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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7화 (7/340)

제7화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30분 전으로 다시 거슬러 가 보자.

ID 측에서는 이미 AIM의 후배 그룹이 곧 데뷔할 거라는 보도자료를 돌린 상황에다 데뷔 준비도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그런데 지난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ID 엔터테인먼트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해외 출장을 나가 있던 대표이사가 급히 귀국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라고 일렀건만.’

끝판왕의 등장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따라붙었다.

신인 그룹이 데뷔도 전에 망하게 생겼다는 소문이 투자자들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일을 수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데뷔 전이라 따라붙은 기자는 없습니다. 다만 사생 몇 명이 목격한 것 같은데,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대형 소속사의 연습생. 그것도 데뷔가 확정된 경우, 간혹 데뷔 전부터 사생이 붙고는 했다.

“사고 친 놈은 어디 있습니까.”

“그게… 핸드폰이 꺼져있어서 연락이…….”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영문으로 적힌 대표실 도어 사인이 한눈에 보인다.

맞은편의 데스크는 비서팀의 자리. 그러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이러면 곤란하다니까요? 자꾸 이러시면 경호원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제발요. 대표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글쎄, 대표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신다고 몇 번을…!”

대표실 입구 앞에서 벌어진 실랑이. 성치 못한 꼴로 나타난 연습생을 차마 모질게 내치진 못하겠던지, 완강한 어투와 달리 비서팀의 손에는 힘이 없었다.

“뭡니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세 사람이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대표님…!”

사색이 된 비서가 얼른 달려왔다. 한 손을 들어 그를 물린 남자는 하랑을 향해 다가갔다.

함께 있던 여자애는 수술까지 했다던데 눈앞의 녀석은 얼굴과 팔에 거즈를 붙인 것 빼고는 멀쩡해 보였다.

‘박하랑. 이번 신인 그룹의 메인 보컬 포지션이랬던가.’

하랑을 훑는 남자의 눈이 싸늘했다.

‘이제 더는 아니게 됐지만.’

분란의 싹은 미리 잘라 버려야 한다. 멀쩡한 놈을 데뷔시켜놔도 연차가 조금만 쌓이면 사고 치는 게 이 바닥인데.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간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를 보며 달싹이는 입술이 보였다. 들어보나 마나 저 입에서 나올 말은 뻔했지만 남자는 물었다.

“할 말이 뭡니까.”

하랑의 무릎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꿇렸다.

남자의 구둣발 앞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그러나 하랑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어쩜 대사가 제 예상을 한치도 비켜 가지 않는다. 남자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곳엔 두 사람 말고도 보는 눈이 많았지만, 하랑도 남자도 전혀 신경 쓸 것이 못 됐다. 하랑은 용서받기 위해. 남자는 애초부터 받아 줄 생각이 없었기에.

“정말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그래요. 이번 일을 계기로 느끼는 바가 많을 테지.”

재차 잘못을 비는 하랑에 남자가 그의 말을 끊었다. 제법 긍정적인 어투에 하랑의 눈이 희망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절망적이었다.

“위약금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데뷔조에 들 만큼 ID에서 열심히 해 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가차 없이 떨어지는 계약 해지 통보.

“우리가 박하랑 씨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권한은 없으니 이곳을 나간 뒤, 다른 회사에서라도 데뷔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대… 대표님…….”

“다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 그러니 좋게 끝내주겠다 할 때 돌아가는 게 좋을 거예요. 소란을 피울수록 불리해지는 건 박하랑 씨뿐일 테니까.”

축객령을 가장한 협박이었다. 하랑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를 내려다보던 남자는 몸을 돌렸다.

짜증이 서린 얼굴.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하필이면 문 앞에 주저앉아 있는 탓에 밀치고 들어가기도 뭐했다.

“정 대표가 왔다고요.”

“아, 네. 지금 대연습실에서 합동평가를 진행 중입니다.”

기껏해야 직원 몇 명 보낼 줄 알았더니.

무슨 생각으로 남의 회사까지 온 건지 목적이 빤히 보이는 행동에 남자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대표씩이나 된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US에서도 데뷔조를 꾸리기 시작했다더니 꽤 본격적으로 만들 심산인 듯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게 자신에게도 기회일지 몰랐다.

직전의 사건으로 ID에는 급하게 메인 보컬이 필요해진 상황. 물론 이대로 데뷔해도 망하진 않겠지만 아쉬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남자는 목적지를 정했다.

