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화 (2/340)

제2화

압구정역.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방을 얻은 탓에 이곳에 와 보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백야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바라봤다.

‘기분 탓인가.’

어쩐지 제 기억보다 더 낡은 느낌이었다.

‘겉은 저래도 안은 꽤 괜찮았던 것 같은데.’

백야가 갸웃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꿈이지만 오랜만에 가는 누나 집인데 빈손으로 가고 싶진 않았다. 백야는 주머니에 있던 T머니 카드로 오렌지 주스 한 상자를 구매했다.

그런데 감사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왠지 모르게 느낌이 싸한 거다.

아니나 다를까.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감격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뜬 상태창은 덤이었다.

“학쌔애애앵!”

학교 앞에서 만났던 그 남자였다.

“무, 뭐예요, 아저씨?!”

당황한 백야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ID 캐스팅 매니저.

“아니 여기서 다 만나다니! 우리는 운명이 틀림없다니까요?!”

“왜, 왜 여기에….”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절대 아닙니다. 마침 회사가 이 근처라 복귀하던 중이었어요. 저희는 막 뒤를 밟고 그러진 않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학교 앞 분식집에서 추격전을 벌이던 건 그럼 다른 사람이었단 말인가. 백야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그러나 남자보다도 당장 눈앞의 상태창이 더 거슬렸다. 백야는 다시금 선택지와 마주했다.

[Q.아이돌이 되고 싶어!(1) : 오디션 제의 수락하기]

▶ 알겠어요. 볼게요.

코끼리를 외쳐가며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그 선택지를.

‘왜 이번엔 하나밖에 없냐고….’

백야가 입술을 비죽였다.

무조건 수락해야만 되는 퀘스트에 백야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알겠어요. 볼게요.”

현실에선 볼 일 없으니 꿈에서라도 한번 도전해 보는 거지 뭐.

게다가 진짜도 아니니까 흑 역사가 될 일도 없었다. 그러자 대답과 동시에 떠오르는 상태창. 퀘스트 완료 알림이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1)> 완료!]

[레벨 업! Lv.1 → Lv.2]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레벨업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스타 포인트?”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에 백야가 작게 중얼거리자 상태창이 또 한 번 바뀐다.

▷ 현재 보유 스타 포인트 : 2

[획득한 스타 포인트로 ‘스킬 뽑기’ 또는 ‘스트레스 지수’를 낮출 수 있어요 ٩(ˊᗜˋ*)و]

‘저 이모티콘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러다 불현듯 떠오르는 무언가.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

백야가 소리쳤다. 순간 ID 캐스팅 매니저 동만도 덩달아 놀랐다.

처음엔 거절. 두 번째에는 도망.

완강하게 거절하던 태도는 다 어디 가고, 돌연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겠다는 강력한 포부를 드러내는 백야에 동만은 감동했다.

편의점 알바생의 레이저를 받으면서도 꼿꼿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요! 천재 아이돌! 학생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째 전보다 넋이 나가 보이긴 한다만 오히려 잘됐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건 오직 스피드.

자기가 찾아낸 이 원석이 또다시 도망가기 전에 회사로 데려가는 게 급선무였다.

“그럼 말 나온 김에 바로 오디션 보러 가시죠!”

“아니 잠시만요…! 제가 지금 그럴 상황이….”

동만에게 팔이 붙들린 백야가 바동거렸다.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몰아치는 상태창 때문에 더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아이돌이 되고 싶어!(2) : 오디션 합격하기]

“괜찮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바로 앞이 ID에요. 마침 오늘은 비공개 오디션이 있는 날이기도 하니까, 지금 얼른 가면 돼요.”

동만에게 팔이 붙들린 백야는 오늘로써만 두 번째 연행을 당하는 중이었다.

* * *

그리고 그 결과.

[<아이돌이 되고 싶어!(2)>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오디션에 합격했다.

“음색도 좋고 발성도 괜찮아요. 정말 노래 배워 본 적 없어요?”

“없는데요…….”

“춤이 많이 부족하긴 한데, 박자 감각이 나쁘진 않으니 금방 따라갈 것 같고.”

백야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노래야 좀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 봤자 일반인 기준이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

“안경은…. 시력이 많이 나빠요?”

역시 얼굴인가.

남자와 함께 오디션장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이렇진 않았다. 그런데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안경을 벗기 무섭게.

“어머! 이건 합격시켜야 해!”

도대체 김 대리는 이런 애를 어디서 찾은 거냐며 동만을 향해 온갖 칭찬이 쏟아졌다. 그 순간 동만은 확신했다.

‘합격이로구나!’

반면 쏟아지는 상태창에 현기증을 느끼던 백야.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아이돌이 되고 싶어!(3) : 데뷔하기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

패시브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 * *

당장 계약서에 사인부터 하자는 걸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지 않냐며 겨우 탈출한 참이었다. 그렇게 오렌지 주스와 함께 밖으로 나온 백야.

“꿈치고는 너무 길지 않나….”

슬슬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드는 거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는 걸 보고 백야가 걸음을 내디뎠다.

‘일단 집으로 돌아간 다음 생각을…….’

그러다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충격을 받으면 꿈에서 깨지 않을까?’

횡단보도를 건너던 백야는 깜빡이기 시작하는 초록 불을 확인하곤 걸음을 멈췄다.

조금 끔찍하지만, 차에 치이는 것만큼 커다란 충격도 없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초록 불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멈춰 있던 차들이 하나둘씩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그래도 눈 뜨고 치이는 것보단 감은 채로 치이는 게 나으니까.’

