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 그렇지 아이돌이라면 귀신의 집 한 번쯤은 가 줘야지
- 근데 저기 진짜 귀신 나온다는 말이 있던데. 직원들도 매일 아침 제사 올리고 시작한다고...
- 나였으면 바지에 오줌쌌다
어느새 병실 문 앞에 다다른 막내즈. 여닫이문 위의 작은 유리 사이로 붉은 조명이 새어 나왔다.
[청 : 아… 저 안에 또 뭐 있어.]
[유연 : 피자 찾았다!]
유연이 문을 벌컥 열었다.
방심하는 사이 봉인 해제된 귀신에 청이 그의 등을 마구 때렸다. 셋을 세지 않고 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연 : 그럼 내가 앞장설게. 뒤따라 와.]
[청 : 응.]
유연이 휠체어 귀신을 주시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미라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던 청. 그는 유연의 뒤를 따르는 척 하다 친구가 완전히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곧장 문을 닫아버렸다.
[유연 : 야!]
[청 : 미안해 친구야!]
- 아놔ㅋㅋㅋㅋㅋ 문 닫았어ㅋㅋ
- 유연아 너 귀신이랑 갇혔다!
- 의리 지키라더니 자기가 바로 배신 때려버리네ㅋㅋㅋ 개꿀잼
유연이 순간 욱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청을 노려보던 그는 일단 피자부터 챙겼다.
그 사이 지척까지 와있는 휠체어 귀신. 그러나 유연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유연 : 좀 지나갈게요.]
담담한 반응.
오히려 당황한 건 귀신이었다. 그는 데자뷔인가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이었는데. 조금 전 복숭아를 울부짖던 백야의 옆에서 이마를 짚으며 서 있던 민성의 모습이 잠깐 나왔다.
그리고 화면 아래로 떠오르는 자막.
[내 목표물한테서 낯선 토끼의 향기가 느껴진다.]
흥미를 잃은 휠체어 귀신은 빠르게 대상을 변경하기로 하는데. 그 순간 복도에서 비명이 울렸다.
[청 : 아아악! 악! 악!]
병실에 유연과 귀신을 가두며 즐거워할 땐 언제고. 이번에는 죽어라 소리를 지르는 청에 그가 문을 열자 초대받지 않은 깜짝 손님이 와 있었다.
[율무 : 푸하하! 아 재밌어.]
[청 : You 나빴어! 완전 나빠!]
율무가 청에게 멱살을 잡힌 채 탈탈 털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카메라를 의식한 유연이 황급히 두 사람을 떼어내며 출구 쪽을 향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마지막 팀까지 탈출 성공!]
이어서 다시 귀신의 집 앞에 모인 멤버들.
막내들이 가져온 피자를 먹으며 무사히 촬영을 마무리한 데이즈는 그제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한편 쉬는 시간 겸 연습실에서 1화를 함께 시청한 데이즈. 영상이 끝나자마자 백야와 청을 놀리는 멤버들에 두 사람은 잔뜩 골이 난 상태였다.
“우리 아가들 많이 놀랐쪄여~ 백야는 눈가가 아주 촉촉하던데?”
제일 먼저 율무가 시동을 걸었다.
“안 울었어! 안 울었다고! 그리고 내 눈은 원래 촉촉해!”
“나도 축축해!”
그의 출생 연도가 밝혀진 이후로 팀 내에서 청과 막내로 묶이게 된 백야. 유연 또한 운 게 맞는 것 같다며 거들자 개복치가 억울해했다.
“진짜 소리만 저런 거야. 내가 애야? 귀신보고 울게.”
“18살이면 너희 아직 애야. 울어도 돼, 괜찮아.”
다가온 안무가가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연습을 시작하자 일렀다. 두 막내가 입술을 비죽이며 거울 앞으로 모였다.
그 시각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공개된 1화에서 나온 짤들과 영상이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었는데.
[설렌다고 난리 난 꽃다발 지한]
[귀신 잡는 복숭아]
[데이즈 개 족보 정리]
[복숭아 세계관 충돌]
[청청 영혼 리스 피자 먹방]
개중 ‘개 족보 정리’ 게시글이 유독 조회수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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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데이즈 개 족보 정리
추천 440 반대 12 (+333)
작년 연말에 임진각에서 핫데뷔한 남돌 데이즈의 족보에 관한 정리.
우선 공개된 멤버들의 프로필을 생일 순서대로 정리함.
1. 도민성 (20)
출생 XX.1.10 / 키 179cm
2. 나율무 (19)
출생 XX.11.8 / 키 185cm
3. 한지한 (19)
출생 XX.11.24 / 키 181cm
5. 한유연 (18)
출생 XX.4.2 / 키 182cm
4. 한백야 (18)
출생 XX.5.3 / 키 175cm
6. 청청 (18)
출생 XX.12.12 / 키 183cm
입덕 팬이라면 알겠지만, 처음 백야는 지한/율무랑 동갑이라고 알려졌었음. (실제로 올해 고등학교 졸업)
그런데 막상 포털에 등록된 생년월일을 보니까 오히려 한 살이 어림.
오히려 동갑인 유연/청이 백야를 형이라 부르고, 백야는 한 살 많은 지한/율무랑 친구를 먹은 상황.
빠른이면 그러려니 하기라도 할 텐데 생일도 유연 한 달이나 더 빠름. 팬들은 멘붕이 오기 시작함.
얘네 뭐지..?
혼란스럽지만 유연/청이 그냥 쿨하게 고3 대우해주기로 했나보다 하고 정리되는 줄만 알았는데…. 또 오늘 공개된 리얼리티에서는 유연이 백야를 “너”라고 부름.
