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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7화 (27/340)

제27화

멤버들의 응원 속에 지한&율무 팀이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들어서기 무섭게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 녹슨 쇳소리와 함께 열렸던 문이 닫히자 이내 어둠이 사위를 뒤덮었다.

[율무 : 도망가면 안 돼. 알지?]

[지한 : 너나 나 버리고 가지 마.]

두 사람에게 지급된 건 작은 손전등 하나가 전부.

나란히 섰지만 묘하게 앞서 있던 지한이 율무를 잡아당겼다. 은근슬쩍 뒤로 빠지지 말라는 살벌한 경고가 이어진다.

- 지한이 방금 눈으로 욕했는데요

- 율무 살짝 쫄았어ㅋㅋㅋㅋ

- 손전등 왜 빨간색이야ㅋㅋㅋ 저게 더 무서워

[코스1 응급실]

병원 컨셉의 귀신의 집.

붉은 조명이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기분 나쁜 바람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나란히 놓인 침대는 대부분이 망가져 있었고, 핏자국이 선명했다. 천장의 커튼은 찢긴 채 너덜거린다.

[율무 : 아… 뭐 나올 거 같은데.]

[지한 : 조용히 해.]

[율무 : 백퍼야. 여기서 뭐 나와.]

지한과 율무가 찾아야 하는 물건은 꽃다발.

침대 옆을 지나며 호들갑을 떠는 율무에 덤덤하던 지한의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그때, 데스크 위로 놓인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르릉!

[율무 : 으아아아악!]

[지한 : 아악! 아, 좀!]

지한이 슬쩍 커튼을 들춰보는 순간 울린 벨 소리. 율무가 펄쩍 이며 제 옆의 팔을 붙잡았다.

소리보다 율무 때문에 더 놀란 지한. 예민해진 고양이가 앙숙을 노려보며 한숨 쉬었다.

- 멍냥즈 귀여워 죽겠어ㅋㅋㅋ

- 전화 받아 봐 얘들아ㅋㅋㅋㅋ

- 와.. 나였으면 오줌 쌌다

- 데스크에서 뭐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

슬금슬금 다가간 두 사람이 주위를 살폈다. 딱히 눈에 띄는 위험 요소는 없어 보인다.

율무가 수화기를 들었다.

[율무 : 여, 여보세요?]

수화기만 들지 않았을 뿐. 지한도 율무 쪽으로 귀를 바짝 붙여 함께 집중하고 있는데.

콰앙!

순간 데스크 옆의 캐비닛이 열리며 환자복을 입은 귀신이 튀어나왔다.

[율무&지한 : 으아아악!]

혼비백산.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서로를 귀신 앞으로 내밀며 자신을 보호했다.

[우정♥]

[그것은 나부터 살고 보는 것]

우스꽝스러운 자막이 입혀졌다.

이내 흥분을 가라앉힌 두 사람.

내로남불이랬다고, 어떻게 자신을 떠밀 수 있냐며 멤버가 맞긴 하느냐 투닥거리기를 잠시. 율무가 놀란 심장을 다독이며 이제 진짜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 약속했다. 새끼손가락을 건 맹세가 오갔다.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음 코스로 향하는 1번 팀.

[코스2 수술실]

응급실을 지나자 이번에는 수술실이었다.

이곳은 온통 초록빛. 방 안에는 수술대 위로 마네킹이 눕혀져 있었는데. 왠지 걸음을 옮기는 순간 움직일 것 같았다.

누가 먼저 갈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결국 게임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종목은 가위바위보. 치열한 승부 끝에 탄생한 승자는 율무였다.

그리하여 두 번째 코스에서 앞장서게 된 지한.

[지한 : 죄,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공손한 인사와 함께 한 발 내딛는 그의 시선은 방 가운데에 놓인 수술대에 고정이었다.

누워있는 저게 마네킹인지 사람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집요한 눈빛. 그러나 어두운 사위와 엄청난 퀄리티에 긴가민가 하는데…….

