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DASE 데이즈 ‘놀이(No Games)’ Teaser #1]
파란 하늘 아래 보석이 가득 박힌 왕관을 쓴 민성의 얼굴.
‘금발에 왕관까지 세상 화려한데 얼굴밖에 안 보이네.’
과연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주얼. 대학생은 홀린 듯 썸네일을 눌렀다. 그러자 영상과 함께 드럼 비트가 재생됐다.
가장 먼저 카메라를 응시하는 민성의 얼굴이 보였다. 장난스레 올라가는 입꼬리. 그러나 썸네일 속의 왕관은 쓰지 않았다.
화면이 바뀌며 유럽풍 고성이 비춰진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방. 엔틱한 원형 테이블 주위로 모여 앉은 멤버들.
트럼프 카드를 나눠 가진 채 서로를 탐색하는 얼굴이 차례대로 잡히고.
- No Games
썸네일 속, 왕관을 쓴 민성의 모습이 풀샷으로 잡히며 검은 화면으로 바뀐다.
[DASE]
로고가 뜨며 30초짜리 영상이 끝났다.
“오…….”
원래 티저는 다 이런 건가.
대학생은 멍한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30초. 그러나 귓가엔 여전히 드럼 비트가 맴돌았고, 영상이 끝나기 직전 들렸던 한 음절이 머릿속에 제대로 박혀 버렸다.
‘데이즈? 신인인가?’
어느새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데이즈를 검색 중인 대학생. 그러나 정보가 너무 없었다. 블로그 포스트를 몇 개 눌러 봤지만, 하나같이 뿌려진 기사를 스크랩해 온 정도였다.
빠르게 흥미를 잃은 대학생은 원래 하려던 목적을 이루기로 한다.
“브이로그나 보자.”
다음날.
[DASE 데이즈 ‘놀이(No Games)’ Teaser #2]
“으엥?”
바쁜 하루를 보낸 대학생.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서로 어김없이 너튜브를 켰는데. 무슨 우연인지 어제 본 동영상의 후속편이 떠 있었다.
여전히 화려한 썸네일의 주인공은 중세 시대 때나 입었을 법한 프릴 달린 셔츠를 입은 백야였다.
고성의 창문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구도.
“이번에는 더 짧네.”
28초짜리 영상이었다.
사실 어제 본 영상도 길이만 30초지, 뒤에 가니까 로고만 10초 나오던데…. 대학생은 아니꼬웠지만 한 번 더 속아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영상과 함께 재생되는 드럼 비트.
흔들리는 커다란 샹들리에. 그 아래 놓인 화려한 엔틱 의자 위로 한 손에 왕관을 든 유연이 가로로 늘어져 있다.
흐트러진 금발.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 그 끝에는 조명에 반사된 투명한 실이 창문 밖으로 연결돼 있다.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 화면이 바뀌고. 고성 안을 뛰어다니는 율무와 지한, 청, 백야의 모습이 보였다.
옷장과 방문을 열어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민성의 컷. 다시 화면이 전환되며 단체 군무가 짧게 나온다.
- No Games 다음은 없어
이기려면 나를 죽여
썸네일 속 백야의 컷이 지나가고. 가위를 잡은 손이 실을 끊으며 검은 화면으로 바뀐다.
- Now or Never
[DASE]
로고가 뜨며 영상이 끝났다.
‘한 번 더 보고 싶다…!’
뭐지? 분명 아무 생각 없었는데 노래가 좋아서인가.
대학생은 다시 보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알아냈다.
- No games 다음은 없어
이기려면 나를 죽여
일시 정지된 화면.
높은 창문에 걸터앉은 썸네일 속의 남자가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학생은 화면을 빠르게 캡처했다.
메신저를 켠 대학생은 수많은 목록 중 ‘시윤뷘’을 찾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AIM의 시윤에 미쳐있던 그녀의 친구라면 알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나 : 선생님 혹시 이 사람 누군지 아십니까ㅠㅠ]
[나 : (사진)]
[시윤뷘 : 뭐야ㅋㅋㅋ 이 시간에 웬일로 안 잠?]
[시윤뷘 : 저게 누구지]
침대 위로 무릎을 꿇어앉은 대학생. 경건한 마음으로 친구의 감별을 기다리던 중, 마침내 감식 결과가 도착했다.
[시윤뷘 : 아 얘 걔잖아]
[시윤뷘 : 울 애기들 후배 그룹]
[나 : 그래서 이름이 뭐냐고!!!]
[시윤뷘 : 귀엽긴 하더라]
[시윤뷘 : 백야 같은데?]
“백야!”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다는 아이돌 판에 또 한 명의 유입이 발생했다.
* * *
다가온 연말. ID 엔터테인먼트는 전쟁 통이 따로 없었다. 그를 반증하듯 등장과 동시에 인간 병풍으로 전락한 동만이 입구에서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우연히 기획실에 방문할 일이 생긴 그는 감히 인사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기 이거…!”
용기 내 목소리를 내보지만,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허공에 외면당한 손이 민망했다.
자연스럽게 돌아선 동만은 의도한 척, 눈앞에 세워진 화이트보드 판 위로 손을 올렸다.
“음. 뭐가 많군.”
[12월 행사]
한 달을 빼곡히 채운 소속 가수들의 일정이었다. 특히 아래로 내려갈수록 뭐가 많이 있었는데. 바로 방송사별 연말 무대와 각종 시상식, 그리고 데이즈의 데뷔가 몰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며칠 안 남았구나.”
