이 이쪽의 의향을 물어왔습니다. 거절하라고 할까요?”

거절이고 자시고 초청한다고 유진이 참석이나 하겠냐고 말하려던 이브는 대답 전에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샤X이 개최하는 셀러브리티 초청 파티. 이브는 자신이 그 파티에 참석하면 어떤 포지션일까 잠시 고민해보았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들이 많이 참석하겠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 비슷한 동양 미녀들 사이의 거의 유일한 북유럽계 금발 미녀일 것이 분명한 자신의 포지션 때문이었다.

파리에서의 경험으로 수많은 서양 미녀들 사이에 동양 미녀가 하나가 끼어 있으면 유난히 눈에 띄고 돋보이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파워.

이브는 지금 UE의 아시아 총괄 대리인 자격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UE의 신분이야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지만, 그걸 위해 공식적으로는 마담 보른의 소유인 그뤼네스반트 콘체른의 대리인 자격을 얻었다.

그 신분으로 금융과 산업, 유럽 무역 관련으로 이 나라에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건 한국의 재벌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조심해서 대해야 할 신분이었다.

만약 함께 파티에 참여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열 받을 유진에게 꽤 매력적으로 어필하면서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뇨,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해주세요. 우리도 할 수 있는 것 다 동원해서 유진이 그 파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돕죠.”

“네?”

“그리고 저도 참석할 수 있게 VIP 초청장이나, 주최자 자리 확보해주세요.”

부하 직원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너무 빨리 유진과 접촉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지만, 차마 말리지 못했다.

차갑고 냉정하며 인간미가 없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가 지금 표정 관리 못하고 질투로 불타오르고 있는데, 그 얼굴 앞에 안된다고 말하고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저 일이 잘 풀리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사실 그녀가 그렇게 질투에 불타오르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자, 한 남자에게 반한 여자의 초월적인 예지인지도 몰랐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동안 유진과 차수연이 정말 뜻밖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 ** **

유진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에 차민영과 차수연과 처음으로 먹어봤을 때는 나름 재미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전혀 그날의 느낌을 받지 못했다.

간간한 이유가 있었다.

그날 이후, 유진의 몸이 섭취하는 알콜을 독극물로 분류해서 몸에 들어오는 족족 해독해 버렸다. 그래서 유진에게 알콜은 그냥 쓴맛 나는 맛없는 액체가 되어 버렸다.

차민영이 집에 여러 종류의 술을 잔뜩 모아둔 것에 비해서 일일 음주량이 맥주 한 캔, 포도주 한 잔 정도밖에 안 되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같이 마실 사람도 없는데, 맛도 없는 것을 굳이 마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차수연이나 주다혜 그리고 유미향은 달랐다.

차민영과 달리 그녀들은 전부 주당들이었다.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면 알콜 중독 환자로 취급될 정도의 주당들이었다.

그동안은 워낙에 분위기도 안 좋고 유진의 눈치도 보여서 조심스럽게 지냈지만, 요 며칠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하자 그녀들도 은근슬쩍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동은 유미향이 걸었다.

저녁 식사는 오랜만에 유진이 직접 만든 음식이 아니라 백화점 식당가에서 사 온 음식들로 이루어졌는데, 유미향이 그 중 멘보샤를 먹으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야, 이거 술안주로 딱인데. 소주 진짜 땡긴다.”

“드시고 싶으시면 드세요. 어차피 방 혼자 쓰시는데, 혼자 방에서 드신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잖아요.”

“혼술이 뭔 재미야! 거기다 이거 가지고 누구 코에 붙여. 소진이 먹이기에도 부족하겠다.”

유미향이 한마디 하면 주다혜가 말꼬리를 잡는 것고 그러다가 투덕거리는 것은 어느새 전형적인 그녀들의 대화 패턴이 되어 버렸다.

듣고 있던 차수연은 그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부분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네. 좀 양이 부족하기는 하다. 다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이걸로 좀 더 많이 살걸.”

사실 멘보샤는 간식이라고 생각해서 조금만 사고 초밥이나 롤 같은 종류를 훨씬 많이 샀다. 그런데 소진이가 의외로 멘보샤가 처음이었고, 그래서 집중적으로 먹어보는 중이었다. 그런 소진이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은 한두 개 맛만 보고 소진이에게 다 양보하는 중이었다.

차수연의 이야기에 유진이 반응했다.

“저녁 식사 끝나고 내가 만들지. 원한다면 그걸 안주로 다들 술 한잔하던가. 술이야 집에 여러 종류로 많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소진아. 눈치 볼 필요 없어. 너 다 먹어도 돼.”

이모들에게 조금 양보해야 할지 살짝 고민하던 소진이는 부담 없이 멘보샤 맛에 집중했고, 여자들도 표정이 밝아졌다. 유진이 그녀들을 먹을 것으로 차별한 적은 없지만, 메뉴에 그녀들 의사를 반영해준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건 여러모로 좋은 징조였다.

식후 소진이는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은 채로 수영장으로 다시 향했고, 술을 모아 놓은 것은 좋아해도, 마시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하는 차민영이 엄마로서 그런 딸을 돌보기 위해 같이 나갔다.

여자들이 이 집에서 유진 보다 더 눈치를 보고 있는 집안 최고의 실세 소진이에 이어, 그래도 신경 쓰이는 편인 집주인 차민영까지 자리를 비우자 이제 망설일 것이 없었다.

“소주 어디 있지?”

“시작부터 무슨 소주에요. 여기 좋은 와인 많아요.”

“멘보샤에는 소주가 최고야. 와인은 무슨.”

“교수님, 파리 유학파 아니었어요? 와인 두고 소주 찾다니 의외네요?”

“닥쳐, 너도 내 나이 되면 소주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될 거다.”

“우와. 꼰대.”

유미향과 차수연 그리고 주다혜는 각자 자기 취향들의 술을 고르고 서로서로 디스도 해가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단 저녁으로 먹고 남은 초밥과 스프링롤 등을 안주로 술을 시작하면서, 유진을 구경했다.

청바지에 하얀 면티 하나만 입은 유진이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화려하게 칼과 불을 휘두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끝내주는 예술 공연의 한 장면이며, 멋진 술안주였다.

“끝내준다. 이게 술이지.”

주다혜의 감탄에 차수연은 물론 유미향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은 멋지게 움직이는 유진의 몸을 감상하며 잠시 말없이 술맛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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