“거기로 가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서로의 이해관계만 일치한다면 연습생 정도야 얼마든지 내어 줄 수 있었다.

비록 연습생의 소속이 바뀌긴 하겠지만 보장된 데뷔의 기회.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ID의 차기 그룹을 기다리며 불안감에 떠는 것 보다, 다른 회사의 데뷔조로 합류하는 게 그들에게도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제 기억으론 ID에 당장 데뷔시킬 만큼의 보컬을 갖춘 연습생은 없다. 그러니 US 쪽에서 탐낼 만한 인재는 기껏해야 댄스 포지션이 전부일 것이다.

‘저쪽의 베스트는 이미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컸으나 딜을 해 보는 수밖에.’

저쪽엔 시간이 있고. 우리는 시간이 없다.

그렇게 도착한 연습실 앞.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미색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뒤를 따르던 직원에게 물었다.

“누구죠?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남자의 눈이 백야를 집요하게 담았다. US 쪽 연습생이냐는 질문에 가까이 있던 신인개발팀장이 대답했다.

“저희 회사 연습생입니다. 들어온 지 2주 조금 넘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보컬이 괜찮은데. 학원 출신인가요?”

“아니요.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좋아서 몇 년 후가 더 기대되는 친구입니다. 트레이닝도 열심히 따라오고 있고요.”

“그런가요.”

대화가 끝났지만 남자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연습실을 바로 앞에 두고 멈춰 버린 대표이사에 당황한 직원들. 남자는 그저 백야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목소리가 더는 울리지 않게 됐을 때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 친구로 하죠.”

“……뭐를 말씀이십니까?”

팀장이 되물었다. 그는 남자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마스크도 괜찮고… 어딜 붙여 놔도 잘 어울리겠어.”

백야를 보는 남자의 입가로 미소가 어렸다. 팀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턱을 매만지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몸을 돌렸다.

“안 들어가십니까?”

“네.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요. 저 친구 계약하고 당장 합숙부터 들어가죠.”

“계약이요? 그 말은 정말 한백야 군을 데뷔조에 합류시키라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저 친구는 안무가 매우 부족한데요.”

그러나 남자는 완강했다.

“안무야 외우면 되는 거고. 춤이야 시간 지나면 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아이돌 역사상 최단기간 연습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사인을 마친 백야가 향한 곳은 회사 안의 작은 스튜디오. 카메라 장비로 둘러싸인 하얀 벽 앞에 선 백야는 몇 장의 테스트 컷을 찍었다.

클로즈업부터 상반신, 측면, 전신까지. 기획팀과 아트실에 보낼 백야의 프로필 사진이 당장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그룹은 준비 기간이 꽤 길었어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 앨범 컨셉 포토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팀장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멤버 중 한 명이 회사를 나가게 됐고, 그 자리를 제가 대신하게 될 거라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멤버들이 1년 동안 준비해 온 걸 백야는 단 세 달. 3개월 만에 끝내야 한다고도.

「일정이 많이 촉박하지만, 저희도 최대한 서포트 하겠습니다.」

백야는 짧은 회상을 마쳤다. 잠깐 감격에 찬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던 동만이 떠올랐지만, 얼른 고개를 털어 떨쳐 냈다.

“백야 씨 키가 175 정도 되는 거 같은데, 맞아요?”

“네? 네! 175.2cm입니다.”

촬영이 끝났다는 말에 백야가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화면 가득 떠 있는 제 모습이 낯설었다. 누가 봐도 어색해 죽으려 하는 얼굴이었다.

개중에서 그나마 잘 나온 몇 장을 추려낸 포토그래퍼는 그 아래로 백야의 신체 정보를 추가했다.

[키 175cm / 몸무게 60kg]

분명 175.2cm라고 했는데 0.2cm는 생략됐다.

하찮지만 저에겐 소중한 숫자인데 어떻게 그걸 생략할 수 있냐는 얼굴이 남자를 향했다. 원망 섞인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심지어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몸무게를 떡하니 적어 놓기까지 했다.

“제 몸무게는 어떻게…….”

백야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일만 하다 보면 대충 눈에 보이거든요. 수고했어요.”

“네에… 고생하셨습니다….”

백야가 힘없이 대답했다.

소수점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제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포토그래퍼에 말도 못 꺼내봤다.

어렵사리 눈이 마주친 남자는 그저 촬영이 끝났으니 안무 연습실로 내려가 보면 된다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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