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 * *
이제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삶의 일부가 된 SNS. 복쑹은 자신의 타임라인에 흘러들어 온 글들을 보며 슬기로운 덕질 생활이 한창이었는데.
그런 복쑹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 너연이랑 흰야 싸움
‘너연? 흰야?’
혹시 유연이랑 백야를 말하는 걸까. 의아한 복쑹은 상대의 인장을 확인했다.
알 모양의 프로필 사진. 계정을 만들면 자동으로 세팅되는 기본 설정이었다. 알 사진 계정이라고 해서 일명 알계.
자신은 백야와 데이즈 멤버들의 프로필을 한 친구들만 팔로우했으니, 일단 자신의 친구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친구 중 한 명이 리짹해서 저에게까지 흘러들어 온 듯 했다.
‘아니 근데 싸우다니?’
이래서 기자들이 기레기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자극적인 제목만 뽑아내는 걸까.
복쑹은 누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 판단하는 건 내 몫이니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만 복쑹.
해당 알계의 타임라인에는 글이 제법 여러 개 있었다. 자신이 쓴 글 사이로 다른 알계의 글도 수시로 리짹 되어있었는데.
- 낮돌 데뷔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불화설 뜸?
└ 뻔하지 뭐ㅠ 센터랑 인기멤이랑 기 싸움
- 흰야가 눈치 오지게 보던데ㅋㅋ 홈마 사진 보면 내가 다 안쓰러움
- 브이연 한 성깔 하나 보네. 다른 멤들 기도 못 펴는 거 봐라
낮돌은 데이즈, 브이연은 유연을 일컫는 또 다른 은어인가 본데.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언어영역 1등급의 독해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되는 거다. 휘둘리지 않겠다 다짐했으나, 불화설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 복숭아 꽃길만 걸어야 하는데…!’
거기다 불화설이라니!
멤버들끼리 두루두루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개중에서도 유연과 제일 친해 보이던 백야였다.
‘보이는 라디오에서 보여준 그 케미가 비즈니스일 리 없어!’
라디오 방송 이후, 팬들 사이에서 병아리즈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 서로를 질투해 기 싸움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복쑹은 얼른 자신의 타임라인으로 돌아갔다. 계속 보다간 멘탈이 털릴 것 같았다.
- 2X0130 뮤스 외출 #백야 #지한 (백야 지한.jpg)
- 울 애기 많이 피곤한가? 오늘따라 많이 지쳐 보임ㅠ
- 복숭아 출근! 뭔가 기운 없어 보여ㅜㅜ (백야.jpg)
- 2X0130 복숭아랑 토끼 뮤직스테이 출근 (백야 민성.jpg)
그런데 보다 보니 유연과 찍힌 사진이 정말 한 장도 없는 거다. 출근길에도 중간 외출을 할 때에도. 백야와 유연은 항상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느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 복쑹.
그래. 이왕 연 판도라의 상자, 복쑹은 ‘흰야’를 검색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생각보다 더 많이 쏟아지는 검색 결과. 집념의 복쑹은 개중에서 두 사람이 싸운 이유로 추정되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데.
- 불화설까진 아니고 그냥 흔한 남고딩 서열정리
“서열정리?”
복쑹의 머릿속이 더 어지러워졌다.
* * *
그 시각 불화설의 당사자들.
지한과 함께 멤버들의 점심을 사 온 백야가 유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형. 이거 먹어.”
“쓰읍! 어디 형님한테.”
“……드세요.”
“오냐.”
샌드위치를 받아드는 동작이 한없이 거만하다. 유연의 행동에 주저함이라곤 없었다. 그의 거들먹거리는 태도에 욱하는 건 오로지 백야뿐.
“야, 그런데 너도 나한테 존댓말은 안 하지 않았냐?”
조금 억울한 백야가 항의했다.
“어허. 한 달 동안 형님으로 모시면 내 너른 아량으로 용서해준다 했거늘.”
데뷔 전 연습 기간까지 합하면 약 다섯 달의 기간. 저보다 형인 줄 알았던 백야가 알고 보니 생일이 무려 한 달이나 느린 ‘친구’였다니.
그에 유연이 뒷목을 잡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은연중에 퍼진 소문처럼 불화까진 가지 않았고.
