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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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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연재로 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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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Scent of A Man, Dream of A Woman - 14
김명운은 유미향의 비웃음에 욱하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김명운은 유미향의 과거를 아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여러 상류층 남자들 사이에서 몸을 좀 함부로 굴린다는 현재의 평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미향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 서른 살. 귀한 집 자식으로 사회의 쓴맛을 모른 채로 살아오면서 특히나 자기에게 알아서 몸 바치고 마음 바치는 주변의 젊은 여자들을 우습게 따먹고 버리면서 생긴 여자를 우습게 보는 성향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하게 실수였다.
태성 그룹 측에서는 이 별것도 아닌 일을 미국 대사관이 계속 부풀리고, 그걸 국무부나 미국 정치권에서도 별로 제어하지 않으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설프게 처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을 내린 상황이었다.
이미 김명운의 부친이 유진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었고, 김명운은 그걸 위한 약속을 잡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그 와중에 자신이 유미향을 잘 이용해서 굳이 부친까지 가지 않고 일을 해결하면 자신의 주가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무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리한 일에 대해서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가진 편견이 그걸 불쾌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었다.
김명운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지어지자 유미향도 얼굴이 굳었다.
그의 부친과 모친을 봐서 이 만남에 응해준 것이지, 유미향이 김명운을 어렵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유진이 필요하다면 태성 자체도 들이박아 버리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유진의 대리인 역할인 그녀가 우습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또한 이게 잘못되면 유미향 자신이 아니라 메신저로 온 김명운이 곤란해질 거라는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유미향은 살짝 경고했다.
“용건이 그거였다면, 만남은 여기까지로 하죠. 이미 직원들과 충분히 전화로 한 이야기를 굳이 직접 듣기 위해 움직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유미향이 강하게 나오자 김명운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김명운은 위에 사람 아무도 없는 진짜 무소불위 왕자도 아닌지라 눈치도 조금 있는 편이었고, 이런 경우를 대처하는 법도 알았다.
그는 서둘러 안색을 정리하고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사과드리겠습니다, 교수님. 제 이야기가 좀 무례했습니다. 당연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용건은 따로 있습니다.”
김명운이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유미향도 더 튕기거나 않고 그의 사과를 받았다.
김명운의 태도가 말만 사과이지 사실 여전히 강압적인 분위기가 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유미향은 지금 그가 유미향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유진을 향해 조심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말씀 들어보기로 하지요.”
그렇게 잠깐의 기싸움 겸 간보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진짜 용건이 시작되었다.
김명운은 유미향을 포함해서 여러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며칠 후에 있을 문화 행사에 유진을 초대했다. 정확하게는 유진을 초대 목록에 올리기는 했으나 추가로 초대장을 전달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애매해서, 사전에 이미 초대장이 발급된 유미향이 일행으로 동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태성 그룹에서는 유미향이 그렇게 협조해주는 대가로 사소하지만 가볍게 볼 수는 없는 몇 가지 편의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그에 대해 유미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했다.
자신은 그저 파티에 유진을 참여하는 것까지 책임질 뿐, 그 이후에 교섭 과정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했다. 그리고 유진을 파티로 참석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 몇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그녀의 요구 사항 대부분은 김명운 생각에 이런 걸 굳이 요구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의 것들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수락할 수 있었다. 단지 황당한 요구 사항이 하나 있어서 이 부분은 김명운도 그의 아버지에게 연락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대답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마지막 조건은 승락을 받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복잡한 일이었고, 김명운이 상당히 껄끄럽게 여긴 일이었으며, 유미향 생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유미향이 슬슬 유진이 짜증을 내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결과가 전달되었다.
“허락받았습니다. 어이없지만,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는군요. 그런데 정말 이게 의미가 있는 요구입니까?”
“다시 한번 말해 드리지만, 저이가 정말로 먹는 것에 진심이라서요. 굳이 이런 분위기에 여길 방문한 이유는 둘째치고, 그날 백화점의 일도 잘 조사해보면 샤X 매장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에요.”
