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8화 (18/340)

제18화

데뷔 무대를 시작으로 데이즈는 본격적인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방송국에 와 본 멤버들은 주차장부터 입구, 엘리베이터까지 신기하지 않은 게 없었다. 데이즈는 새끼 오리처럼 남경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백야야. 나 방송국 처음 와 봐. 어떡해 너무 신기해.”

율무가 백야의 팔을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백야도 방송국이 신기한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그를 본 지한이 두 사람에게서 슬쩍 멀어졌다.

“갑자기 왜 거기로 가?”

백야와 눈이 마주친 지한이 잠시 멈칫했다.

‘뭐지… 이 죄책감은.’

차마 저 순수한 얼굴에 대고 ‘너희가 부끄러워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한은 대답 대신 백야의 옷 소매를 잡아끌었다. 율무로부터 떨어뜨리려는 행동이었다.

힘없이 끌려온 백야는 이제 지한과 단둘이 걷게 됐다.

“안 신기해?”

“신기해. 근데 저기 속하고 싶진 않아.”

표현하지 않을 뿐, 그도 방송국이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한의 시선을 따라가자 막내들 옆으로 붙은 율무가 보였다. 저 조합으로 말하자면, 굳이 MBTI 검사를 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확신의 E 집단.

“이야~ 얘들아, 저거 봐.”

“대기실인가 봐! Name tag 붙어있어.”

“청청, 나 지금 떨고 있냐?”

확실히 끼고 싶지 않은 그림이긴 했다. 작게 소곤거린다곤 하지만 두리번거리는 행동이 워낙 튀어 지나가는 방송국 관계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까.

‘…내가 저기 있었다니.’

때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와닿는 법. 백야는 지한의 옆으로 조금 더 붙었다.

이 둘은 확신의 I였다.

그렇게 미로 같은 방송국 복도를 따라 걷길 잠시. 넓은 공간에 듬성듬성 세워진 파티션이 보였다.

“여기 같은데?”

멈춰선 민성이 한곳을 가리켰다.

[DASE]

파란색 파티션 위로 붙어 있는 데이즈의 이름표. 데이즈의 첫 방송국 대기실이었다.

“혹시 실망한 거 아니지? 너희도 연차 쌓이면 아까 오면서 본 그런 대기실 받을 수 있으니까….”

대기실은 한정적이었고 그나마도 무조건 연차 순으로 배정됐다. 때문에 막 데뷔한 신인들은 파티션으로 만든 간이 대기실을 사용하곤 했는데.

이는 데이즈뿐만 아니라 모든 신인이 겪는 의례적인 일이었다.

“실망이라니? 난 너무 좋은데. 얼른 들어가 보자.”

민성이 남경의 옆구리를 툭 치며 대답했다.

“Stop! 우리 사진 찍자! 사진!”

신이 난 캘리포니아 보이가 외쳤다. 좋은 생각이라며 멤버들이 파티션 앞으로 모여들었다.

스케줄 중에는 남경에게 핸드폰을 맡겨놓는 데이즈가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

“…너희 단합력 하나는 정말 대박이다. 가끔 소름이 끼칠 정도야.”

모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름표를 중심으로 야무지게 포즈를 취하고 선 멤버들.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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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여러분 안녕하세요. 데이즈입니다! 저희 드디어 방송국 입성했어요(신남) 너무 설레고 긴장되지만 데이즈의 놀이는 이제 시작이니까 계속 지켜봐 주세요! 파이팅!

#DASE (데이즈 대기실 단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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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제는 SNS가 일상이 된 복쑹.

그녀는 새로 올라온 백야의 음악방송 사진과 움짤들을 저장하고 있었다.

- 2X0104 뮤직박스 백야(1) (백야 클로즈업.gif)

- 데이즈 거를 타선이 하나도 없다ㅜㅜ (대기실 단체.jpg)

- 백야 목에 핏대만 서고 얼굴은 세상 평온 (노래하는 백야.gif)

- 도입부 백야 천상의 아리아.. 내 몸이 정화되는 기분

- 2X0104 백야 출근길 말랑백도 굴러간다 (백야.jpg)

“으아악 귀여워! 저장. 어떻게 이렇게 귀엽지? 저장.”

복쑹의 핸드폰 갤러리는 이미 백야에게 지배당한 지 오래였는데. 조금 전 저장한 것과 같은 사진이지만 크롭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한 저장의 굴레에 갇혀버린 그녀였다.

‘이번에 핸드폰 바꿀 때는 무조건 용량 큰 거로 해야지!’

얼마 남지 않은 용량에 자신의 사진을 밀어버리는 과감한 선택까지 한 그녀. 복쑹에게 데이즈의 가치는 그 정도로 대단했다.

데이즈의 데뷔곡 ‘놀이(No Games)’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43위로 첫 진입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작년 한 해, 새롭게 개편된 차트에 진입한 최초의 신인 그룹이라는 타이틀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계속 음악방송만 나오나?”

물론 저런 말랑 복숭아가 데뷔해준 것만으로도 은혜로운 일이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음악방송에서 뽀짝거리는 백야도 좋지만, 말하는 백야가 보고 싶었다.

질문을 받아 대답하고. 신인이니까 당황해서 쩔쩔매는 모습도 가끔 보여주고!

생각만으로도 광대가 절로 올라간다.

“예능이나 라디오 같은데 나와 주면 좋겠다.”

복쑹이 타임라인을 새로 고쳤다. 쏟아지는 움짤들 사이로, 저처럼 데이즈의 예능 활동을 울부짖는 친구들이 몇 보인다.