한 달 동안 백야가 유연을 형님으로 모시면 그간의 일은 잊고 친구로 지내주겠다는 쌍방 간의 합의가 오간 상황이었다.
물론 이때 유연은 은근슬쩍 율무, 지한과도 맞먹으려 했으나, 철옹성과도 같은 두 사람의 철벽에 의해 실패했다.
“어쭈. 불만 있으면 어디 말해 보시던가.”
그러나 죄인은 말이 없는 법.
‘참자. 참아.’
백야는 입을 다문 채 도리질 쳤다.
“그럴 리가요, 형님. 진지 편하게 드시고 불편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백야가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멤버들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수군거렸다.
“쟤네 사극 찍냐…? 말투 왜 저래. 형, 동생이 아니라 왕이랑 노예 같은데?”
율무가 떫은 표정으로 백야와 유연을 힐끔댔다.
“내버려 둬.”
혹시라도 율무가 초를 칠까. 지한이 포장지를 벗긴 샌드위치를 그의 입에 쑤시듯 물렸다. 닥치라는 뜻이었다.
“그래. 얼마나 기특하냐? 안 싸우고 저렇게 푼다는데.”
민성은 손주들 재롱잔치를 보는 것처럼 그저 흐뭇해했고.
“둘 다 말투 할아버지 같아.”
청은 유연과 백야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일부 팬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화로운 대기실. 화기애애하다면 나름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그때,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 백야, 지한과 함께 외출을 다녀오는 길에 급하게 스태프에게 불려갔던 남경이었다.
“백야야! 백야 어디 있어, 백야!”
흥분한 남경이 다짜고짜 백야를 찾아댔다.
“저요? 왜 그러시는….”
놀란 백야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멤버들도 저렇게 흥분한 남경은 처음 보는지 당황한 기색이었다.
“형? 무슨 일인데.”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터진 걸까. 민성이 굳은 얼굴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자 민성의 어깨를 움켜쥐며 소리치는 남경.
“갑자기 MC 한 명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대타를 구한다는데, PD님이 백야 좀 보자신다!”
뭐?!
멤버들의 시선이 순간 백야를 향한다.
“나, 나를 왜…?”
일어선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백야.
“왜긴 왜야. 스페셜 MC 물어보려고 부르시는 거겠지! 일단 가자. 얼른 일어나.”
비록 하루지만, 이건 엄청난 기회라며 남경이 호들갑을 떨었다.
함께 소식을 들은 멤버들도 무조건해야 된다며 백야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는데.
“잠깐만! 저, 저는 그런 거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지금 그게 대수냐?! 해! 무조건 한다고 해!”
율무가 백야의 등을 퍽 내려쳤다.
“흐억!”
놀란 백야가 휘청였다.
가까이 있던 유연도 그를 잡아주며 딜을 걸어왔는데.
“야. 너 이거 하면 내가 형님 소리 오늘 하루로 줄여준다. 콜?”
“…하루?”
순간 솔깃했지만 역시 부담스러웠다.
‘생방송이잖아!’
그냥 한 달 동안 형 대접 해주고 마는 게 낫지. 백야는 세게 도리질 쳤다.
“안 돼. 나 못 해. 실수하면 어떡해.”
개복치는 걱정이 많았다. 차라리 다른 멤버를 내보내라며 백야가 떠넘기는데.
“장난해? PD님이 보자고 한 건 너라고 하시잖아. 우리 데이즈 공식 귀요미!”
율무가 백야의 턱 아래를 손으로 살살 긁었다. 그러나 지한에 의해 곧바로 저지당하고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던 민성이 나섰다.
“백야야. 하자.”
“혀엉… 나 진짜 자신 없어.”
“아니? 넌 할 수 있어. 데이즈만 생각해.”
신인 때는 일단! 무조건! 노출되고 보는 게 최고였다. 인지도가 쌓여야 사람들이 노래를 들어보든 말든 할 거 아닌가.
민성의 눈이 순간 섬뜩하게 빛났다.
‘…야생 토끼?’
흠칫한 백야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이번에는 등 뒤로 부딪히는 가슴팍. 무표정한 얼굴의 청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짜 안 할 거야?”