유미향은 대화를 끝내기 전에 김명운에게 유진에 관한 정보를 흘려주는 호의를 베풀어 주고 이야기를 끝냈다.
먹을 것에 대해서 계속 강조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 부분에 더 신경을 써주길 원한 것이 하나였고, 이것을 이용해서 그들이 유진을 좀 얕잡아 보기를 원했다.
유진은 태성과의 협상에서 뭔가를 얻기보다는 그들과 긴장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슬쩍 약점 같아 보이지만 약점이 아닌 부분을 강조해서 태성 쪽의 판단을 흐트러뜨릴 목적이었다.
태성에는 분명히 협상 과정에 자신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상황을 보아서 당일 뭔가 협상이 진행되면 유진을 대리해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본인이 될 것이 분명하니 미리 여러 가지 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유미향은 그렇게 짧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만남을 비교적 자기 생각대로 끝낸 다음에 웃는 얼굴로 자리로 돌아와 조금 뚱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유진을 꼬시기 시작했다.
정작 유진이 파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 왜 왔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아니.”
“파티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러 왔어요. 무슨 파티냐면 저번에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그 파티예요. 태성 예술관에서 열리는 그 파티.”
“참석할 생각 전혀 없는 그 파티 말이군.”
많은 세력이 유진이 그 파티에 초청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초청도 받기는 했지만, 유진은 거기에 참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진이 이제 일상적인 생활의 영역을 좀 넓혀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보려고 하는 중이기는 하지만, 유명 연예인과 상류층 사람들이라는 유진이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만 잔뜩 모인다는 파티는 명백하게 선을 넘은 장소였다. 마치 러닝머신으로 운동 좀 시작해볼까 하는 사람을 당장 정식 마라톤 경기에 완주 목표로 참석시키는 것과 비슷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유미향은 유진을 거기에 꼭 데리고 가고 싶었다.
이 파티가 한국 상류층의 사교계의 좋은 부분과 최악의 부분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최고 수준의 문화 예술 공연과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런 파티에서만 특별히 공개되는 특별 수장품 중에서 유진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물론 현재 유진은 예술품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으므로 꼬시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가 필요했고, 그것을 조금 전 김명운을 통해서 받아낸 상황이었다.
“유진씨. 혹시 이 나라 재벌 회장들에게는 보통 사람이 재벌 회장 하면 생각하는 보편적인 상식과 전혀 다른 이상한 부분들이 하나씩 있다는 것 알고 있어요?”
“모르지.”
“성화의 유 회장님이 재벌 그룹 회장인데 평생 자기 아내 외의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걸로 유명한 만큼 태성의 김 회장님도 한 가지 괴벽이 유명해요.”
“괴벽?”
“응. 이 양반은 젊었을 때부터 외식을 싫어해서 가능한 삼시세끼를 다 집에서 먹으려 하고, 점심은 늘 도시락 지참하고, 저녁을 밖에서 먹어야 하면 집에서 저녁 도시락도 공수해서 먹을 정도인 것으로 아주 유명해요. 그런 회장님 때문에 태성 그룹은 사내 회식 문화도 거의 없을 정도예요. 당신 궁금하지 않아요? 미식가로도 유명한 이 나라 최고 재벌이 수십 년간 챙겨 먹은 집밥이 어떤 맛인지?”
유진이 흔들렸다.
유진이 잘하는 요리들에는 좀 특이하고 특별한 것들이 많았다.
