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MC의 모습은 사라지고 화면 가득 백야의 얼굴이 잡혔다.
♬♪♩♬♪♬♪♩♪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백야의 미성이 울려 퍼진다.
고요히 감은 눈 때문일까. 백야의 목소리가 한층 더 청아하게 들렸다.
- Whoa-oh-whoa-oh, Oh-huh
여전히 백야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 감은 눈이 뜨이고 카메라와 시선이 마주치자 컷은 바로 전환된다.
순식간에 뒤바뀌는 반주. 민성의 노래를 시작으로 안무도 시작된다.
- Shuffle mix 카드를 섞어
우리의 놀이는 시작됐어.
단단한 눈빛. 마치 카드를 섞는 듯한 손동작. A자 대형으로 시작한 안무는 민성이 이동하며 대형을 바꿨다.
- 운명의 수레가 돌아가
마침내 둘러싼 완벽한 굴레
곡의 시작부터 센터를 유지하고 있던 유연의 파트. 메인 댄서인 그는 변형이 많은 초반부 동선의 중심을 줄곧 잡고 있었다.
시원시원한 동작과 여유로운 표정 연기는 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은 단번에 현장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잡히고. 그의 손짓에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카메라 무빙.
- 탐색의 시간이야 Babe
나를 숨겨 너에게로
턴을 넘겨받은 청이 자연스레 자신의 파트를 소화하며 앞으로 나왔다. 대형의 중심축이 바뀌며 동선이 크게 변화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 마주 보며 웃는 개구진 미소가 전광판 가득 잡혔다.
“꺄아아아악!!!”
갑자기 쏟아지는 함성.
현장의 반응이 후끈 달아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감히 신인 그룹에서 들어 볼 수 없는 이례적인 함성 소리였다.
- 이곳에 피라미드를 세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놀이
이어지는 율무의 파트. 대형의 뒤에 서 있던 그가 앞으로 성큼 걸어 나오며 클로즈업됐다.
단체샷과 파트를 소화해내는 멤버들의 원샷이 적절하게 잡히며, 곡은 어느새 후렴구를 앞두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이 데이즈를 비추고.
- No Games 다음은 없어
이기려면 나를 죽여
이내 터져 나오는 후렴구.
인트로 이후, 줄곧 대형의 가장자리에 있던 백야가 처음으로 이동했다. 그를 기준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난 멤버들.
자연스레 센터에 선 백야가 안무를 곧잘 소화하며 곡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다시금 뒤로 빠진 백야는 철저하게 수납됐다.
- No Gain 높은 곳을 원해?
그렇다면 나를 죽여
나는 널 보낼 준비가 끝났어
How Naughty
백야의 이동과 함께 갈라진 대형의 중심. 그 사이로 지한이 치고 나오며 속도감 있는 래핑이 몰아쳤다.
마이크를 쥔 손의 반지가 화려했다. 그러나 화려한 의상과는 반대로 시종일관 무게 있는 카리스마를 유지하는 지한.
차가운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때문인지 마지막 소절에서 지한의 얼굴이 과하게 클로즈업됐는데. 덕분에 이곳 임진각에서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 재연됐다.
살짝 치켜 올라가는 한쪽 눈썹.
짧지만 강렬한 한 방이었다.
팬들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SNS 반응은 그야말로 폭주.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 No Games 다음은 없어
이기려면 나를 죽여
다시 돌아온 후렴. 2절 후렴은 민성의 파트였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백야와는 다른 느낌으로 곡을 이끌었다.
그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대형. 이번에도 백야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가장자리도 아닌 율무의 뒤에 서 있던 탓이었다. 참고로 율무는 멤버들 중 키가 가장 컸다.
1절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후렴구의 멜로디.
비트가 쪼개지며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됐다. 데뷔곡을 준비하는 내내 백야를 멘붕에 빠뜨리게 한 마의 구간이 다가왔다.
‘동선 실수만 하지 말자.’
핸드 마이크를 꼭 움켜쥔 백야가 대형의 선두에 선 두 사람을 힐끔 보았다. 유연과 청. 댄스 포지션인 둘을 중심으로 펼치는 화려한 군무가 이어진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팔다리로 열심히 동작을 쫓아가는 백야. 카메라에 잡히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결코 짧지 않은 칼군무가 끝나는 순간, 시야에서 멤버들이 사라지고 백야만이 우뚝 서 있었다.
- 너에게 모든 걸 걸어 Yeah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백야의 애드리브. 데이즈의 ‘놀이’에 정점을 찍는 파워풀한 미성이 고막을 강타했다.
