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연예인 할 팔자야.”
명동의 한 점집.
<포브스 선정 세계 3대 점집>이라는 전단지에 홀린 듯 들어온 곳이었다. 생년월일과 난시를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전문적인 느낌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돈을 날렸다는 생각뿐이었다.
“도화도 있고.”
“도화살이요? 제가요?”
“그래! 그것도 아주 어마 무시하게 세!”
음 어쩐지. 복채가 선금이라고 할 때부터 수상했다.
“아… 그렇습니까.”
백야(예비군/21/방금 전역)는 안경을 올리는 척 슬쩍 눈앞의 점쟁이를 노려봤다.
‘사기꾼.’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괜히 뜨끔했다.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지만, 갑자기 탁자를 내려치는 바람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만다.
“돌아이 할 팔자라고 넌!”
‘아이돌이겠죠….’
백야는 이때 확신했다.
‘당했구나.’
1년 6개월 만에 나온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 *
“그 돈으로 치킨이나 사 먹을걸.”
점집을 나온 백야가 시간을 확인했다.
‘들어간 지 5분은 지났나…?’
일 분에 만원을 쓴 셈이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올해 최고의 멍청 비용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포브스면 나름 공신력 있는 외국 경제 잡지 아니던가. 이제 그것도 다 옛말이구나.
입 안이 썼다.
군대에 있을 때는 시키는 것만 하면 돼서 속 편했는데. 막상 사회로 나와 보니 이건 뭐, 전쟁터 한복판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혹시 이런 걸 두고 군대 체질이라 하는 건가….’
그건 좀 별론데.
백야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무리 자원입대라지만,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차선책으로 고른 것뿐. 게다가 거긴 오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난 이제 뭐 해 먹고 살지….”
친구들은 고3 때 이미 진로를 정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백야는 무심코 사주를 조금 더 일찍 봤어야 했나 생각했다.
“그래도 아이돌은 아무나 하냐고…….”
사실 두 살만 어렸어도 치기로 도전해 봤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제가 친구들 사이에서는 노래 좀 하는 녀석으로 통하지 않았던가. 백야는 자기도 모르게 점쟁이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아이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 지금 최고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3세대만 해도 평균 연습생 생활이 6년이었다.
거기다 점점 어려지는 평균연령은 아이돌 데뷔 나이 마지노선을 제대로 낮춰 놨으니….
‘지금은 많이 늦었겠지?’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 이상한 자신감이 생겨난 백야는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자 친구들의 메신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신재현 : 백야가 벌써 제대라니ㅠㅠ 고생했다 짜식아!]
[김유경 : 전역했는데도 21실화냐? 빠른이 좋긴 좋네~]
[신재현 : 오늘 7시 홍대 맞지?]
두 사람은 전역 축하 파티를 해야 한다며 기어이 저를 불러냈다. 메신저를 확인한 백야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들도 슬슬 입대할 때가 됐는데.’
만나면 놀려 줘야지.
[나 : 그래ㅋㅋㅋ 있다 보자~]
신나게 답장을 보낸 백야는 포털사이트 앱을 눌렀다. 잠깐 주위를 확인하더니 손가락이 빠르게 자판을 두드렸다.
[아이돌 되는 법]
지식 창고 찬스였다. 대충 검색했음에도 결과가 쏟아졌다.
백야는 가장 상단에 있는 글을 눌렀다. 어제 올라온 최신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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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AIM같은 아이돌 되는법좀요ㅠㅠ (급해요)
꿈이 아이돌인 초5 남자입니다. 조언 좀 구할게요..!
1. 키 155에 몸무게 42인데 키는 더 클거니까 괜찮겠죠?
2. 생긴건 보통에서 쪼쪼쪼금 잘생겼어요.
3. 노래는 AIM거 웬만한 건 다 부를 줄 알아요. 그런데 춤은 배운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왠지 잘 출 것 같아요.
4. 이상입니다. 그럼 답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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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있는 댓글은 네 개였다.
- 에임이면 요즘 최고 인기 많은 보이그룹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다면 아무래도 같은 소속사가 낫지 않을까요? ID엔터에서 토요일마다 공개 오디션이 열리는데 한번 가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채택부탁^^)
- 잘생겼으면 ID, 실력 쩔면 US, 랩 잘하면 하이틱 오디션ㄱㄱ
- 쪼쪼쪼금 잘생겼으면 ID는 힘들것 같아요ㅠ (거기는 얼굴 엄청 보기로 유명) 대신 하이틱 외모 안 보니까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실력은 자신 있어 보이셔서~
- 다른거 다 필요 없음. 아이돌=잘생김. 그럼 알아서 모셔감.
