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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1화 (11/340)

제11화

‘혹시 모르니까 네 번만 뽑아 볼까.’

시스템의 장난으로 갑자기 뒷목 잡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2점은 아껴 두기로 하자.

백야는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Lv.7 백야 (동기화 중)

외모 : B

보컬 : A

댄스 : C

끼 : D

스트레스 : 9%

칭호 : 천재 아이돌 (비활성)

패시브 : R

끼는 그렇다 치고. 저 패시브는 진짜 볼 때마다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치사해서 천재 아이돌 되고 만다 내가.”

백야가 이를 악물며 결심하던 참이었다.

“혼자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또 잠꼬대야?”

유연이 엎드린 백야 위로 몸을 가까이 숙였다. 얼굴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계산에 집중하던 백야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집었다.

“으갹!“

효과음이 요란했다.

“푸하하하! 이 형 놀라는 거 왜 이래? 대박 웃겨.”

얌전히 앉아 있던 유연이 배를 잡으며 바닥 위로 동그라졌다. 민망함에 백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리에서 홱 일어나 앉은 그는 유연의 어깨를 때리며 콧바람을 뿜어댔다.

“소름 돋았잖아! 기척 좀 내라고!”

“와……. 마상. 이렇게 귀여운 동생한테 소름이라니.”

유연이 상처받은 척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백야는 곧잘 속았기에 유연은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막 한 달이 되어 가는 제 룸메이트는 놀리는 맛이 아주 쏠쏠했다.

* * *

때는 백야가 숙소에 처음 입성한 날이었다.

사실 백야는 룸메이트 선택권이 없었다. 전 멤버가 썼던 자리를 그대로 써야 했으니까. 물론 본인도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한 가지 의문만 들었을 뿐.

“지한아, 혹시 방을 나눈 기준이 있는 거야?”

“왜? 이 방 마음에 안 들어?”

“그런 게 아니라 묘하게 텐션이 다른 거 같아서.”

1번 방 멤버는 지한, 유연, 백야. 2번 방 멤버는 민성, 율무, 청.

천국과 지옥을 보는 것 같은 극명한 온도 차였다. 물론 여기가 천국, 저기가 지옥 되겠다. 왜냐하면 2번 방에는 지칠 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가 둘이나 있었으니까.

나율무라든가, 청청이라든가.

“우리 그냥 제비뽑기로 했는데? 그치 형.”

“응. 혹시 저 방으로 가고 싶은 거면 내가 민성이 형한테….”

“아니?! 나 이 방 너무 마음에 들어.”

백야는 얼른 비어 있는 침대 위로 제 짐을 놓았다.

지한은 얼마 없는 백야의 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조용한 걸 선호하는 타입. 그런 애가 어쩌자고 아이돌이 될 결심을 다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룸메이트가 썩 나빠 보이진 않았다.

‘좀 맹한 구석은 있는 것 같지만.’

물론 지한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흐억…!”

걸으면서 졸다가 발이 꼬여 넘어질 뻔하질 않나.

“스트레스는 치명적인데…. 꾸준히도 올라가네.”

살인적인 스케줄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질 않나.

“개복치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도대체가 무슨 꿈을 꾸는 건지. 가끔 잠꼬대를 했는데, 물어보면 대답은 또 착실하게 해 줬다.

“…너 뭐 키워? 어디서?”

“에엥? 뭐라는 거야. 내가 개복치라니…….”

“……개복치?”

“푸흡, 형이 개복치야? 왜?”

“알면 주거. 너 지이인짜 큰일 난다.”

처음엔 잠꼬대인 줄 모르고 대답해 주던 지한과 유연. 그런데 대화가 어째 영 이상한 거다. 그때 알게 됐다. 백야의 잠버릇을.

그런데 더 재밌는 건 그걸 또 깨어나서 다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복치 일어났어?”

지한이 생각 없이 던진 아침 인사에 백야(진짜 개복치/18)는 숨쉬기를 멈췄다.

급격히 사색이 된 얼굴. 옆을 지나던 청이 백야가 숨을 안 쉰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달려온 율무가 숨 쉬라며 등을 내려치자 그제야 숨을 토해냈다.

“내, 내, 내가 왜 개복치야!”

당황하거나 놀라면 말도 심하게 더듬었다.

뒤늦게 거실로 나온 유연이 잠꼬대가 기억나질 않느냐 물었고,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백야는 꿈이 기억난 척 맞장구쳤다. 매우 어색하게.

“맞. 다. 내가 꿈을 꿨어. 개, 개꿈.”

