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DASE 데이즈 ‘놀이(No Games)’ MV]
카드를 확인하는 모습의 단체 썸네일이었다.
재생을 누르자 검게 변하는 화면.
♬♪♩♬♪♬♪♩
곡은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시작됐다. 눈을 감은 채 창문에 걸터앉은 백야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인다.
“우오오오! 형이다! 형! 형!”
흥분한 청이 백야의 허벅지를 마구 두드렸다.
“아파 청아….”
태블릿 화면 가득 찬 제 모습이 어색한지 백야가 청의 손을 막아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Whoa-oh-whoa-oh, Oh-huh
카메라가 점점 뒤로 물러나며 노을 진 고성이 담긴다.
금관악기와 검붉은 파란 하늘이 어우러지고 백야의 미성이 인트로를 수놓는다.
여기서 잠깐.
시작과 동시에 귀르가즘을 선사하는 이 바이브레이션은 사실 백야가 합류하기 전까진 없던 부분이었다. 이는 데이즈의 메인 보컬이 바뀌며 재작업을 하는 도중 새롭게 추가된 음.
다시 백야의 얼굴이 잡힌다.
태블릿 속 감은 눈이 떠지고, 카메라를 바라보자 전환되는 화면. 곡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 Shuffle mix 카드를 섞어
우리의 놀이는 시작됐어.
민성의 도입부.
A자 대형으로 선 데이즈의 안무가 시작된다. 소매와 가슴에 프릴이 달린 루즈한 셔츠를 입은 데이즈.
굵은 컬이 들어간 헤어는 멤버들의 소년미를 한층 돋보였고, 브로치를 비롯한 보석 장신구가 화려함을 더했다.
정원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카드를 나눠 갖는 멤버들의 모습.
카드의 앞면을 확인한 민성이 진지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탐색하는 듯한 시선.
그 시선의 끝은 유연에게로.
백야가 무심코 유연을 힐끔거렸다. 다들 집중했는지 조금 전의 호들갑은 온데간데없었다.
미리 볼 수 있었음에도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6시까지 버틴 결과랄까. 백야도 다시 뮤직비디오에 집중했다.
- 운명의 수레가 돌아가
장소가 바뀌고 호화로운 방 안.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 놓인 화려한 의자. 그 위로 왕관이 놓여있다.
카드를 확인한 멤버들이 성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다시 전환되는 컷.
- 마침내 둘러싼 완벽한 굴레
탐색의 시간이야 Babe
나를 숨겨 너에게로
센터에 선 유연을 중심으로 칼군무가 꽤 길게 잡힌다.
장소는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왕관을 발견한 유연이 그를 집어 들며 샹들리에 위로 비춰본다.
같은 시간, 성 안으로 흩어져 무언가를 찾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 그 안에 율무는 없다.
막다른 문 앞에 멈춰선 청. 방문을 열자 눈부신 보석이 탑처럼 가득 쌓여 있다.
- 이곳에 피라미드를 세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놀이
정원의 테이블.
남겨진 카드로 탑을 쌓고 있는 율무의 모습이 보인다.
마지막 한 장을 세우고 일어나자, 다시 시작되는 칼군무. 비트는 점점 빨라지고 어느새 후렴이었다.
- No Games 다음은 없어
이기려면 나를 죽여
파워풀한 미성과 함께 백야가 등장하며 점점 속도감을 더해가는 ‘놀이’.
백야는 청이 발견한 보물의 방에서 칼 한 자루를 집어 든다.
어느새 후렴이 끝나고 곡은 2절 브릿지로.
호화로운 목걸이를 한 지한이 치고 나오며 속도감 있는 래핑으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된다.
- No Gain 높은 곳을 원해?
그렇다면 나를 죽여
나는 널 보낼 준비가 끝났어
How Naughty
들고 있던 가위를 뒤로 던져버리는 지한. 클로즈업되며 한쪽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간다.
그 순간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 한지한~”
“크흠.”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지한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했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노래는 이제 2절 후렴을 지나 댄스 브레이크.