그런데 보다 보니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외모. 백야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비친 제 모습을 봤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잔디 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 지난 1년 6개월간의 고된 훈련으로 까맣게 타 버린 피부.
“음…….”
더러운 세상이었다.
노래는 좀 하는 저였지만, 백야에겐 외모라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 정신 차리자 한백야. 내 주제에 아이돌은 무슨.”
백야는 상념을 떨쳐 내기 위해 고개를 힘껏 털었다. 점쟁이 말에 휩쓸려 자칫 흑역사를 만들 뻔했다.
그러던 그때. 실시간으로 댓글 하나가 달렸다. 아이돌 육성게임 광고였다.
- (๑و•̀ω•́)و 인생 역전의 기회! 아이돌이 되고 싶어!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 ▶ 지금 바로 다운로드 new
‘현실에서 아이돌이 되긴 어려울 것 같으니 게임이나 하라 이건가. 사람들 정말 못됐다.’
게다가 타이밍이 마치 저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백야는 욱하는 마음에 링크를 눌렀다.
‘네가 뭔데!’
곧바로 앱스토어로 연결되며 진행되는 다운로드. 아이돌 그룹이 모델인지 게임 소개란에 그들이 찍은 광고가 보였다.
“와……. 같은 인간 맞냐.”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다.
군대에 있을 때 인기 걸그룹의 전후 순서로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들이었다.
‘이름이 데이지? 데이즈? 좀 흔한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ID엔터테인먼트에서 AIM 이후로 8년 만에 내놓은 보이그룹. 그러나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 때문에 소위 망돌 소리를 듣는 그룹이기도 했다.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는 아이돌 육성게임입니다.
당신의 실력에 따라 그룹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퀘스트를 통해 획득한 스타 포인트로 천재 아이돌에 도전해 보세요~!
그럼 살아남아 봅시다! ٩(ˊᗜˋ*)و]
게임 소개가 거창하다.
어색한 미소를 걸친 백야가 이번에는 평가 및 리뷰를 살폈다.
[다 좋은데 뭘 해도 죽음 ★]
[우리 애들은 예쁨 ★★★★★]
[개복치 열심히 키우다가 100번 죽고 손절함 ★]
[운빨 똥망겜의 대명사 ★]
[D지는 거 말고 다른 엔딩 본 사람이 있긴 함? ★]
평점은 말해 뭐해. 리뷰 또한 본 적 없이 신랄했다.
“대충 보니까 엔딩 때문에 말이 많은 거 같은데.”
데뷔 실패해서 사망. 스트레스 받아서 사망. 루머에 휘말려서 사망. 사생 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 공연장 사고로 사망 등. 정말 다양한 이유로도 죽었다.
한 리뷰에서 개복치 키우기라더니, 정말 개복치도 이런 개복치가 없었다. 살아남기가 진짜 생존의 의미일 줄이야. 데이터가 아까웠다.
백야는 불과 몇 분 전의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곤 다운로드 취소를 누르려는데, 핸드폰 화면이 전환되며 화려한 그래픽이 떠올랐다.
그사이 다운로드가 완료된 것이다.
[예명을 입력해 주세요.]
“뭐야. 이건 나가기도 없어?”
게임 종료를 위해 몇 번이나 홈 버튼을 눌러 봤으나 먹통이었다. 아마 튜토리얼 모드라 그런 듯한데….
고민하던 백야는 대충 종료 버튼이 나올 때까지만 게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 예명 : 백야
확인을 누르자 동기화를 진행한다는 안내 문구가 하단에 작게 떴다.
[<백야>를 동기화하는 중입니다.]
‘아까 연동 좀 해 달라는 리뷰 있지 않았나…?’
[64%]
[82%]
[…99%]
그리고 암흑이었다.
* * *
“백야야. 한백야!”
어깨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백야가 앓는 소리를 내며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으으…….”
깨질 것 같은 머리에 이마가 절로 짚어졌다.
“이제 정신 차려.”
“안경은 좀 벗고 자면 안 되냐? 누가 보면 안경 벗으면 죽는 줄.”
백야의 학창시절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현과 유경이었다.
‘내가 홍대로 바로 왔던가? 분명 지하철에 올라탄 기억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천천히 눈을 뜬 백야가 앞을 봤다. 그러자 펼쳐지는 상상도 못 한 전개.
“무, 무…! 이게 뭐야?!”
우당탕탕!
그저 일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난데없는 급발진에 가까이 서 있던 두 사람도 덩달아 놀랐다.
“미, 미친놈아! 놀랐잖아!”
“와… 간 떨어질 뻔. 잠꼬대 한 번 요란하다. 요란해.”
눈을 떠 보니 학교였고 자신은 군복이 아닌 교복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교? 뭐지? 꿈인가?’