[율무 : 저거 사람이야. 사람 같아. 호, 혹시 꽃다발 어딨는지 아시나하아아악!]

[지한 : 아아악! 야!]

덜컹! 덜컹!

갑자기 움직이는 수술대에 결국 두 사람은 주저앉고 말았다. 밀려오는 두통에 눈을 질끈 감은 지한과 심장을 부여잡은 채 숨만 겨우 쉬는 율무.

그 시각, 바깥에서 두 사람의 소리를 들은 남은 멤버들은.

[민성 : 지한이가 저렇게 신나 하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유연 : 아하학! 너무 웃겨 진짜.]

[백야&청 (자는 거 아님) : ……….]

즐기는 자와 혼이 나간 자, 두 부류만이 존재했다.

- 쟤네 들어가기도 전에 울겠다

- 지한이가 저렇게 신난 거 처음 본대ㅋㅋㅋ 신난 거 아니라고욧

- 유연이 보조개에 치인다

- 빨리 다음 팀도 보고 싶어!

[코스3 병실]

그사이 세 번째 코스에 도착한 동갑내기 팀. 아직 꽃다발은 구경도 못 한 상태였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한 두 사람은, 어차피 들어가야 하는 거 최대한 빠르게 해치우기로 한다.

두 번의 경험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 단련된 심장을 갖게 된 지한과 율무. 둘은 팀 구호를 외치며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나 진실을 마주하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닫히는 문.

[율무 : 미친. 봐, 봤냐?]

[지한 : 어…. 나만 본 거 아니지.]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펄럭이는 핏빛 커튼. 그리고 휠체어 귀신.

꽃다발은 귀신 바로 옆 침대에 놓여있었다.

- 와씨 내가 다 놀랐네

- 휠체어 뭐냐고 개놀람ㅠㅠ 근데 저건 진짜 사람 같은데?

- 저런.. 꽃다발을 저런데 두다니

차마 문을 다시 열어볼 엄두는 나지 않고, 문 위로 달린 작은 창문으로 안을 살펴보기로 한 두 사람. 휠체어 귀신은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와 있었다.

푸슉!

때마침 작동하는 바람 소리.

[지한&율무 : 와악!]

깜짝 놀란 두 사람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간을 끌수록 자기들만 불리하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은 이내 정면 돌파를 하기로 하는데.

작전명 선방 필승.

귀신이 움직이기 전, 자신들이 먼저 놀래킨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지한 : 받아주세요.]

[율무 : 제발요.]

목표물만 집어 잽싸게 튀어나온 두 사람은 수문장이 있는 출구 앞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그 과정에 꽃이 많이 볼품없어지긴 했지만, 문지기를 향해 꽃다발을 내미는 지한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 ....뭐야 이 갑분 로맨스는?

- 우리 방금까지 호러였잖아ㅋㅋ

- 이거 청혼 맞지? 나 당장 식장 예약하면 되는 거지???

- 꺄아ㅏ아악 개설레!!!!!

[지한&율무 탈출 성공!]

호러와 로맨스를 넘나든 첫 번째 팀이 드디어 나왔다.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지쳐 보이는 두 사람에 멤버들이 놀려댔다.

[유연 : 푸핫! 둘 다 얼굴이 완전 핼쑥해졌어.]

[민성 : 괜찮아? 소리를 꽤 많이 지르던데.]

[율무 : …우서? 네가 한번 들어가 봐. 그때도 웃음이 나오나 보게.]

[유연 : 에이. 나는 안 놀라지~]

[지한 : 두고 본다 너.]

소리를 너무 지른 것 같아서 걱정이지만, 그래도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에 지한과 율무는 홀가분했다.

그렇게 잠깐 웃고 떠드는 사이. 다음 팀의 입장을 알리는 안내에 백야와 민성이 일어났다.

[청 : 혀엉…… 꼭 살아서 와.]

