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곧장 연습실로 내려온 백야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둘러봤다.
“……잘못 알려 주셨나?”
심지어 누가 부른 건지도 몰랐다. 두리번거리던 백야는 벽 쪽으로 다가가 등을 기대어 앉았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길 잠시. 정적을 깨는 꼬르륵 소리에 백야가 배를 움켜쥐었다.
“배고파….”
그러고 보니 아침에 바나나 하나를 먹은 게 전부였다. 월말 평가부터 갑작스러운 데뷔 제안에 프로필 촬영까지. 식사를 챙길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데뷔 못 할 줄 알고 다른 소속사로 튈 생각까지 했었는데.’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지금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 건 여전했다.
‘내가 데뷔를 한다니…….’
살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데뷔 후부터가 이 게임의 진짜 시작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신이 본 건 이 게임의 일부분을 적어 놓은 리뷰가 전부.
‘아마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 되겠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잡생각에 백야가 머리를 헝클이듯 털어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작은 봉지 하나를 꺼냈다.
“일단 먹고 움직이자.”
평가 시작 전, 지호가 먹으라며 준 초코 과자였다.
포장지를 뜯은 백야가 한입에 빵을 밀어 넣었다. 연습실 문 위로 붙어 있는 <음식물 반입 금지> 스티커가 양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번 씹기도 전에 그 문이 대뜸 열리는 게 아닌가.
“!!!!!!”
놀란 백야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굳어 버렸다. 이유는 달랐지만 놀라기는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어?”
“크흡! 컼!”
목에 가루가 걸린 백야는 가슴을 치며 기침했다.
‘빨리 삼켜야…!’
얼른 뒤 돌은 백야가 입안의 내용물을 열심히 씹었다. 첫인상을 이렇게 망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 보였다.
제 딴에는 숨는다고 숨은 모양이지만, 공간의 특성상 이곳은 애초에 숨는 게 불가능한 곳이었다. ID에서 제일 크고 넓은 연습실이었으니까.
백야가 벽을 보고 있긴 했지만, 빵빵하게 올라온 두 볼의 움직임은 거울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이는 중이었다.
“청청, 왜 안 들어가?”
“쉿! 햄스터 있어. 밥 먹는 중이야.”
문을 연 막내들을 선두로 멤버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안에 뭐 있냐?”
“연습실 우리가 빌린 거 아니었어?”
외딴섬의 등대처럼 홀로 서 있는 부끄러운 토마토. 아니, 빨간 후드티는 못 본 척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뒷모습은 또 어찌나 필사적인지.
막내의 조용히 하란 사인에 뒤늦게 도착한 멤버들의 목소리도 자연스레 작아졌다.
“얘들아, 매니저 형이 우리 일정 관련해서 지금 물어보러….”
제일 마지막으로 나타난 팀의 최고 연장자 민성까지.
“왜 안 들어가고 서 있어?”
다가오던 그도 본능적으로 소리를 낮췄다. 빠르게 연습실 안쪽을 살피는 눈. 누가 있었다.
“누구야?”
“몰라.”
“근데 불쌍해. 숨어서 뭐 먹고 있어.”
밥 먹을 땐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랬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는 말에 다섯 명의 장정들이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람이 늘었다.’
백야는 등 뒤가 소란스러움을 느꼈다. 뒤돌고 싶지 않았다.
반면 식사가 끝났음에도 나올 생각을 않는 뒷모습에 이내 가까워지는 기척 하나. 등 뒤에 멈춰 선 발소리에 백야가 쭈뼛거리며 돌아섰다. 물론 시선은 바닥 위로 고정이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7시부터는 저희가 연습실을 쓰기로 되어 있어서요.”
조심스레 건네진 축객령.
슬며시 고개를 든 백야와 민성의 눈이 마주쳤다. 아직 전해 들은 게 없는 모양인지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하지.’
백야는 순간 자기소개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마주친 민성의 눈이 부어있었다. 사실 민성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데뷔조가 꾸려진 지도 1년 이랬던가.’
연습생 기간까지 합친다면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함께했을 친구가 하루아침에 팀에서 빠졌다.
물론 원인 제공은 본인이 했겠지만, 사실관계를 떠나 마음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그런데 원년 멤버가 퇴출당한 날, 기다렸다는 듯이 새 멤버가 정해졌다? 오해 사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 건지. 백야는 아무 말도 안 하길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얼른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 어,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나갈게요.”
이 자리에서 제 입으로 내가 새로 합류하게 된 멤버라 소개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 혼자 신난 것 같잖아…!’
사실이긴 했지만 씁쓸했다.