청은 그대로 형이랬다가 백야랬다가 (그냥 자기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듯ㅎㅎ)
번외지만 같은 소속사에 로즈데이 마영이라고 있음. 빠른 XX로 율무, 지한이랑 친구.
근데 저 마영이라는 애가 또 민성이랑도 친구임.
※ 결론 : 민성=율무=지한=백야=유연=청은 모두 다 친구고, 백야는 족보 브레이커다.
(백야 깨물 하트.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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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야
- 얘네 족보 왜 이래? 엉망진창 와장창ㅋㅋㅋ
- 족보 브레이커ㅋㅋㅋㅋㅋ
- ㅋㅋㅋ와 진짜 정리 안 된다
- 근데 새삼 애들 얼굴부터 키까지 정말 완벽하다 갓벽 그 자체
- 나 이해했어. 그래서 백야는 막내즈라는 거지? 하... 더 귀여워
- 이 논리면 ID 대선배랑 청이랑 친구 먹는 건 시간 문제ㅋㅋ
- 어휴 머리 아파 아묻따 백야야 잘했어 내 새끼
* * *
올해로 입사 5년 차가 된 나 대리.
연남동의 한 웹 에이전시에 재직 중인 그녀는 요즘 새로 온 팀장 때문에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었다.
“어우 얄미워. 지나 잘할 것이지.”
집에 오자마자 맥주부터 따고 본 나 대리는 작은 캔 하나를 원샷했다. 맥주는 역시 퇴근하고 먹는 게 꿀맛.
“크으으!”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침대에 덜렁 누워버린 그녀. 씻는 거는 좀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일단은 좀 쉬고 싶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켠 나 대리는 메신저를 켰다. 쌓여있는 메시지들. 그러나 지금 답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또한 뒤로 미룬 직장인은 뭐 할 게 없나 화면을 뒤적거리다 만만한 너튜브를 누르게 되는데.
며칠 전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들은 모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불현듯 떠올랐다.
“놀이였던가.”
꼭 들어보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들었던 노래. 그런데 의외로 취향에 맞아 지우지 않고 계속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뒀던 곡이었다.
뮤직비디오는 더 예술이라며 극찬하던 동료가 순간 생각난 그녀는 검색창에 ‘놀이’를 입력했다.
[DASE 데이즈 ‘놀이(No Games)’ MV]
[음악노트 DASE 백야 세로 캠 ‘놀이(No Games)’]
[종이컵 놀이 베스트10]
검색 결과가 주르륵 뜬다.
뭘 눌러야 할지 몰랐던 나대리는 대충 제일 화려해 보이는 썸네일 하나를 눌렀는데. 웬 하얀 뱁새같이 생긴 게 무대 위에 멀뚱히 서 있었다.
“응?”
누가 봐도 뮤직비디오는 아니었다. 나대리는 잘못 눌렀음을 깨닫고 후진하려했으나, 곧장 웅장한 반주가 시작되며 뱁새가 노래를 시작했다. 제 귀를 사로잡았던 그 도입부를.
‘그걸 얘가 불렀다고?’
처음 곡을 듣는 순간 귓가에 꽂힌 나 대리의 킬링파트.
후렴이고 뭐고 나 대리는 이 부분만 3분 내내 듣고 싶다 생각하곤 했는데. 그녀는 어느새 화면에 홀려 침대에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중간중간 멤버와 지미집 카메라에 가려 뱁새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핸드폰을 기울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다고 가려진 남자가 보이진 않았다.
“아니 왜 자꾸 뒤로 가냐고!”
쪼그마한 게 앞으로 나오는 건 딱 자신의 파트를 소화할 때뿐. 나머지는 무대 구석에 짱 박혀서 완벽 수납되고 있었다.
나 대리는 슬슬 답답했다.
댄스 브레이크 구간이 끝나고 다시 앞으로 나오는 뱁새. 그녀의 얼굴이 다시 밝아지려던 찰나, 무대는 끝나버렸다.
얼굴만 좀 들여다봤을 뿐인데 훌쩍 지나가 버린 4분.
멈춰버린 화면 아래로 조금 전 지나쳤던 뮤직비디오가 연관 동영상으로 떠 있었다.
의식할 새도 없이 제 손가락은 이미 썸네일을 눌렀다.
- No games 다음은 없어
이기려면 나를 죽여
웅장한 음악. 화려한 영상. 그리고 그보다 더 화려한 얼굴들.
맨날 팀장 같은 꼰대만 보다가, 떠날 거면 날 죽이고 가라며 제게 집착하는 여섯 명의 존잘이라니.
정신 차려보니 웬만한 무대 영상은 다 섭렵한 뒤였다.
‘근데 내가 이걸 왜 계속 보고 있는 거지?’
뒤늦게 살짝 현타가 온 그녀는 검색창을 끄고 얼른 홈 화면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알고리즘에 제 취향을 오해받은 나대리.
피드가 평소와는 다른 썸네일로 도배돼있었다.
‘동영상 그거 몇 개 좀 봤다고 이렇게 된다고?’
몇 개 정도가 아니었으나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상태. 몇 번을 새로고침 해봐도 결과는 비슷했다.
“내 피드 돌려내…!”
아이돌 영상의 전염성은 대단했다. 마치 좀비 바이러스처럼 새로 고칠 때마다 대한민국 모든 아이돌의 무대가 돌아가면서 뜨는 기분.
그런데 그 사이로 조금 다른 성질의 썸네일이 보였다.
[EP.1|어느 날 갑자기 귀신의 집 앞에 떨어졌다|DASE HAPPY DAYS]
겁에 질린 뱁새가 복숭아를 내밀며 울먹이고 있었다.
‘…장화 신은 고양이?’
눌러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영상시청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EP.2|데이즈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DASE HAPPY DAYS]
모닥불 앞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썸네일을 누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