그런데 꿈치고는 너무 생생하지 않나.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더는 그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던 모양이다. 오늘따라 더 멍청해 보이는 백야에 그들은 손목을 잡아 강제로 이끌었다.
어디로? 짱만나 분식으로.
“어, 어디 가는 건데?”
“애가 오늘따라 영 멍청하네. 너 어디 아프냐?”
“오늘 내가 떡볶이 쏘기로 했잖아. 네가 오늘은 무조건 분식 각이라며.”
재현이 백야의 등을 툭 치며 웃었다.
“야. 얘 정신 못 차리는 거 보니까 많이 못 먹겠다.”
그 말에 유경이 주먹을 불끈 쥐며 나이스를 외쳤다. 백야가 남긴 건 제 거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도착한 분식집 안은 이미 만석.
네가 꾸물거려서 이렇게 된 게 아니냐는 타박도 잠시. 세 사람은 나란히 가판대 앞에 섰다.
“떡볶이 세 개랑 모둠 튀김 두 개, 순대랑 돈까스도 하나씩 주세요.”
재현의 야무진 주문에 유경이 박수를 쳤다. 입에는 이미 오뎅 국물을 담은 종이컵이 물려 있다.
“푸흡.”
그 모습에 백야는 역시 꿈이구나 확신했다.
‘쟤 저러다 입술 거하게 덴 뒤로 다시는 저런 짓 안 하는데.’
한결 마음이 편해진 백야가 재현을 보며 말했다.
“나 피X츄 하나 먹어도 돼?”
“어쭈. 이제 좀 정신이 드냐? 그래. 많이 먹어라.”
말을 꺼내기 무섭게 제 앞에 놓이는 양념 피X츄. 꿈이라 맛을 못 느끼는 거 하나는 조금 아쉬웠다.
백야는 꿈에서 깨면 진짜로 이곳에 한 번 와야겠다 생각하며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러던 그때, 눈앞으로 하얀 상태창이 떠올랐다.
[동기화 선물 도착!]
▶ 확인
“…어?”
놀란 백야가 뒷걸음질 쳤다. 베어 문 입안의 피X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상황. 그 와중에 눈앞의 글자는 한 번 더 바뀌었는데.
[전용 칭호 획득! <천재 아이돌>]
[스킬 뽑기 (5회)]
▶ 기본 스킬 뽑기 (무료)
선물 상자가 열림과 동시에 꽃가루가 터졌다.
“……뽑기?”
저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백야의 행동을 ‘수락’으로 인식한 시스템은 곧바로 뽑기를 진행했다.
[스킬 획득!]
[<개복치(R)>, <1일 3깡(A)>, <범생이가 안경을 벗으면(B)>, <구애의 춤(D)>
※ 창이 비어 있는 상태로 획득한 스킬은 모두 자동으로 장착됩니다.]
▶ 확인
ㅤㅤ추가 스킬 뽑기 (5회)
“이, 이게 뭐야?”
백야가 상태창에 대고 소리쳤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재현과 유경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미친 거니?”
“기, 김유경. 야 너희 이거 안 보여? 스킬 어쩌고 이거!”
백야가 허공에 삿대질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스킬?”
포크를 말아 문 재현이 백야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를 모를 리 없는 백야가 안경을 벗어 교복 셔츠에 마구 문질렀다. 아무래도 안경에 뭐가 묻은 게 분명했다.
그런데 안경을 닦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강한 악력에 의해 위로 들렸다.
“뭐야 이건. 너 누구냐?”
“으, 어?”
유경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한백야지, 내가 누구긴 누구야.”
당황한 백야가 유경의 팔을 뿌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재현이 백야의 양 볼을 움켜쥐었다.
“야. 너 안경 왜 쓰고 다녀?”
이번에는 신재현인가.
안경을 벗은 상태라 친구들과 주변 사물이 흐리게 보였다.
“뭐라는 거야 이것들이. 당연히 눈이 나빠서…….”
그러나 이 와중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상태창. 다른 것들은 다 흐린데 상태창만 또렷했다.
혼란스러운 공간. 아무래도 선택지를 고르기 전까지는 계속 떠 있을 것 같다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다시 안경을 쓰는 척, 슬쩍 ‘확인’ 위로 손가락을 올려 보자 상태창이 사라졌다.
그러나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제 손목을 잡아챈 유경이 안경을 다시 빼앗아 버렸기 때문에.
“이 새끼 대박 잘생겼잖아!”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근방 50m 이내의 모든 시선이 저에게로 집중됐음을.
“무, 무슨 소리야, 미친놈아. 떡볶이나 먹어!”
