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뿌듯해하는 얼굴에 영상을 보던 복쑹이 한 번 더 입을 틀어막았다.
차가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 저 냉 미남이 입만 열면 삐악거린다는 사실은 팬들을 꽤 미치게 만들었다.
비슷한 계열이지만, 보조개 때문에 부드러운 느낌이 더 강한 유연이라던가. 새침, 시크하면서도 은근 허당끼 있는 지한.
체대 훈남 느낌 팍팍 나는 율무는 텐션이 높아 은근 치대는 걸 좋아했고, 상견례 프리패스 상 민성은 리더라 그런지 매사 진지했지만, 팬들의 눈엔 그저 근엄 토끼일 뿐이었다.
백야는 말해 뭐해. 제일 귀염 뽀짝하게 생긴 놈이 귀여운 짓만 골라서 했다.
듣도 보도 못한 깨물 하트부터 시작해, 여기저기서 잔망을 떨어대길래 원래 애교가 많은 성격인 줄 알았더니 그거도 아니었다.
완벽한 내향성 인간.
평소에는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는 것까지 환장 포인트였다.
‘아이돌 그룹이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나?’
복쑹은 누구 아이돌인지 몰라도 정말 잘났다고 생각하며 영상을 계속 시청했다.
[카페 ‘놀이’ 마감!]
[이제 정산할 시간]
손님들이 나가고 텅 빈 카페.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데이즈 앞으로 민성이 미니 금고를 들고 왔다.
[청 (사장님) : 다들 수고했어! Good job!]
[백야 : 우리 한 30잔 만들었나?]
[지한 : 훨씬 많을 거 같은데. 나 에스프레소만 50잔 넘게 뽑은 것 같아.]
[유연 : 30잔 더 넘지 않나? 서빙도 꽤 한 것 같은데.]
[율무 : 정산해 보자, 정산!]
율무의 재촉에 금고를 여는 민성. 그 안에는 오늘 하루, 돈 대신 받은 작은 편지들이 가득했다. 누가 넣은 건진 몰라도 작은 초콜릿 한 봉지도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로 쏟아부은 수십 장의 쪽지. 개중 민성이 한 장을 집어 소리 내 읽었다.
[민성 : 데이즈 데뷔 축하합니다. 열심히 해줘서 저희가 더 고마워요.]
민성을 시작으로 멤버들도 하나씩 종이를 집어 들었다.
[율무 : 데이즈 컴백 대박 기원! 파이팅! 신인상 가즈아~!]
[청 : 데이즈가 1층에서 원두 갈고 있다는 소문 듣고 왔어요. 잘 마시고 갑니다. 근데 이거… 무슨 맛이죠?]
청의 쪽지에 데이즈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분이 네가 만든 아메리초코를 드신 게 틀림없다며 유연과 율무가 입을 모아 말했다.
[지한 : 컴백 너무 기대하고 있어요. 파이팅.]
[유연 : 이번 신곡 컨셉이 대박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완전 기대 중!]
[백야 : 다치지 말고 오래오래 활동해주세요. 우리는 항상 데이즈 편. ID 막둥이들 아자아자!]
감동적이었다. 복쑹의 가슴이 다 뭉클할 정돈데 멤버들은 오죽할까.
다들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한 채 쪽지들을 하나씩 읽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두 인영. AIM의 시윤과 연하였다.
[시윤 : 저기… 영업하나요?]
[연하 : 커피 사러 왔는데요~]
[백야 : 앗. 선배님…?]
직속 선배의 등장에 당황한 데이즈. 우왕좌왕 거리던 그들은 이내 합창 같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90도로 숙어지는 허리에 AIM도 허리를 꾸벅였다.
[시윤 : 오늘만 하는 커피 맛집이 있다고 해서 잠깐 들렸는데. 혹시 마감하신 건가요?]
[청 : 네. 저희 장사 끝,]
[민성 : 아니요! 가능합니다. 뭐 드시겠어요?]
쿡. 청의 옆구리를 찌르며 민성이 말을 가로챘다.