동만은 중앙 테이블에 옆으로 쌓아둔 데이즈의 앨범 박스를 바라봤다. 바코드도 찍히지 않은 홍보용 비매품이었다.
“온 김에 살짝 구경하고 싶었는데.”
뜯기지 않은 상자를 보는 동만의 눈에서 미련이 뚝뚝 흘러내렸다.
“동 과장? 거기서 뭐 해.”
그런데 마침 동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동만이 반색하며 뒤를 돌았다.
“팀장님!”
“아, 미안해. 앨범 가져다준다 그랬지. 정신없어서 온 줄도 몰랐어. 그거야?”
“네네!”
업계 특수성 때문에 회사 전체가 보안에 민감했지만, 그중에서도 기획팀을 비롯한 스튜디오가 있는 몇몇 층은 유독 정도가 심했다.
때문에 물건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을 일일이 내려보내야 했는데, 마침 로비를 지나던 동만이 흔쾌히 가져다주기로 한 것이다.
“여기는 언제 와도 바빠 보이네요.”
“연말에다 AIM 해외투어 때문에 더 정신없어. 아무튼 고마워. 무거웠을 텐데.”
“아니에요. 그런데 이건 언제 보실 거예요?”
식은 커피를 들이켜며 겨우 한숨을 돌리던 팀장. 분명 대화를 마무리하는 대사였지만, 동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첫인사를 나눈 후부터 그의 눈은 줄곧 테이핑 된 상자 쪽만 향하고 있었으니까.
“너 앨범 보고 싶어서 일부러 갖다준 거지.”
“티 났나요? 그래서 앨범은 언제 보실 건가요. 다른 분들도 숨 돌릴 틈은 있어야 할 텐데. 에휴.”
동만의 뻔뻔한 대답에 팀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팀장은 금방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여기 데이즈 앨범 도착했는데 구경하면서 조금만 쉬자.”
팀장의 말에 회의실에 갇혀있던 직원들이 풀려났다. 몇몇 직원들은 동만을 알아보곤 다른 팀은 출입 금지라며 장난 섞인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망설임 없이 테이프를 뜯어내는 팀장의 손길에 드디어 공개되는 데이즈의 첫 앨범.
비록 데뷔곡 ‘놀이(No Games)’가 디지털 싱글인 탓에 정식 앨범은 아니었지만, 홍보용으로 제작된 CD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오~!”
박스가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감탄사가 쏟아졌다. 투명한 CD 케이스에 ‘놀이(No Games)’의 컨셉 포토 단체 컷이 커버로 끼어 있었다. 언뜻 티저에서 본 것도 같은 장면이었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카드 게임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과 그 위로 박힌 데이즈의 영문 로고.
“이거 이대로 팔아도 되겠어요!”
신이 난 동만이 CD를 한 장 집어 들며 뒷면을 살폈다. 뒷면에는 뮤직비디오 촬영지였던 북촌의 한 고등학교 전경 사진이 들어있었다.
“노래 진짜 너무 궁금하다.”
동만은 티저가 공개된 날부터 하루에 50번도 더 돌려봤다. 로봇으로 의심받기까지 한 그는, 아마 조회 수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내일이죠?”
“네. 내일 6시요. 으아~ 과장님, 제가 다 떨려요.”
동만의 옆에 있던 신입사원이 심장께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남들은 같은 회사 직원이니 노래도 먼저 들어보고 뮤직비디오도 먼저 볼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지만 천만의 말씀. A&R이나 작곡팀이 아닌 이상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았다.
특히 데뷔나 컴백을 앞둔 시기엔 유출에 극도로 민감해져 너도나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다 구경했으면 다시들 반납!”
음원과 뮤직비디오 공개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고지를 눈앞에 둔 그의 사전에 방심이란 없었다.
팀장의 말에 빠르게 원상태로 복구되는 앨범 박스. 이제 이 앨범들은 내일 음원이 공개된 후, 데이즈의 사인을 입고 방송국을 비롯한 각종 언론사에 뿌려질 예정이었다.
‘애들 잘 됐으면 좋겠다.’
도어락이 달린 창고 안으로 옮겨지는 앨범들을 보며 동만이 마음속으로 작게 기도했다.
* * *
그리고 다가온 대망의 디데이. 연습실에 모인 데이즈는 데뷔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잠시 후,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 그때야말로 진짜 데뷔였으니까.
“혹쉬 이거 안마 의자였어? 진동 무슨 일이야~”
“백야 괜찮아?”
연습실 안쪽의 휴식 공간. 소파에 앉은 백야의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긴장을 풀어주려 율무가 장난을 걸고, 민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백야를 살폈다.
“하아…. 괜찮아요. 그냥 좀 긴장돼서….”
“음원 공개로 이렇게 떨면 무대는 어떡하려고 그래.”
진정하라며 물을 건네는 지한에 백야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고마워.”
“형 이러다 뮤직비디오 올라오면 기절하는 거 아니,”
남 일 같지 않은 얼굴로 백야를 걱정하던 유연. 그런 유연의 말을 끊고 매니저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 얘들아, 올라왔다!”
“Oh my gosh! 진짜 올라왔어. 빨리 눌러!”
청이 매니저의 팔을 때리며 재촉했다. 그 순간 백야의 앞으로 뜨는 시스템 창. 떨리던 백야의 몸도 멎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3)> 완료!]
[레벨 업! Lv.7 → Lv.8]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레벨업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