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백야는 잠깐 숨 쉬는 법을 잊을 뻔했다.
어이없지. 내가 개복치라니.
“아… 그래서 리뷰에 개복치 키우기라고…….”
이미 예견된 일이었나.
백야가 이불 위로 철퍼덕 엎어졌다. 혼미해진 정신에 손바닥을 무려 다섯 바늘이나 꿰맸다는 사실은 까먹었다.
“아악!”
찌릿한 통증이 손바닥에서부터 골까지 울렸다. 눈물이 났다.
“개복치라니… 내가 개복치라니!”
분명 이 게임의 초반. 분식집에서 상태창이 처음 떴을 때 나온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때 떴던 게 바로.
[창이 비어 있는 상태로 획득한 스킬은 모두 자동으로 장착됩니다.]
그렇다면 혹시… 반대로 해제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발견한 백야가 얼른 해제를 외쳤다. 수치스러웠지만 그만큼 급했다.
“패시브 해제!”
순정 마법 소녀물 주인공 같은 대사가 크게 울렸다. 그러나 상태창은 백야에게 모욕감을 줬다.
[패시브 <개복치(R)>은 비활성화가 불가능합니다.]
“으허어엉 망했어! 망했다고!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불 위로 엎어진 백야가 막 건져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정작 활성화되어야 할 <천재 아이돌>은 비활성화 상태인데다 <개복치>는 해제되지도 않는다니. 솟아날 구멍이 보이질 않았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였는지 시스템이 이내 다른 창을 띄웠다.
▶ 스킬 뽑기 (5회 가능)
바로 스킬 뽑기. 동기화 선물이라며 게임 극 초반. 천재 아이돌 칭호와 함께 받은 것이었다.
“병 주고 약 주냐?! 안 ㅎ….”
백야가 발끈해 소리쳤다.
그러다 문득 엄습하는 불안감. 제 기억이 맞다면 눈앞의 뽑기 5회는 ‘동기화’ 선물이었다.
생각해 보니 3년 전으로 돌아온 것 빼고 모든 게 현실 속의 제 상황과 똑같았다. 마치 동기화된 것처럼.
“이런 망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 죽으면 진짜 현실의 한백야도 죽을지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는 이 게임을 웃어넘길 수 없게 됐다.
“그래. 일단 어, 음. 뽑기를 진행해 볼까?”
괜찮아. 자연스러웠다. 안 할 거라고 소리치던 백야는 남의 집 백야로 하자. 생각해 보니 여기서 더 털릴 멘탈도 없지 않은가.
[스킬 뽑기를 몇 회 진행하시겠습니까?]
너에겐 뽑기 5회가 있는데 그중 몇 개를 쓸 거냐는 말에 백야는 외쳤다.
“전부 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스킬 획득!]
[<美쳤습니까 휴먼?(B)>, <섹도시발(C)>, <손은 눈보다 빠르다(C)>, <나야 나!(D)>, <나에게 취한다(D)>]
살고 싶지 않다.
꼴도 보기 싫은 스킬명에 백야는 눈을 감았다.
그러길 수 분.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백야는 다시금 눈을 떠 상태창을 마주했다.
“그래. 이름은 거지 같지만 능력은 괜찮을 수도 있어.”
하나씩 확인해 보자.
<美쳤습니까 휴먼?(B)>
: 가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섹도시발(C)>
: 섹시함과 도발 능력이 증가한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C)>
: 티켓팅 능력이 향상된다.
<나야 나!(D)>
: 존재감을 향상시킨다.
<나에게 취한다(D)>
: 거울을 보면 자신감이 올라간다.
그나마 건질 만한 건 외모 스킬이 전부인 것 같았다.
“미쳤습니까 휴먼은 알겠는데, 나머지는 무슨 능력이지?”
백야의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태창이 한 번 더 바뀌었다.
[적용할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 <범생이가 안경을 벗으면(B)> (장착 중)
ㅤ <美쳤습니까 휴먼?(B)>
▶ <섹도시발(C)>
ㅤ <손은 눈보다 빠르다(C)>
ㅤ <나야 나!(D)>
ㅤ <나에게 취한다(D)>
첫 번째는 외모. 두 번째는 ‘장착 중’ 표시가 없는 걸 보니 끼 항목에 대한 선택지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단 외모부터.
안경 벗을 때만 잘생겨지는 것보다는 후자가 낫지! 그런데 설마 로봇이 되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로 망겜은 아닐 거라 믿으며 백야는 <美쳤습니까 휴먼?(B)>을 선택했다. 다행히 조금 더 잘생겨 보일 뿐,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백야. 백야는 다음 선택지를 하나씩 뜯어봤다.
‘섹시 필요 없고, 티켓팅 필요 없고, 그나마 존재감이 나은 것 같은데.’
사실 저거 없이 <구애의 춤(D)>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이 돋보일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난다 긴다 하는 연습생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는 편이 좋았다.
결정을 내린 백야는 <나야 나!(D)> 위로 손가락을 옮겼다. 그런데 채 선택하기도 전에 <나에게 취한다(D)>가 장착되는 게 아닌가.
“어? 아니. 나는 그거 말고 나야 나…!”
[장착 완료한 스킬을 제외한 나머지는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야 이 망할 놈들아!”
누가 이 게임 더러 운빨 똥망겜이랬던가. 그 리뷰를 게임 소개로 바꿔야 한다.
* * *
어제저녁.
백야는 밥을 먹으며 누나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 물론 연습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연습생? 너 그래서 갑자기 안경도 벗은 거야?”