백야가 눈을 감고 다가올 충격을 어림잡아 보았다. 달려오던 차가 속도를 멈추지 못하고 경적을 울렸다.

빠아아앙!!!

‘치인다…!’

눈을 질끈 감은 백야가 어깨를 움츠리는데. 그때 커다란 품이 자신의 몸을 감싸며 바닥을 굴렀다.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간발의 차이로 차를 멈춰 세운 운전자가 창문을 열어 소리치고, 사고 현장을 목격한 행인들이 웅성거렸다.

아득한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암흑이 백야를 덮쳤다. 캄캄해진 시야에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던 것도 잠시.

깨어나기 전 바닥을 구른 감촉 때문일까. 귓가에 울리는 이명 소리와 겹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우욱!”

“처남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백야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나의 남편, 지훈이었다.

갑자기 밝아지는 시야에 백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바닥을 구르며 안경이 날아갔는지 눈가가 허전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은 백야에 지훈이 걱정 어린 얼굴로 그의 몸을 살폈다.

“왜 거기에 가만히 서 있었어. 깜짝 놀랐잖아.”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다른 불편한 곳은 없냐며 지훈이 백야의 머리를 넘겨 주었다. 같이 구르느라 본인도 엉망인데 말이다.

“……매형?”

“그래 한백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너 큰일 날 뻔했어. 알아?”

가볍게 이마를 때린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운전자에게 다가간 그는 백야를 대신해 사과했다.

그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온 백야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흐릿하지만 차 주변의 노란 액체는 오렌지 주스인 것 같고. 뒤늦게 느껴지는 통증에 손을 들어보니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다. 줄곧 짚고 있던 땅 위로는 피가 제법 흥건했다.

“아이고 어떡해…. 학생 손에 피가 많이 나는데.”

사고를 처음부터 목격한 동네 주민이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

“당장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중년의 여성이 상처를 살피며 안타까워했다.

이내 멍한 백야를 확인하곤 거듭 사과를 전하고 있는 지훈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백야에게 중요한 건 이깟 상처가 아니었다.

“고통이… 느껴져….”

이거 느껴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백야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 * *

오랜만에 본 누나였지만 감동적인 재회 따윈 없었다. 엉망인 두 남자의 몰골에 놀라기도 잠시. 사건의 경위를 듣곤 혼나느라 바빴으니.

“방에서 꼼짝도 하지 마!”

감금형을 선고받은 백야가 침대에 누워 멀뚱히 천장을 바라봤다. 상태창은 <데뷔하기> 퀘스트를 마지막으로 뜨지 않고 있었다.

사실 눈을 뜬 순간부터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꿈이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 테니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병원에서의 일로 백야의 정신 승리는 실패했다. 마취 없이 생살을 꿰매는 고통이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렇다면 여기가 게임 속이라는 이야기인데.

대개 게임이라 함은….

“게임 종료?”

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가기!”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나가긴 어딜 나가!”

오늘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간다는 누나의 불호령이었다.

“허엉. 이게 뭐야.”

이불을 뒤집어쓴 백야가 앓는 소리를 냈다. 자신이 정말 그 아이돌 게임에 들어온 거라면 끝은 불 보듯 뻔했다.

너무 신랄한 나머지 리뷰도 잊혀지지 않았다.

운빨 똥망겜의 대명사.

개복치 키우기.

99% 확률의 배드 엔딩.

“……….”

차갑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안색이 급격하게 구려진 백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리뷰대로 라면 뭘 해도 죽는다. 천재 아이돌로 성공하지 않는 이상은.’

대책이 필요했다.

“아니 그럼, 적어도 튜토리얼이나 정보 같은 건 좀 줘 가면서 굴려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뭐, 해도 해도 너무했다. 현판소설 회귀자도 다들 자기 미래는 알던데, 나는 왜!

누나가 들으면 안 되니까 숨죽여 소리치는데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내내 무시로 일관하던 시스템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Lv.2 백야 (동기화 중)

외모 : B

보컬 : A

댄스 : D

끼 : -

스트레스 : 5%

칭호 : 천재 아이돌 (비활성)

패시브 : R

백야의 정보창이었다.

“이야…. 처참하네.”

배드 엔딩을 암시하는 것처럼 등급도 순서대로 BAD였다.

‘이게 누구 약 올리나 진짜.’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보여 줬어야지!

백야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도 패시브는 좋아 보이는데.’

R이면 레어의 약자 아니던가.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거다. 좋은 거여야만 했다.

“진정해 한백야. 침착하게.”

다시금 정보창을 살피기 시작한 백야. 백야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등급 위로 손을 올려 봤다. 그러자 팁처럼 설명이 나타났다.

<범생이가 안경을 벗으면(B)>

: 안경을 벗으면 미소년이 된다.

<1일 3깡(A)>

: 음색 깡패, 음감 깡패, 음역 깡패가 된다.

<구애의 춤(D)>

: 우주의 기운으로 몸을 움직인다.

“와~”

좋다. 다 좋은데 여기 스킬명 상태가 왜 이러냐고요!

왜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인 걸까. 백야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믿을 만한 건 패시브뿐인가.’

백야는 마치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은 R등급 위로 손을 올렸다.

무릇 패시브라 함은 대상 자체에 대한 특성. 사실 이것만 잘 나와도…….

<개복치(R)>

: 매우 연약해서 잘 죽는다.

“X발?”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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