그리고 방금 느낀 거지만, 저 무리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이미 자기들만의 견고한 울타리가 있는 느낌이랄까. 백야는 도망치듯 연습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
“어?! 여기 있었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스튜디오에 개발팀까지 다녀왔잖아요.”
갑자기 나타난 거구의 남자가 백야의 몸을 잡아 돌려세웠다.
“얘들아!”
“자, 잠시만요!”
당황한 백야가 버둥거렸다. 다섯 쌍의 시선이 제 쪽을 향하고.
“내가 개발팀에 가서 직접 확답 듣고 왔다! 너희 데뷔 안 엎고 그대로 간다더라!”
“……그게 정말이에요?”
지한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되물었다.
“그래 인마! 여기 백야가 너희 살렸다!”
순간 제게로 꽂히는 시선과 함께 오랜만에 시스템 창이 떴다.
[새로운 퀘스트(히든)가 도착했습니다!]
[Q. 첫인상이 중요해 : 댄스 신고식으로 상대방의 기쒄~을 제압해]
‘제압하긴 뭘 제압해!’
오늘 여러 번 오르는 혈압에 다시 한번 살아있음을 느낀 백야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싫어! 나 안 해!”
오해는 순조롭게 깊어졌다.
* * *
[신인개발팀 과장 김동만]
그는 백야의 초고속 데뷔로 입사 2년 만에 과장을 달았다. 지금 신인개발팀 내에서 동만의 위치는 ‘영웅’ 그 자체.
동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다들 하던 업무도 멈추고 박수와 쌍 엄지를 치켜들기 일쑤였다.
“이게 누구야. 우리 동 과장 아닌가!”
“하핫. 차장님 쑥스러워요.”
“아니야 아니야. 동 과장 아니었으면 내가 다 울 뻔했다니까?”
몇 년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드디어 빛을 보나 싶었는데, 갑자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신인개발팀뿐만 아니라 기획팀, 홍보팀, A&R 할 거 없이 전부가 충격이었다.
저희가 야근을 얼마나 했는데!
회사에서 신인 하나를 선보이기 전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데 이번 신인이 어디 그냥 신인이던가. 무려 ID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스타. AIM의 뒤를 이을 8년 만의 보이그룹이었다.
거기다 세계관이니 뭐니 해서 기획팀은 ‘전설’ ‘설화’ ‘세계’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란 책은 다 뒤졌다고…….
한동안 기획실이 좀비 굴이라고 불렸던 적이 있었다.
그땐 그랬지. 허허허.
그러나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
‘새로운 연습생을 합류시키는 것 외에 일정은 변동 없다’는 대표이사의 선언에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친구 프로필 올라온 거 봤는데 괜찮더라.”
“그렇죠? 저도 처음엔 백야 군이 안경을 끼고 있어서 몰랐는데, 안경을 벗는 순간! 댕~ 대앵~”
대충 머리 위로 종소리가 울렸다는 이야기였다. 동만은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백야의 칭찬을 늘어놓기 바빴다.
차장은 속으로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꺼내진 않았다.
“그나저나 애들이 고생이네요. 사실상 전면 재작업인데, 이게 세 달 안에 가능하긴 한 걸까요?”
모두가 고생하겠지만, 특히 백야는 잠잘 시간도 없이 굴려질 게 뻔했다. 당장 녹음에 안무 연습, 자켓 촬영에 뮤직비디오까지.
“작년부터 일정 계속 밀렸잖아. 투자자들 때문에 대표님도 더는 못 미루시겠지. 그래도 기획팀에서 일정 최대한 벌어 본다니까 그 친구가 빨리 적응하는 수밖에.”
“백야 군은 잘할 거예요. 지금 의지가 대단하거든요.”
“그래? 잘됐네. 안 그래도 이번에는 아예 엎어지는 줄 알고 애들도 엄청 울었다더라.”
그게 정말이냐며, 동만이 마치 자기 일인 양 슬퍼했다. 그러다 주변을 휙휙 둘러보길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속삭였다.
“듣기론 하랑이 고게 자기가 노래 좀 한다고 텃세를 부렸다던데, 진짜인가 봐요. 연습생 기간도 제일 길었잖아요.”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던 이야기였다. 차장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에서 보컬 중요하잖아. 그래도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돼서 마음이 안 좋긴 하네.”
차장은 모니터 위로 떠 있는 백야의 프로필을 잠깐 봤다.
‘과연 이 친구는 팀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던 애들이라 잘 좀 됐으면 좋겠는데. 생각보다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 * *
그 시각, 등장부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 중인 우리의 뉴페이스는.
“오해예요! 정말 오해, 아…….”
통곡의 바다에 빠져있었다.
허우적허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