청은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보는 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불리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더더욱.
싸늘한 삼백안에 백야는 울상을 지었다.
‘엄마… 얘네들 무서워…….’
개복치는 겁에 질렸다.
* * *
[수련 : 생방송 MusicSTAY! 안녕하세요~ MC 수련입니다.]
PD의 큐사인에 시작되는 생방송. 항상 둘이던 음악방송 MC석이 오늘은 혼자였다.
동료가 건강상의 이유로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며 아쉬운 인사로 오프닝을 시작한 수련.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스페셜 MC를 섭외했다며 그녀가 옆을 돌아봤다.
[수련 : 요즘 가장 핫한 그룹이죠? 깨물어주고 싶은 하트 복숭아, 백야 씨와 함께합니다~]
[백야 : 안녕하세요! MusicSTAY에 나타난 데이즈의 당도 100% 복숭아. 백야입니다.]
데이즈의 간이 대기실 안.
남경에게 잠시 핸드폰을 돌려받은 민성이 실시간 TV를 보고 있었다.
“자기 입으로 당도 100%. 아, 너무 웃긴, 커헝.”
너무 격렬하게 웃은 나머지 코를 먹은 율무가 목을 가다듬으며 진정했다.
못 한다고~ 못 한다고~ 잔뜩 겁먹은 채 끌려갈 땐 언제고 백야는 곧잘 해내고 있었다.
함께 방송을 진행 중인 수련은 4년 전 데뷔한 ID의 걸그룹 로즈데이의 멤버였다. 시윤과 마찬가지로 데이즈의 직속 선배 되시겠다.
“잘하는구먼!”
이게 어떻게 온 기회인데 이걸 걷어차냐며, 기어이 백야를 들쳐 업고 대기실을 나서던 남경. 그도 화면 속 백야를 보며 흐뭇해했다.
생방송에 올라가기 직전, 남경은 백야에게 신인의 좋은 점이 뭔지 아냐며 물었다.
개복치는 신인이 좋은 점도 있냐며 덜덜 떨며 대답했다.
「백야야, 아무도 신인이 처음부터 잘할 거라 기대하지 않아. 신인이 실수하는 거? 괜찮아.」
물론 안 하면 좋겠지만.
「그러니까 너는 그냥 최선만 다 하고 내려오면 되는 거야. 천재 아이돌 될 거라며?」
동만에게 들었는지 마지막에 낯부끄러운 단어가 나오긴 했지만, 백야는 확실히 기분이 나아졌다. 그렇게 홀로 카메라 앞에 던져진 백야.
[백야 : 아이 추워~ 선배님. 그런데 이곳은 너무 추운 것 같아요.]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퍼 자켓을 입은 백야가 양팔을 쓸어내렸다.
호오~ 입김을 부는 척까지.
앓는 소리를 하던 것 치고 제법이었다.
[수련 : 괜찮아요. 백야 씨~ 곧 MusicSTAY가 시작되면 금방 더워질 테니까요. 후끈후끈! 아주 뜨거운 핫 스테이지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백야 : 그럼 저희 얼른 만나봐요! 너무너무 기대돼요!]
발을 동동거리며 수련에게 조르는 듯한 모양새.
아무 예고도 없이 스페셜 MC로 나타나, 갖은 잔망을 떨고 있는 백야에 팬들은 심장이 남아나질 않았다.
- 노래도 잔망도 진행도 못 하는 게 없는 명품 복숭아 한백야
- 울 복숭한테 갑자기 스페셜 엠씨라니요ㅠㅠ 뮤스 감사합니다
- 잔망 너무 귀엽고 예쁘고ㅠㅠ 부끄러워하면서 할 거는 다 하고 있다구 (백야 캡처.jpg)
- 작가가 대본에 사심 갈아 넣었다에 100원 건다ㅋㅋㅋㅋ
- 이렇게 입혀놓으니까 완전 아가 말티즈ㅜㅜ (백야 캡처.jpg)
여기에 퀘스트 완료 알림까지. 수치사와 맞바꾼 백야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뜨고야 말겠어!(2)>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엔딩 요정 이후, 줄곧 1에만 머물러 있던 잔망 횟수는 불과 방송 시작 5분 만에 횟수를 모두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