[백야 : 청아…! (울먹)]

[민성 : 어디 죽으러 가니? 이리 와.]

잠깐 태극기를 휘날릴 뻔한 장면이 연출됐다.

박력 있게 백야를 잡아챈 민성이 그를 녹슨 철문으로 이끌었다.

[2번 쪼꼬미 팀 입장]

- 여기는 팀 이름이 왜 이래ㅋㅋ

- 둘이 데이즈에서 키 제일 작아?

- 박력 토끼!

곧바로 두 번째 팀의 입장에 팬들은 즐거워했다.

끼기기긱-

녹슨 철문이 닫히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어둠에 갇히기 무섭게 공포에 얼어버린 복숭아. 백야&민성 팀이 찾아야 할 물건도 복숭아였다.

[백야 : …나 버리면 안 돼.]

[민성 : 내가 널 왜 버려. 근데 이렇게 안 움직이면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입장한 지도 5분.

두 사람은 아직 첫 번째 코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상태였다. 문이 닫히고 어둠이 완전해지기 무섭게 주저앉은 백야 때문에.

[백야 : 바, 바닥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니까 한번 찾아본 거야.]

[민성 : 그래. 없지? 이제 가자.]

백야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바닥을 더듬거리자, 민성은 충분히 기다려줬다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어둡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질린 얼굴. 원래도 하얀 애가 창백하니까 이러다 기절이라도 하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민성 : 무서우면 잡을래?]

[백야 : 아, 안 무서워! 내가 애도 아니고. ……그래도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말로는 됐다면서 혹시라도 민성이 마음을 바꿀까, 냉큼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는 백야가 보였다.

[코스1 응급실]

피 묻은 침대와 찢긴 커튼. 처치 도구를 담은 카트가 엉망으로 쓰러져있었다.

민성을 선두로 응급실 안을 살피는 중인 쪼꼬미 팀.

- 와 민성이 겁 1도 없어

- 커튼 그냥 막 재껴보네 개 멋있어 도민성ㅠㅠㅠ

- 백야 쫄보인 거 너무 귀엽당ㅜㅜ

귀신의 집을 제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니는 중인 민성. 백야는 아닌 척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낡은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르릉!

[백야 : 으갹!]

[민성 : 여보세요?]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치는 백야와 거침없이 걸어가 수화기를 드는 민성.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 대조되어 보는 맛이 쏠쏠했다.

[백야 : 귀신 너무 싫어. 진짜 싫어. 대박 싫어. 차라리 바퀴벌레가 낫지. (중얼중얼)]

귀신은 무섭지만 바선생은 무섭지 않다는 백야. 그는 민성의 옷을 놓지 않은 채 분신사바를 중얼거렸다.

- 애기 놀라는 소리 왜 저래ㅋㅋㅋㅋㅋ

- 백야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 분신사바요???

- 그거 귀신 부르는 주문 아니냐고ㅋㅋㅋㅋ

귀신을 무서워하는 백야에게 ‘분신사바’가 귀신을 퇴치하는 주문이라 알려준 유경. (a.k.a. 찐친)

백야는 친구의 말을 몇 년째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민성 : 전화기는 그냥 낚는 용인 거 같은데? 아마 여기로 오게 하려고 일부러 울린 거 같은데.]

민성이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데스크 바로 옆의 캐비닛이 열리며 귀신이 튀어나왔다.

쾅!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완벽한 타이밍. 물론 놀란 건 백야뿐이었다.

[백야 : 끕. (음소거 아님)]

허공에 움켜쥔 주먹.

멈춰버린 숨.

제자리에 굳어버린 백야는 굉장히 놀란 상태였다. 곧 죽을 것 같은 안색에 오히려 놀라게 한 사람이 미안해질 정도였으니.

괜찮냐는 귀신의 대사에 백야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였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개복치는 방금 진짜로 죽을 뻔했다.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주의’ 단계입니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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