- 데이즈 자컨을 만들던가 예능 좀 보내 주라ㅜㅜ

- 무려 “8년” 만에 데뷔한 남돌이라 그런가 ID 엄청 싸고 도네. 기사 좀 작작 뿌리고 밀어주기나 하라고

“음…….”

화가 많이 나 보였다.

평화주의 복쑹은 슬그머니 타임라인을 다시 고쳤다. 그러자 최상단에 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 계정.

방금 올라온 게시글이었다. 무려 데이즈 공식 계정이 공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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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inagain]

#시윤의비긴어게인 #비긴입덕

새해 첫 주인공은 괴물 신인 #DASE! 다들 데이즈에 입덕할 준비되셨나요? 시윤이는 지금 재미난 #놀이 준비 중! #데이즈 멤버들에게 궁금했던 점부터 하고 싶었던 말 등등 마구마구 달아 주세요~(신남) 신인의 패기로 웬만하면 다 들어드릴 예정(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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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직속 선배, AIM의 시윤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해당 글은 올라오자마자 댓글이 무서운 속도로 달렸는데,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의 화력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 멤버들 서로 첫인상 어땠는지 궁금해요~

- 임진각 신인의 패기 비하인드 궁금요ㅋㅋㅋㅋ

- 이상형! 신인이라면 무조건 이상형 물어봐야지ㅠㅠ 데이즈 사랑해♡

- 민초vs반민초

└ 얼죽아도 물어봐 줬으면ㅎㅎ

- 멤버 별 오디션/캐스팅 일화 물어봐 주세요!

대형 소속사에서 낸 간만의 보이그룹. 데뷔 전부터 워낙 많은 관심을 받은 데다, 신인의 패기로 무대까지 화제 되며 인지도가 급상승한 탓이었다.

그렇게 데이즈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서 생애 첫 라디오 방송을 맞이했다.

“시윤의 비긴 어게인. 새해 첫 게스트는 겨울에 태어난 ID의 괴물 신인, 데이즈와 함께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 둘 셋. For your day! 안녕하세요. DASE입니다!”

* * *

잠시 돌아가 ‘놀이’ 무대를 처음 공개했던 임진각. 무대를 내려옴과 동시에 퀘스트 완료 알람이 떴다.

[<뜨고야 말겠어!(1)>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이로써 스타 포인트는 5점이 모였다. 스트레스 지수는 아직 20%대에 머물러 있는 상태.

생각보다 더디게 올라가는 수치에 백야는 문득 뽑기를 돌려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목표는 댄스 스킬.

‘내가 춤 스킬 뽑고 만다.’

백야는 다 계획이 있었다.

무대를 내려오기 무섭게 차에 감금당한 데이즈. 이제는 조금 과하게 느껴지는 히터에 백야는 슬쩍 윈도우 스위치 위로 손을 올렸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인 백야에게 이곳은 너무 답답했다.

‘창문을 조금만 내리면 아무도 모르겠지?’

주도면밀하게 주위를 살피는 개복치. 그러나 손가락에 힘을 주는 순간, 창문이 아닌 문이 열렸다.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하는 찬바람이 시원하다.

“아니야! 내가 연 거 아니야!”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백야가 허겁지겁 외쳤다.

“?????”

멤버들의 의아한 얼굴이 백야를 향했다. 개복치의 급발진에 잠깐 굳어 있던 민성이 대답했다.

“응. 내가 열었어. 백야,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 줄래? 우리 무대 모니터링하자.”

남경에게 핸드폰을 받아온 민성이 얼른 올라타며 문을 닫았다. 꼼짝없이 가운데 낀 백야는 울상을 지었다.

‘다, 답답해.’

그래도 가운데라 뷰는 좋았다.

방송된 TV 화면을 녹화한 영상이 재생됐다. 데이즈가 나온다며 설레하는 남경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

MC의 소개 멘트가 끝나자마자 나오는 백야의 얼굴. 눈을 감고 있었다.

“백야가 뭘 좀 아는데?”

“그냥 시켜서 한 건데….”

민성이 웃으며 백야를 놀렸다. 민망함에 입술을 말아 문 백야가 핸드폰을 쥔 민성의 손을 흘겼다.

“와. 지한이 형 딕션 무슨 일이야? 내 고막에 꽂혔는데 방금?”

“우리 막내들 춤 좀 추는데~”

그 뒤로도 계속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진 칭찬 릴레이. 멤버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가관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들 고생했다는 리더의 덕담으로 훈훈한 마무리됐다.

솔직히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고대하던 첫 무대였고 실수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으니까.

저희에겐 앞으로 더 많은 무대가 남아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 더 잘하면 돼.’

백야가 마음속으로 다짐할 때였다. 시스템 창이 다시 나타났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뜨고야 말겠어!(2) : 신인이라면 시키는 건 뭐든지 해야죠! 지금은 팀 내 캐릭터가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 (더 보기)

※ 제한 시간 내 성공 못 할 시 패시브 강화]

그런데 이번 퀘스트는 그동안 봐 오던 것들이랑 조금 달랐다. 실패 시 주어지는 페널티는 같았지만, 제한 시간 내라는 조건이 붙었다.

‘제한 시간이라고?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게다가 구구절절. 서론이 너무 길었다. 정작 중요한 건 더 보기라는 단어 뒤로 숨긴 느낌이었다.

늘 불길했지만 이번 거는 조금 더 불길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시키려고…….’

선뜻 누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도 제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 백야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더 보기를 눌렀다.

그 순간 시스템 알림이 한 번 더 울렸다.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경계’ 단계입니다. 70%]

▶ 스타 포인트 사용하기 (보유 점수 : 5)

20%대에 머무르던 스트레스 지수가 갑자기 상한가를 치며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아 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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