“아니 이거는 안경을 잃어버려서…….”
“하고 싶으면 해.”
백야는 이때 자신이 말을 꺼내 놓고도 살짝 당황했다.
“…어? 누나 반대 안 해?”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데 내가 왜? 대신 힘들면 말해. 그때 반대해 줄 테니까.”
“완전 잘됐다, 처남! 그럼 나 이제 연예인 가족 생기는 건가?”
그 결과 백야는 주말 아침부터 ID 엔터테인먼트 사옥에 나오게 됐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ID에서 AIM의 차기 보이그룹을 내놓는 건 8년 뒤. AIM이 곧 데뷔 7주년을 맞는다니 1년 정도 남은 셈이었다. 데뷔조가 꾸려지기 딱 좋은 시점이지 않은가.
게다가 개복치 패시브는 이미 활성화됐다. 그 말은 즉, 이번 데뷔조 합류에 실패하면 ‘데뷔 실패’로 배드 엔딩이 뜰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다.
* * *
“백야군! 어서 와요. 누나분이랑은 통화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누나가 바빠서 혼자 왔어요. 그래도 여기 말씀하신 도장은 챙겨 왔습니다.”
살면서 ID 연습생 전속 계약을 다 해 볼 줄이야. 제 이름과 보호자란 옆으로 찍히는 누나의 도장을 보자 백야는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계약이 한백야 군의 데뷔를 보장해 주진 않아요. 그래도 회사에서는 현재 AIM의 뒤를 이을 보이그룹을 계속해서 기획 중이고, 또 솔로 아티스트 발굴도 염두에 두고 있으니 백야 군만 열심히만 해 준다면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신인개발팀 팀장이라는 남자는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 백야를 연습실로 안내해 주었다.
남자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지하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공간이 묵직하게 울리는 게 느껴졌다.
층 전체를 크고 작은 안무 연습실로 만들어 놓은 듯했다.
‘역시 ID.’
이 정도 방음시설이라니. 과연 남다른 자본력이었다.
“오전엔 한참 안무 연습할 시간이라서요.”
백야를 돌아보며 살짝 미소 지은 남자는 이내 연습실 문을 노크했다.
“선생님, 잠깐 들어갈게요.”
문이 열리자 음악이 멈추고 뜨거운 열기와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뒤를 따르던 백야는 저에게로 몰리는 시선에 고개를 숙였다.
조금 부끄러웠다.
“팀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신인개발팀 지금 데뷔조 때문에 정신없다던데.”
“정신없죠. 그래도 개중 제일 한가한 사람이 움직여야지 어쩌겠습니까. 이런 인재를 다른 회사에 뺏길 순 없잖아요.”
남자는 대답하며 백야를 앞으로 이끌었다. 안무가가 흥미로운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혹시 이 친구가… 그?”
“네 맞아요. 오늘부터 ID와 함께하게 될 새로운 연습생입니다.”
팀장의 소개에 백야가 얼른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백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곳곳에서 미적지근한 박수가 하나둘씩 터져 나왔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는 의미이자 경쟁자를 향한 은근한 견제였다.
그러나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백야의 눈앞으로 상태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퀘스트(히든)가 도착했습니다!]
[Q.연습벌레만이 사는 길(1) : 안무 연습 최초 1회 달성]
연습실 내에서만 활성화되는 히든 퀘스트였다.
그리고 그 결과.
[<연습벌레만이 사는 길(1)> 완료!]
[레벨 업! Lv.2 → Lv.3]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레벨업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퀘스트는 성공이었다. 물론 과정은 절망 그 자체였지만.
“그럼 새로 온 친구 실력 좀 한번 봐야지. 이름이 백야랬나? 백야 군이 우리 회사 최단기간 오디션 합격자인 거 알아요?”
“……제가요?”
백야는 얼떨떨했다. 그야 우연히 캐스팅된 날 오디션을 봤고, 합격 통보를 그 자리에서 들었으니까.
‘다들 그렇게 들어온 거 아닌가…?’
백야는 슬쩍 거울에 비친 연습생 무리를 힐끔거렸다. 안무가의 말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몇몇이 보였다.
‘음. 견제하는 기색이 역력하군.’
그러나 그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파핰! 춤이 참 솔직하네.”
노래가 나오기 무섭게 구애의 춤 스킬이 발동됐으니까.
자신을 견제하던 연습생들도 드러난 실력을 보고 나니 경계가 허물어진 모양이었다. 좀 전의 눈빛과 비교하면 지금은 순한 양이 따로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밀려오는 자괴감에 주저앉은 백야(개복치/18)는 상처받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모은 스타 포인트 다 턴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1 스타 포인트로 1회의 스킬 뽑기가 가능했다.
현재 백야의 스타 포인트는 5점.
‘꼭 춤짱이 돼야지.’
꼭 짱이 돼서 오늘 비웃은 놈들 다 놀라게 해 줄 거야.
백야는 무조건 댄스 스킬을 뽑고 말겠다는 포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4포인트를 털어 뽑기를 돌렸다. 1포인트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대비로 남겨 두었다.
그 결과.
[스킬 획득!]
[<무대 위의 댄스 마술사(C)>, <이 헤드폰에 내 몸과 영혼을(C)>, <눈새(C)>, <오뚝이(C)>]
C밭이었다.
‘딱 봐도 댄스 관련 스킬이긴 한데…….’
굳이 설명을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등급만 C지 구애의 춤과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이런 똥망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