낮게 깔린 청의 파트가 오버랩되며 이어지고, 노래는 점점 끝을 향해 달렸다.
- Now or Never
자연스레 대열을 맞추는 데이즈. 나란히 선 그들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포즈로 엔딩을 맞이했다.
“찢었다. 미쳤다. 대애애박!”
유경이 감격에 찬 얼굴로 감탄사를 연발했고, 함께 있던 호적 메이트는 다소 넋이 나간 얼굴.
“미친. 저 말랑 꾀꼬리가 네 친구라고? 말도 안 돼. 개뻥이지? 그치?”
무방비 상태에서 심장을 폭행당한 호적 메이트는 현실을 부정 중.
“저기 노래 잘하는 애가 우리 재현이 친구라고? 귀엽게 생겼네~”
“아빠 눈에 네 친구는 노래할 때 빼고 잘 안 나오는 거 같아.”
“…….”
넋이 나간 재현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TV만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엔딩 포즈를 취한 데이즈가 비춰지고 있는 중.
4분이 조금 안 되는 무대였지만, 모든 걸 쏟아부은 데이즈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헐떡이는 입술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 달아오른 체온과 영하의 온도가 만나 그 색이 더욱 선명했다.
“근데 이 추운 날씨에 애들을 셔츠 한 장만 입히고…. 어휴, 너무 고생이네. 옷 좀 따뜻하게 입혀 주지.”
재현 맘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화면 속 데이즈의 옷이 굉장히 단출해 보였다. 빈티 난다는 게 아니라 프릴 달린 셔츠며 보석 달린 액세서리며, 세상 화려한데 너무 얇았다.
동작이 부드럽고 하나같이 추운 기색을 내지 않아 몰랐는데, 막 시작되는 다음 팀의 의상과 너무 비교됐다. 물론 저들이라고 특별히 따뜻해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특히 유연이라는 친구는 의상 가운데가 끈으로 엮여 있었는데, 안무 중 풀어져 마지막에는 빨갛게 얼은 맨살이 다 보였다.
- 방금 M사에서 신인의 패기를 보고 옴ㅎ 참고로 밖에 날씨 영하 30도
- 오늘 데뷔한 ID남돌의 패기를 봐... (데이즈 무대.jpg)
└ 저 뜨고 말겠다는 의지...
└ 너네는 뭘 해도 되겠다, 얘들아
- 영하 30도에 셔츠 한 장 입고 임진각 유배 간 아이돌 (데이즈 무대.jpg)
└ 얼죽아이돌이잖아ㅋㅋㅋ
- 어디 단체로 겨울왕국에서 왔나 봄 (유연.jpg)
└ 저 정도면 상체 탈의 수준 아니냐;
머글들은 이 한파에 얇은 셔츠 한 장만 입고 올라온 데이즈를 보고 신인의 패기라며 감탄했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과 지인은 의견이 조금 달랐다.
그들의 팬덤은 특히.
- 미친 거 아니야? 이 추운 날 애들 코트 하나 없이 저게 말이 됨?
└ 뮤비 의상이네
└ 스타일리스트 누구냐? 너무 추워서 돌아버림???
- ID 거지야? 사옥 올렸다더니 옷 지을 돈도 없나 이제
- 난 애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길래 순간 실내인 줄 알았어ㅜㅜ
- 신인의 패기... 맞말이긴 한데 ID는 좀 패야 할 거 같다 (주먹짤)
물론 소속사와 스타일리스트는 억울했다. 대기실에서 그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스태프들의 뒤로, 여섯 벌의 코트가 나란히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시간을 거슬러, 몇 분 전.
“코트를 안 입겠다고? 도대체 왜?”
“아까 좀 격하게 놀았더니 별로 춥지도 않고… 또 코트 입으면 안무하는데 불편할 것 같아.”
라는 게 데이즈의 주장이었다. 남경으로서는 전혀 납득이 안 되는 이유였다.
무대를 오늘 하루만 하고 말 것도 아니고 이제 시작인데. 그러다 탈이라도 나면 어떡하냐는 말에도 멤버들은 고집을 부렸다.
“딱 한 번만. 나 진짜 잘하고 싶어. 누나, 안 될까요?”
아쉬울 때만 나오는 청의 선택적 존댓말과 애교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스타일리스트.
“안될 건 없는데……. 그래도 너무 춥지 않을까 얘들아?”