유연과 청을 중심으로 파워풀한 군무가 일사불란하게 펼쳐졌다.
‘나를 교묘하게 가렸네.’
대형도 대형이지만, 회사의 요청이 있었는지 카메라 각도가 백야를 가리는 구도였다.
마지막에 급하게 투입된 멤버인 데다, 댄스 브레이크는 전체 안무 중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구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백야의 몸짓에 안무가가 머리를 싸매고 앓아누운 마의 구간이었다.
‘음. 나를 숨기려고 전체 동선을 다 뜯어고쳤다지.’
덕분에 멤버들은 변경된 동선을 다시 숙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댄스 브레이크가 끝나고 클라이맥스를 향하는 곡에 정점을 찍으며 드러나는 백야의 모습. 줄곧 보이지 않던 후의 등장이라 오히려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와… 대박.”
“백야야…… 너 미쳤다 진짜.”
클로즈업되며 시원하게 치고 나오는 백야의 고음. 매니저와 유연이 동시에 팔을 문질렀다.
낮게 깔린 청의 목소리 위로 쌓이는 화음에 소름이 돋은 모양이었다.
“백야 물 좀 마실래?”
“갑자기?”
“어휴, 우리 보물 내가 지켜야지. 목 아프진 않고?”
난데없이 물을 내미는 율무에 백야가 그의 등을 아프지 않게 내려쳤다.
“하지 마.”
“넵.”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노래는 마지막에 다다랐다.
- Now or Never
끝내 왕관을 차지한 민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닫고.
[DASE]
로고가 뜨며 뮤직비디오가 완전히 끝났다.
“……….”
정적이 내려앉은 공간.
그러나 잠시 후, 청과 유연의 괴성을 시작으로 연습실에는 감동의 쓰나미가 덮쳤다.
“우와아악!”
“우리 드디어 데뷔했다!”
얼싸안고 뛰기 시작하는 막내들과 눈시울이 붉어진 리더가 보였다.
율무가 그런 민성을 끌어안으며 지한과 백야를 잡아당겼고, 쏜살같이 달려온 청과 유연도 합류했다.
“축하한다 얘들아! 우리 한번 잘해 보자!”
덩달아 감격한 매니저도 코를 훌쩍이며 무게를 실었다.
“남경이 형, 왜 울고 그래요…….”
백야도 밀려오는 감동에 코끝이 찡해지려는데, 난데없이 봉창을 두드리는 존재가 등장했다.
바로 망할 시스템 창.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뜨고야 말겠어!(1) : 데뷔 무대 성공적으로 마치기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이런 씨.”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울산광역시.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간 대학생(이하 복쑹)은 시윤뷘과의 만남을 통해 엄청난 배움을 얻고 상경하는 중이었다.
[복쑹 · 9팔로잉 · 1팔로워]
바로 아이돌 팬이라면 필수로 깔아야 한다는 어플. 파란짹과 U라이브였다. 친구는 그 어떤 기자의 정보도 파란짹보다 빠를 수 없고, 유앱보다 혜자 방송은 없을 거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벌써 홈마가 좀 있네? 너 백야가 최애랬지. 일단 백야 홈 몇 개랑 공계 팔로우해둘게.」
SNS를 할 줄 모르는 친구를 위해 기본 설정까지 야무지게 해 주는 이 구역의 고인물. 세팅 후 속성과외까지 마친 시윤뷘은 나머지는 차차 알게 될 거라며 그저 웃었다.
“근데 리짹은 왜 하는 거랬더라…?”
기차에 올라탄 복쑹은 예매 좌석에 앉자마자 SNS를 켰다.
그러나 너무 속성이었던 탓일까. 질의응답 시간을 거치지 않아 아직은 이해도가 살짝 부족한 복쑹. 돌판 입문자는 그냥 부딪혀 보기로 한다.
어느새 로딩이 끝난 화면. 그런데 뭐가 많았다. 아니, 쏟아지고 있었다.
[새로운 짹 56개]
“?????”