피자라거나, 짜장면 같은 것들. 하지만 의외로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요리들은 조금 부족함을 느끼고 편이었다. 제빵으로는 플레인 한 식빵 같은 것이 그랬고, 일반적인 요리 중에서는 나물무침이나 국, 찌개, 생선구이 같은 것들이 어쩐지 맘에 차지가 않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유진은 아직 진짜 최고의 한국 가정식은 맛본 적이 없었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미쉐린 가이드 3성 음식점의 요리보다 더 맛보기 힘든 요리였다. 밖에서 제대로 외식을 한 일도 몇 번 없었고, 한정식은 아직 기회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 나라 최고 부자이자 미식가이기까지 한 인물의 평상시 식사는 유진에게 매우 매혹적으로 들렸다.
유진이 흔들리는 듯하여 보이자 유미향이 쐐기를 박았다.
“당신이 파티에 참여해서 그쪽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준다면, 요리사분과 대화할 기회도 주겠데요. 참고로 그 할머님 나도 딱 한 번 뵌 적 있는데, 사람 만나는 것 별로 안 좋아해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쉐프들도 한번 만나보려고 애원하는 분이에요?”
유진은 이것까지 참아내지는 못했다.
이 좆같은 세상에서 소진이를 포함해서 이제는 가족 비슷해진 여자들과의 일상을 빼면, 음식만이 유진이 행복을 느끼는 전부였다. 최고의 요리사와 만나 최고의 음식을 맛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외면하기 어려웠다.
유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기로 하지.”
유미향은 미소를 지었다. 승리의 미소 같은 것은 아니었고, 고집불통의 상대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뿌듯함이 느껴지는 정도의 미소였다.
그리고 그런 자기 표정에 유진이 약간 뚱한 표정을 짓자, 유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배는 찼어요? 호텔 내에 디저트 전문점 하나 더 있는데 거기도 가볼래요? 디저트만 따지면 여기보다 더 낫다는 평이에요. 주로 여자들 평가라서 남자 손님은 별로 없는 편이기는 해요.”
잠시 뚱한 표정을 짓던 유진이 다시 무난한 표정이 되었다.
“음. 여자들 입맛이라.”
유진이 잠시 고민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유미향은 곧 이것도 유진이 승낙하리라 생각했다.
생각대로 유진은 곧 디저트 전문점에도 관심을 보였고, 둘은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 와중에 파티 참석을 결정한 부분은 다시 거론되지 않았다. 유진은 이미 한번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다시 거론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 상황에서 그녀가 보인 미묘한 태도에 대한 불만도 상황이 지나간 이상 그냥 넘어갔다.
그녀가 유진에 대해서 파악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거였다.
적대적이거나 속임수가 있거나 나쁜 의도를 숨기는 것이 아닌 이상 맛있는 걸로 꼬시면 유진은 거의 넘어온다. 유진은 보면 볼수록 맛있는 것에 정말 진심인 남자였다.
단지 유미향은 이걸 나쁜 식으로 사용해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유진 같은 맹수과의 인간이 그냥 싸우겠다고 덤비는 자라면 모를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서 속임수를 쓴 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귀여운 모습으로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맛보고 있는 유진의 모습에 주변의 여성들이 작게 탄성을 지르는 것이 유미향의 귀에도 들려왔다. 유미향도 바로 맞은편에 앉아 멋진 미남이 보여주는 무방비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유미향은 잊지 않았다. 이 귀여운 남자가 이 상태에서도 눈 한 번만 살짝 감았다 뜨면 사람을 맨손으로 찢어 죽이는 야수이자 맹수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시 수연이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어. 차 이사는 안 되겠지만 다혜는 가능하려나?’
파티에 참석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분명 사고가 터질 것이 분명한 파티에서 이 남자를 혼자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귀가 후 유진이 삐진 소진이를 디저트로 달래는 동안 유미향은 다른 여자들과 파티 참가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차수연과 주다혜는 파티에 관심이 있었고, 예상대로 차민영은 관심이 없었다. 샤X 쪽에서 당일 문제가 된 차수연과 주다혜에게 초청장을 보내주었던 덕분에 결국 파티 참가 인원은 유진과 유미향, 차수연과 주다혜까지 4명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문제의 파티 당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