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몸이 좋지 않아서 하루 건너 뛰고, 둘째 날도 지각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일단 글은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 연재 재개합니다.
빼 먹은 편은 최대한 빨리 채워 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11 Scent of A Man, Dream of A Woman - 13
유미향은 재벌가 직계의 만남 요청에 유진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했다.
지금껏 유미향은 사교의 중요성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유진은 그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있었다. 만약 유진이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를 지금 상황에 적용한다면 유진은 김명운 이사의 요청에 만남을 허락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유진의 대답은 아니었다.
“거절하지.”
유미향은 웃었다.
유미향 기준에서는 유진의 말이 정답이었다.
사교는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격(格)과 절차(節次)가 중요하다. 사교란 것이 말만 통하면 누구와도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류층들이 괜히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서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대화를 청한 김명운 이사는 그가 아무리 태성 그룹 이사이자 태성 회장의 손자라고 해도 유진과는 격이 맞지 않았고 지금 이 자리 또한 처음 만날 만한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유미향은 유진이 그냥 귀찮아서 거절한 것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서 거절한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을 묻지는 않았다.
지금 옆에서는 아직 대답을 기다리는 지배인이 있었다.
그런 질문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할까요? 나도 거절할까요?”
그렇게 묻는 유미향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이제 짓궂어 보일 정도였다.
유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사람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교수님인 것은 알겠고, 당신이 해주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이제 적당히 하지. 밥 맛이 떨어지려고 하는군. 다녀 와. 난 당신도 보내고 싶지 않지만, 그랬다가는 그건 진짜로 전쟁 신호로 보이겠지. 당신이 지금까지 말한 대로라면.”
“당신은 참 좋은 학생이에요.”
유미향이 매우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젊은 아가씨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그래서 그 미소는 지켜보고 있던 지배인이 살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유진은 그 아름다운 표정을 보면서도 뚱한 표정이었다.
“좋은 호구겠지.”
이 대답은 유미향을 조금 움찔하게 했다.
유미향이 유진을 아주 약간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호구로 여기는 정도는 아니었다. 유미향은 유진을 명백하게 위험한 맹수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저 조금 간지럽힌다고 자기 손을 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유진이 맹수라는 것 자체를 잊은 적이 없었다.
간담이 약간 서늘했다.
유진과 같은 강자가 자기가 호구가 되었다고 느끼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유미향은 최근 여러 번의 술자리와 오늘 분위기에 자기가 좀 풀어졌었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유진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화가 나 있는 것인지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유미향이 몸을 일으키면서 살짝 화제를 던져 보았다.
“다녀올게요. 그동안 일단 내 디저트도 당신이 먹어둬요.”
“그러지.”
유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유진이 먹는 것 그중에서도 맛있는 것에 진심이라는 것은 그와 잠시라도 같이 생활해보면 모를 수가 없게 된다. 맛있는 것을 양보하는 것은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호의의 표현 중 하나였다.
그걸 유진이 별생각 없이 받아주었다는 것은 유진의 호구 발언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유진이 진짜로 화가 났다면 먹을 것 따위에 마음이 움직였을 리가 없었다.
유미향은 표는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배인의 안내를 따라 그녀를 요청한 김명운의 자리로 안내받았다.
외부에 넓게 공개되어있는 그녀와 유진의 좌석과 달리 김명운의 좌석은 따로 구별된 방까지는 아니었지만, 파티션과 장식품 등으로 외부 시선에서 차단되어있는 공간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교수님. 김명운이라고 합니다.”
“유미향입니다.”
김명운은 생각 이상으로 정중하게 나왔다.
그의 자리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막 나온 커피 한 잔이 전부였고, 유미향은 그걸로 김명운이 우연히 식사 중에 그녀와 유진을 마주친 것이 아니라, 그녀와 유진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방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명운도 처음부터 그걸 숨기지 않았다.
“만나 뵙기 정말 쉽지 않으시군요, 교수님. 솔직히 오늘 만남도 거절당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습니다.”
유미향은 뻣뻣하게 굴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왕자나 다름없는 남자가 저렇게 부드럽게 나오는 이유가 자기 때문이 아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지금 태성 쪽 연락받는다고 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유진이 차수연과 백화점 쇼핑하다가 사고 친 이후, 요 며칠 그 뒷수습을 위한 시도가 당연히 빗발쳤다. 그중 아스테리아 백화점 측에서는 태성 문화 재단을 통해서 유미향에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미향은 그렇게 받은 연락을 무시하고 있었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문화 예술과 관련된 사교계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태성 문화 재단을 무시하는 것은 몹시 위험하지만, 유미향의 현재 판단 가치는 유진이 기준이었다. 유진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만한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것 치고 제 요청은 쉽게 응해주셨군요.”
“태성 일가의 이사님쯤 되시는 분이 개인적으로 직접 정중하게 요청하신 일을 직원들이 전화로 연락해서 갑질하려는 것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으니까요.”