영문은 모르겠지만 복쑹은 본능적으로 화면을 아래로 당겼다 놓았다. 내심 인하트랑 비슷하겠거니 생각한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 DASE ‘놀이(No Games)’ MV #DASE #데이즈 #NoGames #놀이
- 놀이 백야 인트로 극락 (백야 뮤비 캡처.jpg)
- R짹 이벤트) DASE가 디지털 싱글 ‘놀이(No Games)’로 데뷔했습니다! 데뷔 축하를 위해 소소한 리짹 이벤트를 여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드디어 최애 찾음 #백야 #데이즈 #놀이 스밍하러 가야지~
- 제발 인생에서 3초만 투자해서 백야 얼굴 한 번만 봐주라 후회 없다 (백야 캡처.jpg)
- 노래하는 말랑백도 함 잡솨봐유 #백야 (백야.gif)
“……뮤직비디오가 나왔어?”
심지어 스트리밍 사이트에 음원도 풀렸단다. 덕질 초보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도대체 언제?!”
6시에.
팔로워가 몇 없었지만 ‘백야’ 토픽을 팔로우한 탓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짹이 상당수 타임라인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
대충 일의 우선순위를 파악한 복쑹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뮤, 뮤비…! 일단 뮤직비디오를 보러 가자!”
허겁지겁 앱을 갈아탄 복쑹.
귀신같은 놈. 티저 몇 번 봤다고 알고리즘에 취향을 간파당한 복쑹은 최상단에 노출된 데이즈의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
- 아이디에서 새남돌 나왔대서 구경 왔는데 역대급 개존잘
- 뮤비 미쳤다; 아니 얼굴이 미친 건가
- 비트에 돈을 얼마나 처바른거냐... ID 요즘 노래 잘 뽑네. AIM노래도 좋던뎅
- 신인임? 창문에서 바이브레이션 하는 애 음색 개사기;; 근데 얼굴은 제일 평범하네ㅎㅎ
- 얘네 의상이랑 뮤비 존예다... 한번 파 볼까
└ 저런 프릴 블라우스는 나도 못 입는데 소화력 머선일ㅠㅠ
- 1:28 액세서리랑 옷 하나같이 투머친데 그게 얼굴에 묻히네... 어메이징 센터
- 얘네 컨셉이 오X어 게임 중세 버전임? 게임 시작한다더니 갑자기 샹들리에 떨어지고 죽이고 난리블루스... 결국 토끼가 왕관 먹음
- 뮤비며 비트며 돈냄새오졌다... 애들 얼굴 착장 세트 다 완벽함. 특히 랩 하는 애 완전 취저ㅠ
└ 랩 하는 애 AIM 연하인 줄;
└ 지한이에요:) 19살
- 00:03 시작과 동시에 귀르가즘; 이 부분만 1시간 재생 누가 좀 만들어봐
- 젤 처음에 나온 애 음색 미쳤다 진짜.......
└ 222 뒤에 고음 지르는 애랑 동일 인물 같은데
- 02:16 여기 왕관! 왕관 들고 누워 있는 애 이름이 뭐예요ㅠㅠ
└ 전화번호 뭐예요
└ 아 나 이거 쓰려고 눌렀는데 늦었어
└ 이거 있을 줄 알았다ㅋㅋㅋ
└ 개나빠ㅠ 누가 좀 알려 주라고
└ 유연이에요♡
- 갈색 머리 비율 대박! 제일 잘생김ㅠㅠㅠ 이름 아시는 분~
└ 나율무~
- 왕자님들 노시는데 쇤네가 이렇게 훔쳐봐도 되는지요....
- 역시 대형은 다르네.. 얘네 파면 포카 걱정은 없겠다
- 중세 미소년 컨셉이라니 아흐흑.. 오늘부터 내 통장은 너희 거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구의 말에 따르면 멤버가 한 명씩 공개될 때부터 화제성은 단연 최고였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하게 느껴지면서 가슴이 웅장해지는 거다.
복쑹은 얼른 무대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