[청 : Ouch!]
힘 조절이 잘 안됐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를 움켜쥐는 청. 바지사장은 진짜 사장 앞에서 힘이 없었다.
[연하 : 저는 아이스 라떼요.]
[지한 : 저, 선배님. 저희가 아메리카노 밖에,]
[백야 : 야! 그거 물 대신 우유 넣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냥 된다고 해.]
[지한 : …그럴까?]
불가능한 메뉴에 제조팀이 속닥거렸다. 그러나 상대는 직속 선배.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의 등장에 백야와 지한은 빠르게 태세 전환을 시도하는데.
다만 시윤의 귀가 너무 밝았다.
[시윤 : 아, 아메리카노밖에 안 돼요? 여기 쓰여있네 연하야.]
[연하 :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음… 그럼 저는 복숭아 아이스티로 할게요.]
[시윤 :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시윤이 카드를 내밀었다.
돈은 받지 않는다는 민성에 그러지 말라며 시윤이 재차 카드를 내미는데. 옆에 있던 연하가 그의 팔을 툭 건드렸다.
연하가 보고 있던 건 포스기 앞의 메모지와 볼펜. 그리고 데이즈의 리얼리티 촬영 안내와 계산 방법이었다.
글을 읽어보던 연하가 볼펜을 집어 들었다.
[연하 : 저희도 적어도 되죠?]
[민성 : 네, 그럼요!]
제조팀이 열심히 음료를 만드는 사이 시윤과 연하는 메모를 작성했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드리겠다는 율무의 만류에도, 두 사람은 픽업 대 앞에서 서빙팀과 함께 음료를 기다렸다.
덕분에 스몰토크 또한 자연스레 이어졌다.
[연하 : 저 그날 보이는 라디오 정말 보고 있었어요. 백야씨 깨물 하트? 그거 너무 귀엽던데요. 혹시 다른 하트도 있어요?]
[백야 : 커흡! 켁, 콜록!]
[민성 : 괜찮아? 갑자기 웬 사레가…. 여기 물.]
[시윤 : 괜찮아요?]
백야에게 집중되는 시선.
‘주목 금지’ 용감한 수호자(ISFJ)는 이제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제발 자기한테서 관심을 좀 꺼줬으면 하는 얼굴이었다.
[백야 : 괘, 괜찮아요. 침을 잘못 삼켜서….]
[연하 : 다행이다. 난 또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그런 줄 알고.]
사실 맞았지만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원래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이었다.
[율무 : 아이~ 선배님, 전혀 아닙니다. 마침 컴백을 앞두고 새로운 하트를 개발 중이었어요.]
[백야 : …내가 언제!]
[율무 : 내가 언제! 자, 하나둘 셋 하면 새로운 하트. 하나~ 둘~]
[백야 : 저게 진짜! 너 이리 와.]
[율무 : 우왁! 야, 너 손에 그거! 내려놔, 일단 내려놔.]
[백야 : 어. 너 한 대 치고.]
[연하 : 하하하, 귀엽네. (웃음)]
[시윤 : 내가 말했지? 얘네 분위기 좋다고.]
대개 아슬아슬하게 수위를 지키는 편인 율무지만, 오늘은 그 선을 넘어버린 모양이다. 결국 백야에게 잡힌 율무는 몇 대 맞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뒤로 컴백 준비는 잘 돼 가냐, 식단관리나 운동 같은 일상적인 주제의 대화가 오가고. AIM이 떠나고 나서야 열어보는 그들의 음료값.
[힘들거나 필요한 일 있으면 아래 번호로 연락해요. 귀여운 데이즈는 언제든지 환영! (핸드폰 번호) - AIM 시윤, 연하]
영상을 보던 복쑹은 박수 쳤다.
“저는 이 친목 찬성이요.”
물론 그녀뿐만 아니었다. 영상을 보고 있던 대다수 팬들이 AIM의 마음씨에 감격했다.
풀메이크업 상태인 걸 봐서, 잠깐 시간 되는 멤버 몇 명만 얼굴을 비춰달라는 소속사의 요청으로 온 것 같은데. 그래도 저 쪽지만큼은 본인들이 직접 작성하지 않았나.
