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5화 (15/340)

제15화

한편 복쑹의 최애.

숙소로 돌아온 백야는 침대에 누워 뮤직비디오 반응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한 개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 얘네는 서로 얼굴 보자마자 느낌 왔겠다 “무조건 뜬다”

└ 망돌이 될 수 없는 비주얼임

그러나 당사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글쎄. 근데 그게 되더라고. 망돌이.’

왜냐하면 직접 봤으니까.

데이즈가 망돌이었던 시절을 백야는 분명히 기억했다. 거기다 새로 뜬 퀘스트명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뜨고야 말겠어라니.’

안 그래도 레어 등급의 개복치. 그런데 여기서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고.

‘못 뜨면… 망돌이라서 사망 엔딩 뜨는 건가?’

애초에 제가 퀘스트를 성공한다고 해서 데이즈가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만 존재할 뿐, 성공해도 딱히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퀘스트는 그저 시한부 몸뚱이를 연명해주는 산소 호흡기. 지금도 스트레스 지수는 착실히 쌓이고 있었다.

개복치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공의 기준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

의문을 품기 무섭게 머릿속을 스치는 하나가 있었다. 일명 아이돌 성공 공식.

‘신인 아이돌 그룹의 성공 여부는 1년이면 결정된다.’

그 말은 1년 안에 음악방송 1위를 못하면 데이즈는 또다시 망돌이 된다. 그럼…….

“안 돼!”

백야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미 자고 있는 지한과 달리, 막 방으로 들어오던 유연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깜짝이야. 꿈이라도 꿨어?”

조용히 방문을 닫은 유연이 다가왔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창백한 얼굴. 어두워서 몰랐는데 백야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무리하는 거 같더라니.’

작게 한숨 쉰 유연이 백야의 이마 위로 손을 짚었다.

“어디 안 좋아? 열은 없는 거 같은데.”

다 같이 뮤직비디오를 본 뒤, 데이즈는 예정대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래 봤자 연습 지옥에 갇히는 게 전부였지만.

그런데 오늘따라 백야가 유독 열심히 하는 게 보였다. 원래도 열심히 하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느낌이 조금 달랐달까.

평소보다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 긴장돼서 그러나.’

순간 백야가 뮤직비디오 공개 전까지 떨던 모습이 생각났다. 유연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얼굴을 살폈다.

반면 당황한 백야는 온몸의 기능이 멈춰 버렸다. 하얗게 질린 작은 머리통은 유연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내가 소리 내서 말했던가? 대체 언제부터?’

사망 엔딩이라느니 망돌이라느니. 떠올리는 족족 유연이 들어서는 안 될 단어들만 생각났다.

“그… 혹시 들었어?”

“뭐. 형이 소리 지른 거?”

손을 떼어 낸 유연이 놀리듯 작게 웃었다.

“그래 들었다. 그 정도로 멤버들 깨겠어? 더 크게 질러야지.”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다가….”

백야가 시선을 피하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이 형 백퍼 쓸데없는 생각 했네, 또.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이구나.’

홀로 단정 지은 유연은 백야의 이마 위로 다시 한번 손을 올렸다.

탁!

그러나 이번에는 재질이 조금 달랐다. 찰싹 달라붙는 마찰음과 함께 백야의 몸이 속절없이 뒤로 넘어갔다. 졸지에 바로 누운 백야가 커진 눈으로 유연을 올려다봤다.

“야! 아프잖아!”

“엄살은. 이게 뭐가 아프냐?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그냥 자. 가만 보면 형은 걱정이 너무 많아.”

“내가 무슨 걱정을 했다고…!”

“보나 마나 무대 걱정하고 있었겠지.”

정곡을 찔렸는지 백야의 입이 딱 다물렸다.

“거봐. 형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내가 말 했어, 안 했어. 말 더럽게 안 들어 진짜. 그리고 아직 이틀이나 남았어. 시간 충분하다고.”

“너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

“어우 꼰대 냄새. 그냥 자라.”

잔소리를 들을 것 같자 유연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백야가 움직이지 못하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씌워 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으익! 저게 진짜…!”

“유연이 잔다~”

바짝 약이 오른 백야가 유연의 등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 * *

[김유경 : 아침이 밝았습니다. 모두 눈을 떠 주세요]

[김유경 : (사진)]

[김유경 : 지금 무릎 꿇고 대기 중]

[신재현 : 저녁 8시 아니야?]

[신재현 : 20시간 남았다고 돌은 놈아.]

[신재현 : (사진)]

자정을 넘기기 무섭게 온 사진 두 장.

“이게 뭐야…?”

현재 시각 새벽 4시.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한 백야가 멍한 얼굴로 쌓여 있는 메신저를 확인했다. TV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유경과 재현의 셀카가 올라와 있었다.

“미치겠다, 진짜.”

시간을 보니 자정이 되자마자 보낸 것 같았다. 어째 저보다 더 들떠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에 백야가 몰래 키득거렸다.

“일어났어?”

그때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지한이 젖은 머리를 털며 들어오고 있었다.