김명운은 직원들이 절대로 그녀에게 전화로 갑질 같은 것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토는 달지 않았다. 제삼자인 그녀에게 직원이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를 갑질로 여길 수도 있고, 지금 와서 중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이라면 백화점 직원이 아닌 전자의 직원인 제가 온 이유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사님 어머님이 태성 문화 재단의 이사장이시니까요. 그래도 다른 분 보다는 제게 말이 좀 통하리라고 생각하신 거겠죠. 그렇다고 어머님이 나서시기에 그분은 며느리니까요. 재단의 일이 아니라 경영 쪽 일에 관여하실 수는 없으시겠죠.”
“네, 맞습니다. 그룹에서는 이걸 그냥 단순하고 우발적인 간단한 사고 정도가 아니라 경영 리스크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백화점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리스크요. 그래서 백화점의 보연 누나가 아니라 제가 나온 겁니다.”
이건 압박이었다. 이 나라 최고 기업인 태성이 전력을 다해 이 일에 나서고 있으니 어물쩍 넘어가면 곤란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압박. 굳이 문화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 나선 것은 유미향에 대한 압력을 배가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 김명운의 태도가 유미향에게는 사실 좀 가소롭기는 했다.
태성이 아무리 잘나봐야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별것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태성이 그녀에게 뭔가 정말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할 힘이 있다면 이 자리에 직계의 이사님이 오시는 대신 대충 비서급이나 고문 변호사 보내서 협박을 늘어놓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싸우자고 자리를 만든 것은 아니어서 기분 나쁘지 않은 선으로 말을 받아주었다.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것 알겠어요. 그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이 뭔가요?”
“벌써 본론입니까? 좀 당황스럽군요.”
“저 이가 먹는 것에 좀 많이 예민해요. 디저트 다 먹으면 그냥 일어나 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 할 말 있으시면 빨리하시죠.”
김명운은 유미향의 이야기에 약간의 호의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엉뚱하게 미 대사관의 명의로 항의받은 이후 유진에 대해서 조사해봤지만, 아직 뭔가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먹을 것을 좋아한다는 개인적 정보는 꽤 유의미한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원래 생각하지 않았던 시도를 한번 조심스럽게 던져 보았다.
“혹시 저희와 저분 사이의 문제를 중재할 수 있으십니까?”
“무슨 중재요?”
“저분이 저희 측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계시는 문제에 대한 중재 말입니다.”
“사과는 받아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랬다.
백화점은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유진은 미 대사관을 통해서 그 사과를 접수했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는데 그걸 굳이 안 받는 상황도 우습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백화점은 사과 했으니 이제 없던 일로 만들어서 넘어가고 싶은데, 미국 대사관 측에서는 전혀 그럴 의향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 대사관 측에서는 사과를 받은 것과는 별개로 이걸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태성 그룹 입장에서는 백화점에서 늘 있는 사소한 클레임 하나를 침소봉대해서 일을 크게 만드는 미국 대사관 측의 움직임에 짜증이 났지만, 태성과 협의해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던 미국 대사관의 관련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이 사소한 트집거리도 놓치지 않고 협상의 재료로 사용 중이었다.
이걸 협상의 주제 중 하나로 삼으면 태성이 쓸데없이 봐야 할 손해가 절대로 적지 않았고, 당연히 태성 입장에서는 미국 대사관을 거쳐 미국 정부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며 중재를 받는 것보다는 당사자와 직접 합의를 보는 것이 절대로 이득이었다.
문제는 그걸 위해서 태성 그룹이 유진과 직접 접촉을 시도하면 그것으로 다시 미국 VIP에 대한 불온한 접촉으로 간주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진의 신상정보는 공식적으로는 기밀이었고, 태성이 합법적으로는 그걸 취득했다고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태성이 자기들과 인연이 있는 유미향을 통해서 이렇게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계속 거론하면서 문제로 삼고 있는데, 그걸 사과를 받아주었다고 생각하기는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저분이 이 일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그거 몹시 이상한 논리도 들린다는 것은 알죠?”
사과했으니까 내 잘못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는 소리는 전형적인 가해자 혹은 범죄자의 논리다. 정말로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김명운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물론 말로만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관련하여 당사자가 만족할 수 있을 대가를 치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교수님이 중재해주셨으면 합니다. 대가는 충분히 치르겠습니다.”
유미향은 피식 웃었다.
유진이 상냥하게 설명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 태성 문화 재단 측 직원들의 연락을 받으면서 유미향도 이 일에 미국 대사관이 끼어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지금 김명운이 요구한 것은 명백하게 유미향에게 미국 대사관을 대신해 달라고 한 것인데, 이건 아무리 잘되어도 중간에서 유미향이 미국 대사관을 원한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 정도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고작 서른 남짓한 김명운이 산전 수단 다 겪은 그녀를 우습게 보고 구슬리려는 태도에 비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국 대사관을 병신으로 만들고 살 원한에 대해, 어떤 대가를 생각 중이시기에 충분한 대가가 될 거로 생각하시는 건지는 궁금하군요.”
노골적인 그 비웃음에 김명운의 표정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