당연히 방송에 공개되진 않았으나 직접 적은 핸드폰 번호까지. 저희야말로 이런 친목은 언제든지 대환영이라며 팬들은 환영했다.
[다음 화!]
[5월 3일 DASE 연습실]
데뷔곡 ‘놀이’에 맞춰 춤을 추는 데이즈가 짧게 지나가고. 장면이 바뀌며 뭔가를 배우고 있는 모습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새 안무 배우기]
[DASE 컴백 임박?!]
스튜디오 안에서 녹음 중인 백야.
[작곡가 : 백야야, 한 옥타브 더 올릴 수 있겠어?]
[백야 : 네. 해볼게요.]
[작곡가 : 이번에는 yeah를 슬프게, 아주 슬프게 하는 거야. 막 듣자마자 코끝이 찡할 정도로.]
어딘가 이상한 작곡가의 요청에 눈빛이 흔들리는 백야. 그래도 시키는 대로 다 한다.
장면이 바뀌고, 그 시각 연습실에서 분주한 멤버들.
[잠시 후]
[데이즈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백야의~]
[멤버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예고편까지 완벽했다. 복쑹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 데이즈의 깜짝 티저가 공개됐다.
* * *
[DASE 데이즈 ‘WANT ME’ MV Teaser #1]
장난감 공장.
경쾌한 플럭 사운드가 깔리며 기계가 작동한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자 등장하는 데이즈.
분홍색 머리와 흰색 반소매 티, 그리고 찢어진 청바지.
얼굴에는 저마다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인 데이즈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로봇팔 모양의 기계가 PACKING 버튼을 누르자 초록 불이 들어오며 멤버들 위로 떨어지는 상자. 투명한 플라스틱 위로 라 적혀있는 알록달록한 글자가 눈에 띈다.
- 날 데려가 줘 Want Me
You want me too
[DASE]
21초.
영상은 짧고 강렬했다.
- 와 역대급 컨셉을 들고 나오네
- 개 변태같은 놈들 어떻게 애들 얼굴에 스티커 붙일 생각을?
- 갓 이즈 데이즈 = 신은 데이즈다
- 진심 미친 변태 새끼들이 컨셉도 작작 해야지 어?!! 여섯 명 다 핑크 머리도 환장하겠는데 흰 티 청바지도 모자라서 얼굴에 스티커요? 인형 컨셉이요??? ID 나 죽이겠다고 살인 예고 한 거잖아 지금
- 저렇게 해놓으니까 진짜 여섯쌍둥이 같아
- 백야 왜 갑자기 개존잘 됨? 아니 원래도 존잘이긴 했는데 얼굴이 말이 안 되잖아요; (백야 캡처.jpg)
└ 한백야.. 핑머 박제 부탁
- 나 ID 감성 너무 취향인 거 같아... 미친놈들이 어떻게 이런 덕후들 취향 간파한 컨셉만 들고나오지
- 지금 데이즈 공홈도 바뀜!
└ 엥 진짜네 개 알록달록
- 무슨 옷 갈아입히기 게임 시작화면 같다. 가운데 토르소 마네킹도 그렇고
- 나와봐야 알겠지만 어쩌면 이거 데뷔곡 연장선인 건 아닐까? 데뷔곡 타이틀이 ‘놀이’였는데 이번 컨셉은 ‘인형’. 그러므로 이번 컴백은 인형 놀이?
└ 그럼 저 게임 인트로 같은 게 설마....
└ 우리가 데이즈 데리고 인형 놀이 하는 거라고? 설마 ID가 그런 개씹변태구나? 미친 이거네
└ 코난 등장
- 아닌 거 같긴 하지만 진짜 인형 놀이면 우리가 데이즈 옷 고를 수 있다는 거잖아 지금
- 데이즈 빨리 컴백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현기증 짤.jpg)
- 배배배백야 얼굴에 하트 큐빅 스티커..! 뱁쌔 사망......