한술 더 떠, 그날따라 온종일 ‘개’로 시작되는 모든 단어에 흠칫거리기까지. 그에 백야를 보는 지한과 유연의 눈이 흥미로움으로 반짝였다.

청 피셜 ‘사기꾼’ 유연과, 율무 피셜 ‘조용한 또라이’ 지한의 조합. 백야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진짜 지옥 당첨이었다.

* * *

이른 새벽 데이즈의 숙소 앞.

흰색 카니발 한 대가 들어오며 곧이어 낯익은 얼굴이 내렸다. 데이즈를 데리러 온 매니저 남경이었다.

“너무 빨리 왔나?”

오늘은 중요한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 조금 서둘렀더니 생각보다 더 일찍 도착한 참이었다.

삑삑삑삑-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시간을 확인한 남경은 조금 더 자게 내버려 둬도 되겠다 생각하며 거실로 향했다. 아직 어둠이 어수룩한 새벽이었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멤버가 있는 지 약하게 켜진 거실 조명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거기 누구야?”

거실에 들어서자 보이는 아련한 뒷모습. 비교적 아담한 사이즈인 걸 보니 주인공은 백야인 듯했다.

“더 안 자고 왜 벌써 일어났어? 잠도 모자란 녀석이.”

남경이 조금 놀란 얼굴로 다가갔다.

“아, 남경이 형? 일찍 오셨네요.”

“어쩌다 보니까. 혹시 첫 촬영이라서 걱정돼?”

백야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살짝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어둠에 가려져 남경은 보지 못했다. 그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그는 백야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예상치 못한 격려에 양심을 찔린 백야.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사기를 친 기분이었다.

‘그냥 뽑기하려고 일찍 일어난 건데…….’

물론 촬영도 긴장되긴 했지만 뽑기를 돌릴 때만큼은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잠든 시간을 노리다 보니 이른 새벽이었을 뿐.

이왕 뽑을 거라면 오늘이 가기 전에 기회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

[스킬 획득!]

[<심쿵 유발자(B)>, <형광등(B)>, <춤신춤왕(C)>, <스투페파이(C)>]

목표한 바는 이루지 못했지만 나름의 수확은 있었다.

Lv.7 백야 (동기화 중)

외모 : B

보컬 : A

댄스 : C

끼 : B

스트레스 : 10%

칭호 : 천재 아이돌 (비활성)

패시브 : R

끼가 두 단계나 올라갔다.

백야는 새롭게 바뀐 자신의 상태창을 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나에게 취한다(D)>와 <무대 위의 댄스 마술사(C)>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새로운 능력 <심쿵 유발자(B)>와 <춤신춤왕(C)>.

조금 전 뽑기의 결과는 이랬다.

<심쿵 유발자(B)>

: 보는 이의 심장을 쿵! 하게 만든다.

<형광등(B)>

: 형광등을 100개 켠 듯한 외모.

<춤신춤왕(C)>

: 사람을 홀리는 마성의 춤사위.

<스투페파이(C)>

: 치명적인 매력으로 상대방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든다.

사실 처음엔 상세 설명을 보고 B등급 두 개는 외모 관련 스킬인 줄 알았다. 같은 등급인데다 지금도 만족 중인지라, 딱히 상위 스킬이 아닌 이상 바꿀 생각이 없던 그로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그런데 장착 단계로 넘어가니 <심쿵 유발자(B)>가 ‘끼’ 항목에 떠 있는 게 아닌가. 백야의 눈이 커지는 건 당연했다.

무릇 아이돌이라면 가져야 할 필수 덕목! 거울을 보고 나에게 취해 자신감이 올라가는 것 따위와 비교되지 않는 진정한 끼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쿵을 유발한다니…!’

부족한 댄스 실력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만한 재능이었다.

‘나머지는 뭐…….’

<형광등(B)> 스킬은 고르는 순간 얼굴에서 100배 밝기의 빛이 날지도 몰랐고, <스투페파이(C)>는 조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게 있다면, 바로 스킬을 비롯한 퀘스트들이 그를 구성한 제목에 충실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너무 좋아서 눈이 돌아가게 만들거나, 그 반대거나.’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등급도 C. 한 단계나 높은 스킬을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는 선택지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 바로 댄스 관련 스킬인데.

‘사람을 홀리는 마성의 춤사위라…….’

싸하다. 완전 싸했다.

그러나 백야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처럼 동선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스킬보다는 그래도 사람을 홀리는 쪽이 낫지 않을까.

백야는 고민 끝에 스킬을 바꾸기로 했다. 부디 옳은 결정이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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