유경의 손을 떨쳐 낸 백야가 얼른 안경을 썼다. 그리곤 고개 숙인 채 피X츄를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저를 힐끔거리는 시선들 때문에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사람 멕이는 방법도 정말 가지가지.’
꿈속에서까지 저를 놀려 먹는다며 백야가 속을 끓이던 그때. 백야의 옆으로 웬 남자가 다가왔다.
“저기 학생. 여기 학교 다녀요?”
“…그런데요?”
피X츄를 뜯던 백야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명함 한 장이 제 앞으로 내밀어졌다.
“지나가다 우연히 안경 벗은 모습을 봤는데, 혹시 연예인 해 볼 생각 없어요?”
이게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인가. 아니, 도를 아십니까 일지도.
친구 놈들은 초 흥분 상태로 알 수 없는 괴성을 숨죽여 질러 대고 있었다.
“우오오옭!”
“쿠오오오!”
“하…….”
쪽팔린다.
백야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슬쩍 친구들을 노려본 백야가 한숨을 쉬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럴 주제가 못돼요.”
안경을 벗은 얼굴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남자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혹시 ID엔터테인먼트는 들어 보셨을까요? 아이돌 그룹 AIM이 있는 소속사인데.”
“들어는 봤어요. 그런데 저희 집에는 돈도 없고….”
“아뇨! 저희 회사는 연습생에게 그 어떠한 금전적인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100% 회사 지원이고요, 차기 보이그룹을 기획 중인데 정말 편하게 오디션만이라도 보러 와 주셨으면 해서….”
남자가 열심히 말을 하는 순간이었다. 사라졌던 상태창이 다시 나타난 건.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아이돌이 되고 싶어!(1) : 오디션 제의 수락하기]
▶ 네, 그럼 한번 가 볼게요.
ㅤㅤ오디션이요?
‘퀘스트라니?’
무슨 게임 같았다.
이번에는 두 개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되는 것 같은데, 당연하다는 듯 거절의 선택지는 없었다.
‘그나마 거절 비슷한 건 두 번째 선택지인가.’
백야는 망설임 없이 두 번째를 골랐다. 그러자 제 입에서 해당 지문이 흘러나온다.
“오디션이요?”
이게 뭐야?!
당황한 백야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상태창을 노려봤다.
“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간단한 노래, 춤, 그리고 카메라 테스트 정도만 하시면 됩니다.”
‘…도대체 그게 어딜 봐서 간단하다는 건지?’
백야는 다시 한번 거절했다. 상태창은 사라졌고 남자의 얼굴 위로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해치웠나.’
남자를 힐끔거리며 안심하던 순간,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다시 상태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백야는 결심했다. 뭐를?
“어?! 저기 코끼리가!”
줄행랑을.
“자, 잠시만요! 학생!”
난데없는 추격전이었다.
* * *
백야는 지하철역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상태창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던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 남자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 듯싶었다.
“우웩.”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헛구역질에 백야는 찬물로 입안을 헹궜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는데 몇 번 헹구고 나니 좀 진정이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안경에 튄 물방울이 시야를 방해했다.
“악몽이네. 악몽이야.”
꿈인데 이렇게 힘들다고?
백야가 안경을 벗으며 생각했다. 현실의 자신은 아마 가위에 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게 점집은 왜 가서….”
분명 그 점집 때문일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잠이라도 든 모양인데 이러다 종점까지 가는 거 아닌가 몰라….
백야가 중얼거리며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웬 거울 속 미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응?”
그런데 뭐가 좀 이상했다. 제가 오른쪽을 보면 남자도 오른쪽을, 왼쪽을 보면 남자도 왼쪽을 보는 게 아닌가.
이건 마치… 너와 나 데칼코마니?
“……설마.”
백야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수차례 확인한 후. 살포시 손가락을 들어 거울을 콕 찍어 본다.
그러자 ET. 아니,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게 나라고?!”
아무리 꿈이라지만, 미화도 정도껏 해야지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
아무래도 점쟁이의 말이 저에게 꽤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대박 잘생김!”
뭐,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꿈에서 깨면 이렇게 성형을 해 볼까?”
아니다. 현실에는 본판 불편의 법칙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거는 개꿈이라 가능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마음을 바로잡은 백야는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진짜 제 것도 아닌 얼굴, 계속 보면 뭐하나, 미련만 생기지.
그나저나 그 아저씨 때문에 떡볶이랑 튀김은 손도 못 대 봤다.
“피X츄 맛있었는데….”
입맛을 다시던 백야는 자연스레 개찰구를 통과했다.
‘이맘때쯤이면 누나 집에 얹혀살던 때일 텐데.’
지하철 노선도를 보던 백야는 누나가 있을 압구정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