“아 지한아. 벌써 씻은 거야? 일찍 일어났네.”

“뭐. 잠이 안 와서.”

멈춰 선 지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불을 켜도 되겠냐는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는 백야. 순간 밝아지는 시야에 두 사람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다.

“너는 잘 잤어?”

“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애매한 대답에 지한이 그게 뭐냐며 웃었다. 사실 잠을 설친 건 백야도 마찬가지였으니, 아무래도 이 방에서 숙면을 취한 사람은 한 명뿐인 듯했다.

“한유연. 일어나.”

유연은 아직 한밤중이었다. 이불을 걷어낸 지한이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쿡 찌르기 시작했다.

“으으…….”

괴로운지 여전히 눈을 감은 유연이 앓는 소리를 냈다. 백야가 쌤통이라는 얼굴로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려 웃었다.

”…뭐야? 그 사악한 얼굴은.“

“내가? 아니야. 여, 옆방은 다 일어났나?”

백야가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누가 봐도 화제를 돌리는 게 분명한 질문에, 유연의 볼을 찌르던 지한의 손에서 슬쩍 힘이 빠졌다.

“거기는 아직인 거 같던데. 네가 가서 좀 깨워 줄래?”

“그래!”

그런데 백야가 방을 나서려는 타이밍에 온 집 안에 남경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쩌렁쩌렁하게.

“자, 기사아아앙! 민성이, 지한이, 율무, 백야, 청이, 유연이!”

이미 깨어 있는 사람도 놀랄 만큼 우렁찬 소리였다.

“데뷔하러 가자!”

대중 앞에 처음 데이즈를 보여 줄 날이 다가왔다.

* * *

- 오늘 날씨 요약 (겨울왕국.jpg)

- 역대급으로 춥다. 집 나오자마자 추워서 입 돌아감

- 드디어 데뷔무대♡♡♡ #데이즈 #백야 #민성

습관적으로 들어간 SNS에 춥다는 글이 여러 개 있었다.

며칠 사이 친구도 사귀고 팔로워 수도 제법 늘어난 복쑹. 그녀는 따뜻한 기숙사에서 귤을 까먹으며 8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을 졸라 산 태블릿PC도 충전 완료.

‘사실 이 모든 건 백야의 데뷔 무대를 생방송으로 보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가요 대전 푸드 준비까지 완벽하게 마친 복쑹은 막간을 이용해 친구의 타임라인을 구경하러 갔다.

임박해진 시간을 알리듯 활발한 활동 중인 시윤뷘. 마지막 리짹이 3분 전이었다.

- 나 갑자기 작년 흰검가합전 시윤에 꽂힘ㅠ 레전드였는데 (시윤 무대.gif)

- 2X1231 흰검가합전(1) #AIM #에임 (무대 영상)

- M사 가요 대전 1부 2부 큐시트 (큐시트.jpg)

그리고 그곳에서 복쑹은 쓸 만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바로 방송 큐시트.

스태프가 몰래 찍은 건지 화질이 다소 구렸지만, 식별은 가능한 정도였다.

“데이즈는 16번째.”

거의 1부 후반. 아직 데뷔 무대도 안 한 쌩 신인에겐 예상 밖의 순서였다.

‘혹시 이게 ID의 힘인가…!’

서로 아닌 척하지만 소속사마다 친한 방송국이라는 게 존재했다.

회사에서 유독 한 방송국에 아티스트를 자주 출연시킨다든가, 혹은 방송 분량이나 순서 따위가 은근히 해당 아티스트 위주로 편집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데이즈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과연. 데뷔를 전 국민이 보는 연말 무대로 하는 클라쓰.’

눈도장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찍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오른쪽에 작게 쓰여 있는 임진각.

“임진각이 뭐지?”

매년 배우들 시상식이나 챙겨봤지 연말 가요무대는 처음인 복쑹. 그녀는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 단어에 검색을 해 보기로 했다.

[임진각]

그러자 글들이 쏟아졌다.

- 오늘 파주 영하 21도. M사 임진각 유배명단 공개됨 (큐시트.jpg)

└ BB9, 데이즈, 플라워문, 블라썸

└ 체감은 영하 30도라던데 얼어 죽겠네(검은 리본 이모티콘)

- ★데뷔 무대★가 임진각인 아이돌이 있다?ㅋㅋㅋㅋ #데이즈

- M사 군대 혹한기 캠프 당첨자 발표 #임진각 #가요대전 (임진각 무대.jpg)

복쑹은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혹한기 캠프? 유배명단? 이게 다 무슨 말이지.’

복쑹은 얼른 함께 첨부된 사진을 눌렀다. 하나같이 야외에서 떨고 있는 가수들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숨만 쉬었을 뿐인데 선명하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란. 사진을 보는 저까지 추워지는 기분이었다.

“X발?”

다른 거도 아니고 데뷔 무대인데. 온실 속에서 해도 실수할까 말까 한 판국에 야외라니?

그거도 체감 온도 영하 30도!

아직 몇 없는 데이즈의 팬들은 뒷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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