“저 옷은 있다가 카운트다운할 때 꼭 입을게요.”
얌전한 백야까지 거들자 스태프들은 의지를 잃었다.
6대 1. 쪽수에 밀린 남경도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너희 마음대로 해라.”
그 결과 무대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딱 연습한 만큼만 하고 오랬더니 배는 더 잘하고 내려온 느낌이었다.
“너희 아주 날아다니더라? 완전 멋있었어!”
남경이 흐뭇한 얼굴로 데이즈를 맞이했다. 스태프들도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했다 함께 격려해 주었다. 그런데 어째 멤버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근데… 표정들이 왜 그래?”
남경이 심각해진 얼굴로 멤버들을 살폈다.
‘내가 놓친 무대 실수라도 있었나? 그래서 자책하는 건가?!’
그러나 이어지는 청의 목소리는 그의 화를 돋웠다.
“추, 추워. 나 이제 좀 추워…….”
눈싸움할 때 패딩을 벗어 던지던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 그렇지. 너희도 인간인데 영하 30도가 안 추울 리 없지.
“당장 차에 타!”
이제서야 추위를 느낀다는 게 기막힐 따름이었다. 그렇게 신인 버프는 무대를 마침과 동시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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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어제자 임진각 전설의 레전드(feat.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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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판에는 12월 31일마다 내려오는 슬픈 전설이 있어….
★일명 임진각 전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M사 전통으로, 한 10년 전부터 매년 신인 아이돌들을 임진각으로 유배 보내 “뜨고 말겠다”라는 오기와 독기를 몸소 가르쳐 주는 군대 악마 교관 같은 존재.
올해도 어김없이 4팀의 희생양이 나왔는데 이 중에 임진각이 데뷔 무대였던 쌩 신인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DASE
ID에서 무려 8년 만에 내놓은 6인조 보이그룹임.
평균연령이 18.666이었는데 해 바뀌어서 19.666이 됨.
아무튼 ID에서 이 갈고 냈는지 그 ‘엄동설한’에 ‘셔츠’ 한 장 입고 ‘라이브’로 ‘데뷔 무대’를 완벽하게 해냄.
진심 생방으로 보던 나는 치킨 뜯다 말고 일어나서 박수 쳤다.
(데이즈 임진각 무대 영상)
과연 신인의 패기ㅋㅋㅋㅋㅋ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 그들의 화려한 전적.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는 백야.jpg)
(데이즈 눈싸움1.jpg)
(데이즈 눈싸움2.jpg)
다행히 새해 카운트다운할 때는 코트 입고 올라와서 팬들 쓰러지진 않음.
그냥 여태껏 유배지에서 저렇게 즐기다 온 애들은 처음이라 신기해서 글 써 봄.
은 구라고 어제 내가 서리한 애기복숭 자랑하고 싶어서 썼음ㅎㅎ
(눈감은 백야.gif)
(후렴구 센터 백야.gif)
(손 모아서 입김 부는 백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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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의 패기ㅋㅋㅋ 저건 정말 패기다 입김 봐
- 너무 추워 보이는데? 그 와중에 아아 대단하다....
└ 역대급 한파에 아아를 먹는 백야 당신은 정말b
- 애들 넘 예쁜데 볼 때마다 맴찢이야ㅠㅠ 임진각 유배 가면 대박 난다는 썰로 위안 삼아 본다ㅠ
- 딱 봐도 라이브 아니던데 무슨 라이브ㅋㅋㅋ
└ 숨소리 개잘들리는데 왜 또 라이브가 아니야
└ (먹이 금지 짤)
- 보컬 라인 : 백야 민성 율무 / 댄스 라인 : 유연 청 / 랩 : 지한 이거네!
└ 댄스 라인 미쳤다고ㅜㅜ (눈 맞추며 웃는 유연 청.gif)
└ ID 보컬은 진심 아무도 못 깜
└ 데이즈 랩 맛집 딕션이 아주 쫄깃
- 셔츠 한 장 입고 무대 뿌셔 놓을 땐 언제고 카운트다운할 때는 추워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 넘 귀여워ㅜㅜ
- ID에서 8년 동안 괴물을 키웠단 말이 진짜네. 괴물 신인 등장이요
└ 진심 영하 30도를 버틴 거부터가 괴물
- 이건 패기를 넘어서 광기 수준인데? 얘네 다음 노래만 좋으면 무조건 뜨겠다
데이즈의 데뷔 무대는 ‘신인의 패기’라는 이름으로 새해부터 큰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